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8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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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9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86화
아비도 알아보지 못하는 아들이다. 악귀가 되어서 수백 명을 처참하게 죽였다 했다.
자신이 씨를 뿌려 낳았으니 거두는 것도 자신이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얼굴까지 피로 물든 독고민이 이를 드러내며 하얀 웃음을 지었다.
“크크크크, 죽고 싶다면 얼마든지 죽여주지.”
자식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이야.
독고태는 심장이 찢어지는 듯했다.
“오냐, 이놈! 함께 죽자!”
처연히 소리친 그는 검과 하나가 되어서 몸을 날렸다.
독고민은 우수로 원을 그리며 검을 쳐내고, 독고태의 가슴을 향해 좌수를 뻗었다.
“크크크크, 죽여 버리겠어.”
괴소가 독고민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독고태는 튕기듯 뒤로 물러섰다.
독고민이 그림자처럼 따라가며 좌수로 독고태의 가슴을 찍었다.
독고태는 좌수를 들어서 독고민의 공세를 막았다.
콰직!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독고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독고민의 공력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했다.
하지만 손의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고통에도 이를 악물고 독고민의 공세를 역이용해서 더욱 빠르게 물러섰다.
“단주! 저희가 상대하겠습니다!”
경천단 이대주와 삼대주가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 사이 독고태는 일그러진 얼굴로 몇 걸음 더 거리를 벌렸다.
한편, 무적장 고수들은 공포와 살기로 뒤덮인 전장을 멀리서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벌벌 떨렸다.
금룡신군을 상대할 때는 장천운이 있어서 크게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장천운이 없는 지금, 심장이 떨리고 솜털이 곤두섰다.
마제 나극, 구천대공자 공손백, 패왕과 교왕, 환마 우곡 등등 천하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서너 명씩 힘을 합쳐 그들을 상대하고 있다.
그러고도 우위는커녕 안간힘을 다해서 겨우 대항하고 있을 뿐이다.
아연한 마음에 자괴감마저 들 지경.
“이제 알겠느냐? 이 애비가 왜 그리 살아왔는지.”
단리황이 만근 바위에 짓눌린 목소리 말했다.
단리승과 무적장 고수들은 가슴에 돌덩이가 가득 들어찬 듯 답답한 마음이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단리승이 힘겨운 목소리로 물었다.
단리황은 이미 마음을 정하고 온 터였다.
이곳에서 죽는다면 그 또한 운명이 아닌가.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한 눈으로 전장을 주시하던 그가 잇새로 씹어뱉듯 말했다.
“가자, 저 인간 같지 않은 자들에게 무적장이 건재하다는 걸 알려주자꾸나.”
사마경은 오연히 서서 전장을 주시했다.
이제 그녀의 곁에는 구천호령밖에 없었다.
흑월대와 흑영대도 그녀의 명령을 받고 전장에 뛰어든 상태였다.
다행히 적들은 그녀를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않았다.
그녀가 강해서 피하는 것이 아니었다. 구천호령 때문도 아니었다.
사마경을 차지하고 싶은 탁무겸이 무사들에게 사마경을 털끝 하나 건들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채기라도 한 듯 탁무겸이 웅혼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마경, 순순히 항복하고 내 품에 안겨라! 그러면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을 것이다!”
사마경의 눈매가 잔물결을 일으켰다. 하지만 곧 입가에 냉소를 떠올리고 코웃음 쳤다.
“흥! 꿈 깨시지! 진창에 빠져 죽어도 당신 같은 자의 여자가 되지는 않을 거다!”
그녀는 차갑게 소리치고는, 번뜩이는 봉목을 치켜뜨고 탁무겸 쪽을 노려보았다.
쏟아지는 달빛 아래에서 지옥의 아비규환이 벌어지고 있었다.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고, 곳곳에서 들리는 비명과 고함치는 소리가 밤하늘을 울렸다.
암천문과 청산궁은 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더 강했다. 특히 탁무겸과 청산자는 대항하려는 의욕조차 짓밟아 버릴 만큼 공포의 존재였다.
미리 대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싸늘하게 식었다.
투입된 구천성 무사가 오천. 적은 일천이 조금 넘는 정도다.
이미 이곳에서만 죽은 자가 일천이 넘었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갈까.
