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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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46화
청기문을 출발해서 십 리쯤 갔을 때 풀밭에 널브러져 있는 다섯 구의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은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청기문에서 본 시신의 비슷한 형태. 독고민의 짓이 분명해 보였다.
진명산이 시신에 바짝 다가가더니 손가락을 찢어진 살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게 무슨 짓인가?”
언동교가 눈을 부라리며 다그쳤다.
하지만 장천운이 그를 막았다.
“놔두십시오. 뭔가 이유가 있으니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때 진명산이 손가락을 살에서 빼고 고개를 들었다.
“아직 상처부위조차 식지 않았습니다. 거리가 많이 좁혀진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이군. 갑시다.”
장천운은 지체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오 리쯤 가자 또 시신 세 구가 보였다.
참혹함은 이전에 본 시신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흔적이 그곳에서 좌측으로 꺾어져 있었다.
“저쪽으로 갔군.”
오종이 중얼거리며 눈짓을 보내자, 언동교와 적두, 배청, 인태충, 마홍이 서둘러서 좌측으로 몸을 날렸다.
독고민을 잡는 것은 대단한 공이라 할 수 있었다. 장천운 쪽 사람들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장천운은 바로 추격하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신의 상태는 비슷한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앞서 죽은 자들과 흔적이 다릅니다.”
슬쩍 시신을 살펴본 청목이 말했다.
“뭐가 다르다는 거요?”
“독고민은 사람을 죽인 다음에 찢지 않았습니다. 살아 있을 때 찢어서 죽였지요. 그런데 이들은 죽은 이후에 억지로 찢었습니다.”
“이미 죽은 시신을 나중에 고의로 찢었다?”
“예, 령주.”
“왜……?”
의아해 하던 장천운의 표정이 급변했다.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백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왜 그러지?”
“이자들을 죽인 사람은 독고민이 아닙니다.”
장천운은 짧게 말하고 추격에 나선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돌아오십시오!”
충분히 들렸을 텐데도 언동교 등은 못 들은 척 멈추지 않고 달리더니 언덕을 넘어서 사라졌다.
“무슨 말인가? 죽은 모습만 봐도 독고민 짓이 확실한데.”
동백이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
장천운은 청목에게 들은 말을 간략하게 말해주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누군가가 우리를 유인하기 위해서 억지로 흔적을 남겼을지 모릅니다.”
“왜 그런 짓을? 혹시 우리의 추적을 방해하려고……?”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유인해서 우리를 습격하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거지요.”
“유인을 하려면 우리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하네. 그러기에는 암천문 쪽도 시간이 없었을 것 같은데?”
동백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멸천단을 소집해서 구천성을 나선 지 이틀째다.
암천문이 처음부터 지켜봤다면 모를까, 이런저런 계책을 마련하기에는 시간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장천운이 염려하는 것과는 방향이 달랐다.
“일단 가봅시다.”
장천운은 자신의 생각을 굳이 말해주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테니까.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헉! 이놈들!”
“이런! 개 썅……!”
“우리가 누군지 알고, 어디서 감히……!”
다급한 신음과 비명, 고함소리가 뒤섞여서 들렸다.
장천운을 비롯한 멸천단원들은 신형을 날려서 숲을 돌아갔다.
‘빌어먹을! 장천운의 말이 맞았어!’
입을 꾹 다문 동백의 이마에 골이 파였다.
장천운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면 그걸 기회로 몰아붙일 수 있었다. 바로 추적하지 않아서 독고민을 놓쳤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언동교 등이 제멋대로 서두르는 바람에 습격만 받는 꼴이 되었다.
시야가 탁 트이자 상황이 한 눈에 들어왔다.
백여 장 떨어진 곳에서 오종 등이 포위공격을 받고 있었다.
적으로 보이는 자는 모두 오십여 명. 숫자도 숫자지만 움직임만 봐도 일류 고수의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몇 명은 절정 수준에 오른 듯 장로들과 정면대결을 벌이면서도 밀리지 않았다.
게다가 양면이 막힌 협곡이어서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적은 지리적 이점까지 차지했으면서도 전력을 다해서 공격했다.
이미 배청과 인태충이 쓰러져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부상을 입은 듯 피로 얼룩진 상태였다.
특히 언동교는 다리를 절룩이는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우경과 청목, 진명산을 제외한 나머지 멸천단원들은 무기를 빼들고 내달렸다.
그들이 협곡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협곡 위에서 백 명은 될 듯한 무사들이 쏟아져 내렸다.
장천운은 그들을 보며 냉소를 지었다.
