무적호위 3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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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7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31화
“너, 너 이놈…….”
“쉬라고 했을 때 쉬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야.”
“이…… 죽일 놈이…….”
“내가 무엇을 해주었냐고 물었지? 나는 최소한 당신이 해준 것보다 더 해주었어. 그리고 오늘 맞은 걸로 나머지 잔금도 다 치렀어.”
“이, 이, 이…….”
몸을 부들부들 떠는 백리호의 입에서 핏물이 울컥거리며 쏟아졌다.
백리우진은 배에 박힌 손을 살짝 틀었다.
고개를 벌떡 젖힌 백리호의 몸이 뒤로 넘어가며 손이 빠졌다.
손이 빠진 곳에서 핏물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백리우진은 탁자 위의 종이를 집어서 손을 닦으며 냉랭히 말했다.
“선택은 알아서 하시오. 나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나를 천혼전주 살해범으로 고발하고 공호증 부전주를 따를 것인지.”
순간, 천장과 벽이 소리 없이 열리며 다섯 사람이 나왔다.
백리호의 최측근이자 비밀 호위 임무를 맡은 오혼이었다.
백리우진은 그들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들이 없으면 천혼전 역시 속빈 껍데기라는 사실도.
그들 중 사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마른 몸매의 중년인이 백리우진 앞으로 나섰다.
느릿하게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인 그가 말했다.
“천혼전은 후계를 이어받은 사람만이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천혼전의 주인은 우진 공자입니다. 우리 오혼은 충심으로 공자를 따를 것입니다.”
“고맙소.”
백리우진은 마주 포권을 취하며 안도의 숨을 조용히 몰아쉬었다.
천혼전은 구천성 내의 다른 조직과 달리 장로원 내의 청묵전과 함께 전대 성주의 사형제들이 기거하는 곳이다.
그래서 후계들이 세습할 수 있다. 후계가 없으면 성주가 책임자를 임명하는 일반적인 조직으로 돌아가고.
현재 백리호의 후계자는 공식적으로 자신이다. 백리호가 죽으면 자신이 천혼전의 주인이 된다.
문제는 백리호를 죽였을 때다.
백리호의 비밀호위무사인 오혼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단순한 살인범이 될 뿐이다.
다행히 그는 오혼과 가까이 지냈고, 백리호는 최근 들어서 너무 실망스런 행보를 보였다.
그래서 오늘 때리는 대로 맞아주었고, 마지막까지 모욕을 당한 후 죽였다.
그 모습이 오혼의 판단에 영향을 끼치기 바라며.
“시신은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공자께선 구천무원으로 돌아가십시오. 전주께선 오늘 밤 홀로 누군가를 만나러 갔다가 살해되신 겁니다.”
백리우진은 말없이 포권을 취했다.
다행히 치욕을 감수한 모험이 성공한 듯했다.
물론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제 겨우 다리 하나를 건넜을 뿐이다.’
* * *
염천산을 벗어난 장천운 일행은 일단 광산으로 향했다.
부상당한 사람들이 있어서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다.
사망자는 청산궁 무사가 넷, 비령각 무사가 셋. 모두 일곱이었다. 일단 청산궁과 비령각 무사들이 동료들의 시신을 챙겼다.
염천산에서 이십여 리쯤 벗어났을 때 완만한 야산에 시신을 묻기로 했다.
둔가부가 산을 살펴보았다. 그는 풍수에도 나름대로 식견이 있었다.
“흐음, 생각보다 괜찮군. 최상의 길지는 아니지만, 혼령이 편히 쉬기에는 그만인 곳이네.”
성한 사람들이 나서서 그들의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영산자가 염불대신 죽은 자의 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며 왕생극락을 빌었다.
강호에서 살다 보면 죽어서 짐승의 밥이 될 때가 허다하다. 이렇듯 좋은 곳에 묻힌 것만 해도 그들에게는 복이었다.
동산에 해가 뜰 즈음, 광산에 도착한 장천운 일행은 부상이 심한 사람만 남겨두고 구천성으로 향했다.
그들이 구천성에 도착한 것은 막 오시가 되었을 때였다.
장천운이 구천무원에 들어가자 사마경이 이미 수련실에서 나와 있었다. 자신이 온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녀왔습니다. 다행히 피해를 최소화하고 놈들을 처리했습니다.”
