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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29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83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29화

생각지 못한 말에 장천운조차 흠칫했다.

“예?”

“청산궁은 암천문 놈들이 어디에 웅크리고 있는지 알 거야. 함께 그들을 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사마경은 아이들 병정놀이 지휘하듯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심장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웠다.

장천운은 그녀의 눈빛을 보고 가슴이 아릿해졌다.

그녀의 마음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운명의 날이 될지 모르는 구천대평의회를 이틀 남기고 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말하지만, 속은 초조함과 긴장으로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찬성한다면 그것도 괜찮겠는데요?”

장천운은 사마경의 생각에 힘을 실어주었다. 사마경의 눈가에 옅은 열기가 피어났다.

“그래? 좋아, 그럼 만나서 담판을 지어봐.”

 

* * *

 

유시 초.

장천운은 영산자가 영빈각으로 돌아왔다는 보고를 받고 구천무원을 나섰다. 월동문을 나서서 이십여 장쯤 걸어갔을 때 삼십대 장한 하나가 그에게 다가왔다.

“장 대주?”

처음 보는 자였다.

“그렇소만.”

“제가 모시는 분께서 이걸 대주께 전해주라 하셨습니다.”

장한이 서너 번 접힌 종이를 건넸다.

장천운은 장한을 빤히 보며 종이를 받았다.

옷은 평범한 무사복장이었다. 그러나 두 눈 속에는 무겁고 강맹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섭가장의 혈겁에 애도를 표한다고 하셨습니다. 답은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 이만.”

무사는 포권을 취하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가서 신군께 전해주시오. 고마웠다고.”

돌아선 장한이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하지만 아무런 표도 내지 않고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장천운은 장한이 칠팔 장쯤 멀어지자 종이를 펼쳐보았다.

손바닥만 한 종이에 적힌 내용은 무척 짧고 단순했다. 그렇다고 내용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염천산(炎天山) 응한곡(鷹悍谷)]

 

섭가장에 애도를 표한다고 했다. 그리고 뜬금없이 지형을 알려주었다.

장천운이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암천문 놈들이 이곳에 숨어있다는 건가?’

대별산맥이 품고 있는 염천산은 구천성에서 서쪽으로 이백여 리 떨어져 있다.

고수들이 경공을 펼치면 하루에도 오갈 수 있는 거리. 아주 멀다고 볼 수는 없었다.

고개를 든 그의 입가에 차디찬 냉소가 피어났다.

‘제 때 알려주는군. 그 점은 고맙게 생각하리다.’

 

영빈각으로 돌아온 영산자는 표정이 펴질 줄 몰랐다.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긴 했는데, 실행이 관건이었다.

현재의 전력으로 못할 건 없지만, 상당한 피해를 각오해야만 했다.

‘빌어먹을 일이로다. 그 어리석은 놈 때문에 이 무슨 꼴이란 말인가.’

“진인, 장천운 대주가 만나 뵙고자 왔습니다.”

뭐?

흠칫한 영산자는 방문을 바라보았다.

놈이 왜 왔을까?

절대로 사과하려고 오지는 않았을 텐데…….

어쨌든 만나보면 알 일.

“모셔라.”

곧 방문이 열리고 장천운이 들어섰다.

역시나 사과할 마음은 없는 듯 표정이 차가웠다.

“무슨 일로 왔는가?”

“정도하라는 분은 만나보셨습니까?”

‘이놈이……!’

영산자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렸다.

자기가 보내놓고 만나봤냐고?

약 올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겨우 가라앉은 속이 다시 끓기 시작했다.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제가 죽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자네라면 그렇게 심하게 손보지 않고도 혼내줄 수 있었을 거네.”

“저를 너무 높이 보시는군요. 좌우간 그 일 때문에 온 것이 아니니, 그 이야기는 그만 하죠.”

그 일 때문이 아니라고?

그렇다면 차라리 속이 편했다. 계속 그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감정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거늘.

“그래? 그럼 무슨 일로 왔는가?”

“본 성과 청산궁의 협정에 준해서 한 가지 일을 함께 하려고 왔습니다.”

“함께 할 일? 뭔가?”

“섭가장을 친 범인들을 찾아내서 복수를 하려고 합니다. 청산궁에서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도 그 일을 애석하게 생각하긴 하네만,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을지 모르겠군.”

