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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52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83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52화

컴컴한 지하는 제법 깊고 넓었다.

지상의 방처럼 간단한 편의시설도 갖추어져서 생활하는데 큰 불편은 없을 듯했다.

장천운은 횃불을 만들어서 사방을 자세히 비춰보았다.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떠난 지 오래 되지는 않았군.”

침상을 만져본 장천운이 말했다. 침상에 미미하게나마 온기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허리를 펴고 내부를 둘러보던 그가 어느 한 곳에서 시선을 멈췄다.

차갑게 정제된 눈이 점점 커졌다.

어두컴컴한 벽에 검이 한 자루 기대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듯.

놀랍게도 그 검은 그가 은천동에서 잃어버렸던 검, 현월이었다.

‘어떻게 현월이 여기에……?’

“어? 저건 대주의 검이잖아?”

현월을 알아본 사공명신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다른 사람들도 입을 반쯤 벌린 채 현월과 장천운을 번갈아보았다.

개중에는 눈을 가늘게 뜬 동백도 있었다.

장천운은 손을 뻗어서 허공섭물로 현월을 거두어들였다. 사람들의 눈도 검을 따라 이동했다.

“아마도 전에 나를 죽이려 했던 자들과 관련 있는 것 같소.”

장천운은 그렇게 말했지만, 자신부터도 그것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대로 말하기가 애매해서 대충 둘러댄 것일 뿐.

“어떤 놈들이지? 청산궁 무사들을 죽인 자들일까?”

유진생이 이마를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모두들 같은 생각인 듯 반론을 내놓는 사람이 없었다.

장천운은 고개를 돌려서 안쪽으로 향하는 통로를 쳐다보았다.

지하는 넓을 뿐만 아니라 통로가 안쪽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장천운은 횃불을 앞세우고 통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통로는 꼬불꼬불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높이가 사람 키보다 높아서 걷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길이도 상당히 길어서, 거대한 이무기의 뱃속에 들어온 듯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해서 사방을 살피며 걸었지만 그들을 위협할 기관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구불구불 대여섯 번 꺾어져서 삼십여 장쯤 가자 통로의 끝이 나왔다.

사다리가 위쪽으로 향해서 세워져 있었다.

장천운은 망설이지 않고 사다리를 타고서 밖으로 나갔다.

밖은 또 다른 집이었다. 본래의 집에서 이십여 장쯤 떨어진 곳으로, 그곳 역시 빈집이었다.

“어떤 놈들인지 몰라도 철저하군.”

유진생이 눈을 가늘게 좁히고 투덜댔다.

장천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쪽 벽을 바라보았다.

황토로 만들어진 벽이 구불구불 파여 있고, 그 밑에 누런 황토가루가 쌓여 있었다.

벽에 글자가 음각으로 적혀 있는 것이다.

 

[쫓아오지 마라, 장천운.]

 

장천운은 그 글자를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거칠긴 해도 용사비등한 본래의 힘찬 서체를 숨길 수는 없었다.

‘문무에 정통한 자라는 건데…….’

“어떻게 할 건가, 령주?”

동백이 싸늘한 어조로 물었다.

장천운은 고민하지 않았다.

“돌아갑시다. 지금쯤은 더욱 깊숙이 숨었을 거요.”

궁금한 점이야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당장 추적해서 꼬리를 잡아봐야 청산궁에 좋은 일만 시켜줄 뿐. 그럴 이유가 없었다.

동백과 함께 움직여서 그들을 찾는 것도 왠지 께름칙했고.

‘언젠가는 만나겠지. 그때는 확실한 답을 듣고 말겠어.’

은원은 정확히 계산해야 한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고.

현월을 지그시 움켜쥔 장천운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 * *

 

현월을 본 사마경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떻게 된 거야?”

장천운은 토굴에서 발견한 사실을 그대로 말해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사마경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그럼 그들이 천운을 구해준 사람들이야?”

“그건 아직 확실치가 않습니다.”

“확실치는 않아도 연관이 있을 수는 있겠군.”

“그건 그렇습니다.”

“그럼 천운을 구해준 자들이 청산궁과 싸우고 있다는 거네?”

“뭐,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죠. 그들이 정말로 저를 구해준 사람들이라면.”

장천운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사마경이 고개를 두어 번 갸웃거리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말이야…… 그들이 아버지의 시신을 가져간 자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점에 대해서는 장천운도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천운이 생각해도 그렇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들이 소성주께 보낸 서신의 내용만 봐도 근처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장천운이 힘을 실어주자, 사마경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럼 찾아봐, 다른 사람들 몰래.”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명령.