장천운은 일단 보고부터 올렸다.
사마경의 얼굴이 밝아졌다.
“잘했어. 크게 다친 곳 없이 돌아온 것도 다행이고.”
장천운은 요진광의 방에서 발견한 전서에 대해 말했다.
“그곳에서 이걸 발견했습니다.”
사마경은 전서를 받아서 읽어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곧 눈에서 차가운 한광을 번뜩이며 미소를 지었다.
“아주 멋진 선물을 가져왔어.”
“당분간은 공개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왜? 이걸 공개하면 지부들이 우리를 더 믿게 될 텐데.”
“이 전서는 공식적으로 없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공개를 하면 암천이 우리에게 또 다른 전서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아! 그렇군. 알았어. 그럼 공개는 나중에 해.”
“그런데 수련실에서 일찍 나오셨습니까?”
다탁의 찻잔을 보니 이미 차를 거의 다 비운 상태다.
차를 준비하는 시간까지 따지면 최소한 이각 이전에 나왔다는 뜻이다.
“십이지부의 주인들이 오전부터 도착하기 시작했어. 인사를 하겠다는데 수련실에만 처박혀 있을 수도 없잖아.”
한 사람이라도 더 아군으로 만들어야할 상황. 사마경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리고 천혼전주가 살해된 채로 발견되었어.”
“예? 백리호가 죽었단 말입니까?”
“동쪽 야산에 있는 산신당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데. 누군가에게 당해서 가슴이 뚫리고 심장이 터진 채 죽었다고 해.”
이상했다. 백리호 같은 고수가 가슴이 뚫리고 심장이 터친 채 산신당에서 발견되었다고?
“범인은 밝혀졌습니까?”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
사실 백리호가 죽은 거야 나쁠 것은 없었다.
소성주가 허락만한다면 자신이 죽이고 싶은 자였으니까.
문제는 왜 지금, 그것도 밤에 밖에서 의문이 가는 상태로 죽었냐는 것이다.
“우리로선 잘 된 일이네. 공손백의 강력한 우군 중 하나가 사라졌으니까.”
옆에 있던 구양명이 말했다.
“그건 그렇죠.”
고개를 주억이던 장천인이 멈칫했다.
“소성주, 그럼 천혼전은 누가 맡게 됩니까?”
“백리우진. 백리 숙부의 후계는 그밖에 없잖아.”
“그가 천혼전주가 되면 백천대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다른 사람을 대주로 세우든가, 아니면 해체해야지.”
“해체하면 천혼전으로 가서 다시 모일 겁니다.”
“그건 그래.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
“혁련 조장을 대주로 임명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혁련 조장이라면 그들을 다스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일조는?”
“단승에게 맡기면 됩니다.”
“아, 그 예쁘장한 사람?”
사마경은 그를 스치듯 보았다. 그런데도 미녀처럼 아름다운(?) 얼굴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했다.
“저, 단승은 예쁘다는 말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 말을 하면 눈에서 살기가 돌죠.”
“알았어. 하긴 남자에게 예쁘다고 하는 것도 좀 그렇지.”
장천운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단승이 사마경에게 살기를 드러내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사마경도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잠시 두 사람의 대화가 끊기자, 구양명이 무거운 표정으로 물었다.
“장 대주, 암천문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 거라고 생각하나?”
“이전과 다른 움직임을 보일 겁니다.”
“피바람이 불겠군.”
“그러겠죠. 아마 그는 더 이상 어둠 속에만 있지 않고 세상으로 나올 겁니다. 그로 인해서 피비린내는 더욱 짙어지겠지만, 우리로선 나쁠 것 없습니다.”
“왜?”
“최소한 안개 속에 숨어 있는 적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구양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젊은 친구의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을까?
‘적이 안 된 걸 다행으로 알아야 하나?’
반 년 전만 해도 그는 앞에 있는 괴물을 죽이겠다고 검을 들이댔지 않은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미친 짓이었다.
* * *
공손백은 백리호에 대한 소식을 듣고 이마를 찌푸렸다.
최근 들어서 실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가장 큰 우군 중 하나가 백리호였다. 그런데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그가 산신당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다니.