이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적은 그녀가 생각한 것보다 더 강했다.
네 배에 달하는 숫자 차이는 별 의미가 없었다.
‘천운만 있었어도…….’
청산자와 탁무겸은 일당천의 초인들이었다.
장천운이 두 사람 중 하나만 막아줬어도 상황은 판이하게 달라졌으리라.
이를 지그시 악문 그녀가 검을 뽑았다.
“나도 함께 싸우겠어.”
“소성주…….”
영호관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렸지만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성의 무사들이 죽어가고 있어. 안전이 염려되어서 구경만 하고 있으면 죽은 무사들이 하늘에서 나를 원망할 거야.”
사마경은 힘주어 말하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앞으로 나섰다.
“모두 힘을 내요! 나와 함께 저들의 목을 쳐서 구천성이 왜 구천성인지 보여줘요!”
그녀가 공력을 실어서 소리치자, 공포에 질려 있던 무사들이 너도나도 외쳐댔다.
“그래, 놈들은 몇 놈 안 된다! 죽더라도 함께 죽어!”
“놈들에게 구천성의 힘을 보여주자!”
와아아아아아!
구천성 무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꿰뚫을 듯 충천했다.
주춤거리며 물러서던 무사들도 이를 악물고 적에 맞섰다.
그때만큼은 소성주파도, 대령주파도, 대장로파도 따로 없었다.
탁무겸은 나극과 위중평, 패왕, 교왕 등 천하에서 적수를 찾기 힘든 고수들을 앞에 두고도 오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자신이 일장을 내칠 때마다 기겁해서 물러서는 자들이다.
이미 자신의 앞에는 녹존살 이격이 피를 토하고 널브러져 있었다.
공포의 묵천마수라 불렸던 위중평은 내상이 심해서 창백한 얼굴이었고, 마제 나극은 생사를 떠난 마음으로 공격해오지만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구천성에서 자신이 신경을 쓸 만한 사람은 오직 하나, 장천운 뿐.
하지만 그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또 하나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 있다면 사마경이었다.
‘정말 괜찮은 계집이야.’
탁무겸은 그녀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감히 자신의 말에 코웃음 치며 앞으로 나서다니.
저 정도는 되어야 암천의 여주인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미 수하들에게는 사마경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지시를 내려놓았다.
그의 말을 거역할 자는 암천문에 아무도 없었다.
“좋아, 사마경! 네가 나를 거역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마!”
호탕하게 소리친 탁무겸은 마침 공격해오는 둔가부를 향해 발을 내딛었다.
둔가부는 탁무겸이 지금까지와 달리 자신을 향해 정면으로 다가오자 이를 악다물었다.
‘오냐, 어디 한번 해보자!’
“피해!”
우곡이 그의 마음을 눈치 채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보다 한발 빨리 탁무겸의 공세가 둔가부의 장력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둔가부의 두툼한 살이 폭풍 앞의 천막처럼 출렁거렸다.
“둔가야!”
악을 쓰듯 외친 진교청이 둔가부를 돕기 위해서 쌍장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나극도 합세해서 혼신의 공력을 주입해서 검을 뻗었다.
절대 경지에 이른 그들의 공세에 일대가 기의 폭풍에 휘말렸다.
그 순간, 탁무겸의 장력이 이 장을 격하고 둔가부를 두들겼다.
콰광!
북을 치는 굉음과 함께 둔가부가 입에서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탁무겸은 둔가부를 날려버리고 뒤로 주욱 미끄러지며 자신에게 집중된 공세를 피했다.
아무리 그가 천하독존이라 해도 마제 나극과 패왕 진교청의 공세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때였다.
<일단 물러서는 게 좋겠네. 죽 쑤어서 개에게 줄 수는 없는 일…….>
청산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전음술 중에서도 극상승의 전음인 심령전어(心靈傳語)였다.
청산자의 의중을 눈치 챈 탁무겸은 조소를 지었다.
밀리는 형국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과 청산자가 나서며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밀어붙였을 때 철저히 밀어붙여서 짓밟아버려야 한다.
피해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해도 되었다.
하지만 청산자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팽팽한 접전은 자신이 원하던 그림이 아니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승리한다 해도 남는 게 없었다.