“우린 암천문이 혈겁을 일으켰을 거라 보고 있습니다. 청산궁이라면 암천문의 하부조직이 어디에 있는지 아실 거라 봅니다만.”

남의 불행이 이렇게 기분 좋기도 처음이다. 영산자는 콧소리를 내며 대충 대답했다. 속이 타는 건 구천성이지 자신이 아니었다.

“흐으음, 알아보긴 하겠네만, 자신할 수는 없네.”

“그럼 우리가 알아내면 함께 나서주실 수는 있습니까?”

왠지 뒷골을 땅기는 수상한 느낌.

그러나 협정을 맺었으니 못한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영산자는 도호를 외며 머뭇거리는 투로 말했다.

“무량수불. 그거야…… 도울 수 있다면 도와야지. 원시천존께서 아무리 마음이 선하셔도 그런 흉악무도한 자들이 세상을 더럽히는 건 원치 않으실 거네.”

“좋습니다. 그럼 원시천존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내가 언제 원시천존의 이름을 걸고 약속했느냐?’

영산자는 그렇게 반박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목구멍 안에서만 맴돌았다.

장천운이 눈에 힘을 주고서 노려보고 있었다. 괜한 소리 했다가 트집이라도 잡히면 귀찮아질 터, 목구멍을 기어 나오려는 말을 억눌렀다.

“아마 오늘 밤쯤이면 비령각에서 적의 위치를 알아낼 겁니다. 알아내면 바로 연락드리죠. 그럼 쉬십시오.”

장천운은 일사천리로 약속을 매듭짓고 영산자의 방을 나섰다.

영산자는 장천운이 나간 문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도문에 발을 디딘 지 오십여 년, 하루에 두 번이나 이를 간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 * *

 

사마경은 장천운의 말을 듣고 눈을 치켜떴다.

“염천산 응한곡?”

“예, 소성주. 이곳에서 이백여 리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확실해?”

“금룡신군의 입장에서는 제게 거짓말할 이유가 없습니다.”

“조호이산지계라고 들어봤지? 밖으로 유인해서 제거하려고 할 수도 있어.”

“제거하려고 했으면 저번 탁무겸을 만났을 때 나서지도 않았을 겁니다.”

“마음이 변했을 수도 있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 노인장도 모험을 하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사마경도 그쯤에서 결정을 내렸다.

“좋아, 그럼 언제 갈 거야?”

“투입될 사람을 소집한 후 해시쯤 출발하겠습니다.”

“알았어. 그럼 나는 천운이 올 때까지 수련이나 해야겠네.”

지하수련실은 최상의 안전지대였다.

 

* * *

 

어둠이 깔린 시각.

염천산으로 갈 인원이 철저한 비밀 속에서 소집되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목적은 ‘섭가장 혈겁의 범인을 찾는 것’이다.

장천운은 흑월대에서 열 명을 골랐다.

일조에서 혁련기와 선우상, 홍산산, 백후, 이전. 이조에서는 사공명신, 두양양, 목진화, 막소광이 그나마 몸이 성했다. 거기다 단승까지 해서 열 명이었다.

둔가부와 우곡, 진교청도 나서기로 했다. 복우쌍노는 내상이 완전히 낫지 않아서 제외시켰다. 구양명도 장천운 대신 소성주 호위를 위해 남기로 했다.

우문각은 비령각의 고수 이십 명을 내놓았다. 개중에는 묵조 여섯과 영조 다섯이 섞여 있었다.

호법 둘과 장로 둘도 참여시켰다.

공손백과 나극 쪽에도 절정고수를 세 명씩 요청했다. 다행히 별 의심을 품지 않고 인원을 내주었다.

본래는 요청하지 않으려 했다. 믿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이 없는 동안 엉뚱한 짓을 못하도록 몇 명 정도 빼내는 게 좋을 듯했다. 특히 소성주에게 해가될 만한 자들로.

 

장천운은 대충 인원이 추려지자 영산자를 만났다.

그에게는 사실대로 말했다. 중요한 사항만 빼고.

“범인으로 추정되는 자들이 있는 장소를 알아냈습니다. 일 각 후 출발할 것이니 이십 명 정도만 지원해 주십시오.”

영산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일 각?”

“싸움은 시간이 중요하죠. 다른 사람들도 곧 모일 것이니 서둘러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그래도 일 각은…….”

“몇 명 부족해도 상관없습니다. 대신 진인께서는 반드시 참여해주셔야 합니다.”

