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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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28화
무림맹 일행이 적과 마주한 것은 마을을 나와 오 리쯤 갔을 때였다.
무천단 무사들은 적과 싸우면서도 제갈승조를 보호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 선두에 대운과 무경이 있었다.
적의 숫자는 열다섯. 무림맹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개개인이 절정고수들이었고, 개중 도를 사용하는 오십대 중노인은 절대경지에 오른 고수였다.
공격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무천단 무사 셋이 쓰러졌다.
처음부터 대운이나 무경, 담강융이 손을 썼다면 입지 않았을 피해였다.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실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구천성 무사라고 했으니까.
구천성의 순찰대라면 무천단 무사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상대의 강함을 눈치 챘을 때는 이미 세 사람이 쓰러진 후였다. 두 사람도 심한 부상을 당해서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정체를 밝혀라, 이놈들!”
담강융이 노성을 내질렀다.
그를 상대하던 오십대 중노인이 조소를 지었다.
“무림맹의 쥐새끼들이 여기까지 와서 설치다니. 구천성이 그렇게 우습게 보였느냐?”
“사람을 불러놓고 죽이려 하는 게 구천성의 법도인가? 과연 마도 놈들의 법은 더럽기 짝이 없구나!”
중노인의 눈빛이 기름을 칠한 듯 번들거렸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원수나 다름없는 너희들을 부른단 말이냐?”
“그걸 몰라서 묻느냐? 실컷 연합해서……!”
그때 제갈승조가 소리쳐서 담강융의 말을 잘랐다.
“담 아우, 그만하게! 아무래도 구천성 사람들이 아닌 것 같네!”
“무슨 말씀입니까? 구천성 외에 누가 이곳에서 우리를 공격할 수 있단 말입니까?”
“있지. 구천성 외에 이런 짓을 할 만한 자들이.”
담강융도 둔한 자는 아니었다.
제갈승조의 말을 듣고 뭔가를 눈치 챈 듯 눈을 부릅떴다.
“이 사악한 놈들이 나를 놀렸구나!”
불같이 노한 그는 십성 공력을 끌어올리고 중노인을 공격했다.
화산에서 백 년 내에 익힌 사람이 둘 뿐이라는 자하검공이 그의 손에서 펼쳐졌다.
중노인도 담강융의 검을 알아보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화산의 자하검공이 세상에 나왔구나!”
“알면 됐다!”
“흥! 자하검공이 대단하긴 하지만, 나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중노인의 도법도 전과 달라졌다. 그는 도신의 길이만 석 자나 되는 도를 부드럽게 휘돌리며 자하검공을 철저히 차단했다.
마치 끈처럼 이어진 검강이 자하검공으로 펼쳐지는 초식을 가닥가닥 끊어냈다.
그 모습을 본 제갈승조가 경악성을 내질렀다.
“만천칠절도! 이제 보니 칠절마도(七折魔刀)구나!”
칠절마도 기산당. 천중십마 중 일인이다.
담강융이 화산제일검이라는 자하검공을 익혔다 해도 쉽게 상대할 수 없는 절대고수.
더구나 그는 생사결을 자주 하기로 유명했다. 목숨을 건 격전을 숱하게 치르며 얻은 경험은 담강융이 비할 바가 아니었다.
십여 초식이 흐르는 사이, 담강융의 공격이 기산당의 절묘한 임기응변에 말려서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담강융으로선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자존심도 상했다.
자하검공을 펼치고도 상대를 압도하기는커녕 자꾸만 공격이 끊겼다.
그 사이 무천단 무사 중 두 사람이 더 쓰러졌다.
이제 남은 무천단 무사는 다섯. 그나마 대운과 무경이 예상 밖의 실력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두세 명은 더 쓰러졌을 것이다.
“담 대협! 일단 제갈 시주를 모시고 이곳을 빠져나가십시오!”
무경이 소리쳤다.
담강융은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희들이 빠져나가라! 이들은 나와 무천단이 맡겠다!”
결연한 목소리로 소리친 그는 전 공력을 검에 주입하고 기산당을 공격했다.
하지만 대운과 무경 만으로는 적의 공격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대운이 제갈승조를 향해 소리쳤다.
“제갈 시주, 저희가 막을 동안 이곳을 빠져나가십시오!”
제갈승조도 문만 익힌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실력으로는 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 혼자 간들 어디까지 가겠나?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세.”
그 직후 무천단 무사 하나가 비틀거렸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날아든 섬광 한 줄기가 무사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크억!”
무천단 무사가 단말마를 내지르며 쓰러지자, 청산궁 무사들이 끝장을 내겠다는 듯 쇄도했다.