장천운은 그녀의 의지를 읽고 토를 달지 않았다.

어차피 그도 그들이 누군지 반드시 알아내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장천운은 운기를 해서 기를 다스렸다.

겉으로 표는 내지 않았지만 청산자와의 눈싸움으로 인한 충격은 상당했다.

그런데 운기가 끝나갈 즈음, 심장 부근에서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윽.”

바늘로 쿡 쑤신 듯했다.

독고민과 싸울 때 느꼈던 통증과 비슷했다.

열도 더 강해서 심장에 불꽃이 튄 듯했다.

숨을 두어 번 쉬는 사이에 잠잠해졌지만, 왠지 찜찜함을 털어낼 수 없었다.

겨우 운기를 마친 그는 이마를 찌푸렸다.

‘왜 이러지? 금룡신군도 이런 경우는 말해주지 않았는데……. 남 노선배님 말씀대로 독 때문에 그러는 걸까?’

공력은 약효가 최고조에 이른 듯 얼마 전부터는 증진의 속도가 굼벵이 같았다.

물론 지금만 해도 공력이 전보다 배 이상은 늘어난 상태였다.

청산자와의 눈싸움에서 밀리지 않은 것도 그 덕분이었다.

그러나 천외삼성을 상대해서 조금이라도 승기를 잡으려면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만 했다.

게다가 그에게는 제약이 있지 않은가. 금룡신군의 말이 사실이라면.

‘백일, 그 안에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끝장이야.’

숨을 깊이 들이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석양이 질 무렵.

장천운은 대장간의 이응을 찾아갔다.

구천성 사람들 몰래 사마경의 명령을 이행하려면 암월당을 이용하는 게 나을 듯했다.

그런데 이응이 뜻밖의 말을 했다.

“무적장주께서 령주를 뵙고자 합니다.”

“그래요?”

기다리기에 지쳤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불러놓고 십여 일이나 기다리게 했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답답했을 것이다.

‘가서 만나봐야겠군.’

마성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그의 표정을 살피던 이응이 넌지시 말했다.

“지금 소호진에 와계십니다.”

“소호진에 와있다고?”

구천성에서 소호진까지는 남쪽으로 삼십 리밖에 안 되었다.

“예, 일행 십여 분과 함께 어제 도착했는데, 령주께서 출동하실 줄 모르고 올라오신 거 같습니다.”

“그래요? 소호진 어디에 있소?”

 

* * *

 

술시 말. 어둠이 짙어진 시각, 장천운은 소호진 외곽의 객잔에 있는 무적장주 단리승을 찾아갔다.

단리승의 방에는 선등경과 단리성우가 함께 있었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장천운이 먼저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건넸다. 단리승도 담담한 표정으로 마주 포권을 취했다.

“수고는 무슨. 우리야 힘들 일도 없는데.”

“태상장주께서도 오셨다 들었습니다.”

“마성에 계시네.”

“안 그래도 마침 연락을 취하려 했는데, 잘 오셨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나?”

“구천성 인근에서 청산궁과 정체불명의 무리가 서로 죽이고 죽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으셨을 겁니다.”

“들었네.”

“이제 곧 금룡장과 암천문의 사람들도 구천성 근처로 몰려들 겁니다.”

“으음…….”

“강호에서는 아직 그들에 대해 잘 모르고 있습니다만…….”

“우린 그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네.”

침중한 단리승의 말에 장천운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아버님께서는 그들 때문에 강호활동을 접고 칩거하셨네.”

단리황 뿐만 아니라 많은 고수들이 그랬었다. 칩거하지 않은 자들은 대부분 죽거나, 그들의 수하가 되었고.

그 일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들에 대해서 입을 열지 않기로 맹약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네의 말을 듣고 나선 것도 그 때문이지. 아버님께서는 예전의 치욕을 되갚을 기회라 생각하고 계시네.”

그랬나?

무적장이 순순히 자신의 요청을 받아들인 걸 조금은 의외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이유가 있을 줄이야.

“그래서 말이네만, 우린 좀 더 적극적으로 이번 일에 개입했으면 하네.”

단리승의 묵직한 말투가 장천운은 반갑기만 했다.

전쟁에서는 동맹군이 어떤 마음이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될 때가 있다.

무적장이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면 활용도가 훨씬 높았다.

