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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30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79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30화

126장 멋진 선물

 

 

염천산은 산 이름처럼 무척 험한 산이었다.

바위가 붉은 것으로 유명했는데, 밤이어서 그런지 모든 게 시커멓게 보였다.

영산자는 한번이 아니라 적어도 서너 번은 가본 듯 응한곡을 망설임도 없이 찾아갔다.

“저곳이네.”

영산자가 손을 들어서 검지로 앞을 가리켰다.

어둠속에 삐죽삐죽 솟은 바위산들이 보였다. 그 바위산 사이로 먹물처럼 시커먼 계곡이 이어져 있었다.

거리는 오 리 정도.

영산자가 안내하지 않았더라면 찾기 위해서 한 동안 헤맸을지 모를 정도로 절묘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장천운은 계곡을 노려보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오면서 대략적인 계곡의 구조를 들었던 터라 처음 보는 데도 익숙한 듯 느껴졌다.

영산자야 달리면서 하기 싫은 설명을 하느라 짜증이 가득했지만.

‘어쩌면 오늘의 싸움이 진짜 전쟁의 서막일지도 모른다.’

천하의 강심장인 그도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관통하는 전율에 몸이 가늘게 떨렸다.

본의든 아니든, 천외의 세력 중 두 곳과 구천성이 나선 싸움이다. 장소를 알려준 금룡장까지 합하면 천외 세 곳이 모두 연루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저와 흑월대, 비령각, 그리고 노선배님들이 오른쪽을 맡겠습니다. 진인과 나머지 분들이 왼쪽을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공격 후 이각 쯤 지나서 휘파람소리가 들리면 빠져나오십시오.”

장천운이 말하면서 군웅들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긴장한 듯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공격은 빠르고 강하게, 빠져나올 때는 망설이지 말고 신속히 나오십시오. 너무 욕심 부리지마시고.”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닫은 장천운은 응한곡을 향해 돌아섰다.

“갑시다.”

 

십 리 정도 이어진 응한곡은 양쪽에 바위절벽이 많았다. 바위절벽 아래에는 통나무집이 드문드문 지어져 있었고, 간혹 절벽의 중턱에 지어진 집도 있었다.

구천성과 청산궁의 절정고수들은 새처럼 몸을 날려서 절벽 안으로 진입했다.

“적이다!”

“웬 놈들이냐?”

삐익! 삐이이이익!

누군가 외침과 다급한 소성이 울렸다.

어둠으로 물든 계곡을 뒤흔드는 격전의 소음.

콰광! 쩌저정!

비명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팔이 잘리고 배가 갈라지면서도 살기 띤 눈으로 노려보며 억눌린 신음만 흘릴 뿐.

우곡과 진교청이 질렸다는 듯 소리쳤다.

“지독한 놈들!”

“이놈들은 살귀들이네! 인정사정 봐줄 것 없이 목을 치게나!”

 

구천성과 청산궁의 연합 공격은 광폭하고 강력했다.

암천문 무사들이 강하다 해도, 오늘 응한곡을 방문한 고수들을 상대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방문자들은 분노로 이를 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일각이 지나자 싸우는 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피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계곡 안에 자욱이 번졌다.

그나마 캄캄한 밤인 것이 다행이었다. 밤을 낮처럼 볼 수 있는 고수들도 색깔까지 완벽히 구별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마 낮이었다면 눈 돌릴 때마다 시뻘건 핏물과 잘리고 터져 나간 시신이 널브러져 있는 지옥도가 보였을 것이다.

그 즈음, 장천운과 흑월대는 응한곡의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자가 기거하는 통나무집 앞에 내려섰다.

뒤에는 절벽이 있고, 옆에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살인귀들이 사는 곳답지 않게 멋진 풍광이군.”

평소 말이 거의 없던 백후가 투덜거렸다.

그때 검은 무복을 입은 무사 이십여 명이 달려 나와서 그들을 포위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허락 없이 들어온 자는 죽여야 하는 적일 뿐.

장천운도 구질구질하게 묻지 않았다.

“쳐!”

흑월대원들은 반사적으로 몸을 날리며 공격했다.

장천운도 구경만 하지 않았다. 그가 손을 휘두를 때마다 흑의를 입은 무사들이 뒤로 날아갔다. 손가락을 튕기면 풀쩍 뛰듯이 움찔했다가 쓰러졌다.

흑의를 입은 무사들은 유령처럼 움직이는 그의 그림자조차 잡아내지 못했다.