그때!
번쩍, 하는 광채가 허공을 가르며 떨어졌다.
쾅! 퍽!
폭음과 함께 청산궁 무사 둘이 튕겨나가고, 하나는 그 자리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그들이 있던 자리에는 한 사람이 거짓말처럼 나타나서 오연히 서 있었다. 장천운이었다.
청산궁 무사들은 눈을 치켜뜨고 그를 공격했다.
장천운의 몸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가 싶더니, 달려드는 자들 사이로 흘렀다.
유령 같은 움직임에 이은 응축된 기운의 폭발.
콰광!
또 다시 폭음이 터지고 두 사람이 뒤로 훌훌 날아가서 널브러졌다.
그제야 상대의 정체를 안 누군가가 소리쳤다.
“자, 장천운이다! 물러서!”
청산궁 무사들이 불에 덴 사람처럼 반사적으로 물러섰다.
그토록 당당하던 기산당조차 도법이 흔들렸다.
쩌저정!
전력을 다해서 담강융의 검을 쳐낸 그는 훌쩍 몸을 날려서 거리를 삼 장 정도로 벌였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장천운을 쳐다보았다.
용환종과 정도하, 호법 넷이 그를 처리하기 위해 함께 가지 않았던가.
그런데 당사자가 멀쩡히 나타났다.
‘설마……?’
“내가 이곳에 나타난 것이 이상한가보군.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소. 어차피 알든 모르든 상관없게 될 테니까.”
장천운은 무심한 어조로 말하고 기산당을 향해서 땅을 박찼다.
그때부터 기산당에게 악몽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만천칠절도는 천뢰검법 앞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진정 광란하는 먹구름을 뚫고 벼락이 떨어지는 듯했다.
천광일혼에 팔이 떨리고, 삼전비격에 온몸이 떨렸다.
그리고 세 번째 격돌!
전륜폭이 펼쳐지면서 번개의 소나기가 머리 위로 쏟아졌다.
기산당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도를 휘둘렀다.
도강이 그물처럼 펴지며 하늘을 뒤덮었다.
번개의 소나기가 도강의 그물을 갈가리 찢으면, 기산당이 다시 정신없이 도를 휘둘러서 그 자리를 메웠다.
떠더더덩! 콰과과광!
굉음이 연달아 터져 나오더니, 이를 부서져라 악다문 그가 비틀거리며 다섯 걸음을 물러섰다.
산발해서 상체의 반을 덮은 머리카락. 그 사이로 보이는 백짓장처럼 해쓱한 안색.
그의 이 장 앞에 내려선 장천운이 검을 사선으로 늘어뜨린 채 냉랭히 말했다.
“귀하는 구천성의 이름을 사칭하지 말았어야 했소. 아마 그에 대해서 혹독한 책임을 져야할 거요.”
기산당은 암울한 표정으로 콜록거렸다.
그가 기침을 할 때마다 입에서 피가 튀었다.
“장천운…… 정말 무섭구나. 하지만…… 아직 그분에게는…… 멀었다.”
“걱정 마시오. 그는 늙었고, 나는 아직 젊으니까.”
장천운은 냉랭한 어조로 말하며 검을 천천히 들었다.
순간, 기산당이 튕겨나가듯이 장천운을 향해 몸을 날리며 칼을 내리그었다.
절천격(切天擊)!
동귀어진의 초식.
죽어도 그냥 죽지는 않으리라!
가슴 높이로 올라온 장천운의 검이 그를 가리켰다.
일 장 간격.
쾅!
단발의 천둥소리가 울리고, 기산당의 몸이 날아올 때보다 더 빠르게 튕겨나갔다.
장천운이 검을 거두고 돌아설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머지 청산궁무사들도 분노한 담강융과 대운, 무경의 검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뒤처리를 한 것일 뿐, 장천운이 아니었다면 자신들이 뒤처리를 당할 뻔 했지 않은가 말이다.
“이들은 본 성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담강융은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제갈승조가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도와줘서 고맙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손님이 집 앞에서 피를 보면 안 되니까요.”
이번에는 담강융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천외의 세력인가?”
“그렇습니다. 아마 우리가 만나는 걸 본 모양입니다.”
담강융은 천외를 처음으로 상대해보았다.
뒤에 숨어서 음모나 꾸미는 음험한 세력.
그는 천외를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대운을 통해서 이런저런 말을 듣긴 했지만 차이를 크게 두지 않았다.
숨어 있는 자들만 색출해서 제거한다면 끝장내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그런데 자신과 무림십룡 중 둘, 무천단 무사 열 명이 비슷한 숫자와 싸우고도 패배할 뻔했다.
