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66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84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66화
“너 죽는 거야 상관없다만, 초초를 그렇게 만들 순 없지.”
“다행이군요.”
“초초를 네가 거둔다는 약속을 해준다면 한번 힘을 써보마.”
움찔한 장천운은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초초는 제 동생입니다. 앞으로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그 마음이 변하기를 바라는 거다. 초초는 동생으로서가 아니라 여자로서 너를 좋아하니까.”
장천운도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남사명이 대놓고 그렇게 말하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후우, 소성주께서 아시면 난리가 날 겁니다.”
“아마 소성주도 너를 잃는 건 바라지 않을 거다.”
“초초가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건 네가 막아야지.”
“두 여자를 데리고 살면 다른 사람들이 욕할 겁니다.”
둘이 아니다. 셋이다. 연송하도 있으니까.
도대체 자신이 뭐가 잘났다고…….
“너 정도 능력 있는 남자는 두세 명 데리고 살아도 괜찮아. 어차피 전쟁 통에 남자들이 많이 죽어서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더 많잖아.”
“정말 꼭 그래야하겠습니까?”
“그래. 아니면 나도 못한다.”
남사명의 고집을 아는 장천운은 결국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사마경과 연송하의 닦달에 몸이 말라서 죽든, 기운이 폭주해서 죽든 어차피 마찬가지다. 그나마 가능성은 두 여인을 설득하는 쪽이 더 높았다.
“초초가 그냥 동생으로 있겠다고 하면 그렇게 할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강요하지 않깁니다.”
“초초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뭐, 그렇다면 약속하겠습니다.”
그제야 씩 미소를 보인 남사명이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그러고는 주머니를 열고 그 안에서 줄처럼 길쭉한 하얀 물체를 꺼냈다.
“이것이 혈맥을 강화하는 데는 그만이니라.”
“그게 뭡니까?”
“천년 묵은 음양쌍두백사의 내장을 말린 것이다. 푹 고아서 국물은 마시고 건더기는 잘 씹어서 먹어라. 좀 질기긴 하지만, 그래도 먹을 만할 거다.”
뱀의 내장을 말린 거라고? 그걸 씹어 먹어?
장천운의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왠지 보기만 해도 비린내가 나는 듯했다.
“저…… 다른 것은 없습니까?”
“싫다면 할 수 없지. 그럼 다른 약을 쓰마. 사실 이게 부부간의 사이를 좋게 만드는 데도 효능이 아주 좋은데…….”
남사명이 아쉬운 표정으로 말하며, 줄처럼 생긴 하얀 물건을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장천운은 재빨리 손을 뻗어서 남사명의 팔을 붙잡았다.
“그냥 그걸로 하죠. 제가 이는 튼튼하거든요.”
* * *
구천성에서 삼십 리쯤 떨어진 야산 자락 아래에 낡은 산신당이 하나 있었다.
평상시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산신당이 그 날은 손님 세 명을 한꺼번에 맞이했다.
“노야, 몸은 좀 어떠십니까?”
“견딜 만하다. 너무 걱정 마라.”
“천운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나 때문이니라.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어차피 청산궁의 눈을 완벽히 속일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무 노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를 감싸려할 것 없다. 그보다 천운의 무공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하구나.”
“저도 놀랐습니다. 보고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걱정이다. 분명 정상적으로 강해진 것이 아니야.”
장산의 얼굴에도 걱정이 가득했다.
그는 안다. 비정상적인 성장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장천운이 아무리 천재적인 자질을 지녔다 해도 공력은 또 다른 문제였다.
공력을 증진시키는 신체적인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이십대 나이에 절대 경지를 넘어선 사람은 천년 강호사를 통틀어도 열 명 안팎에 불과했다.
그것도 장천운은 이제 겨우 이십대 초반 아닌가.
그뿐이 아니다. 절대 경지를 넘어서서 초인의 경지에 들어섰다.
아무리 잘 봐준다 해도 그것은 결코 정상이라 할 수 없었다.
“노부가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니라면, 급격한 공력 증가로 부작용을 겪게 될 거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나름대로 생각해 둔 것이 있긴 한데…… 일단 천운이의 상태를 철저히 지켜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노야.”
