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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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8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49화
대뜸 던진 장천운의 말에 호경안의 눈매가 씰룩거렸다.
이미 아들에게 장천운의 무위를 들은 그였다.
단 삼 장으로 숲속의 십 장 넓이를 폐허로 만들었다고 했다.
호양수가 두 명을 상대하기도 힘든 암천문 무사 대여섯 명을 눈 깜짝할 순간에 처리했다고 했다.
또한 그의 수하들 모두 절정고수들이라 했다. 청년들조차도 호경안이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고수들이었고.
전날 왔을 때 고집을 피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다 서늘하게 식었다.
“말해보시오.”
“동백산의 풍혈곡이 암천문의 총단이었다는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문제는 과거가 아닌 현재의 총단입니다. 독고민을 구해간 자들은 암천문의 총단에서 나온 자들인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동쪽이나 남쪽 하루거리 안에 놈들의 총단이 있다는 뜻. 철저히 수색을 해주십시오.”
암천문의 총단을 찾는 일이라면 자신들에게도 손해될 일이 없다.
더구나 독고민에게 무사 이십여 명을 잃은 이상 암천문에게 받을 빚도 있지 않은가.
“알겠소. 본 방의 모든 힘을 기울여서 찾아보겠소.”
그날 오후, 장천운은 부상자들을 조양에 남겨놓고서 구천성으로 향했다. 독고민을 잡지 못한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이 구천성으로 향하고 있던 그날도 다른 곳에서는 싸움이 멈추지 않았다.
싸움을 멈추기는커녕 더욱 격렬해졌다. 게다가 싸움이 벌어지는 범위도 넓어졌다.
암천문에서 흘린 정보가 무림맹과 파천회에 들어간 것이다.
제갈승조는 처음에만 해도 생각지 못한 고급정보를 얻고 고민에 빠졌다.
하필이면 왜 지금, 수십 년 동안 감춰졌던 천외세력의 지부에 대한 정보가 손쉽게 들어온 걸까?
그의 추측으로는 암천문에서 흘린 정보일 가능성이 컸다.
자신들에 대한 공격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알려준 것일지도 몰랐다.
문제는 모른 척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적은 암천문만이 아니었다. 천외의 세력은 모두 무림맹의 적이라 할 수 있었다.
결국 그는 정보를 활용해서 그들을 치기로 결심했다.
독고악을 잡으러 갔던 팽도원과 척살대가 거꾸로 처참하게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터였다.
무림맹은 하늘 끝까지 솟구친 분노를 풀어내야할 곳이 필요했다.
다만 청산궁지부는 무림맹과 관련된 곳이 많아서 일단 금룡장지부부터 공격하기로 했다.
파천회도 정보를 마다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파천회의 이름을 강호인의 뇌리에 심어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천외세력의 지부라면 훌륭한 먹이였다.
그렇게 강호가 서로 물리고 물리는 싸움으로 인해서 하루하루 피 마를 날이 없을 때, 구천성 쪽에서도 살풍이 불기 시작했다.
* * *
청산자는 침상에 누워있는 정도하를 내려다보았다.
“어리석은 놈. 결국은 네가 용환종을 죽이고 말았구나.”
정도하의 파리한 안색이 잘게 떨렸다.
시퍼렇게 변색된 입술을 두어 번 달싹거리던 그는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옆에 있던 영산자가 조심스럽게 나섰다.
“사형, 도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강해서…….”
“쯔쯔쯔, 네 잘못도 없다고 할 수 없다, 영산. 내 그리도 동방무기에 대해서 조심하라 일렀거늘…….”
“무량수불. 죄송합니다, 사형.”
“이제부터 모든 것을 내가 직접 지휘할 것이니 그리 알아라.”
“예, 사형.”
“먼저 동방무기와 그 두 놈을 찾아라. 구천성 외곽을 뒤집어놓더라도 반드시 찾아내.”
나직한 청산자의 목소리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과 진한 살기가 실려 있었다.
흠칫한 영산자가 눈을 들었다.
