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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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79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27화
담강융이 발끈해서 소리치자, 제갈승조가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만하게, 담 아우. 장 대주도 그만 가보시게. 오늘 나눈 이야기는 맹주께 자세히 전하겠네.”
장천운도 회합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천외를 상대하려면 무림맹의 힘이 필요하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담강융은 밖으로 향하는 장천운의 등 뒤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방을 나서던 장천운이 멈칫하더니 대운과 무경을 바라보았다.
“전에 비연객잔에서 귀하들을 막아섰던 복면인이 누군지 아시오?”
갑작스런 질문에 대운이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모르오.”
“광천삼혼도 이종곽이오.”
“광천삼혼도?”
대운과 무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제갈승조는 태연할 수가 없었다.
“광천삼혼도 이종곽이라고? 그가 나타났었단 말인가?”
담강융은 이마만 찌푸렸다.
그도 칠팔 년 전까지 강호를 울렸던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나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왔는데, 하필이면 여기 대운스님과 무경도장이 나와 함께 있다가 고생 좀 했지요.”
“이종곽이 남의 명령을 받고 왔다고?”
절대경지에 올랐을 거라 알려진 이종곽이 남의 명령을 받고 암살에 나섰단다.
듣고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진태라는 자가 지시했더군요.”
“모진태가 누군데 이종곽에게 명령을 내린단 말인가?”
“암천문주의 하수인 중 하나입니다. 본 성의 나극 대장로와 비슷한 수준의 무위를 지닌 것으로 압니다.”
“…….”
“그럼 다음에 뵙지요.”
장천운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방을 나섰다.
입가에 자잘한 미소가 떠올랐다.
‘고민 좀 될 거다.’
뭐, 그러라고 말한 것이지만.
125장
양천객잔을 막 나서자마자 장천운의 귀에 전음이 파고들었다.
<잠깐 할 이야기가 있다, 장천운. 서쪽 끝자락에 가면 풀밭이 있다. 그곳에서 보자.>
목소리의 주인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귀에 익은 듯 느껴졌다.
‘만나보면 알겠지.’
그는 방향을 틀어서 서쪽으로 향했다.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백여 장을 더 가면 산이 시작되었다. 풀밭은 마을과 산 사이에 있는데, 허리 높이쯤 자란 잡풀로 뒤덮여 있었다.
장천운은 풀밭 안쪽으로 걸어가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이런 황폐한 곳으로 불러낸 자들이 좋은 뜻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어떤 자들이 구천성 코앞에서 자신을 초대했냐는 것이었다.
휘이이이잉.
제법 거센 바람이 공터를 휩쓸고 지나갔다.
스스스스스.
제멋대로 자란 풀들이 몸을 비벼대면서 스산한 소리를 냈다.
풀밭 안쪽으로 삼십여 장쯤 들어갔을 때다.
서너 줄기 기운이 그를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그 기운을 감지한 장천운은 천천히 돌아섰다. 무심하게 가라앉은 그의 두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다가오는 자들이 보였다.
모두 여섯.
그 중 한 사람은 전에 만난 적이 있는 자였다.
은천동에서 손우곤과 함께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자.
영산자에게 그의 이름을 들었다.
‘정도하라 했던가?’
청산자의 제자.
스승이 용이라면 뱀도 안 되는 자다.
그가 뒷짐 진 채 삼 장 거리를 두고 서서 말했다.
“드디어 만났군.”
“귀하도 왔을 줄은 몰랐소.”
“서로 얼굴 보면 껄끄러우니 밖에서 지냈지.”
“그럼 계속 모른 척할 것이지, 왜 나를 부른 거요?”
“마무리 지을 일이 있어서.”
“나를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요?”
“그때 못 다한 대결을 마무리 짓자는 거지.”
상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을 따지자면 장천운이 더했다. 청산궁과의 협상 때문에 참고 있는 것뿐.
그런데 상대가 먼저 죽이겠다고 달려든다면 피할 이유가 없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요.”
구천성에서 그곳까지의 거리는 이백여 장 정도 되었다. 중간에 완만한 언덕이 있어서 성의 담장을 따라 도는 순찰들의 눈에는 띄지 않는 곳이었다.
“하나 물어볼 것이 있다. 객잔에 있던 자들, 무림맹 무사들 같던데. 그들이 왜 너를 만난 거냐?”
‘젠장, 그들을 봤나?’
그렇다면 상황이 곤란해졌다.