문제는 칠절마도가 끼어 있는 그들이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물어보고 싶은 않은 질문을 겨우 꺼냈다.
“천외를 이끌고 있다는 자…… 정말 자네보다 강한가?”
조금 전 기산당의 말을 떠올리고 한 질문이었다.
장천운은 솔직히 말해주었다.
이제 맛을 봤으니 똥인지 아닌지 정도는 구분 하겠지.
“조금 전에 들으셨겠지만, 저는 아직 그들의 상대가 안 됩니다. 살려면 도망가야 하지요.”
“…….”
* * *
영산자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불거졌다.
얼굴은 시뻘게졌고, 핏줄마저 툭툭 튀어나왔다.
마치 열흘간 변비로 고생하다가 신호를 받고 뒷간에 앉아서 힘을 쓰는 사람 같았다.
“이, 이 멍청한……!”
그가 멍청하다고 한 대상은 침상에 누워 있는 정도하였다.
조금 전, 장천운이 영빈각으로 찾아왔다.
“정도하란 분과 약간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쪽에서 먼저 벌인 일이니 저에게 책임을 묻지 마십시오. 저는 저를 죽이겠다고 검을 들이대는 사람들에게까지 웃으면서 대할 정도로 마음이 넓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단순한 다툼 정도로 알았다. 정도하가 멋모르고 달려들었다가 조금 다쳤나 보다 하는 생각은 했지만.
그런데 객잔으로 가봤더니 어이없는 일이 벌어져 있었다.
용환종과 정도하는 심한 내상을 입은 상태였고, 기산당은 숨만 겨우 붙어 있었다.
호법 넷 중 둘은 시신이 되었고, 남은 둘 역시 상당한 내상을 입은 듯했다.
그뿐이 아니다. 기산당이 이끌던 청화령 무사들은 일곱이 죽고 다섯만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자들도 당장 쓸 수 없는 부상자들이고.
이 모든 게 장천운을 죽이려다 벌어진 일이다.
무림맹 사람들과 만나는 게 수상해서 정보를 캐보려다가 거꾸로 당했다나?
오십 년 동안 닦은 도도 소용없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무량수불, 원시천존…… 도하, 네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아느냐?”
도호를 연이어 외던 영산자가 노기 가득한 눈길로 정도하를 노려보았다.
안색이 창백한 정도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입을 다물고 있을 그도 아니었지만.
자칫하면 모든 잘못을 자신이 책임져야만 하는 것이다.
“피해가 크다는 것은 저도 압니다. 하지만 구천성이 무림맹과 모종의 수작을 꾸미고 있다는 걸 알아냈으니, 소득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잖습니까?”
“후우우우우……”
이걸 때려죽일 수도 없고…….
영산자는 한숨이 길게 나왔다.
고개를 돌린 그는 용환종을 바라보았다.
“용 호법, 왜 말리지 않으셨는가?”
“본 궁에 방해가 되는 자라면 없애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 없애면 좋겠지. 그럴 수만 있다면.”
용환종은 그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영산자의 시선을 피했다.
영산자는 속이 끓었지만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그도 용환종과 정도하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장천운을 제거해서 공을 세우고 싶었겠지.
주제도 모르고.
문제는 구천성에 온 전력 중 삼 할이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형께서 아시면 뭐라고 하실지, 그게 걱정이군.’
당장 피해를 본 전력을 채울 수는 없다. 피해를 입힌 장천운을 추궁할 수도 없다. 추궁은커녕 오히려 책임을 묻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뿐.
다른 곳도 자신들만큼 피해를 보게 하는 수밖에.
‘어차피 암천문의 이탈로 묵계가 깨졌으니 우리만 탓할 수도 없을 거다.’
* * *
사마경은 아무 타박도 하지 않았다.
이제 야단치기도 지쳤다는 듯.
“그 인간들도 지금쯤 난리가 났겠군.”
“죽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아야죠.”
사마경이 장천운을 째려보았다. 고개를 돌리고 있어서 시선이 마주치지는 않았다.
“협상이 깨질 가능성은?”
“못 깰 겁니다.”
“왜?”
“깨지면 제가 제일 먼저 그들을 친다는 걸 알 테니까요.”
“하긴, 그들도 이제 천운이 싸움개라는 걸 알게 되었을 거야.”
이번에는 장천운이 사마경을 째려보았다.
사마경은 눈썹 한 올 끄떡하지 않았다.
“협상이 깨지지만 않으면 이참에 미친 짓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때?” /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