“좋습니다. 그런 사연이 있다는 건 미처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계획을 조금 수정해야겠군요.”

“말해보게.”

“일단 마성에 계신 분들을 모두 상성으로 이동시켜 주십시오. 최대한 드러나지 않도록 소규모 인원으로 나누어서 움직여야 합니다.”

상성은 대별산에서 나는 약초와 가죽이 모여드는 곳으로, 인근에서는 가장 큰 성이다.

구천성에서의 거리는 칠팔십 리 정도. 급박할 때 한 시진이면 충분히 달려올 수 있는 거리다.

무적장이 그곳에 웅크리고 있게 되면, 장천운의 품속에 잘 벼려진 칼 한 자루가 숨겨져 있는 셈이 될 것이다.

단리승도 곧바로 장천운의 마음을 읽었다.

“알았네. 그렇게 하지.”

 

* * *

 

가을을 재촉하는 시원한 바람이 무더위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구천성 밖에서 비릿하게 불던 혈풍도 잠잠해졌다.

그러나 암중에 흐르는 긴장감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처럼 깊숙한 곳에서 시뻘겋게 끓고 있었다.

공손백의 가슴도 부글부글 끓었다.

콰앙!

두 손으로 내려친 탁자가 잘게 부서지면서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곁에 시립해 있던 사계는 굳은 표정으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들조차 오늘처럼 공손백이 크게 분노한 모습은 처음으로 본 듯했다.

공손백이 분노한 것은 조금 전 암천문에서 온 명령서 때문이었다.

[공손백, 이 글을 읽는 즉시 그대 세력을 움직여서 청산궁의 힘을 약화시켜라. 용서는 이번 한번뿐이다. 본좌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죽음만이 있을 것이다.]

 

공손백을 철저히 무시한 명령서였다. 또한 공손백이 딴 마음을 품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겉으로 봐선 기회를 한 번 더 준 것처럼 보이는 글귀였다.

그러나 공손백은 오히려 그 글귀에서 참을 수 없는 굴욕감과 분노를 느끼고 핏대가 불거졌다.

“용서는 한번 뿐이라고? 탁무겸, 네가 지금 나를 막다른 골목으로 모는구나.”

공손백이 으르렁거리듯 입을 열었다.

입에서, 눈에서 불길이 쏟아지는 듯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불길을 쏟아내던 그는 고개를 들어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붉게 칠해진 천장의 들보에 수많은 용이 뒤엉킨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중 한 마리 용의 눈이 유난히도 크게 묘사되어 있었다.

공손백은 그 눈을 바라보며 불길을 차갑게 식혔다.

“좋아, 원하는 대로 해주마. 하지만 너도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다.”

“뒷말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소성주를 끌어들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입술을 질끈 씹은 공손백이 동백을 바라보았다.

“비영곡에 연락해서 아이들을 보내라고 해. 나는 사마경을 만나고 오겠다.”

 

* * *

 

사마경은 공손백이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보던 책을 덮었다.

“안으로 모셔.”

안으로 들어온 공손백은 여느 때와 다르게 냉랭한 표정이었다.

사마경은 일어나서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이 시간에 방문하셨나요?”

“드릴 말이 있어서 왔네.”

“말씀해보세요.”

“청산궁을 언제까지 저렇게 놔둘 건가?”

“더 이상은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서인지 어제와 오늘은 조용하더군요.”

“저들이 조용히 있다 해서 그대로 놔둘 건가?”

“다른 방법이 있나요?”

“본 성의 권역에서 몰아내야 하지 않겠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노력하기로 협정을 맺었어요. 암천문과 금룡문이 본 성을 노릴 경우 같은 때 말이에요. 그들이 우리를 직접 건드리지 않는 한 우리가 먼저 치기도 애매해요.”

“흥! 저들은 우리 구천성을 이용할 생각뿐이네. 위기에 처하면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를 향해 검을 들이댈 것이야.”

“정 마음에 걸리시면 대령주께서 한번 나서보세요.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저도 말리지 않겠어요. 구천성과 협상을 했다기보다는 저 개인과 협상을 한 것이니까요.”

암천문을 상대하기 위해서. 물론 그 중에는 공손백도 포함되었지만.

“단, 본 성의 명예에 누가 되어서는 안 돼요.”

—정 하고 싶으면 당신이 해봐.

그 말이나 마찬가지다.

공손백은 노기가 일렁거리는 눈으로 사마경을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았다.

‘이 교활한 계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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