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67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81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67화
장천운은 그녀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모용예는 단단히 각오한 듯 장천운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양쪽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저예요. 그러니 지금으로선 제가 적임자라 할 수 있어요.”
모용문태도 그녀를 밀었다.
“나 역시 연락은 예아가 맡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장천운도 더는 거부하지 못했다.
“좋을 대로 하쇼. 대신 함부로 나대다가 잘못되면 나를 원망하지 마쇼.”
“알았어요. 조심할 게요.”
처음으로 모용예의 얼굴에 희미하나마 미소가 번졌다.
여태 고깝게만 생각하고 있던 터라 그녀의 미모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웃는 모습을 보니 눈을 떼기 힘든 미녀였다.
장천운은 그제야 자신이 뭔가 실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사마경은 장천운에게 설명을 듣고 얼굴이 펴졌다.
파천회라면 이를 갈던 그녀다.
하지만 그녀도 전쟁에서는 영원한 적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청산궁과 손을 잡았던 것도, 공손백과 나극의 협상을 받아들인 것도 그 때문 아닌가 말이다.
“하늘이 도와주는군. 북천도왕이 저절로 굴러들어오다니.”
북천도왕 뿐만이 아니다. 고완과 임청백을 비롯해서 백여 명의 정예무사가 함께 굴러왔다.
속된 말로, 완전히 봉 잡았다.
청산궁과 금룡장을 상대해야 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그들의 합류는 커다란 변수가 아닐 수 없었다.
“서문주경이 우리를 도와준 셈이군.”
“일단 구천삼대의 총책임을 맡겼으면 합니다만.”
“괜찮은 생각이긴 한데, 위험하지 않겠어?”
“대령주보다야 덜 위험할 겁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이 그의 정체를 알게 되면 반발하지 않을까?”
“그가 적일 때의 이야기지요. 구천성이 언제 머리를 숙이고 전향해온 사람을 쫓아냈습니까?”
사마경이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장천운의 말이 옳았다.
지금까지 구천성은 품 안으로 들어온 자를 내쫓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강호제일세가 되었다.
“하긴…… 좋아, 그 일은 천운이 알아서 해.”
이제 선풍대도 꼼짝없이 모용문태의 지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전력은 급상승할 것이고, 급할 때 막강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 그 모용예인가 하는 여자도 왔어?”
“예, 소성주. 모용예가 모용문태 쪽과의 연락을 책임지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알게 될 거, 미리 말했다. 그런데 사마경이 은근한 표정으로 장천운을 보며 넌지시 물어보았다.
“예쁘다면서?”
“얼굴만 예쁘면 뭐합니까? 성격이 고약한데요.”
“예쁘긴 예쁜가 보네.”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해서.
“예쁘다는 게 아니라…….”
“천운은 참 재주도 좋아. 예쁜 여자들이 줄을 섰잖아.”
장천운은 아예 대꾸를 하지 않고 입을 다문 채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초초 이야기는 아무래도 나중에 해야 할 것 같다.
“나에게 말하지 않은 여자 또 있어?”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하면 또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할지 모르니까.
“없습니다.”
빤히 장천운을 바라보던 사마경이 시선을 돌렸다.
“좋아, 믿어줄게.”
‘휴우.’
장천운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사마경이 한마디 더했다.
“이제 슬슬 용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조금 전과 완전히 다른 표정이었다. 차가운 눈빛에서는 살기마저 느껴졌다.
* * *
전쟁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경을 지키던 병사들끼리의 드잡이가 나라 간의 싸움으로 비화될 때도 있다.
사소한 오해가 수십만 명의 죽음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날도 그랬다.
한바탕 소나기가 내린 날, 그 일이 벌어졌다.
어쩌면 비 때문일지도 몰랐다.
외곽 순찰을 돌던 벽호당 무사들은 옷이 비에 젖자 짜증이 났다. 교대근무를 나올 때만 해도 해가 쨍쨍해서 우의와 챙을 챙기지 않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더 짜증이 나는 일은 청산궁 무사들의 안하무인격인 태도였다.
그자들은 구천성 앞마당이 자신들 땅이라도 되는 듯 무게를 잔뜩 잡고 쳐다보았다.
그뿐이라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벽호당 무사 중 하나가 짜증나서 “개새끼들, 여기가 지들 안방인 줄 아나? 말코들 똥구멍이나 빨아먹고 있는 것들이 어디서 설쳐?”라고 욕했더니 대뜸 손을 써서 패대기쳤다.