천외삼세 중 무림맹에 가장 많은 전력을 투입한 곳이 청산궁 아닌가. 만에 하나 이들이 사실을 알게 되면 무림맹 내부의 소탕 계획은 물 건너간 셈이 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군사 제갈승조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알았다면 그런 식으로 묻지 않았을 거다.’
장천운은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번 불가침협상에 대해서 세부적인 사항을 논의하고자 온 거요.”
“그래? 그런데 왜 소성주가 아닌 너를 만난 거지?”
“내가 소성주님을 대리해서 왔소.”
“후후후후, 거짓말이 제법 능숙하군.”
“내가 귀하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뭐 있겠소?”
“그거야 모를 일이지. 어쨌든 그자들을 잡아서 물어보면 될 일. 일단 너와의 일부터 해결하는 게 순서 같군.”
정도하가 비릿한 조소를 지으며 말을 맺은 순간, 조용히 서 있던 자들 중 넷이 미끄러지듯 장천운을 장천운을 향해 움직였다.
“훗! 혼자서 달려들 용기는 없었나 보지? 그런 주제에 대결 운운하다니, 낯도 두껍군.”
장천운이 정도하의 심기를 박박 긁었다.
‘저 개새끼가!’
정도하의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
“도망가지나 마라, 이놈! 공격하시오!”
청산궁의 호법 넷이 땅을 박차고 신형을 날렸다.
정도하는 그 모습을 보며 검을 빼들었다.
‘네놈의 목은 반드시 내가 따고 말겠다!’
장천운이 더욱 강해졌다는 말은 들었다. 암천의 주인인 탁무겸과 싸우고도 살아남았다고 했다.
그래봐야 은천동사건 이후 삼 개월 정도가 지났을 뿐이다. 실력이 늘었으면 얼마나 늘었겠는가.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이지.’
암천문의 새 주인이 된 탁무겸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이한 수법으로 사부의 모든 걸 물려받아서 한순간에 절대경지의 한계를 넘어선 운 좋은 자.
그게 그가 생각하는 탁무겸이었다.
‘그런 놈을 사부님이나 금룡신군과 비교하다니.’
호법 다섯이 왔다. 그 중 한 사람은 제일호법인 용환종이다. 청산궁에서 강함을 따진다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절대고수.
거기다 자신까지 있으니 저놈 혼자서는 결코 살아 나갈 수 없으리라.
정도하의 결의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청산궁 호법들의 공격은 살기가 충천했다.
둘은 검을, 하나는 도를, 하나는 무기가 없는 적수공권이었다.
그들에게서 뻗어 나온 폭풍 같은 공세 네 줄기가 장천운을 가운데 두고 휘몰아쳤다.
장천운은 무심한 표정으로 공력을 끌어올려서 좌우로 휘저었다.
강력한 호신강기가 그의 몸 일장 이내를 철벽처럼 둘렀다.
호법 네 사람의 공격이 호신강기를 뚫지 못하고 겉돌았다.
그 바람에, 허리 높이까지 자란 풀이 가루로 부서지면서 폭풍에 휘말려 하늘로 솟구쳤다.
그때 용환종이 다급히 소리쳤다.
“너무 급하게 공격하지 마라!”
장천운 좌우의 두 호법이 빈틈을 발견한 듯 쇄도하고 있었다.
‘늦었어!’
장천운은 냉소를 지은 채 뇌정무극수를 좌우로 내쳤다.
빈틈은 그가 열어준 것이었다.
전에 청산궁 호법들과 은천동에서 싸워보지 않았던가. 그들의 무공은 구천성 장로들 중 상위에 있는 고수와 비슷했다. 그 정도 상대와는 이가 갈리도록 싸워본 장천운이었다.
쩌저저적!
벼락이 대기를 터트리며 상대의 공세마저 무력화시켰다.
먼저 공격에 나섰던 두 호법이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지금의 뇌정무극수는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떠덩!
“크억!”
한 사람이 붕 날아가서 풀밭에 처박혔다.
또 한 사람은 가슴에서 피를 뿜어내며 주르륵 물러선 뒤 꼬꾸라졌다.
눈 깜짝할 순간에 호법 두 사람이 무너지자, 다른 둘마저 주춤거렸다.
“이놈!”
용환종이 독수리처럼 몸을 날리며 쌍장을 교차시켰다.
정도하도 검을 뽑아들고 공격에 가담했다.
