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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84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63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84화

장철산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안아보지 못한 아입니다. 미안해서 얼굴도 내밀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못해줬는데…… 저만큼이나 컸지 뭡니까.”

나직이 말하며 장천운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습기가 가득 찼다.

숨을 깊이 들이쉰 그가 다시 시선을 돌려서 단목화종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니…… 이제 작은 것이라도 해줘야지요.”

단목화종은 장철산과 장천운을 번갈아보았다. 허탈감과 묘한 기대감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그러다 끝내 주름진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어쩐지…… 어딘가 그 아이를 닮은 것처럼 느껴진다 했더니…….”

목소리마저 떨렸다.

“한두 달이면 너무나 깁니다. 탁무겸이 저의 정체를 안 이상 그 시간이면 모든 게 끝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전에 조금이라도 일찍 정상을 찾게 해줘야 합니다.”

“으음…….”

단목화종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는 누구보다 장철산의 옛일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뒤를 이어야 할 외조카가 정파의 여자를 택했을 때는 대노해서 죽이려 했다.

하지만 비밀임무를 맡고 출동한 조카는 구천성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죽었다는 소문조차 들렸다.

그래서 조카가 사랑하는 여인을 대상으로 분노를 풀려고 했다. 그런데 그 여인조차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

알려지기로는 남편을 적극적으로 구하려 하지 않는 구천성에 실망해서 떠났다고 했지만, 어쩌면 자신의 손을 피해서 도망쳤는지도 모른다.

“그럼 너…… 나 때문에 거짓으로 죽은 척한 것이냐?”

“아니면 그녀와 저 아이를 지킬 수 없었을 테니까요. 물론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만.”

“…….”

정말 독한 놈이다.

누가 암천신마의 핏줄이 아니랄까봐 자신을 세상에서 지워버리다니.

“뭐 하십니까?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저 아이를 살펴봐주십시오.”

“알았다.”

단목화종은 벌떡 일어서더니 침상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제는 남이 아니다.

하나밖에 없는 외손주다. 비록 외가라 하나 단 하나의 핏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야 했다.

그의 뒤에 대고 장철산이 물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왜 저에게 그런 미안함을 느끼신 겁니까? 다른 분도 아닌…… 외숙부님께서.”

잠시 서서 아무 말도 안하던 단목화종이 어깨를 한번 들썩이고는 입을 열었다.

“무겸과 도악에게 당해서 암황뇌옥에 갇혀보니 네놈 생각만 나더라. 그래도 암천문에서 이 늙은이를 생각해준 사람은 너뿐이었지.”

남들이라면 그 말만으로도 감격하거나 그를 이해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장철산은 그 정도 이유만으로는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가 아는 외숙부는 그리 감상적인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수백 명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던 사람,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생각하는 사람. 외숙부는 그런 사람이었다.

외숙부가 정을 준 사람은 세상에 오직 둘, 여동생인 어머니와 자신뿐이었다.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닐 텐데요?”

“그래, 전부는 아니지. 죽을 때가 다가와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네가 살아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듣고 나니…… 어차피 죽을 거, 네 얼굴이나 보고서 죽고 싶었다.”

“…….”

장철산은 입을 다문 채 기다렸다. 아직 할 말이 더 남아 있을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단목화종이 입술을 씰룩이며 툴툴거렸다.

“지독한 놈, 그 정도로도 못 믿는단 말이냐? 오냐, 말해주마.”

씩씩거리듯 말하던 그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마저 말을 이었다.

“어차피 가만있어도 일 년을 못 살 것 같다. 그래서 지옥으로 가기 전에…… 너에게 진 빚이나 갚으려고 나왔다. 됐느냐?”

“…….”

장철산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번에는 다른 의미였다.

일 년을 못 산다고?

그 말을 들으니 처음으로 외숙부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외숙부도 사람은 사람이었나 보군요.’

 

* * *

 

단목화종과 장철산을 놓친 탁무겸은 분노를 씹으며 곧장 금양관으로 향했다.

반드시 잡아야 할 사냥감을 모두 놓치고 말았다.