벽호당 무사들도 동료가 당한 것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그 동안 상부의 명령이 있어서 참았을 뿐, 쌓인 불만이 한 가마니였다.
그러던 차에 청산궁 무사가 먼저 손을 썼으니 좋은 핑계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은, 욕설을 해서 청산궁 무사들의 속을 긁어댄 자가 흑월회 암월당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 개자식들이, 어디서 감히 대 구천성 무사를 공격해? 오늘 어디 누가 죽나 보자!”
그렇게 욕하며 청산궁 무사들을 제일 먼저 공격하고 나선 자가 흑영대 무사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러니 그들에게 그런 일을 시킨 자가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결국 벽호당 무사와 청산궁 무사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문제는 그 싸움에서 벽호당 무사 둘이 죽었다는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진지, 근처에 있던 구천성 무사들이 그 사실을 알고 달려와서 청산궁 무사들을 공격했다.
그 동안 참았던 불만과 짜증이 터진 것이다.
“다 죽여, 씨바!”
청산궁 쪽도 더 많은 무사들이 달려왔다.
공손백이 풀어놓은 사냥개들에 의해 형제들이 죽음을 당한지 얼마 되지 않은 터였다.
얼마 전에는 다 잡은 동방 노인 무리를 놓치고, 장천운에게 청산궁 고수들마저 죽지 않았는가.
인내심이 무너진 그들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순식간에 싸움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희생자 숫자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구천무원에 보고가 들어갔을 때에는 사망자가 이십여 명으로 늘어난 후였다. 사망자는 대부분 구천성 무사들이었다.
“싸움이 시작돼서 무사 백여 명이 성 밖으로 쏟아져 나갔습니다.”
사마경은 비령각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입술을 살짝 깨물며 일어났다.
“이제 화살은 시위를 떠났어.”
마치 밖의 상황을 다 알고 있다는 투의 말이었다.
그러나 방 안의 누구도 그녀의 말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장천운 역시.
“천운, 몸은 어때? 시작할 수 있겠어?”
“예, 소성주.”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독왕의 해독단을 복용했으니 독기의 발작은 덜하지 않겠는가. 운이 좋으면 해독단의 영약 성분이 내상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물론 그에 대해서는 사마경에게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모든 계획을 취소할 테니까.
‘오늘이 아니면 거꾸로 역공을 당할지도 모른다. 무리를 하더라도 계획대로 진행해보는 수밖에.’
기회란 항상 오는 것이 아니다. 왔을 때 잡지 않으면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나도 갈까?”
사마경의 말에 장천운이 흠칫했다.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나 혼자 이곳에 있으면 심장이 타버릴 거야.”
“소성주께서 가시면 제 심장이 말라비틀어질 겁니다.”
도도한 표정으로 말하던 사마경이 피식, 실소를 지었다.
“알았어, 이곳에 있을 게. 나 때문에 다쳤다는 소리는 듣기 싫으니까.”
장천운은 반박하려다가 포기했다. 해봐야 이익 될 게 없을 듯했다.
대신 입구 쪽에 서 있는 영호관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곳을 부탁합니다.”
“걱정마라. 목숨을 걸고 성주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임무니까.”
그들의 관심은 오직 성주의 안녕밖에 없었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신경 쓰지 않았다. 아마 장천운이 죽는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장천운은 그래서 더 마음이 편했다.
“흠, 그 양반들이 올 때가 되었는데…….”
그로부터 반각 후, 간부들이 우르르 구천무원으로 몰려왔다. 공손백과 나극이 선두에 서있었다.
“소성주, 성문 밖에서 청산궁과 싸움이 벌어졌다고 하던데, 들었는가?”
“들었어요.”
“어찌 할 건가?”
공손백이 다그치듯 물었다.
사마경은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대답했다.
“그들에게 우리 형제들이 죽었는데 뭘 어떡해요? 당장 가서 살해범들을 잡아와야죠. 대령주께서 그들에게 우리 구천성의 분노를 보여주세요!”
설마 그렇게 강한 태도로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 공손백이 오히려 머뭇거렸다.
“내가…… 말인가?”
“어차피 청산궁과는 한번 싸워보셨잖아요. 그렇다면 누구보다 청산궁 무사들을 잘 아실 거 아니에요?”
공손백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건 그렇네만…….”
“대장로께서도 대령주를 도와주세요.”
사마경은 나극까지 끌어들였다.
그런데 의외로 나극은 순순히 그녀의 말을 받아들였다.
“알겠네. 그렇게 하지.”
이제는 공손백도 발을 뺄 수가 없었다.
