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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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5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25화
장천운은 모른 척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전 당주님의 가족을 지키라고 했는데, 먼저 도착한 자들이 사흘도 아니고, 이틀 만에 전 당주님의 가족을 해쳤습니다.”
찻잔을 입술에서 떼고 내려놓은 나극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어떤 놈들인지 죽일 놈들이군.”
장천운은 묻고 싶었다.
전무궁의 가족을 해쳤기 때문에? 아니면 당신의 명령을 어기고 사흘이 아닌 이틀 만에 손을 써서?
하지만 묻지 않았다.
“정말 죽일 놈들이지요. 그 일을 시킨 작자도 천벌을 받을 겁니다.”
“…….”
낯이 두꺼운 나극조차 그 말에는 마땅히 대꾸할 수가 없었다.
뭐라고 할 건가. 시킨 자가 자신이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천행으로 전 당주님의 손자와 며느리는 목숨을 구했다는군요.”
“그거 다행이군.”
“정말 다행이지요. 그들마저 죽었다면…… 제가 아마 미친 짓을 저질렀을지도 모릅니다.”
나극은 다시 찻잔을 잡았다. 입을 여는 것보다 차를 마시는 게 정신건강에 나았다.
그런데 장천운이 그를 빤히 보며 말했다.
“앞으로 그 사람이 또다시 그런 더러운 짓을 저지른다면, 절대로 용서치 않을 겁니다. 소성주께 벌을 받더라도.”
“그자를 벌할 힘은 있느냐?”
나극이 무심한 눈으로 장천운을 보며 물었다.
장천운이 씩,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시험해보고 싶으면 언제든 해보십시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천외의 세 노괴도 이제는 저를 죽이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고는 순간적으로 눈빛이 흔들린 나극을 놔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잊지 마십시오. 참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나직이 말을 맺은 장천운은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
나극은 그가 방을 나갈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미 손 안의 차는 미지근하게 식은 상태였다.
‘잘하면 재미있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군.’
그의 입가에 보일 듯 말듯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너는 모를 거다. 내가 뭘 원하는지.’
그는 식은 찻잔을 들어서 남김없이 마셨다. 갈증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 * *
유진생은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활기차게 움직였다.
율검당에 있을 때는 답답하기만 했다.
사건을 조사하고 범인을 잡는 일은 그래도 나았다.
문제는 사람이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 짜증나고 힘들었다.
하지만 흑월대는 달랐다.
이곳에서 그가 주로할 일은 교육.
현재도 제법 강한 놈들을 더욱 강한 고수로 만드는 게 임무였다.
그런 일이라면 이골이 나 있었다.
흑월대원 중에 그보다 강한 사람이 몇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강련곡에서도 고위간부 아들들을 빡세게 굴리지 않았던가.
더구나 뒷배가 든든하니 반항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장천운이 말했다.
“혹시라도 수련을 게을리 하는 사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그 말의 효과는 강제로 독약을 복용시킨 것보다 더 확실했다.
“자! 좀 더 힘을 내서 다섯 번만 더 하자! 싫은 사람은 저리 빠지고. 나중에 장 대주가 따로 특별교육을 시킬 거니까.”
누구도 수련에서 빠지지 않았다.
차라리 유진생의 교육을 받는 게 훨씬 편했다.
막소광도 열심히 수련에 임했다.
율검당에서 온 이조원들은 처음에만 해도 그들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수련에 중독된 미친놈들.’ 딱 그 표현이 어울렸다.
그나마 함께 있었던 사공명신과 저두심, 청목에게 들은 바가 있었기에 참을 수 있었다.
특히 단승은 어이가 없었다.
장천운과 한 내기만 아니라면 당장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가 그는 떠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저는 두양양이라고 해요. 조장에게 이야기 들었어요. 쾌검을 쓰신다면서요?”
두양양이라고 했다. 약간 거무스름한 피부이면서도 아름다운 여인.
그녀는 그가 본 어떤 여인보다 아름다웠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마음을 눈치 챈 사공명신이 눈을 부라렸다.
