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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59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77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59화

청묵전 안에 거센 살기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주군.”

동백이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뭐냐, 동백?”

오늘만큼은 동백을 대하는 말투조차 곱지 않았다.

“말씀드리기 죄송합니다만, 지금 그를 찾아가면 역으로 당할 공산이 큽니다.”

“무슨 말이냐?”

“놈은 구천금령주의 지위로 구천오대를 정리했습니다. 그에 대해 항의하면 소성주의 명령에 정면으로 반발하는 셈이 됩니다. 그럼 소성주가 꼬투리를 잡고 주군을 몰아붙일 것입니다.”

“흥! 하려면 하라고 해!”

“소성주가 공식적으로 들이대면 주군께서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응한곡의 일 때문에라도…….”

공손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놈…….”

꼭 장천운만을 향한 욕설이 아니었다. 응한곡의 곡주였던 요진광을 향한 무게가 더 컸다.

그가 서찰을 보관하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상황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을 것 아닌가 말이다.

‘그 찢어 죽일 놈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인가!’

“어쩌면 장천운은 주군의 부동심이 무너지길 바라고 선풍대를 건드렸는지도 모릅니다.”

언젠가부터 공손백은 자주 부동심이 흔들리고 있었다.

곁에서 지켜본 동백은 그 사실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공손백은 분노를 서서히 가라앉혔다.

그가 비록 최근 들어서 흥분하는 경우가 자주 생겼지만, 본래 얼음처럼 차가운 심장을 지닌 자 아닌가.

분노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안 보이던 것이 하나둘 보였다.

개중에는 시간이 제법 지난 일도 있었다. 장천운이 얼마나 여우같은 놈인지도 생각났고.

“언젠가는 그놈의 머리통을 반으로 쪼개볼 거다.”

동백은 분노를 씹어 삼킨 공손백을 보며 화제를 돌렸다.

“주군, 곧 문인동의 꼬리를 잡을 것으로 보입니다. 부양에서 그가 며칠 전까지 머물렀다는 거처를 찾아냈습니다.”

“죽일 놈. 반드시 찾아내서 입을 막아라. 놈은 아는 게 너무 많아.”

“예, 주군.”

 

* * *

 

무명장에도 비상이 걸렸다.

눈치껏 들여보냈던 무사들이 쫓겨나듯 돌아온 것이다.

그나마도 죽거나 포로가 된 암천문에 비해서는 나은 상황이었다.

금룡신군은 동사광의 보고를 받고 이마를 찌푸렸다.

대놓고 천외의 무사들을 처리할 줄은 생각도 못했던 터였다.

그 교활한 놈이 차도살인의 계로 암천문 쪽 무사들인 웅천대를 손쉽게 제거한 후 나머지마저 한순간에 정리해버렸다.

대비책을 세울 틈도 없이 당한 셈.

“이곳을 떠나라고 했단 말이지?”

물론 ‘이상한 짓 할 거면’이라는 단서가 붙긴 했다.

“예, 주군.”

금룡신군의 가늘어진 눈에서 금광이 번뜩였다.

표정도 평소와 달리 차갑게 굳어진 상태였다.

‘그놈이 저 죽을 줄 모르고 함부로 날뛰는군.’

금룡신군이 입술을 비틀며 조소를 지었다.

그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한수가 남아 있었다.

장천운을 무릎 꿇게 만들 비장의 한수가.

 

* * *

 

청산궁 쪽에도 구천오대에서 벌어진 일이 전해졌다.

청산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찻잔 속을 응시했다.

찻잔 속의 차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오늘 일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고 말 것인가, 아니면 밖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인가.

문제는 오늘 일을 주도한 자가 장천운이라는 것이다.

“무량수불, 저희로선 손해 볼 것이 없는 일입니다.”

영산자가 조심스럽게 청산자의 표정을 살피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청산자가 찻잔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암천문의 웅천대 피해가 가장 컸고, 금룡장의 패룡대는 철수했습니다. 반면 금호대는 아직 그대로 있지 않습니까?”

“노도는 그래서 의문이다.”

“예?”

“장천운이 왜 그대로 놔두었는지 모르겠구나.”

“그거야 저희와 맺은 협약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상대는 장천운이다.”

아주 단순한 말이었다.

그럼에도 영산자는 그 말이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하오면…….”