“대장로께서 도와주신다면 훨씬 나을 것 같구려.”
장천운이 거기다 넌지시 기름을 부었다.
“대령주께서 앞장서시면 본 성의 많은 무사들이 대령주를 존경할 겁니다.”
공손백의 얼굴에 붉은 기가 돌았다.
말만 존경 운운할 뿐, 장천운의 어디에서도 존경하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건방진 자식! 조금만 기다려라, 이놈!’
* * *
혈전은 동문 밖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비는 싸움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부슬부슬 내리는 가을비는 사람들의 감정을 더욱 깊게 가라앉혔다.
시간이 가면서 질퍽하니 젖은 대지 곳곳에 붉은 핏물이 흘렀다.
비에 축축이 젖어서 스며들지 못한 핏물이 내처럼 졸졸 흘렀다.
비릿한 피 비린내가 뿌연 부슬비와 함께 사람들의 가슴을 짓눌렀다.
동쪽 정문이 또 다시 열리자 긴장감은 극한까지 고조되었다.
구천성 무사들을 이끌고 나온 사람이 다름 아닌 공손백과 나극인 것이다.
“우리 구천성은 더 이상 청산궁의 오만한 행동을 용납지 않을 것이다! 구천성의 무사들을 살해한 청산궁 놈들을 잡아라!”
공손백의 일성이 동문 밖에 울려 퍼졌다.
구천성 무사들은 굳은 표정으로 빗속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동쪽 정문에서 살기가 충천하던 그 시각.
장천운은 남문을 통과한 후 무명장으로 향했다. 환마와 패왕 등 다섯 노인과 흑월대 일조와 이조, 비령각의 영조와 묵조, 비령조 이십여 명, 흑영대 마흔두 명의 무사가 동행했다.
저벅, 저벅, 저벅…….
넓은 챙을 쓰고 피풍의를 걸친 채, 비 내리는 길을 걷는 그들의 모습은 오가던 사람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간간이 들려오던 주루의 소란도 언젠가부터 조용해졌다.
장천운이 도착했을 때, 비에 젖은 무명장은 고요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질식할 것 같은 긴장감이 진득하니 흘렀다. 금룡장 무사들도 동문 쪽에서 벌어진 일을 알고 있는 것이다.
구천성과 청산궁이 대판 싸우고 있는 상황. 자신들 역시 언제 어느 때 구천성의 공격을 받을지 몰랐다.
그러던 차에 장천운 일행이 정문으로 다가가자 긴장감이 극한으로 고조되었다.
무명장을 에워싸다시피 한 금룡장 무사 중 십여 명이 장천운 일행의 앞을 막아섰다. 전에 봤던 비천당 무사들이었다.
그들 중 사십대 중년 무사도 장천운을 알아보고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장 대주께서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오셨소?”
“신군을 만나 뵈러 왔소.”
“주군께선 이 시간에 손님을 만나시지 않소.”
“가서 말씀이나 드리시오. 나도 오늘 밤은 인내심이 바닥나 있으니까.”
중년 무사의 이마에 주름이 깊게 그어졌다. 눈빛도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때 무명장 안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으로 들여라.”
금룡신군의 목소리였다.
중년 무사는 싸늘한 눈빛으로 장천운을 바라보며 옆으로 비켜섰다.
“들어가시오. 단, 모두 들어갈 수 없으니 최소한의 인원만 대동하시오.”
장천운은 환마 등 다섯 노인만 대동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
금룡신군도 이미 동문 쪽 상황을 보고 받은 상태였다.
그는 다섯 노인과 함께 찾아온 장천운을 보고 입술 끝을 묘하게 비틀었다.
“청산자와 한바탕 했다고 들었다. 지금도 동문 쪽에서 싸우고 있다며? 청산궁과 맞서기로 작정했나 보구나.”
“그들은 본 성의 무사들을 죽이지 말아야 했습니다.”
“하긴, 나라 해도 화가 났을 거다.”
“소성주께서는 누구든 우리 구천성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면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생각이십니다.”
비틀린 금룡신군의 입술 사이로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공손백과 나극이 청산궁을 처리할 수 있을 거라 보느냐?”
“완벽히 처리하지는 못한다 해도 힘은 빼놓겠지요.”
“허허허, 당할 것을 알고 보냈다?”
“구천성의 대령주와 대장로쯤 되면 그러한 일은 알아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금룡신군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너울거렸다.
“그래, 그래야지. 그런데 나는 왜 찾아왔느냐? 지금 한창 정신이 없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