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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50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04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50화

* * *

 

사방에서 몰아치는 혈풍으로 강호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십여 일 사이에 죽어간 사람만 수천 명이었다.

이제는 피의 수레바퀴를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었다.

강호에서 머리 좀 굴린다는 자들은 모두 구천성을 주시했다.

구천성이 그 모든 혈풍의 진원지였다.

태풍의 눈!

그들은 강호를 휩쓸고 있는 혈풍이 언젠가는 구천성으로 집결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구천성에서 종말을 고할 거라 예견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무거운 살기가 구천성 일대를 짓눌렀다.

하루에도 여기저기서 대여섯 명씩 죽어갔다.

분위기가 어찌나 살벌한지 검 좀 쓴다는 자들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구천성은 청산궁의 행동을 막지도, 도와주지도 않았다.

서로 협약을 맺긴 했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은 당사자끼리 해결해야할 문제였다.

장천운이 구천성에 도착한 것은 그렇게 긴장감이 폭발할 것처럼 고조되었을 때였다.

 

장천운이 멸천단과 함께 연무장을 가로지르자, 지나다니던 무사들이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멸천단은 구천성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소성주파와 대령주, 대장로파가 섞여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장천운은 멸천단을 대기시켜놓고 일단 사마경을 찾아갔다.

“일찍 돌아왔네?”

사마경이 웃음으로 장천운을 맞이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늦게 돌아왔으면 가만 두지 않았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독고민을 놓쳤습니다.”

사마경도 이미 보고를 받은 터라 내막을 알고 있었다.

“할 수 없지. 그보다, 청산자가 돌아왔어. 습격을 받아서 죽어간 청산궁 무사들에 대한 복수를 하겠대. 오면서 느꼈겠지만 그 바람에 분위기가 말도 아니야.”

“청산궁을 공격한 자들에 대한 정보는 들어온 것이 없습니까?”

“없어. 정말 유령 같은 자들이야.”

자신의 집 앞에서 남들이 싸우고 있으니 구천성 입장에선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마경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어차피 청산궁도 잠재적으로는 적 아닌가 말이다.

“대령주나 대장로 측에서는 아무 말도 없습니까?”

“대령주가 아침에 사람을 보냈어. 어떻게 할 거냐고, 이대로 놔둘 거냐고 묻지 뭐야. 그래서 직접 만나 해결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 그런데 답이 없네?”

“그도 청산자와 직접적으로 싸우는 건 겁나겠죠.”

“천운의 생각을 말해봐.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제가 청산자를 만나보겠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 있겠어? 지금 잔뜩 열 받아있을 텐데.”

“그래서 만나보려는 겁니다. 뭐 청산궁 사람들이 죽은 거야 우리로선 반가운 일이지만, 그냥 놔두면 일이 커질지도 모릅니다. 자칫하면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튈 수도 있고요.”

사마경은 장천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노인네를 막을 자신은 있고?”

“일단 말로 해봐야죠.”

“그래도 안 받아들이면?”

“그렇게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우는 노인네는 아닌 것 같더군요.”

“아하, 그래서 전에 천운을 죽이려 했던 거였어?”

“그때와 지금은 다르죠. 그 양반도 저를 쉽게 죽일 수 없다는 걸 알 겁니다.”

“죽진 않아도 죽을 만큼 또 다칠 순 있겠지.”

“멸천단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숫자가 많으면 도발하지는 못할 겁니다.”

돌아올 때부터 나름대로 생각한 계획이 있었다. 멸천단을 해산시키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후우우우, 하여간 고집은……. 알았어. 그럼 청산궁 일은 천운이 알아서 처리해. 데려갈 사람도 알아서 데려가고.”

 

* * *

 

멸천단원 중에서 무공이 약한 진명산과 청목, 우경은 제외시켰다.

장천운은 나머지 인원 열다섯 명과 함께 구천성 동문을 나서서 청산자가 있다는 상화객잔으로 향했다.

길거리의 분위기가 흉흉했다.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시간인데도 평소의 절반도 보이지 않았다.

잔뜩 굳은 표정으로 순찰을 돌던 벽호당 무사들이 멸천단을 발견하고 화급히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별 일 없소?”