“누가 죽였는지 알아봤느냐?”
그가 묻자 동백이 대답했다.
“현재 율검당에서 조사 중이라 합니다.”
“백리호는 내 사제다. 구경만 하고 있으면 남들이 나를 인정머리 없다고 할 것이다. 추산, 네가 단혼객 열을 데리고 가서 조사를 지원해라.”
“예, 주군.”
백리호에 대한 조치는 그걸로 끝이었다.
더 할 것도 없었다.
백리호는 최근 들어서 엉뚱한 욕심만 내고 있었다. 옆에 있으면서 신경 쓰이는 것보다 없는 게 나았다.
그보다는 이제 천혼전의 향방이 중요했다.
“천혼전은 백리우진이 맡겠군.”
“그렇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밤, 그 아이를 데려와라.”
“존명.”
공손백은 백리호의 죽음보다 다른 일이 더 신경 쓰였다.
장천운이 응한곡을 쳤다고 한다.
‘괘씸한 놈. 나에게는 섭가장 혈겁의 범인을 쫓는다 해놓고…….’
어떻게 보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만 볼 수도 없었다. 어쨌든 섭가장 혈겁의 범인을 찾아내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 바람에 더 따지지도 못하는 것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지금은 그 문제로 싸울 때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그 후폭풍이다.
구천성 무사들이 그 일을 알게 되면 소성주를 향해 환호할 것이다. 그럼 간부들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구천대평의회가 하루밖에 남지 않았거늘!
‘그 교활한 놈에게 당했어.’
이제는 정식으로 붙는다 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누구보다 탁무겸의 성격을 잘 아는 그로선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탁무겸을 너무 모른다.
그는 틀에 얽매이는 성격이 아니다.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가 없는 자. 그래서 더 무서운 놈. 그게 탁무겸이다.
‘이놈이든 저놈이든, 골치 아픈 놈들이야.’
* * *
탁무겸은 긴급 전서구로 전해진 응한곡의 괴멸 소식을 듣고도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응한곡이 당했단 말이지?”
“예, 주군. 전서에 적힌 내용으로 봐선 살아남은 자가 오십 명도 안 된다고 합니다.”
분노에 찬 도악의 말에도 탁무겸은 피식 웃기만 했다.
“제법이군. 구천대평의회를 하루 남겨 놓고 무사들을 파견하다니. 장천운이 움직인 것이더냐?”
“예, 주군. 장천운이 지휘했습니다.”
“후후후후, 그놈이나 되니까 그런 결단력이 있지, 다른 자들이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남의 일이라도 되는 듯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웃기만 하는 탁무겸이다.
그 모습에 도악은 속이 탔다.
“어찌 하실 생각이신지요?”
“도악, 장천운이 어떻게 응한곡을 알아냈을 거라 보느냐?”
“영산자가 공격에 합류한 것으로 봐서는, 청산궁 족에서 알려줬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본좌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만, 어쨌든 영산자가 청산궁 무사들과 함께 공격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일이지.”
“하오면……?”
“받은 게 있으면 줘야겠지. 암천귀혼대를 보내서 벽월장을 피로 씻어내라. 아주…… 깨끗이.”
단호한 어조로 명령을 내린 탁무겸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벽월장은 무당파의 속가제자인 명사홍이 세운 문파로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청산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곳을 친다면 둘 중 하나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청산궁과 전면전이 벌어지든가, 아니면…… 협상을 하든가.
전면전이야 이미 각오한 바고, 협상을 하게 된다면 손해 볼 것이 없다.
“복ㆍ명!”
감탄한 도악이 큰소리로 외치며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탁무겸의 무서운 점은 무공의 강함이 아니었다. 단호하고 냉혹한 성정, 거기에 더해진 천재적인 머리는 가끔 자신조차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리고 그는…… 정해진 틀을 싫어했다.
사람들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금룡신군도, 청산자도.
“독고민의 상태는 어떠하냐?”
“생각했던 것보다 마령혼의 전이 상태가 좋습니다. 이대로 며칠만 가면 괜찮은 호위를 하나 두실 것 같습니다.”
“조심해서 다루어라. 앞으로 쓸모가 많은 놈이다.”
“예, 주군.” /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