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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24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02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24화

그 토굴은 무 노인과 장산이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오년 전에 만들어 놓은 비밀거처였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던 곳.

“좀 어떻습니까?”

“십 년은 끄떡없을 것 같다.”

“마침 길거리에서 괜찮게 덖은 차를 팔기에 사왔습니다. 드셔보시지요.”

무 노인은 장산이 건네주는 찻잔을 받아서 한 모금 맛을 보았다.

“흠, 정말 괜찮구나.”

고개를 끄덕인 무 노인이 찻잔을 가만히 내려놓자, 장산이 말했다.

“독고광의 풍령장이 무너졌습니다.”

무 노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풍령장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천운이 그랬느냐?”

“예, 어르신.”

장산은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상세히 말해주었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무 노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구천성에 똬리를 틀고 있던 암천의 한 축이 예상보다 빨리 무너졌군.”

“공손백이 간접적으로나마 손을 거든 것으로 봐서 암천의 나머지 축도 제 역할을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놈이 욕심을 부리는 건가?”

“암천의 주인에게 구천성을 넘기고 싶지 않은 거겠지요.”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 어쨌든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는군.”

“금룡은 이미 구천성 권역에 들어와 있고, 청산은 백 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무래도 때가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듣고 있던 무 노인이 시선을 들어서 장산의 눈을 바라보았다.

“장산.”

“예.”

“지금이라도 돌아갈 생각은 없느냐?”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습니다. 저는 이제 이승에도 없고 저승에도 없는 사람일 뿐입니다.”

“후회되지는 않느냐?”

“후회할 거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 내가 괜한 걸 물어봤구나. 우리도 마지막을 위해서 준비해놓아야겠다.”

“예, 어르신.”

 

* * *

 

구산은 류화를 극진히 보살폈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자신이 챙겼다.

“듬직한 하인 하나 생겼다고 생각해.”

류화가 짐짓 짜증을 내듯 불편하다고 하면 그렇게 말했다.

류화도 사실 싫지 않았다. 그저 미안해서 짜증을 내듯 말하는 것뿐.

싫기는커녕 구산이 옆에 있는 게 너무나 고맙고 듬직했다.

아마 그래서였을지 모른다. 요즘 들어서 눈물이 많아진 건.

 

장천운은 금룡신군이 준 정체모를 영약의 기운을 최대한 흡수하기 위해서 운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구천성이 의외라 할 정도로 조용했다.

사마경은 그 이유에 대해서 간단명료하게 정리했다.

“천운이 가만히 있으니까 세상이 이렇게 조용하잖아.”

물론 장천운도 그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했다.

“원래 폭풍전야는 조용한 법입니다.”

그러다 한 소리 들었다.

“천운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폭풍은 천운이 거의 다 일으켰잖아?”

최근 책을 많이 읽더니 말솜씨가 이제 경지에 이른 듯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정말 몇 달 만에 큰일 없이 지나간 나날이었다.

하지만 조용한 날도 나흘을 넘기지 못했다.

단승이 돌아온 것이다.

 

율검당으로 간 단승은 비공이 장천운이었다는 말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어이가 없다 못해 맥이 풀렸다.

“비공이 장천운이었다고?”

“그렇다네.”

악승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단승은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 이전에 자신이 장천운과 한 내기가 떠올랐다.

꼼짝없이 올가미에 걸린 신세 아닌가 말이다.

‘어쩌다 내 신세가…….’

그가 허탈해하고 있을 때, 장천운에게 보고하러 간 산교가 돌아왔다.

당연히 장천운도 함께 왔다.

단승은 입을 꾹 다물고 장천운을 노려보았다.

비공보다는 훨씬 보기 좋은 낯짝이었다.

만나면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볼 거 없어. 원하면 내기는 없던 일로 해주지.”

없던 일로 한다 해서 없던 일이 되나?

“나도 한번 한 약속을 뒤집을 정도로 낯짝 두꺼운 놈 아니야.”

“그래? 그럼 그 이야기는 더 할 것 없군.”

“대신 나중에, 내가 원할 때 한 번 더 내 검을 받아줘야겠어.”

“그거야 얼마든지.”

단승의 요구를 흔쾌히 받아들인 장천운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됐어?”