“놈은 구천오대 중 사대를 이용해서 웅천대를 제거했다. 거기다 금룡장 사람들마저 돌려보냈지. 그러고는 웅천대와 패룡대, 선풍대의 잔여 무사들을 전검대에서 관리하게 만들었다.”

청산자의 말이 이어지면서 영산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순식간에 육백무사를 휘하에 거둔 셈이다. 단 이 각 만에.”

그제야 영산자는 신처럼 생각했던 청산자가 왜 고민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결국 사마경의 힘이 그만큼 강해졌다고 볼 수 있겠군요.”

“맞아. 그것도 공손백이 어쩔 수 없는 힘이지.”

“그래봐야 절대경지의 고수 두어 명이면 감당해낼 수 있는 정도잖습니까?”

“쯔쯔쯔…….”

청산자가 혀를 차며 쳐다보자, 영산자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청산자의 시선을 피했다.

“장천운이 지금 상태 그대로 놔둘 것 같으냐? 아마 두어 달이면 지금과 완전히 달라진 전력이 되어 있을 거다.”

“무량수불.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문제는 왜 금호대를 그냥 놔두었느냐, 하는 것이야. 금호대만 정리하면 구천오대의 모든 힘이 사마경의 것이 될 텐데.”

“아……!”

“놈의 움직임과 구천오대를 유심히 지켜보라고 해라. 분명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는 뭔가가 있을 것이다.”

“예, 사형.”

“고완은 어떠하냐?”

“모용문태와 함께 있습니다.”

청산자는 대답을 듣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채 느릿하게 숨을 쉬던 그가 이마를 찌푸리며 눈을 떴다.

가늘게 떠진 그의 눈매에서 푸르스름한 청광이 순간적으로 번쩍였다.

“청무령과 청호령도 불러들여라.”

 

* * *

 

예상치 못한 바람은 다른 곳에서도 불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스산한 가을비가 대지를 적셨다.

빗물이 투명한 동아줄처럼 처마에서 늘어지던 오후, 서문주경은 앞에 앉아 있는 모용문태를 서늘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모용 아우, 왜 공격을 안 하겠다는 건가?”

파천회는 그 동안 암천문의 지부로 추측되는 곳 두 곳을 공격했다.

피해가 적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러던 차에 정파로 알려진 은현곡이 강호를 농락한 청산궁과 연관된 문파라는 정보가 들어왔다.

정탐 결과 사실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제 은현곡마저 무너뜨리면 파천회도 무림맹에 뒤지지 않는 공을 세우는 셈이 될 터. 서문주경은 자신이 앞장서서 은현곡을 치고 싶었다.

그런데 모용문태가 공격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은현곡이 비록 청산궁이라는 곳의 하수인으로 의심받고 있긴 하나 지금껏 큰 죄를 지은 적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명분으로 그들을 공격한단 말입니까?”

“허어, 이미 증거가 나왔는데 왜 명분이 없단 말인가? 청산궁이 어떤 곳인지 나보다 자네가 더 잘 알 것 아닌가?”

암중에서 정파를 좌지우지하니 그들 역시 정심한 자들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들은 목적을 위해서 수십, 수백의 목숨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죽였던 자들 아닌가.

“물론 저는 청산궁에 대해서 서문 형보다 잘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은현곡을 치고 싶지 않은 것일지 모릅니다.”

“무슨 소린가?”

“죄는 청산궁이 범했지 은현곡이 범한 것이 아닙니다. 청산궁에 포섭 당했다 해서 무조건 참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일벌백계의 본보기를 보여주고자 함이네. 때로는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지. 생각해 보게. 우리가 공격한 암천문의 지부는 무슨 큰 죄를 지었던가?”

“은현곡의 주인인 은현수사 소양산은 청산자와 달리 진정한 정파의 협객 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정말로 죽을죄를 지었다면 몰라도, 지금 상태에서는 그와 그의 가족의 목에 칼을 들이댈 수 없습니다.”

“답답한 사람!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 했네. 청산자와 가까운 사이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겉으로만 군자인 척하는 자일지도 모르네. 그냥 놔두면 나중에 심복지환이 될 수도 있어.”

“제가 아는 한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십시오, 서문 형.”

