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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85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61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85화

눈을 가늘게 좁히고 허공을 노려보던 공손백의 표정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쳐 죽이고 싶은 놈이지만, 놈이 현재 본 궁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작지 않다는 건 기정사실이다. 으으음,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는군.”

“어쩌며 청산자나 탁무겸에 의해서 놈이 돌아오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공손백의 가늘어졌던 눈이 커지면서 안광 역시 차갑게 번뜩였다.

“그게 사실이라면, 저들에겐 놈이 없는 지금이 최고의 기회라 할 수 있지.”

동백이 흠칫하며 말했다.

“사마경도 그걸 알고 비상을 걸은 것 아닌지…….”

공손백의 입가에서 비릿하면서도 섬뜩하게 느껴지는 조소가 피어났다.

“뭔가 일이 벌어질 거라면 탁무겸이 연락할 거다. 그 전까지는 구천성의 대령주로서 최선을 다한다. 동백.”

“예, 대령주.”

“모두에게 전해라. 언제든 전쟁을 치를 수 있게 준비해 두라고.”

그때였다.

둥둥둥둥!

북소리가 빠르게 울리며 어둠으로 물든 천공을 뒤흔들었다.

시간을 알리는 북소리가 아니었다.

공손백이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다.

“설마 벌써……?”

 

 

 

144장 혈풍(血風)은 불어오고

 

 

마을 외곽을 돌던 벽호당 경비조는 눈을 크게 뜨고 어둠 속 들판 너머를 노려보았다.

밝은 달빛 아래, 어둠 저편에서 먹구름이 밀려들고 있었다.

가을비 대신 피를 동반한 먹구름이었다.

“저, 적이다! 놈들이 온다! 빨리 가서 알려!”

경비조장인 장규가 뒤를 향해 악을 쓰듯 외쳤다.

그 직후 약간 남쪽으로 치우친 곳에서도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놈들이 몰려온다!”

“개새끼들! 잠도 없나? 모두 묻어버려!”

 

청산궁 무사들은 촌각도 망설이지 않고 곧장 마을 외곽에 포진한 구천성 무사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어둠 속에서 들이닥친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살수를 펼쳤다.

“놈들을 막아!”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라!”

여기저기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처절한 비명, 욕설이 섞인 악다구니.

살기가 암천에 겹겹이 쌓이며 일대를 뒤덮였다.

마을 외곽에 구축된 진세를 이루고 있는 무사는 모두 일천오백.

그 중 오백여 명이 쓰러지는데 걸린 시각은 일각에 불과했다.

어둠 속에서 피어난 비릿한 피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구천성을 향해 밀려갔다.

구천성무사들은 피해가 더욱 커지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성 쪽으로 후퇴했다.

다급한 북소리가 울린 것은 그때쯤이었다.

 

급보를 전달 받은 우문각은 곧바로 구천무원으로 달려갔다.

공격할 거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랐다. 하루 정도는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거늘.

그의 말갈기처럼 솟은 하얀 머리카락을 보고 흑월대원들도 바짝 긴장했다.

우문각이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 본 터였다.

“소성주께선 안에 계시는가?”

“예, 총사.”

사공명신이 대답하기 무섭게 안쪽에서 사마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사공명신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어주었다.

우문각은 여전히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

“놈들이 공격을 시작했소, 소성주.”

우문각의 목소리에서 평소와 달리 급한 마음이 묻어나왔다.

사마경의 표정도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무사들은 출동했나요?”

“지금쯤 정문을 나서고 있을 거요.”

그나마 미리 대기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대응이었다.

“모든 무사들에게 연무장으로 집결하라 하세요. 대령주와 대장로도 예외는 없어요. 그들로선 선봉에 서기로 했으니 거부할 수도 없을 거예요. 그리고…… 내가 직접 나서겠어요.”

우문각이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말렸다.

“소성주, 직접 나서는 것은 너무 위험하오.”

“구천성의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저더러 여기서 구경만하란 말인가요?”

“소성주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소성주가 다치기라도 하면 사기가 급전직하로 떨어질 거요.”

“구천무원으로 모신 노선배님들을 대동하면 쉽게 당하진 않을 거예요. 그리고…… 제가 다치면 반대의 상황이 될 수도 있어요.”

우문각은 사마경의 마지막 말에 움칫했다.