“구천성이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들은 신경 쓸 것 없다. 각이를 만나 말해놓을 것이다. 듣지 않으면 직접 사마경을 만나야겠지.”
“사형께서요?”
“어리석은 아이가 아니라면 노도의 말을 알아듣겠지. 만약 알아듣지 못한다면, 노도도 더 이상 말로 상대하지 않을 것이다.”
청산자의 말에 실린 뜻을 깨달은 영산자의 하얀 눈썹이 세차게 떨렸다.
“사형…….”
“우매한 중생들에게 옳은 선택을 하는 법에 대해서 일깨워줄 생각이니라.”
수백, 수천의 목숨을 거두어서라도.
“너는 금룡 시주와 무겸의 움직임을 철저히 살펴보도록 해라. 그들이 노도가 품은 뜻을 깨달으면 즉시 이곳으로 달려올 것이다.”
* * *
우문각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장천운도 없는 상황에서 청산자가 돌아왔다.
오왕 중 둘이 있고, 환마 우곡과 복우쌍노, 구양명까지 있으니 당장 큰 어려움은 없겠지만, 세상에는 가끔 계산으로 판단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천외삼성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다.
‘도대체 누가 청산궁 사람들을 죽였단 말인가.’
구천성에서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공손백과 나극 쪽도 조용했다.
‘혹시 청산자 어른은 알고 있지 않을까?’
범인을 알기 때문에 돌아온 것일 수도 있다.
“누구시오?”
우문각이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밖에서 경비무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왠지 몰라도 당황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뒤이어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이곳의 주인을 만나러 왔느니라.”
늙수그레한 듯하면서도 청아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우문각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벌떡 일어났다.
‘저 목소리는?’
오래 전에 수없이 들었던 목소리다. 청산자의 목소리.
그가 다급히 밖을 향해 말했다.
“그분을 안으로 모셔라!”
곧 문이 열리고, 하얀 눈썹이 길게 늘어진 청산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를 바라보는 우문각의 눈매가 심하게 떨렸다.
“어인 일로 직접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미리 말해둘 것이 있어서 왔다. 본래는 사마경을 찾아가려 했지만, 공연한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아서 너를 찾아왔느니라.”
오왕 중 이왕과 천중십마 중 이마, 그리고 복우쌍노가 사마경 곁에 있다. 그들이 막으면 승패를 떠나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동방무기를 잡기도 전에 구천성과 싸움부터 시작한 꼴 아닌가 말이다.
청산자도 남의 구경꺼리가 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일단 앉으시지요.”
청산자는 마치 자신의 집에라도 들어온 것처럼 편안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우문각은 청산자 앞에 찻잔을 놓고 차를 따라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찻잔에도 차를 채운 후 입을 열었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왜 왔는지도 알겠구나.”
“제가 어찌 진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겠습니까.”
“긴 말 하지 않겠다. 노도는 용환종을 죽인 자들을 찾을 생각이다. 그들을 찾기 위해서 일대가 조금 소란스러워질 수도 있다. 이해하도록 해라.”
“도대체 그들이 누구기에 용 대협을 죽인 것입니까?”
“아마 너도 알 것이다.”
“예? 제가 어찌 그들을…….”
“동방무기. 바로 그자의 사람들이니까.”
“……!”
우문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방 노인…… 그가 왔단 말입니까?”
“그래. 알고 보니 그가 파천회를 만들어서 조종하고 있더구나. 그래서 노도가 찾아갔는데, 그로 인해 그의 사람이 많이 죽었느니라. 아마도 그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모양이다.”
새로운 사실에, 우문각의 얼굴이 이제 막 조각을 마친 석상처럼 하얗게 굳어졌다.
만약 그가 정말 장천운의 할아버지인 무 노인이라면…… 그럼 일이 어떻게 흘러갈까?
장천운이 동방 노인의 뜻대로 움직인다면?
그런데 청산자도 아직 그 사실까지는 모르는 듯했다.