‘우리를 노렸던 게 아니었나?’
적들은 강했다. 그러나 멸천단을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은 아니었다.
탁무겸이 자신들을 노렸다면 결코 저런 정도의 무사들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암천문의 지휘 책임을 맡고 있는 곡초관도 뭔가가 틀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젠장! 어떻게 된 거지?’
무림맹 척살대가 독고악의 뒤를 쫓고 있으니 그들을 유인해서 처리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독고악이 호양 청기문에서 조양 쪽으로 갈 거라 했다.
곡초관은 독고악의 예상 이동경로 중간지점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독고악이 지나간 후 그의 흉내를 내서 시신 세 구를 길가에 남겨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십여 명에 이르는 무사대가 독고악의 뒤를 쫓아서 그곳에 당도하는 것이 보였다.
곡초관은 그들을 멀리서 보고 무림맹 척살대일 거라 생각했다. 숫자도 비슷했고, 시간도 비슷했으니까.
그때까지도 그는 독고악이 청기문을 나서다가 무림맹 척살대와 부딪친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그 일로 인해서 무림맹 척살대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곡초관은 예정된 장소로 그들을 유인했다.
그런데 유인에 말려든 자들은 무림맹 무사들이 아니었다.
빌어먹게도 구천성의 고수들이었다. 그것도 장로급 절정고수들.
순간적으로 갈등이 일었다.
하지만 숫자가 몇 되지 않았다.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듯했다.
그는 적이 협곡에 들어오자 공격 명령을 내렸다.
예상했던 대로 그들은 장로급 고수들이었지만, 무난히 처리할 수 있을 듯했다.
그런데 적의 나머지 일행들이 나타났다.
이미 화살은 활시위를 떠난 상황. 그는 적이 협곡 안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 나머지 전력을 투입했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죽여라!”
곡초관이 후회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잠깐 바라보는 사이에 이십여 명이 쓰러졌다.
대경해서 눈을 부릅뜨고 생각을 가다듬는 동안 삼십여 명이 더 죽어갔다.
적의 손에 힘도 못써보고 죽은 사람 중에는 절정경지에 이른 조장도 있었다.
보고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자들이었다.
“후퇴신호를 보내!”
장천운을 위시해서 단승과 혁련기, 사공명신, 두양양, 하후경, 모후 등 젊은 고수들의 저돌적인 기세는 순식간에 싸움 양상을 바꾸어 놓았다.
그러면서도 경쟁하듯 적을 몰아친 그들의 공격은 그야말로 폭풍이었다.
먹구름 속에서 천둥번개가 치고 피가 튀었다.
약간 뒤로 처져 있던 유진생도 혼천수라권을 마음껏 펼쳤다.
수십 명이 눈 깜짝할 사이에 쓰러졌다.
동백과 추산을 비롯한 공손백 쪽의 고수들도 뒤지지 않겠다는 듯 상대를 파죽지세로 몰아붙였다.
동백은 달려드는 자들의 공격을 표정 변화도 없이 슬쩍 피한 후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은 빠르고 강력했다. 냉정한 수법. 단순하게 보이는 공격인데도 상대가 괴이하게 피하지 못했다.
장천운은 적을 상대하면서도 동백을 유심히 관찰했다.
느낌만으로는 추산과 염화, 춘화보다 한 수 위였다.
하지만 아직 동백이 제대로 싸우는 모습을 보지 못해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런데 유심히 그를 바라보던 장천운의 눈에 가벼운 경악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강하다. 공손백보단 못하지만 일반 장로에 비하면 한 수 위야.’
심지어 장로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오종보다 강한 듯했다.
‘숨긴 것이 많은 자야.’
이전까지는 단순히 공손백을 호위하는 사계 중 하나로만 알았거늘, 이번 출정에서 보니 암중에 공손백 사람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어쩌면 공손백의 최측근이 동백일지도…….’
무사 칠십여 명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자 협곡 위에서 기다란 소성이 울렸다.
삐이이이이이!
후퇴 명령이었다. 사기가 저하된 암천문 무사들은 소성이 울리자마자 협곡을 벗어났다.
멸천단 고수들은 그들이 협곡을 벗어날 때까지 쫓으며 이십여 명을 더 추살하고 걸음을 멈췄다.
배청과 인태충, 마홍이 사망했다. 언동교는 중상을 입은 채 숨을 헐떡였다. 적두와 오종도 온몸이 피로 물든 상태였다.
나중에 뒤쫓아온 사람들 중에서도 염사승 등 서너 명이 부상을 입었다.