장천운은 연검을 뽑아들었다.
청산궁 무리가 무림맹 사람들을 쫓아갔다면 시간을 끌 여유가 없다.
“정도하! 당신 오늘 사람 잘못 건드렸어!”
작정을 한 그는 처음부터 팔성의 공력으로 천뢰검법을 펼쳤다.
지금의 팔성 공력은 은천동에서의 십성 공력보다 훨씬 강했다.
정도하는 단 일초를 상대해보고 안색이 해쓱해졌다.
용환종조차 눈에 핏발이 섰다.
그들은 알지 못했다, 영산자가 장천운에게 당했다는 걸. 영산자가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으니까.
콰르르릉! 콰광!
강기의 폭풍우 속에서 장천운이 유령처럼 움직였다.
용환종과 정도하, 두 호법은 귀신을 대한 느낌이었다.
특히 정도하는 은천동에서 보이지 않는 장천운을 상대해본 터였다.
그때보다 더 강력한 검격, 유려한 움직임을 대하자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이놈! 사술을 쓰지 말고 정당하게 나서라!”
용환종이 발작하듯 소리쳤다.
그 순간, 하늘에서 가공할 벼락이 대기를 두 쪽으로 가르며 떨어졌다.
콰아아아! 쩌저저적!
대경한 용환종과 정도하는 전력을 다해서 맞섰다.
콰아아앙!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은 대지를 깊고 길게 갈랐다.
그 동선에 있던 용환종과 정도하는 정신없이 뒤로 물러섰다.
용환종은 입에서 흘러나온 피로 수염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정도하는 안색이 회칠을 한 듯 하얗게 변색되었다. 뒤로 물러서면서도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버텼지만,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기의 폭풍에 밀려난 두 호법은 차라리 나았다. 상당한 내상을 입긴 했어도 직접적인 공격은 피할 수 있었으니까.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용환종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과거 그는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꽤 오래 전 일이었다. 청산자와 대결할 때였으니까.
그 싸움 이후 그는 청산자를 하늘처럼 떠받들었다.
그런데 오늘 또 같은 경험을 하고 있었다. 막둥이 자식뻘밖에 안 되는 새파란 애송이에게 당해서.
허탈감이 들 지경.
정도하는 검을 지팡이 삼아서 짚고 겨우 서 있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장천운이 바람에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고요히 서서 검으로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검첨만 보였다. 거대해진 검첨이 그의 온몸을 집어삼킬 듯했다.
당장은 오직 살고 싶다는 마음 뿐.
우웩!
허리를 구부리며 시뻘건 핏덩어리를 토해낸 그는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본인의 의지로 꿇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불안감과 공포에 젖어서 흔들리는 눈빛. 안간힘을 다해서 뒤로 물러서려는 몸짓.
마음이 이미 굴복한 상태였다.
그는 차마 살려달라는 말은 못하고 패배를 시인했다.
“내, 내가 졌네.”
차가운 눈으로 무심하게 정도하를 노려보던 장천운은 검을 내렸다.
승부를 가리려고 검을 든 게 아니다. 죽고 죽이는 싸움일 뿐. 하지만 그는 정도하의 비열한 속마음을 눈치 채고도 토를 달지 않았다.
“명심하시오. 내가 손에 인정을 두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오.”
그는 그 말만 남기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새처럼 날아오른 그의 신형이 마을 쪽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 * *
장천운도 속이 좋지 않았다. 안색도 약간 창백했다.
영산자에 뒤지지 않는 고수와 정도하, 네 호법을 상대한 그였다.
그들과 싸우고도 약간의 내상 정도로만 그쳤다는 사실을 알면 강호인들이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사별삼일즉갱괄목상대(士別三日卽更刮目相對)라.
‘선비는 헤어져서 사흘 만에 만나게 되면 눈을 씻고 다시 보아야 한다.’라고 했던가?
이제는 무사도 사흘 만에 만나면 다시 봐야 할 거라는 말이 나올 판이다.
하지만 쉴 여유가 없었다.
‘바로 출발했다 해도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다.’
구천성이 코앞이었다. 머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객잔에서는 이미 나간 후였다.
점소이에게 물어보니, 그가 나온 후 바로 뒤따라 나온 듯했다.
장천운은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신형을 날렸다.
마을을 막 빠져나갔을 때였다.
차창! 떠덩!
멀리서 격전을 벌이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렸다.
‘벌써 붙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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