“단 형. 다른 사람은 몰라도 두 소저는 안 돼. 안 그래도 두 소저가 대주만 바라보고 있어서 손도 못 잡아보고 있는데, 단 형까지 끼어들면 곤란하지.”
상관없었다. 그녀가 누구를 좋아하든 그것과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 문제였다.
아무리 굳건한 성문도 계속 두들기면 열리는 법이다.
그렇게 다시 사흘이 흘렀다.
이제 구천대평의회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그날, 장천운은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금룡신군이 준 약에 백일 후의 공력폭주 외에도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 * *
“독에 중독되었군. 아무래도 네가 복용한 것에 독이 섞여 있었던 것 같다.”
장천운의 몸을 점검해본 남사명이 마치 쌀에 보리가 한 알 섞인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독에 질린 장천운은 표정이 이지러졌다.
“무슨 독입니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네가 복용했다는 영약인지 알인지가 뭔지만 알아도 좋겠는데…….”
모른다.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그냥 좋은 영약이라고만 했지.
“어쩐지 보는 곳에서 복용시키더니…… 이 영감이 꿍꿍이가 있었군요.”
약을 준 후 금룡장으로 돌아갔다. 무명장에만 있어도 당장 쫓아가서 따질 텐데.
“될 수 있으면 공력을 모두 끌어올리지 마라. 공력증진과 관련된 약재에는 간혹 기맥에 해를 끼치는 증폭제가 포함되어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런데 노선배님께서 주신 해독제로도 해독할 수 없을까요?”
“그 것, 아직도 남아 있나?”
되묻는 남사명을 본 장천운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왠지 먹이를 앞에 둔 늑대의 표정 같았다. 자신의 피를 원할 때의 그 표정.
“그게…… 한 알 남아 있긴 합니다만…….”
“한 알?”
남사명은 아쉬움과 망설임으로 한 번 더 되묻더니, 곧 포기한 듯 말했다.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군.”
“그럼 이상하다 싶을 때 복용해봐야겠군요.”
“그것도 괜찮겠지.”
“대주!”
밖에서 장천운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선우상이었는데, 목소리에서 왠지 긴장감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오?”
“속히 구천무원으로 가보셔야 할 것 같소. 섭가장이 피로 물들었다 하오.”
* * *
구천무원은 전날이나 다름없이 조용했다.
전날까지는 구천대평의회를 앞둔 폭풍전야였다면, 오늘은 긴장이 팽팽히 당겨진 고요였다.
장천운이 들어갔을 때는 사마경이 이미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해놓은 상태였다.
오면서 간부들이 구천대전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터다.
아마도 구천대전에서 긴급회의가 열리는 듯했다.
“들었어?”
“예, 들었습니다.”
오면서 선우상에게 설명을 들었다.
지난 밤, 혈풍이 신양 섭가장을 휩쓸고 지나갔다고 했다.
섭가장 오백 무사 중 살아남은 자는 오십 명도 채 되지 않는다고 했다.
가솔 이백여 명도 혈풍을 피하지 못했다.
신양제일세력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의 공격을 받고 단 하룻밤 만에 멸문지화를 당한 것이다.
“섭가장을 공격한 자들은 많아야 백 명을 넘지 않았다고 해. 가타부타 아무 말도 없이 무조건 사람들을 죽였데. 자시에 공격해서 이 각, 그 짧은 시간에 섭가장을 혈해로 만들었어.”
“정체는 밝혀졌습니까?”
“아니. 섭가장의 누구도 적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해.”
신양은 물론이고 하남성 일대, 아니 천하에서 섭가장을 단 일 각 만에 무너뜨릴 세력이 몇이나 되랴.
더구나 섭가장이 구천성의 지부라는 걸 모르는 자 누가 있으랴.
“암천문이 벌인 일 같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풍령장을 친 것에 대한 보복일 겁니다.”
“총사가 첩밀각과 사밀령을 보냈으니까, 곧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 올 거야.”
“다른 지부도 공격할지 모르겠군요.”
“그래서 문제야. 일단 구천대전으로 가.”
구천대전의 분위기는 천장이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것처럼 무거웠다.