장천운이 불쑥 던진 말에 벽호당의 조장으로 보이는 자가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쳐들었다.

“예? 예, 오전에 조금 소란스럽더니 오후에는 조용합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저 앞쪽 골목 안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너희가 뭔데 이러는 거야?”

“이 개자식들이…… 아악!”

순찰대와 멸천단원들이 일제히 그곳을 바라보았다.

“가봅시다.”

장천운이 골목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멸천단과 벽호당 무사들도 뒤따라갔다.

그들이 골목에 거의 다 갔을 때, 골목 안에서 두 사람이 끌려나왔다.

둘은 상처를 입은 듯 몸이 피범벅이었다.

그들을 끌고 나오는 자들은 여덟 명으로 쪽빛 청의를 입고 있었다.

구천성 무사들과는 다른 복장. 가슴에 산(山)자가 새겨진 청산궁 무사들이었다.

그들도 벽호당과 멸천단 무사들을 보고 멈칫했다.

그러나 구천성 무사임을 알면서도 무시하고 네 사람을 끌고 갔다.

구천성 무사들 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어이!”

장천운이 소리 높여 불렀다.

그제야 청산궁 무사들이 걸음을 멈추고, 그 중 두엇이 고개를 돌렸다.

“신경 쓰지 말고 순찰이나 하시오.”

유진생이 기가 차다는 듯 한소리 했다.

“허, 웃긴 새끼들이네. 여기가 지네집 앞마당이라도 되는 줄 아나?”

“뭐요?”

“사람새끼면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지. 교육을 잘못 받은 놈들이 꼭 저런다니까.”

발끈한 표정을 지었던 청산궁 무사가 뒤늦게 이상함을 느끼고 멸천단원들을 둘러보았다.

그 사이 장천운과 멸천단원들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때 청산궁 무사들에게 끌려가던 자들 중 하나가 애원하듯 소리쳤다.

“살려주십시오! 이자들이 아무 죄도 없는 우리를 잡아가려고 합니다!”

그는 어깨에 상처가 났는데 피가 제법 많이 흐르고 있었다.

“진짜 우린 아무 짓도 안했습니다! 욕도 그냥 우리끼리 했을 뿐입니다!”

장천운은 그들을 둘러본 후 청산궁 무사를 바라보았다.

“저들이 무슨 죄를 지었소?”

청산궁 무사 중 삼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장한이 답했다.

“본 궁을 모욕한 죄요.”

“모욕했다? 뭐 얼마나 대단하게 모욕해서 사람을 저렇게 한 거요?”

“욕을 했소.”

“아하, 욕 했다고 어깨에 칼침을 놓은 거군. 구천성 앞에서. 아주 대단한 위세야.”

“여긴 구천성 밖이오. 설마 이곳이 구천성 땅이라도 된단 말이오?”

“몰랐소? 여기가 구천성 땅이라는 걸?

“…….”

장한은 그런 대답을 예상치 못한 듯 대꾸를 못했다.

“동문에서 이십 리 떨어진 곳까지 구천성 땅이오. 그러니 귀하는 지금 남의 땅에 들어와서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셈이란 말이오.”

장천운의 다그침에 장한은 아무 말도 못했다.

“그 사람들은 놔두고 가시오. 청산자 어른의 체면을 봐서 더 따지지는 않을 테니까.”

장천운이 청산자의 이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자, 장한의 눈이 커졌다.

“가거든, 장천운이 이따가 만나 뵈러 갈 거라 전해주시오.”

장한의 커진 눈이 파르르 떨렸다.

‘이자가……장천운?’

 

청산궁 무사들을 보낸 장천운은 피범벅이 된 두 장한을 바라보았다.

“따라오쇼. 상처를 치료해줄 테니까.”

두 장한은 장천운의 호의에도 머뭇거리며 말했다.

“고맙지만…… 참을 만하니 우린 그냥 가겠소.”

“구해줘서 고맙소.”

장천운이 그들을 쓱 둘러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뭐, 정 싫으면 알아서 하시오.”

“그럼…….”

두 장한은 장천운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는 자신들이 끌려나왔던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이 못마땅한지 유진생이 말했다.