무림맹과 파천회가 아직 건재한 상황. 탁무겸도 그들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줄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사마경! 오늘은 이만 물러가마! 다음에 다시 올 때는 내 꼭 너를 품고 말 것이니라! 으하하하하하!”
탁무겸의 목소리가 가라앉기도 전에 영산자가 마주 소리쳤다.
“청산궁 형제들은 뒤로 물러서라! 금양관으로 돌아간다!”
청산궁과 암천문의 살귀들이 썰물처럼 뒤로 물러서더니 빠르게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구천성 무사들 누구도 물러서는 자들을 뒤쫓지 않았다.
적은 패해서 물러서는 게 아니었다.
양패구상을 원하지 않는 것뿐.
구천성 무사들은 적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청산궁과 암천문의 살귀들이 물러간 자리에는 시뻘건 핏물과 천수백 구의 시신과 고통스런 신음, 공포에 질린 마음만 남았다.
휘이이이잉.
마을 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구천성 무사들을 덮쳤다.
하지만 아무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피비린내보다 더한 공포가 그들의 뇌를 지배하고 있었다.
한참 만에 공포를 억지로 떨쳐낸 구천성 무사들은 피를 뒤집어쓴 채 죽은 동료를, 형제를 찾아 나섰다.
* * *
금양관으로 돌아간 청산자는 불만이 쌓인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승산 있는 싸움에서 후퇴한 것이 아쉽긴 하나, 그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원한 때문에 벌어진 싸움이 아닌, 천하쟁탈을 위한 싸움 아닌가. 양패구상은 그도 원하지 않았다.
그가 짜증나는 것은 양패구상의 상황이 되게끔 만든 원인이었다.
“교활한 놈, 감히 노도를 이용하려 하다니.”
암천문은 약속된 시간보다 늦게 나타났다.
시간 차이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간에 청산궁이 단독으로 구천성을 상대해야 했다.
그 바람에 죽지 않아도 될 청산궁 무사 수십 명이 죽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다.
“마도 놈들을 무조건 선봉에 세웠어야 했어.”
청명하던 그의 두 눈에서 섬뜩하게 느껴지는 푸르스름한 광채가 번뜩였다.
부스스스.
손에 쥐고 있던 찻잔이 가루가 되어서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영산자는 그 모습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전의 사형과 다른 모습이었다.
사형은 단순히 청산궁 형제들의 죽음 때문에 분노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속았다는 것, 그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서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형제들의 죽음을 애도해야할 때이거늘.
“영산.”
“예, 사형.”
“청산의 형제들이 도착하려면 얼마나 남았느냐?”
“오늘 오후부터 도착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청산십목의 형제들까지 오려면 이삼일 정도 걸리지 않을까 합니다.”
“그들이 오면 이차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그 전에 암천문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마라.”
“부상자들을 치료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합니다. 구천성 역시 큰 피해를 입어서 당장 만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공격을 며칠 늦추는 게 어떨지…….”
“때라는 건 머뭇거리는 사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법이다. 나약한 자는 본 궁의 염원을 이루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아. 움직이기 힘든 사람은 남겨놓고 공격할 것이다. 청산의 형제들이 도착하면 충분할 게야.”
완고한 청산자의 말에 영산자는 더 이상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양패구상은 최악의 결과니라. 좀 더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봐라.”
“예, 사형.”
“아! 도하의 상태는 어떠하냐?”
“크게 무리하지만 않으면 곧 완치될 거라 합니다.”
“어리석은 놈. 한번만 더 어리석은 짓으로 궁에 피해를 끼친다면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라.”
“도하도 이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아이 뿐만이 아니다. 누구든…… 방해가 된다면 용서치 않을 것이야.”
영산자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사형에게서 조급함이 엿보였다.
금룡신군이 죽은 후 더 그런 듯했다.
어쩌면 탁무겸의 뛰어남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장천운 때문일지도 모르고.
문득 장천운을 뇌리에 떠올린 영산자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이 걸렸다.
‘사형, 어쩌면 삼성의 세상은 이제 지나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하늘이 나타났으니…….’
* * *
청산자와 영산자의 마음이 엇갈리고 있던 그 시각.
탁무겸은 암천문 총단으로부터 전해진 소식을 받고 분노를 터트렸다.
쾅!
일장에 탁자가 산산이 부서져서 주저앉았다.
“단목 늙은이가 뇌옥을 탈출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