단승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제부터가 그에게는 고문이나 마찬가지 시간이었다.

“전무궁 당주의 부인과 아들이 죽었어. 놈들이 하루 일찍 손을 쓰는 바람에…….”

장천운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늦게 도착했어?”

“하루 일찍 도착했는데, 일단 놈들을 먼저 파악하다 보니 그만…….”

“부인과 아들을 지킬 사람도 배치하지 않았단 말이야?”

“시간이 하루 더 남아서 설마 했지.”

“막는 게 중요하지, 놈들을 처리하는 건 나중 일이란 걸 몰라?”

어찌 보면 단승의 잘못이라고 할 수만도 없었다.

하지만 결과가 나쁘니 그에 대한 책임이 고스란히 단승에게 돌아갈 수밖에.

“그놈들이 미리 손을 쓸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

“후우우우우. 전 당주에게 뭐라고 말하지?”

한숨을 내쉰 장천운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단승이 그의 표정을 살피며 넌지시 말했다.

“그래도 손자와 아들 부인은 살았어.”

“뭐? 그게 정말이야?”

“상처가 크긴 한데, 죽을 정도는 아니야. 일단 의원에게 데려가서 치료받고 있는 중이야. 양가 형제더러 잘 살펴보라고 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그나마 다행이었다.

“알았어. 전 당주에게 이야기하고 오지. 이조는 흑월대로 옮길 거야. 가져갈 것 있으면 정리해.”

전무궁은 부인과 아들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이를 악물었다.

중노인이 되면서 주름이 생긴 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언뜻 그 안쪽에 물기가 고인 듯 보였다.

“죄송합니다, 당주. 조금만 빨리 처리했어도 무사했을 텐데…….”

“그게 어찌 네 탓이냐. 다 못난 내 탓이지. 내가 분노해야할 대상은 대장로지 네가 아니다.”

“손자와 며느리는 목숨에 지장이 없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비탄에 잠겨 있던 전무궁의 눈이 커졌다.

“손자가…… 나에게 손자가 있었단 말이지?”

몰랐나 보다.

“다섯 살이라고 합니다. 아주 똘똘하게 생겼다고 하더군요.”

전무궁의 입술 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무척 슬퍼 보이는 미소였다.

부인과 아들을 잃고 얻은 손자와 며느리 아닌가. 만감이 교차할 만했다.

“고맙다. 네가 아니었으면 손자와 며느리조차 놈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을 텐데…….”

“아닙니다. 기왕 손을 썼으면 좀 더 완벽했어야 하는데, 그저 죄송할 뿐입니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아무래도 구천성을 떠나야할 것 같다.”

“낙양으로 가실 겁니까?”

“어린 손자와 힘없는 여자 둘이서 살아가기에는 세상이 너무 험하거든.”

“하긴, 제가 생각해도 그게 좋겠습니다.”

장천운은 그쯤에서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대장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전무궁의 물기어린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

“나는…… 절대 그를 용서할 수 없다. 소성주가 용서한다 해도, 내가 그에게 죽는다 해도 나는 부인과 아들의 한을 풀어주고 말 거다.”

“저도 당주님을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아니, 당주님을 도와드릴 것입니다. 단, 직접은 안 됩니다. 손자를 안아보셔야 할 것 아닙니까?”

전무궁을 걱정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사마경과 협정을 맺었다.

지금 그를 죽이려 한다면 구천성은 혼돈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나도 당장 그에게 달려갈 생각은 없다. 아직은 복수할 수 있는 힘이 없으니까.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아들과 아내의 원한을 풀어주고 말 거다.”

 

* * *

 

장천운은 전무궁의 방을 나와서 유진생을 찾아갔다.

이조원을 흑월대로 옮기는 일 때문이었다. 전부터 이야기가 되어있던 일이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을 듯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유진생이 대뜸 말했다.

“나도 가련다.”

“예?”

“율검당도 심심하진 않은데, 내 생리에는 맞지 않아.”

생각보다 일이 많았다.

누굴 조사하고 쫓아다닌다는 것도 귀찮았다.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다른 대주들의 눈치를 봐야한다는 점이다.

“흑월대에 가셔도 마땅히 할 일이 없을 텐데요?”