사마경의 말대로 반대의 반응이 나타날 수도 있다.

구천성의 젊은 무사들은 그녀를 태양처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그녀가 다친다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목숨을 내던져 적을 상대할지 모른다.

“하지만…….”

“물론 부상을 자처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거예요. 너무 걱정 마시고 어서 연락부터 취하세요.”

우문각은 쓴웃음을 지으며 포권을 취했다.

전부터 느낀 바지만, 저렇게 밀어붙일 때는 정말 사마중천을 빼닮았다. 그 고집까지도.

“알았소이다.”

 

축시에서 인시로 넘어가는 시각.

구천성 정문이 활짝 열리고, 일천이 넘는 무사들이 성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미 외곽을 방어하고 있던 무사들이 정문 코앞까지 후퇴한 상태였다.

정문 밖 드넓은 대지가 전쟁의 회오리에 휘말려서 피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놈들을 쳐라!”

광혈검마 탕추강이 벌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성 안에서 쏟아져 나온 무사들이 혈전장을 향해 달려갔다.

청산자는 피로 물들어가는 전장을 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구천성의 신속한 대응은 그조차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구천성이 대응하기 전에 외곽을 완벽히 제압하는 것이 첫 번째 계획이었다.

그런데 외곽을 정리하기도 전, 성 안에서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도 일부 지원군이 아닌 정예 전력이.

그들은 싸움이 벌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기라도 한 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대응했다.

“제법이군.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거다. 더 많은 피가 흐를 뿐.”

청산자의 말에 영산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온 세상이 피로 뒤덮인 듯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청산궁의 무사도 이미 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길 수 있을까?

설령 이긴다 한들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 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고뇌가 전쟁이 벌어지자 고개를 내밀었다.

자신이 바란 세상은 이런 것이 아니었거늘.

사형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걸까?

“하긴 너무 싱겁게 끝나면 재미가 없지.”

나직이 중얼거리는 청산자의 말을 듣고 영산자의 고뇌는 더욱 깊어졌다.

오늘의 청산자는 어제와 많이 달랐다.

청명한 하늘처럼 맑던 두 눈은 살기를 품고 있었고, 몸에서 피어나는 기운은 피를 갈구하는 살기였다.

‘무량수불. 사형, 정녕 재미를 위해서 수많은 목숨을 외면하실 생각이십니까?’

두 사람으로부터 이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서 있던 탁무겸은 자신 있게 말하는 청산자를 보며 냉소를 지었다.

‘후후후, 청산자 늙은이, 나를 원망하지 마라.’

암천문 무사들은 청산궁 무사들에 비해서 반각 정도 늦게 도착했다.

그 차이는 무척 컸다. 외곽에서 죽은 두 세력의 무사는 이백여 명, 대부분 청산궁 무사들이었다.

그는 자신을 이용하려한 대가를 그렇게 받아냈다.

물론 이자는 따로 받아낼 것이다.

‘말코 늙은이, 그대는 나를 이용하지 말았어야 했어.’

눈빛이 암흑처럼 검게 물든 그는 전장을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청산궁과 암천문 무사들은 구천성 무사들을 폭풍처럼 몰아붙였다.

그들은 구천성 무사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하지만 구천성도 일천이 넘는 지원무사들이 합류하면서 더 이상 밀리지 않았다.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무사들보다 새롭게 합류하는 무사의 숫자가 더 많을 정도였다.

그렇게 정문 앞 공터에서 벌어진 싸움이 절정에 달했을 때, 공손백과 나극이 장로원을 중심으로 한 고수들을 이끌고 전장에 뛰어들었다.

“누구도 우리 구천성을 모욕할 수는 없다! 모두 힘을 내서 적을 공격하라!”

공손백이 웅혼한 목소리로 무사들을 독려했다.

암천문과의 관계는 최후까지 숨겨야 했다.

그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구천성에서 그의 아군이 될 자는 많지 않았다.

나극은 말보다 행동으로 나섰다.

아직 준비가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건곤일척의 승부가 벌어졌다.

이틀만, 아니 하루만 늦게 싸움이 벌어졌어도 좋았으련만.

그랬으면 저들의 뒤통수를 칠 지원군이 도착했을 텐데.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아쉬워한다고 해서 올 수 없는 자들이 올 것도 아니었다.