“소천은 어떠하냐?”
“이번에 충격이 너무 컸습니다. 최소 보름 이상은 대법을 운용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으음, 아쉬운 일이야. 가능성은 확인했는데, 너무 일찍 만났어.”
착잡한 표정으로 말한 무 노인이 한쪽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는 소천을 바라보았다.
그때 장산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 노야, 소천이 추가 대법을 시행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무 노인이 고개를 돌려서 장산을 보며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추가 대법을 시행하면 어찌 되는지 모른단 말이냐?”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강하게 반대했는데, 계속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무공은 더 강해질지 몰라도 감각이 무뎌져서 지금처럼 더듬거리는 말조차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저도 그래서 말렸습니다.”
무 노인은 소천을 돌아다보았다.
눈을 감은 채 요상 중이어서 미동도 없었다. 듣지 못했는지, 아니면 못 들은 척하는 것인지 알 순 없었다.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소천이 뭐라 해도 들어주지 마라.”
“예, 노야.”
그때 소천이 천천히 눈을 떴다. 느릿하게 열린 입술 사이로 몇 마디가 흘러나왔다.
“그들…… 상대하려면…… 그 방법밖에…….”
“소천, 안 된다.”
“어차피…… 저는 죽은 사람…….”
“아직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니 다시는 그런 말하지 마라.”
“노야…….”
“나도 너의 마음을 안다. 그래도 허락할 수 없다.
소천은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빛으로 무 노인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장산이 그 모습을 보고 이를 악다물었다.
‘그래, 최대한 버텨라, 소천. 딸과 말 한마디는 나누어봐야 하지 않겠느냐?’
마음 같아서는 구천성을 찾아가서 사마경과 소천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은 안 되었다.
자신들의 정체를 알게 되면 천외는 힘을 합쳐서 구천성을 공격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나마 있던 약간의 승산조차 사라지게 된다.
‘조금만 기다리게, 친구.’
장산은 북받친 감정을 억누르고 무 노인에게 말했다.
“노야, 일단 양각동으로 가시지요.”
“너무 이르지 않겠느냐?”
구천성 동남쪽 외곽 마을인 양각동에는 무 노인과 장산이 준비해둔 세 곳의 거점 중 마지막 남은 안가가 있다.
최후의 보루와 같은 곳.
이번에 그곳으로 가지 않은 것도 행여나 청산궁에 위치를 들킬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청산자는 이번에 전쟁을 끝내려 할 겁니다. 그렇다면 가까운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꼭 그 때문만은 아니다. 이제는 더 물러설 곳도 없다.
“으음, 그건 네 말이 맞다. 그럼 새벽에 이동하도록 하자.”
* * *
탁무겸은 납작 엎드린 동백을 내려다보았다.
동백은 예전부터 그의 경쟁자나 다름없던 공손백의 오른팔이었다.
하늘 저편에 있는 암천문에 남기보다 강호를 열망했기에 공손백을 따른 자.
천하를 놓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루기 위해서 구천성으로 가던 차에 그가 찾아온 걸 보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결코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나쁘기는커녕 쾌감마저 느껴졌다.
“다시는 나를 보러오지 않을 줄 알았거늘, 어쩐 일이냐?”
“속하가 어찌 태천의 은혜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공손백이 보내더냐?”
“그분도 잘못 생각했다는 걸 뉘우치고 계십니다.”
탁무겸은 그 말에 대소를 터트렸다.
“공손백이 뉘우쳐? 푸하하하, 차라리 강아지가 지나가던 호랑이를 잡아먹었다고 해라.”
“태천이시여…….”
콰직!
고개를 들려던 동백의 몸이 바닥에 짓눌렸다.
동백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이 만근 거석에 눌려서 단단한 바닥을 파고드는 기분이 들었다.
탁무겸이 단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내려다봤을 뿐이거늘.
‘하늘은 정녕 내가 오를 수 없는 곳이던가?’
질끈 깨문 입술에서 극렬한 통증이 밀려왔다.