흑월대는 소성주 직속 호위대다. 나이든 유진생에게 호위를 맡기기도 어정쩡했다.

그런데 먼저 우물을 판 유진생이 직접 답을 내놓았다.

“가끔 대원들 교육을 시킨다며? 그거라도 하지 뭐.”

무공의 고하와 상관없이 무사들 교육은 유진생의 주특기다.

그것도 강도가 강한 걸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유마두라고 부를까.

장천운이 생각해도 그럴 듯했다. 흑월대원들이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유진생이 정기교육을, 자신이 특별교육을 시키면 되지 않을까?

“흠, 그거 괜찮은 생각이군요. 알았습니다, 그럼 전 당주님께 말씀드리죠.”

 

* * *

 

사마경은 전무궁의 부인과 아들이 살해되었다는 말을 듣고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손자와 며느리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네.”

“전 당주님도 손자가 있는 줄은 미처 몰랐나 봅니다.”

“무심하군, 전 당주도.”

씁쓸한 표정으로 나직이 말한 사마경이 장천운을 쳐다보았다.

“대장로를 죽일 생각이야?”

“봐서요.”

짧지만 많은 뜻이 담긴 대답이었다.

사마경은 그에 대해서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대신 말을 돌렸다.

“이제 닷새 남았네.”

장천운이 말했다.

“아직 닷새나 남았습니다.”

구천대평의회가 열리는 날을 말하는 것이었다.

“시간은 금방 가.”

“때로는 하루가 십 년처럼 늦게 갈 때도 있죠.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요즘 뭐 불만 있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

장천운도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했다. 그저 기분이 이상하게 싱숭생숭했다.

요 며칠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그런가?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십시오. 닷새가 아니라 오 년 남았다고 생각하십시오.”

“나도 그러고 싶어. 그런데 그게 잘 안 돼.”

아직 아버지의 시신도 찾지 못했다. 그런데 가끔 희희낙락할 때가 있다.

아무리 세월이 약이라지만, 이러다 아버지를 찾지도 못하고 원한마저 잊는 것 아닐까 싶다.

그럼 죄송해서 어쩌지?

그때 장천운이 물었다.

“저, 소성주.”

“왜?”

“혹시 장철산이라는 이름 들어보셨습니까?”

“장철산?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네. 그런데 천운이 그분 이름을 어떻게 알아?”

“총사께 들었습니다.”

“그분과 우문 숙부는 아버지와 의형제였다고 들었어. 하지만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임무를 수행하다 행방불명되었데.”

“그런데 왜 그분의 이름이 어디에도 없지요? 과거 구천성의 인물을 정리해놓은 책에도 없던데요.”

“글쎄? 이상하네, 왜 없지?”

사마경도 모르나보다.

‘정말 이상한 일이군.’

 

* * *

 

장로원에 무거운 긴장감이 흘렀다.

장천운은 쥐 죽은 듯 조용한 장로원을 가로질러서 나극을 찾아갔다.

장로와 경비무사들이 그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저놈이 왜 왔지?

모두들 그렇게 소리쳐 묻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 와중에 언동교가 청묵전으로 찾아가서 공손백에게 장천운의 방문 소식을 전했다.

“그놈이 혼자서 찾아왔다고? 왜?”

“저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대장로를 찾아왔다고 하는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할 게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철저히 지켜보라고 해라. 무슨 엉뚱한 짓을 저지를지도 모르는 놈이니까.”

“예, 대령주.”

 

그 시각, 장천운은 나극과 마주앉아 있었다.

“노부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그렇습니다.”

“어디 무슨 이야기인지 말해봐라.”

“얼마 전, 제가 사람을 낙양에 보냈습니다.”

장천운이 불쑥 꺼낸 말에, 찻잔을 들던 나극이 멈칫했다.

“왜 보냈는지는 아마 대장로께서 잘 아실 겁니다.”

“글쎄다. 내가 뭘 안다는 거냐?”

“뭐, 모르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좌우간 어떤 작자가 전무궁 당주님의 가족을 죽이라고 사람을 보냈지 뭡니까.”

‘어떤 작자’ 나극은 찻잔을 입술에 댄 채 눈만 들어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주름진 눈꺼풀 사이에서 기이한 광채가 일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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