모용문태는 오래 전부터 소양산과 알고 지냈다. 청산자가 어떤 자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소양산은 청산자의 겉모습에 속아서 그를 따르는 것일지 몰랐다. 소양산뿐만이 아니라 많은 정파의 협객들이 그렇게 청산자 휘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서문주경은 모용문태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은현곡을 쳐서 파천회가 무림맹과 나란히 하기를 원했다.

“정말 회주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셈인가?”

“죄송합니다.”

모용문태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서문주경은 고개를 숙인 모용문태를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할 수 없지, 아우가 싫다면.”

“이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마워할 것 없네. 이제 회주의 두 번째 명령을 전하겠네.”

“말씀하십시오.”

“자네가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부회주 자리에서 파면하라 하셨네. 지금 이 시간 이후로…… 자넨 파천회의 부회주가 아니네.”

서릿발처럼 차가운 서문주경의 말에 모용문태가 눈을 치켜떴다.

“서문 형?”

“자네 수하에 있는 모든 무사들을 앞으로 내가 지휘할 거네.”

“말도 안 되는…….”

모용문태가 반발하려는데, 서문주경이 큰소리로 외쳤다.

“삼 기주는 안으로 들라!”

방문이 세차게 열리더니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서문주경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홍기주 악조백과 백기주 제갈승우, 그리고 새롭게 청기주가 된 역궁이었다.

“부르셨습니까, 부회주!”

“회주님의 명에 따라 이 시간부로 모용문태를 부회주 자리에서 파면한다! 모용문태 휘하의 삼기는 물론이고, 나머지 조직들도 모두 회수한다!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명령불복종의 죄로써 다스려라!”

“예, 부회주!”

이미 언질이 있었던 듯 세 사람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 후 밖으로 나갔다.

“이게 무슨 짓이오, 서문 형?”

모용문태가 벌떡 일어나서 노기서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때 다시 네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 사오십 대의 중년인으로 은연중 뿜어지는 기세가 대단했다.

그들을 본 모용문태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천애사룡. 그들 넷은 무제 이천릉이 오랫동안 키워온 자들로, 무위만 따지자면 파천회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들이 왜 이곳에 나타났느냐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미리 딸려 보냈던가?

그때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욕설이 섞인 고함도 들렸다.

모용문태는 그제야 전말을 대충 짐작하고 서문주경을 노려보았다.

“내가 그리도 껄끄러운 사람이었소?”

“자네는 회주의 명령에 따랐어야 했네. 그랬다면 나와 회주 역시 가슴 아픈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걸세.”

서문주경은 안타까움이 절절히 느껴지는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모용문태가 그 모습을 보며 다시 물어보았다.

“나야 그렇다 치고, 내 가족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오?”

“자진해서 조용히 있으면 그 아이들에게까지는 죄를 묻지 않을 것이네.”

모용문태의 수염 사이로 조소가 떠올랐다.

“조용히 있으라? 날뛰면 곤란하니 손발 다 묶어놓고 처리하겠다는 거요?”

“과한 생각이네. 이 서문주경이 비록 자네와 척을 지게 되었지만, 어찌 조카나 다름없는 그 아이들을 심하게 다루겠나?”

“훗! 나를 잡으려고 미리 준비해 놓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모용문태가 전과 달리 반말로 대해오자 서문주경의 표정도 차갑게 가라앉았다.

“자넨 너무 정이 많아. 그래서 결국 이런 결과가 나온 걸세.”

“서문주경. 솔직히 말해봐라. 처음부터 나를 제거할 생각이었는가?”

서문주경이 차가운 눈빛으로 모용문태의 두 눈을 응시했다.

“맞아, 자넨 요즘 많이 수상해졌어. 회주께서도 그걸 느끼고 계셨지. 그래서 정 마음을 돌리지 않을 것 같으면 적이 되는 거라도 막으라 하셨네.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말일세.”

그 말이 끝난 직후, 조용히 서 있던 네 사람이 움직여서 모용문태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두세 명이라면 몰라도 넷 모두는 모용문태라 해도 자신할 수 없는 초절정고수들이다.

하물며 실력차이가 크지 않은 서문주경마저 앞에 있지 않은가.

“반드시 오늘 일을 후회하게 될 거다, 서문주경!”

냉랭히 소리친 모용문태가 뒤쪽의 창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가 설마 도주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 서문주경이 멈칫했다. 그 사이 모용문태가 창문을 코앞에 두었다.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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