표정이 일그러진 영산자의 눈초리가 보일 듯 말 듯 떨렸다.

여전히 뒷골이 땅겼다. 기분이 이상하게 찝찝했다.

 

* * *

 

해시가 막 넘어갈 무렵, 구천성 북문이 열리더니 사람들이 나왔다.

그들 대부분은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른 채, 앞장 서가는 장천운의 뒤만 따라갔다.

장천운은 구천성을 나서자마자 한 시진 넘게 달렸다.

모두들 고수들이어서 대낮처럼 경공을 빠르게 펼칠 수 있었다. 덕분에 광산까지 쉬지 않고 달렸는데도 크게 지친 사람은 없었다.

장천운은 그들을 일향루로 데려갔다.

“이곳에서 잠깐 쉬었다 가지요.”

남궁창은 막 문을 닫기 전에 들어온 장천운을 보고 활짝 웃었다.

“어? 대형…….”

하지만 뒤따라 들어오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는 곧바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씨바. 왜 오소리처럼 밤에 돌아다니는 거야?’

생각해봐라. 문 닫고 쉬려는데 일거리를 몰고 오면 기분이 좋겠는가.

잠깐 사이 일향루가 꽉 찼다.

조당은 주인인데도 마음에 안 들었다. 어차피 돈 벌려고 하는 장사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숙수의 본분을 다했다.

손님 하나하나가 절정경지에 이른 고수였다. 개중 절대경지에 이른 고수만 해도 한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였다.

찍소리는커녕 숨 쉬는 것도 조심했다.

 

“장 대주, 목적지가 어딘지 정도는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오종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해드렸잖습니까? 섭가장의 복수를 위해서 범인을 찾으러 간다고요.”

“그들이 어디에 있냐고 묻는 거네.”

“가서 찾아봐야지요.”

“뭐라? 그럼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이 밤에 달렸단 말인가?”

“누가 모른다고 했습니까?”

“조금 전에…….”

오종은 말끝을 흐렸다.

모른다고 하진 않았다. 찾아본다고 했지.

“왜 그렇게 성질이 급하십니까? 가만히 계시면 알려드릴 텐데.”

졸지에 성질 급한 노인이 된 오종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분노를 삭였다. 그러다 입술이 터지는 바람에 비릿한 피맛이 입안에 고였다.

‘저 자식에게 말을 건 내가 바보지.’

그렇다고 해서 화를 내면 자신의 목숨을 걱정해야할지 몰랐다.

환마 우곡이 노려보고 있었다.

오늘 처음 알았는데, 환마가 장천운이란 놈을 소사조라 부르며 깍듯이 대하고 있었다.

‘도대체 저 자식 진짜 정체가 뭐야?’

 

이 각의 꿀 같은 휴식이 끝나자 장천운 일행은 우르르 일향루를 나왔다.

그들이 광산을 떠난 직후, 조당은 급히 안으로 가서 서신을 쓴 다음 전서구를 날렸다.

장천운이 일향루에 온 목적은 휴식을 취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조당에게 몇 가지 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 중 하나가 전서구의 발목에 달려서 흑월회로 날아갔다.

 

장천운은 목적지가 오십 리 남았을 때 다시 한 번 휴식을 취했다. 휴식을 취하기보다는 작전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목적지도 알려줘야 하고.

“우리의 목적지는 염천산입니다.”

짧게 말을 내뱉은 장천운이 영산자를 바라보았다.

영산자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묘하게 일그러졌다.

“진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염천산에 범인들이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저 표정. 이미 뭔가를 알고서 하는 질문이다. 모른다고 하면 말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괴롭힐 터.

“무량수불. 그러고 보니 언젠가 들었던 적이 있네. 수상한 자들이 염천산 응한곡 쪽에서 출몰한다고 하더군.”

“응한곡을 잘 아시나 보군요.”

“잘 안다기보다 예전에 한번 그 근처를 지나가 본 적이 있네.”

“잘 됐군요. 그럼 진인께서 길을 안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뒷골이 땅기는 정도가 아니라 지끈거렸다.

‘이제 보니 이놈이 나를 길잡이 시키려고 데려온 것이었군.’

하지만 그는 아직도 장천운이 그의 동행을 고집한 진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아마 그 이유를 알았다면 머리를 싸매고 누웠을 것이다.

‘흥!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해? 누명 쓰는 게 얼마나 더러운 기분인지 어디 한 번 느껴보쇼.’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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