아쉬워할 시간에 적을 하나라도 쓰러뜨리는 게 나았다.

“가세!”

그가 좌우의 두 노인을 향해 한소리 외치고 몸을 날렸다.

위중평과 이격도 나극과 나란히 움직였다.

십칠 년 전, 자신을 세월의 늪에 빠뜨렸던 자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제자라고 알려진 탁무겸이란 자가 오만한 자세로 저 어둠 속에 서 있었다.

오늘, 십칠 년 동안 쌓이고 쌓여서 바위처럼 굳어진 한을 마음껏 풀리라!

죽음이 자신을 덮친다 하더라도!

혈전이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치달릴 때 사마경이 구천성 밖으로 나왔다.

흑월대와 흑영대가 전면에 섰다. 패왕과 교왕, 환마 우곡과 천한검마 구양명을 비롯해서 복우쌍노와 구천호령이 그녀를 호위했다.

정문 앞에 선 그녀가 공력을 끌어올려서 낭랑히 외쳤다.

“구천성의 형제들이여! 검을 높이 들고 천외의 도적들을 쳐라!”

어둠을 뒤흔드는 맑은 목소리.

그녀를 흠모하던 젊은 무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아!

“소성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나오셨다!”

“충!”

“소성주께서 보고 계신다! 힘을 내서 놈들을 쳐라!”

와아아아아아아아!

함성이 점점 커졌다.

말 그대로, 젖 먹던 힘까지 짜낸 듯 구천성 무사들은 바닥까지 떨어진 힘을 끌어내서 적의 공격에 맞섰다.

그들에게는 무공의 고하로만 따질 수 없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장으로 나온 소성주다.

생사를 자신들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

가슴에서 뜨거운 불기둥이 솟구쳤다.

그때 청산자와 탁무겸이 전장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청산자는 대지에서 한 자쯤 떠오른 채, 한 걸음에 오륙 장씩 죽죽 미끄러졌다.

절정의 신법인 초상비와는 격이 다른 절대경지의 신법이었다.

탁무겸은 한발을 내딛었다 싶은 순간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콰아아아아!

뒷짐을 진 그를 중심으로 무형의 기운이 휘돌면서 허공이 비명을 토해냈다.

마침내 구천성 무사들 앞에 다다른 청산자가 오른손을 쳐들었다.

두 손을 머리 위로 쳐든 탁무겸의 입가에는 하얀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입가의 미소와 달리 두 눈에서는 몸서리처지는 살기가 폭사했다.

구천성 무사들은 그때부터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은 공포를 경험해야만 했다.

청산자의 손짓 한 번에 일류고수들이 칠공에서 피를 뿜어내며 훌훌 날아갔다.

자신들의 실력에 대해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던 절정고수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 역시 청산자의 일장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널브러졌다.

공포에 질린 구천성 무사들은 그를 피해서 주춤주춤 물러섰다.

탁무겸 쪽의 상황은 더욱 처참했다.

그는 장포를 휘날리며 쌍수를 휘둘렀다. 그때마다 대여섯 명이 커다란 바위에 얻어맞은 듯 온몸의 뼈가 으스러져서 꼬꾸라졌다.

으깨진 머리, 밖으로 튀어 나온 가슴뼈, 찢어진 살 사이에서 분수처럼 뿜어지는 핏줄기.

“맙소사!”

공포에 질린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제야 구천성 무사들은 이해할 수 있었다. 사마경과 장천운이 왜 그토록 천외의 주인들을 경계했는지.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초인!

인간의 한계를 넘어 신에 근접한 초인이었다.

강아지 수백 마리가 있다 한들 성난 호랑이 한 마리를 막을 수 있겠는가.

“물러서라! 그들은 우리가 맡겠다!”

마침내 공손백이 장로 다섯을 대동하고 청산자를 공격하기 위해 나섰다.

나극과 위중평, 이격은 장로 셋과 함께 탁무겸을 향해 날아갔다.

그때 한쪽에서 비감에 찬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노오옴! 네 목숨은 내 손으로 거두어주마!”

독고태였다.

전과 달리 흐트러진 행색, 얼굴은 살이 빠져서 눈이 움푹 꺼지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모습이었다.

그러나 눈빛만큼은 횃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악을 쓰듯 한소리 내지른 그는 핏물로 범벅된 독고민을 향해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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