부상자는 대부분 공손백과 나극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실력을 믿고 개별적으로 적을 상대하는 바람에 부상자가 많았다.
반면 진세를 이루고서 한 몸처럼 싸운 소성주 쪽 사람들은 유진생과 몇몇 사람만이 가벼운 외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동백은 와락 짜증이 났다.
‘어이가 없군. 뭘 해보기도 전에 절반이 무너졌어.’
공에 대한 탐욕을 부린 사람들로 인한 결과였으니 장천운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었다.
“일단 응급처치만 하고 조양으로 갑시다. 그곳에서 부상자 치료는 의원에게 맡기고 독고민을 찾아보는 게 좋겠소.”
장천운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전과는 느낌이 다른 목소리였다.
거부할 수 없는 절대의 명령.
동백조차 표정이 굳은 채 아무런 토도 달지 못했다.
염사승은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무거워졌다.
‘주군께 득이 될지 해가 될지 모르겠구나.’
한쪽에서 언동교 등 부상이 심한 사람들이 상처를 손보고 있을 때였다.
단승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사오 장 앞에 앉아 있는 두양양에게 다가갔다.
그가 다섯 자쯤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 두양양이 그의 접근을 눈치 채고 고개를 돌렸다.
뭘 훔치다 들킨 사람처럼 흠칫한 단승이 불쑥 손을 내밀었다.
“저기, 이거 금창약이오, 두 소저. 등에 상처가 난 것 같은데, 바르시오.”
“괜찮아요.”
“금창약 중에서도 좋은 거요.”
“이 정도는 그냥 놔둬도 금방 아물어요.”
“그래도 금창약을 바르면 더 빨리 아물 거요.”
약간 떨어진 곳에서 가자미눈으로 훔쳐보고 있던 사공명신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나섰다.
“이봐, 단승. 괜찮다고 하잖아.”
“자네에게 한 말 아니야. 혹시 자네도 다친 곳 있나?”
“없어.”
“그럼 상관하지 말게.”
단승은 냉정하게 쏘아붙이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두양양을 바라볼 때는 어느새 훈훈한 눈빛으로 변해 있었다.
“뭐, 혼자 바르기 뭐하면 서두향 장로에게 발라달라고 하시오.”
두양양은 피식 웃으며 금창약을 받아들었다.
“알았어요. 고마워요.”
단승의 얼굴이 보일 듯 말 듯 상기되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공명신이 또 다시 투덜거렸다.
“제길, 누군 뭐 약이 없는 줄 아나?”
그때 유진생이 그에게 다가왔다.
“이봐, 사공 조장. 약 있으면 내 상처에 좀 발라주게.”
“빌어먹을.”
“뭐?”
‘이크!’
사공명신은 재빨리 손을 저었다.
누군지도 모르고 무의식중에 투덜거렸는데, 하필 그 대상이 교육책임자 유진생이라니.
“유 교두님께 한 말 아닙니다. 이리 오십쇼. 제가…….”
“됐네, 이 사람아!”
“…….”
* * *
조양에 도착한 장천운 일행은 객잔에 방을 얻고, 의원을 데려와서 부상자를 치료했다.
그 사이 장천운은 객방을 나와서 점소이를 만났다.
“천은방이 어디에 있는지 자세히 알려주면 이걸 주겠네.”
그가 반냥은 될 법한 은자를 내밀자, 점소이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천은방을 잘 안다는 듯 입에서 침을 튀기며 말해주었다.
“마침 잘 찾아오셨습니다요. 천은방이라면 이 객잔에서 제가 제일 잘 알겁니다요. 어릴 때 무사가 되고 싶어서 천은방을 찾아가 허드렛일을 삼 년이나…….”
어찌나 자세히 알려주는지 장천운은 천은방 가는 길이 눈에 훤히 보이는 듯했다.
심지어 천은방의 건물배치까지 알려주는데, 점소이가 일했다는 주방은 숙수들이 몰래 재료를 숨겨놓는 곳까지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이 각 후. 장천운은 조강산 자락에 있는 천은방에 도착했다.
천은방은 구천성과의 싸움에서 패한 후 봉문을 하다시피 한 상태였다.
굳게 닫힌 정문은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수만 평에 달하는 장원 안쪽도 사찰처럼 고요했다.
장천운은 정문을 통하지 않고 담을 넘어서 들어갔다.
어차피 정식 방문이 아니었으니 마음에 부담가질 것도 없었다.
장천운은 천은방의 천수전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건물 안쪽에서 나오던 삼십대 장한이 장천운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누구냐? 누군데 함부로 본 방 안으로 들어온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