탁무겸은 발밑에서 벌레처럼 엎드리고 있는 동백을 준엄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눈은 무저동처럼 깊은데, 입가에는 하얀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내 공손백의 속셈을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너를 봐서 그의 청을 받아들이겠다. 대신…… 네 모든 것을 나에게 내놓아야 할 것이다.”
발에 밟힌 벌레처럼 바닥에 엎드리고 있던 동백의 몸이 잘게 떨렸다.
“태천께서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후후후후, 공손백은 너를 너무 모르는 것 같구나.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가 걸려 있었어.”
“태천이시여…….”
탁무겸은 고개를 돌려 도악을 바라보았다.
“도악. 곧장 구천성으로 간다.”
“예, 주군!”
* * *
금호대주 명호산에게 연락이 온 것은 점심 무렵이었다.
“모용 대협께서 오셨습니다.”
남사명이 준 음양사의 내장을 다려서 마신 후 건더기를 열심히 씹고 있던 장천운은 그 말을 듣고 일어났다.
모용문태가 파천회에서 밀려났다는 소식을 들은 게 이틀 전이었다.
비령각의 정보로는 서문주경과의 주도권 싸움에서 밀려났다고 했다.
그런데 파천회를 떠난 그가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
‘잘하면 계획을 앞당길 수 있겠어.’
모용문태는 금호대에 있었다. 구천삼대가 구천성 서문 밖 외곽에 위치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십여 명이 그와 함께 들어와 있었다. 개중에는 고완을 비롯해서 모용진강과 임청백, 모용예도 있었다.
모용문태는 초췌한 안색으로 장천운을 맞이했다.
“대략적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장천운이 마주서자마자 입을 열었다.
모용문태의 입가에 씁쓸한 자조의 미소가 맺혔다.
“내가 강호를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했던가 보네. 어리석은 일이었어.”
“이제 노야의 마음을 아시겠군요.”
나직하게 말하는 장천운에게서 한기가 풀풀 날렸다.
모용문태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분은 청산궁에 쫓겨서 이곳까지 왔다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데, 그래도 모용 대협은 그분보다 나은 편이네요.”
“노야가 이곳에서 죽을 뻔했다고?”
“모르고 계셨습니까? 청산궁이 집요하게 잡으려고 이 잡듯이 이 근처를 뒤졌지요. 그러다 엊그제 발견되어서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했었습니다.”
“으으음.”
모용문태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표정에서는 자괴감마저 느껴졌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모용진강이 끼어들었다.
“그 일은 그분과 우리 사이의 일이네. 장 대주가 신경 쓸 일이 아닌 것 같네만.”
“신경 쓸 이유가 있으니까 말하는 것 아닙니까?”
장천운이 냉랭히 대꾸하자, 모용예가 툭 한마디 나섰다.
“혹시…… 그분을 아세요?”
장천운도 그녀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차갑게 대하지 못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좋을 대로 생각하쇼.”
“아시는군요.”
장천운은 더 대답하지 않고 모용문태를 바라보았다.
“이제 본론을 이야기해봅시다.”
모용문태의 표정이 굳어졌다. 장천운이 그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곳에 계실 겁니까, 아니면 따로 움직이실 겁니까?”
일전에 모용예를 건네주는 대가로 약속을 했었다. 천외와 싸우는데 힘을 보태겠다고.
이제 남은 것은 방법이었다.
“현재로선 따로 움직이는 것도 여의치가 않다. 당분간 이곳에 있으면서 상황에 따라 움직였으면 하는데.”
당하의 일만 따진다면 구천성과 파천회는 원수지간이나 다름없다.
당시의 일을 주관한 사람이 서문주경이라 하나, 모용문태 역시 파천회의 부회주로서 책임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적과의 동침은 전쟁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은 친구가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 적으로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좋습니다. 대신 이곳에 있는 동안 독자적인 움직임은 안 됩니다. 자칫하면 엉뚱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구천성의 뜻을 따라야 한다, 그 말이다.
입술을 질끈 깨문 모용문태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우리도 각오하고 있다.”
“그럼 일단 이곳, 구천삼대에 계십시오. 연락은…….”
“제가 맡겠어요.”
모용예가 말을 잘라먹고 끼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