다른 이도 아닌 장철산과 장천운을!

십이암귀도 동료를 셋이나 잃고서 빈손으로 돌아왔다.

동방무기의 일행에게 당했다고 했다.

사냥감은 청산자가 말한 것보다 훨씬 강하고 사나웠다.

오왕과 십마 서넛을 상대할 수 있는 십이암귀를 따돌리고 도주할 만큼.

결국 두더쥐굴만 없앴을 뿐 정작 잡아야할 자들을 하나도 잡지 못한 그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에 대한 화풀이로 집채만 한 바위 하나를 가루로 만들어버렸지만 분노가 누그러들지 않았다.

 

청산궁의 누구도 거칠 것 없이 들이닥친 탁무겸을 막지 못했다. 상대는 암천문의 주인, 천외삼성 중 일인인 것이다.

한밤에 연락도 없이 그가 나타나자, 청산자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그를 맞이했다.

찾아온 이유를 알기 때문이었다.

“어서 오게.”

청산자는 탁무겸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인사말을 건넸다.

탁무겸이 단도직입적으로 불쑥 말을 던졌다.

“동방무기 일행을 놓쳤습니다.”

“저런, 노도가 그래서 가볍게 보지 말라고 했지 않은가?”

청산자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탁무겸은 그런 청산자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동방무기와 그의 일행들은 청산자의 말대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십이암귀를 따돌리고 도주했다.

청산자는 자신에게 그들의 무위를 정확히 말해주었을까?

아닐 수도 있다.

양패구상하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늘의 도를 깨우친 것처럼 맑은 두 눈 속에 온갖 귀계를 담고 있는 청산자 아닌가.

그보다 더한 생각을 했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교활한 늙은이.’

어쨌든 사냥감을 놓친 지금 그걸 따질 수도 없는 일이다.

핑계를 대는 것으로 보일 테니까.

속은 놈이 병신일 뿐.

물론 그에 대한 빚은 반드시 갚아줘야 하겠지만.

“거의 다 잡았는데, 장천운이 나타났습니다.”

“장천운이?”

청산자의 눈매가 움찔거렸다. 그 일은 그조차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렇습니다.”

탁무겸은 간략하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평소라면 설명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설명을 해야 다음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었다.

탁무겸으로부터 상황을 전해들은 청산자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살기로 번뜩였다.

“동방무기 일행이 중상을 입은 채 도주하고, 장천운도 심각한 부상을 당한 상태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진인.”

청산자는 탁무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두 눈 저 깊은 곳에서 어둠의 불길이 회오리치고 있었다.

“어찌 했으면 좋겠는가?”

“기회란 왔을 때 잡아야 하는 법이지요. 가장 큰 방해물들이 힘을 쓰지 못하는데, 망설일 것 뭐 있겠습니까?”

청산자의 입술 가로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탁 도우의 말이 옳네. 기회가 왔는데도 망설이는 건 어리석은 일이지. 그런데 아직 준비가 완벽하지 않네.”

흩어져 있는 청산궁의 고수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암천문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그들의 무게가 진인이 말씀하신 동방노인 일행과 장천운이 없는 것보다 더 크다고 보십니까?”

“흐으으음.”

수염을 쓰다듬는 청산자의 가늘어진 눈이 한 없이 깊어졌다.

“시기란 하늘이 정해주지요. 한번 지나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게다가 시기를 늦추면 무림맹과 안휘의 정파가 몰려올지도 모릅니다.”

탁무겸의 나직한 목소리에 청산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 천시는 요물이어서 한번 놓치면 붙잡기가 힘들지. 시작해보세.”

“가서 아이들을 준비시키겠습니다.”

“언제 시작할 건가?”

탁무겸이 입술 끝을 비틀며 대답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않겠습니까? 새벽닭이 울기 전에 시작하지요.”

 

* * *

 

자정이 다 된 시각.

사마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서성거렸다.

교대시간이 지났는데도 장천운이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또 어디서 엉뚱한 일에 휘말린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 시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소천원에 사람을 보내 알아보았는데, 석양이 질 무렵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임시성주의 호위무사가 연락조차 없이 사라진 것이다.