순식간에 다섯이 날아가거나 쓰러졌다. 흑월대원들도 일곱을 쓰러뜨려서 서 있는 자들이 열 명도 남지 않았다.

그때 통나무집 안에서 세 사람이 나왔다.

셋 중 중앙에 선 자는 수염이 덥수룩한 사십대 후반의 중년무사였다. 어둠처럼 짙은 흑포를 입고 있었는데, 키는 좌우의 두 사람보다 작았다.

“웬 놈들이냐?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들어온 것이냐?”

중앙의 중년무사가 분노한 표정으로 물었다.

장천운이 그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누가 책임자요?”

“나다. 그런 너는 누구냐?”

“나? 장천운.”

흑포 중년무사가 눈을 부릅떴다.

이제 장천운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면서 물어보니, 당신들이 섭가장을 쳤다고 하더군. 그래서 왔지, 확인하려고. 맞소?”

“맞다면?”

장천운은 공격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순식간에 칠팔 장의 거리를 줄인 장천운이 중년무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런 건방진……!”

노성을 터트리던 중년무사의 눈이 홉떠졌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손이 그를 덮치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콰르르릉.

나직한 뇌성과 함께 번개가 번쩍였다.

반사적으로 두 손을 쳐든 그는 장천운의 공격에 맞섰다.

‘오냐, 이놈! 얼마나 강한지 보자!’

장마(掌魔) 요진광. 한때 천중십마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장법의 고수가 바로 그였다.

장천운이라는 놈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자신을 능가하지는 못하리라.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생각을 한 대가는 참담했다.

콰광!

굉음과 함께 전해진 충격이 온몸을 뒤흔들었다.

게다가 상대는 한번 잡은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 장천운이었다.

장천운은 충격을 받고 물러서는 요진광을 향해 쇄도하며 재차 뇌정무극수를 펼쳤다.

후면을 제외한 전면과 좌우, 머리 위에서 벼락이 치는 듯했다.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진 요진광은 전력을 다해서 맞섰다. 그러나 한번 수세에 몰린 상황은 마지막까지도 뒤집을 수 없었다.

쾅!

삼 초식 만에 뇌정무극수가 요진광의 가슴에 떨어졌다.

“크억.”

훌훌 날아간 요진광은 바닥에 떨어진 뒤 두어 바퀴 구르고 멈췄다.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장천운은 고개를 쳐들려고 하는 요진광의 어깨를 발로 짓눌렀다.

콰직!

“크억!”

뼈가 부러지면서 요진광의 입이 떡 벌어졌다.

장천운은 뇌정무극지를 튕겨서 요진광의 요혈마저 제압했다.

“암천문의 주구, 조금만 기다려라. 그대에게 섭가장을 피로 물들인 죄를 철저히 물을 거니까.”

그 사이 흑월대가 주위의 암천문 무사들을 모두 제압했다.

요진광을 제압한 장천운은 통나무집 안으로 들어갔다.

겉보기에는 단순하게 보이는 통나무집이지만, 안쪽은 일반 건물이나 다름없었다.

벽에 황토를 바르고 그 위에 천을 붙여서 멋을 낸 집은 어지간한 것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

게다가 상당히 오랜 세월을 보낸 듯 손때 묻은 물건도 많았다.

장천운은 집안을 뒤져서 구석 깊숙한 곳에 처박혀 있던 작은 함을 하나 찾아냈다.

그 함 안에는 십여 장쯤 되는 서류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본래는 태우든가 가루로 만들어서 없애야 하는 서류였다. 그런데 요진광이 그 중에서 중요한 서류를 전리품처럼 모아놓은 것이다.

장천운은 그 서류 중에서 맨 위의 서류를 집어 들었다. 전서구 다리의 전서통에 담기 위해서 몇 번이나 구긴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내일 밤 축시. 섭가장을 강호에서 지워라. 흔적을 남기지 말 것.]

 

‘역시 이자들이 맞군.’

장천운은 냉소를 지으며 다른 전서도 살펴보았다.

어느 순간, 손바닥만 한 전서를 읽던 장천운의 입술이 벌어지고 하얀 이가 드러났다.

“제대로 걸렸군. 아주 멋진 내용이야.”

서류를 접어서 품속에 넣은 그가 밖을 향해 말했다.

“혁련 조장, 그자를 데리고 들어오시오.”

혁련기가 요진광을 데리고 들어와서 바닥에 내팽개쳤다.

비틀어진 걸레 꼴이 된 요진광은 자신의 처지를 믿을 수 없었다.