“소성주는 구천성 인근에서 큰 싸움이 벌어지는 걸 싫어합니다.”
“상관없다. 노도는 허락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알려주려고 온 것이니라.”
우문각도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제가 소성주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셨으면 합니다.”
“노도도 시끄러워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진인.”
우문각은 속으로 안도하며,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여서 예를 취했다.
청산자가 그런 우문각을 빤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정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냐?”
고개를 들다가 멈칫한 우문각이 씁쓰름한 표정으로 답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이제 완전한 구천성의 사람으로서 살아갈 생각입니다.”
“그럼 노도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되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
청산자는 한참 동안 우문각을 바라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는 잘 마셨다. 잊지 마라. 네가 원하기만 하면 노도는 언제든 너를 받아줄 것이니라.”
우문각은 청산자가 돌아서서 방을 나서려 할 때까지 혼란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다가 청산자가 막 방문을 나서려 하자 다급히 물었다.
“진인, 대체 왜 미숙한 저에게 그리도 집착하십니까?”
그 질문이야말로 그가 가슴 속에 삼십 년 동안 품고 있던 의문이었다.
문지방을 넘어서던 청산자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오양양의 아들이기 때문이니라.”
“…….”
우문각은 청산자가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오양양. 그의 어머니 이름이었다.
그런데 청산자가 어찌 어머니의 이름을 안단 말인가?
사부님께 들었을까?
하지만 사부님도 어머니의 이름은 모를 텐데?
그때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너무 오래 되어서 잊고 있었던 기억이.
‘설마……?’
* * *
토굴 안에서 등잔불이 춤을 추었다.
차로 입술을 축인 무 노인이 냉소를 지었다.
“청산자가 돌아왔다고?”
“예, 노야.”
“우리를 찾아내려고 혈안이 되었겠군.”
“천위군과 천살군에게는 이곳에 가까이 오지 말고 각자의 임무에 충실하라고 했습니다. 흔적만 남지 않으면 놈들이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이곳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놈들을 계속 괴롭혀라. 허튼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노야…….”
무 노인은 다시 찻잔을 들었다.
찻잔을 잡은 손가락 끝이 미미하게 떨렸다.
장산은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지만 못 본 척했다.
대신 다른 이야기로 자신의 마음을 감추었다.
“파천회가 독자적으로 움직여서 암천문과 청산궁의 지부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천릉도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니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하지는 않을 거다.”
“그의 마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봐야 신의를 배신한 사람입니다. 그로 인해서 천위군과 천살군 백여 명이 속절없이 죽어갔습니다. 그에 대한 대가만큼은 반드시 받아낼 겁니다. 특히 서문주경은 욕심이 남달리 많은 자입니다. 이 회주는 그의 욕심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단호한 장산의 말에 무 노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천위군과 천살군은 장산이 심혈을 기울여서 키운 사람들이었다.
정상적인 싸움으로 잃었다면 안타까워도 참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믿었던 사람들의 외면으로 인해 죽어갔으니 비통한 그 마음이 오죽할까.
“소천의 상태는 어떠하냐?”
“점점 완벽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상태라면 겨울이 오기 전 십성 경지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무 노인은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다 움직임을 멈추고 나직이 말했다.
“소천이 완벽해지면 노괴 중 하나는 상대할 수 있을 거다. 아무래도 노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인 것 같구나.”
“노야…….”
“그래도 천운이 저리 컸으니 다행이야.”
장산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만 해도 모든 계획이 이루어지면 천외삼성을 모두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얼마나 오만한 판단이었는지 깨달았다.
‘잘해야 천외삼성 중 하나 정도는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겨우 그런 의문부호를 매단 희망만 남았다.
그나마 희망의 불씨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어쩌면 천운이 그들의 천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만약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뒷일은 그 아이에게 맡길 작정입니다.”
무 노인은 착잡한 눈빛으로 장산을 쳐다보았다. 장산의 마음을 알기에 가슴이 아릿했다.
‘어쩌면 내가 할 일이 하나 더 있을지도 모르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