다른 곳도 아니고, 구천성에서 제일 가까운 지부인 섭가장이 철저하게 당했다.
미리 도착한 지부의 무사들은 물론이고, 다른 지부들 역시 불안감에 떨고 있으리라.
“소성주께서 오셨습니다!”
구천대전에 모여 있던 고위간부 백여 명은 사마경이 들어오자 일제히 일어났다.
오늘만큼은 공손백과 나극도 예외가 아니었다.
상석 앞에 선 사마경이 간부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앉으세요.”
간부들이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았다.
드넓은 대전, 두 줄의 기다란 탁자 양쪽에 앉은 간부 백여 명의 눈이 일제히 사마경에게 집중되었다.
일전에도 이런 상황이 있었다. 그때 사마경은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오롯이 서서 도도한 표정으로 간부들을 둘러본 그녀가 한기 풀풀 날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섭가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셨을 거예요.”
잠깐 들썩거렸던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았다.
어지간한 사람은 숨도 쉬기 힘들 정도였다.
“어젯밤, 본 성의 지부인 섭가장이 혈겁을 당했어요. 본인은,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자들의 배후가 천외의 세력 중 하나인 암천문일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사마경은 물밑으로만 흐르던 천외에 대한 소문을 표면 위로 끄집어냈다.
장천운이 난리를 몇 번 치는 바람에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선지 크게 의문을 갖는 사람은 없었다.
“대령주께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마경이 공을 공손백에게 넘겼다.
공손백의 이마에 골이 깊게 파였다.
자신이 암천문과 가까운 사이라는 걸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상황에서 섭가장을 피로 물들였다.
사마경과의 맹약을 눈치 챈 걸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둘만 알아도 비밀이 아닌 법. 그런데 삼자가 약속을 했고, 그 자리에는 다른 사람도 있었다.
저기 장천운 저놈도.
어쩌면 사마경 측에서 샜을 수도 있고, 나극 쪽에서 샜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독고광을 죽인 것 때문에 자신을 의심하는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입을 막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그럼 풍령장이 무너지는 걸 방관한 것에 대한 경고의 의미? 그럴 가능성도 충분하다.
‘빌어먹을!’
어쨌든 탁무겸이 자신을 염두에 두고 벌인 일이라면 적절한 대응을 강구해야 한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오.”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암천문의 지부로 밝혀진 풍령장을 쳤기 때문이오.”
“풍령장을 친 것에 대한 보복이다, 그 말씀인가요?”
“그렇소, 소성주.”
“그렇다면 앞으로가 문제군요.”
간부들의 시선이 일제히 사마경에게로 향했다.
“대령주께서는 그들이 섭가장으로 만족할 거라 보나요?”
공손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생각까지는 미처 못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답은 뻔했다.
“그들은…… 만족하지 못할 거요.”
“다른 지부도 공격할 거라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크오.”
“그럼 이제부터 그들과 어떻게 싸울 것인지 생각해봐야겠군요.”
공손백은 그에 대해서 바로 대답을 못했다.
암천문과 싸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조차 안 해본 일이다.
“대령주, 그놈들의 총단은 어디에 있소?”
장로 구평추가 분노를 억누른 표정으로 물었다.
공손백이 쏘아붙이듯 대답했다.
“내가 그들의 총단 위치를 어찌 안단 말이오?”
“암천문을 잘 아는 것으로 알고 있소만, 총단의 위치도 모른단 말이오?”
“모르니 모른다 한 것이오. 암천문이 왜 오랜 세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는지 그것부터 생각해 보시오.”
사마경이 두 사람 사이의 언쟁을 중단시켰다.
“그 일은 이제부터라도 조사해보면 돼요. 그 보다……!”
대전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그녀의 말이 떨어질 때마다 일어나는 변화였다. 대전 안의 분위기를 그녀가 이끌고 있다는 뜻.
참으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암천문의 도발은 본 구천성에 대한 명백한 정면도전이에요! 본인은 형제들의 죽음을 좌시하지 않을 거예요!”
사마경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구천대전이 쩌렁쩌렁 울렸다.
간부들의 가슴 속에서도 울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