화가 나기보다 걱정이 되었다.

장천운의 무공이 인간의 경지를 넘어섰다고 하나 구천성 근처에 그와 같은 고수가 둘이나 더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장천운보다 더 강하지 않은가 말이다.

‘도대체 말도 없이 어디로 간 거지?’

그때 문 밖에서 침중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성주, 다녀왔습니다.”

“들어와.”

곧 문이 열리고 사공명신이 들어왔다.

“어떻게 됐어? 찾았어?”

“성 안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가서 총사에게 천운을 찾아보라고 해.”

 

사공명신이 나간 후 일각도 지나지 않아서 우문각이 직접 찾아왔다.

왠지 표정이 굳어 있었다.

설마 진짜로 장천운에게 무슨 일이라도……?

불안감이 엄습한 사마경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고 물었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비령조와 첩밀각의 정보원을 모두 동원해서 장천운을 찾고 있소. 그런데 소성주의 명령을 받기 직전에 양각동 쪽에서 들어온 정보가 하나 있었소.”

“양각동?”

“양각동 안에 있는 객잔에서 수십 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하오.”

양각동이라면 강호에서 죄를 짓고 들어온 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평소였다면 몰라도, 지금은 그들의 죽음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우문각의 이어진 말에 눈이 커졌다.

“그런데 첩밀각의 정보원들이 그 사건을 조사하던 중에 양각동 외곽 황석평에서 엄청난 싸움이 벌어진 흔적을 발견했소.”

“혹시……?”

“일대의 커다란 바위들이 가루처럼 부서져서 직경 십여 장 이내가 완전히 평지가 되었다 하오. 그런데 그 정도의 흔적을 남기며 싸울 만한 고수는 천하에 몇 되지 않소.”

사마경은 입술을 잘근 씹었다.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럼 천운이 그곳에서 싸웠다는 건가요?”

“아직은 확실치 않소. 시신이 몇 구 있었는데, 모두 암천문의 무사들이었다 하오.”

사마경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무사하다는 뜻.

부상을 입는 거야 다반사였으니 목숨만 붙어 있다면 돌아올 것이다.

“무슨 일로 그곳에서 그토록 큰 싸움이 벌어진 거죠? 암천문의 고수들이 출동했다면 예삿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며칠 전 장 대주가 구해줬다는 자들이 그곳에 있었던 것 같소.”

사마경은 그 말을 듣고 한 동안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에서 또 다른 의미의 긴장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기마저 느껴졌다.

우문각도 말을 멈춘 채 그녀가 입을 열기만 기다렸다.

일각쯤 지났을 때였다. 마침내 사마경의 입이 열렸다.

“총사, 비상을 거세요. 모든 무사들에게 전해요. 절반은 휴식을 취하고, 절반은 항상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적을 맞이할 태세를 갖춘 채 대기하라고.”

우문각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뭔가를 말하려다가 사마경의 말을 마저 들었다.

“저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사라졌어요. 청산자와 암천신마는 이 기회를 그냥 보내려 하지 않을 거예요. 언제 어느 때 도발해올지 몰라요.”

역시!

우문각은 사마경의 냉정한 판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알겠소, 소성주.”

“대령주에게도 전하세요. 지금부터는 어떤 내부의 갈등도 용납지 않을 거예요.”

 

사마경의 명령이 전해지자 구천성 전체가 출렁거렸다.

막 잠에 들었던 무사 중 절반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기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장로원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공손백은 짜증이 난 와중에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눈치 챘다.

“동백, 왜 사마경이 갑자기 이런 명령을 내렸을 거라 보느냐?”

“우문각 총사가 사마경을 방문한 후 내려진 명령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총사가 뭔가 중요한 보고를 한 것이 분명합니다.”

“암천문과 청산궁이 관련된 보고겠군.”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장천운과 연관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놈이 저녁 무렵부터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공손백의 눈빛이 파랗게 번뜩였다.

“장천운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지?”

“예, 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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