‘이건 꿈이야. 깨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는 침상에서 일어날 수 있을 거다. 그래, 꿈이야.’

장천운이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서 그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당신에게 몇 가지 물을 것이 있어. 솔직하게 대답하면 편하게 죽여주지.”

“개소리 말고…… 지금 죽여라.”

“다들 처음에는 그렇게 말했어. 하지만 결국은 입을 열었지. 빨리 죽고 싶어서.”

장천운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벽으로 걸어갔다. 커다란 도끼 한 자루가 벽에 기대어져 있었다.

일 각 후.

통나무집에서 나온 장천운은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이이익!

기다란 휘파람소리가 계곡을 흔들자, 공격하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왔다. 공격을 시작한지 삼 각 만이었다.

빠져나오는 사람들 중 몇 사람은 어깨에 동료를 메고 있었고, 몇 사람은 부상자를 업고 있었다.

응한곡을 벗어난 그들은 각자의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일개 평무사로 보이는 자들의 무위가 일류 수준이라니. 아니,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거다.’

‘만약 급습하지 않고 정면대결을 벌였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거꾸로 우리가 습격을 받았다면?’

‘그 동안 구천성을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계획의 전면적인 재조정이 필요해.’

‘저 새끼는 사람도 아니야.’

‘씨발, 다친 데 또 다쳤네.’

 

* * *

 

응한곡에 지옥도가 펼쳐지던 그 시각.

구천성 천혼전에서는 한 사람이 흠씬 두들겨 맞고 있었다.

퍽!

주먹에 가슴을 얻어맞은 백리우진은 바닥을 두어 바퀴 구른 후 일어났다.

이미 한두 대 맞은 것이 아닌 듯 입술도 찢어져서 피가 났고, 안색은 백짓장처럼 창백했다.

“네놈이 언제부터 내 명령을 어겼단 말이냐.”

백리호가 백리우진을 노려보며 분노를 씹어댔다.

잠을 자다가 막 일어난 사람처럼 부수수한 머리, 가슴이 다 드러나도록 벌어진 겉옷. 벌겋게 충혈 된 눈, 불콰한 얼굴.

술을 제법 많이 마신 듯 말할 때마다 그의 입에서 역겨운 술냄새가 쏟아졌다.

“죄송합니다, 숙부님.”

자세를 바로잡은 백리우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건방진 놈, 조카라고 하니까, 진짜 조카라고 생각했나 보지?”

“…….”

비릿한 조소가 실린 목소리.

말 잘하는 백리우진도 그때만큼은 입을 다물었다.

“짐승도 은혜를 입으면 목숨을 바쳐서 갚는다고 했다. 천한 네놈을 데려다가 이만큼 키워줬으면 은혜를 갚을 줄 알아야지.”

백리우진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짝! 짝!

백리호가 백리우진의 뺨을 좌우로 때렸다.

백리우진의 머리가 좌우로 흔들렸다. 입술에 맺혔던 핏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창백한 얼굴이 순식간에 벌게졌다.

“어릴 때는 생긴 것이 곱상해서 특별대우를 해주었더니, 이제 컸다고 반항을 해?”

“제가 어찌 반항을 하겠습니까.”

여전히 무뚝뚝한 목소리다.

기분이 더 상한 듯 백리호가 발길질로 백리우진의 배를 찼다.

“그게 아니면 왜 나를 거부해?”

뒤로 나가떨어진 백리우진이 느릿하게 일어났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얼굴을 반쯤 덮었다.

백리호가 그에게 바짝 다가가서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는 네놈에게 해줄 만큼 해주었다. 그럼 너는 내게 무엇을 해주었느냐? 혹시 대사형이 너에게 무슨 약속이라도 한 것 아니냐? 아니면…… 암천의 주인이? 그래, 그랬을지도 모르겠구나. 듣기로는 그자도 여자보다 남자를 더 좋아한다고 하더군. 그에게 몸이라도 바쳤느냐?”

백리우진은 눈을 들어서, 바로 코앞에 있는 백리호를 바라보았다.

“술을 너무 마신 것 같습니다. 그만 쉬시지요.”

“역시 천한 놈의 피는 속일 수 없나 보구나. 더러운 새끼, 너도 결국 네 에미나 애비처럼…….”

푹!

역겨운 술냄새를 풍기며 욕설을 퍼붓던 백리호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반쯤 벌어진 입술이 닫힐 줄 몰랐다.

그의 가슴에 백리우진의 손이 깊숙하게 박혀 있었다.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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