“그냥 보내도 되겠어? 상처가 제법 깊은 것 같은데 말이야.”

장천운은 잠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더니, 두 장한이 멀어진 후에야 나직이 말했다.

“무삼, 무오. 두 분이 저들을 따라가 보쇼. 들키지 않게 조심해서 따라가쇼. 꼬리를 밟혔다는 걸 알면 자결할지도 모르니까.”

영조 두 사람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고 앞으로 나섰다.

“알았소, 령주.”

일단 명령이니 따르긴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왜 그래?”

유진생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의아해하며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요.”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아직은 확실치도 않고, 동백 등 공손백쪽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만 가죠.”

그때 유진생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장 령주, 정말로 동문 이십 리 밖까지 구천성 땅이야?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저도 모르죠. 땅문서를 보지 않았으니까.”

“…….”

그제야 사람들은 장천운이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고 입을 반쯤 벌렸다. 동백조차도.

“뭐해요? 갑시다.”

 

 

 

132장 돌아온 현월

 

 

청산궁은 객잔 두 개를 통째로 빌려서 임시 총단처럼 쓰고 있었다.

잠자리와 식사문제를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 잠시 지내기에는 객잔보다 나은 곳이 없었다.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게 단점이긴 했지만.

장천운이 멸천단을 데리고 객잔으로 들어가자, 객잔 안의 사람들이 일제히 시선을 집중했다.

모두 무사들이었다. 청산궁 무사들.

그들은 거침없이 들어서는 장천운 일행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에 객잔 안을 날아다니던 파리조차 탁자 밑에 달라붙었다.

하지만 멸천단 누구도 어깨를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유진생을 비롯한 몇 명은 짜증을 내듯 인상을 쓰며 투덜거렸다.

“남의 집 안마당에서 어깨에 힘주기는…….”

“여기가 자기네 집 앞인 줄 아나?”

묘한 긴장감 속에 장천운이 객잔 중앙까지 걸어갔다.

그때 삼십대 장한 하나가 포권을 취했다.

“흑월대 장천운 대주께서 여긴 어쩐 일이오?”

그가 장천운의 정체를 정확히 밝힌 것은 다른 무사들에게 경고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경고.

또한 안쪽에 장천운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리려는 목적도 있었다.

“진인을 만나러 왔소. 여기 계시다고 하던데.”

그때 이층 회랑 안쪽에서 한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나왔다.

“진인께서 안으로 모시라 하셨소. 올라오시오.”

 

장천운은 단승과 사공명신, 그리고 동백을 대동했다.

동백을 대동한 것에 대해 모두 의아해했지만 장천운도 나름대로 생각한 바가 있었다.

방 앞에 도착하자, 목령사자들이 표정 없는 얼굴로 방문을 열었다.

청산자는 영산자와 함께 있었다.

장천운이 일행을 대동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한쪽에 서 있던 백운과 여강이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장천운도 차가운 미소로 그들을 바라본 후 청산자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진인.”

“그리 앉아라.”

의자에는 장천운만 앉고 나머지 세 사람은 장천운의 뒤에 시립했다.

청산자는 세 사람을 찬찬히 둘러보고는 묘한 표정으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재미있는 아이들을 데려왔구나.”

“그렇게 보셨다니 데려온 보람이 있군요.”

“저 아이가 명옥(冥獄)의 아이라는 건 알고 있겠지?”

청산자의 눈길이 향한 곳에는 동백이 서 있었다.

청산자의 말을 들은 그는 안 그래도 차갑게 보이는 얼굴이 얼음덩이처럼 굳어졌다.

명옥이라는 이름이 비밀은 아니었다.

그러나 금기시되는 명칭인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암천문에서 누구든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했으니까.

장천운이야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명옥이 암천문의 다른 이름입니까?”

“뿌리라고 해야 옳을 거다. 워낙 오래 전에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서 지금이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그렇군요.”

“그리고 저 아이는 척 늙은이의 제자 같다만. 아! 천중일마라고 해야 알겠구나. 아직 여물지 않았을 뿐, 그 친구와 같은 기운을 품고 있어.”

장천운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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