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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83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81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83화

쿠구구구궁.

연이어 울리는 둔중한 굉음.

천지가 뒤집어져서 휘돌았다.

이를 부서져라 악다문 장천운은 대지를 깊게 파며 이 장 가량 밀려났다.

저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른 거센 충격에 내장이 목구멍을 타고 빨려나오는 듯했다.

충격은 그만 받은 게 아니었다. 서서히 대지 위로 내려서는 탁무겸의 칼날 같은 눈매도 바람에 흔들리는 사시나무처럼 잘게 떨렸다.

이미 한수 격돌로 어느 정도 강함을 예상했음에도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헤어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자신에게 충격을 줄 정도로 강해졌단 말인가.

“오늘 죽이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환이 되겠어.”

고저 없는 음울한 목소리로 자신의 살심을 내뱉은 탁무겸은 장천운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때까지도 충격을 다 해소하지 못한 장천운은 일단 뒤로 미끄러지듯 물러서며 탁무겸의 자존심을 건드려보았다.

“귀하가 청산자에게 고개를 숙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

뜻대로 된다면 잠깐이나마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손해 볼 것은 없었다.

그런데 탁무겸이 멈칫했다.

“본좌는 청산자에게 고개를 숙인 것이 아니니라.”

“어쨌든 그와 손을 잡은 것은 사실 아닌가? 암천의 주인을 자처하는 사람이 교활한 청산자의 뜻대로 움직이다니, 실망이 크군.”

탁무겸의 가늘어진 눈에서 검은 섬광이 번뜩였다.

“필요에 의해서 잠시 함께하는 것일 뿐이다. 너 같은 아이가 어찌 하늘의 뜻을 알겠느냐.”

“멍멍거리나 컹컹거리나 다 개소리인 건 같지.”

장천운이 짧게 쏘아붙이자, 탁무겸은 차디찬 조소를 지으며 우수를 들었다.

온 세상의 어둠이 그의 우수 장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시간을 끌어볼 생각인가? 훗, 너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위해서 대답을 해주긴 했다만, 공연한 짓을 한 것 같군. 이제 암천의 이름으로 너의 목숨을 거두겠다.”

‘제길, 눈치도 빠르네.’

장천운은 혼신의 힘을 다 끌어내서 맞설 준비를 했다.

잠깐 사이지만 조금 전보다는 진기가 가라앉은 상태였다.

무적삼검의 두 번째 초식인 천멸일원(天滅一元)은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다.

제대로 펼칠 수 있는지조차 자신할 수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해보는 수밖에.

탁무겸도 장천운의 자세를 보고 이상한 느낌이 든 듯 눈을 가늘게 좁혔다.

하지만 공격을 멈추지는 않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본좌를 막을 수는 없느니라. 이제 가라, 장…천…운.”

그가 우수를 머리 위로 들자, 장심으로 빨려 들었던 어둠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며 장천운을 뒤덮었다.

장천운도 눈을 반개한 채로 현월을 내밀며 맞섰다.

쿠구구궁, 콰광!

또 다시 천지가 진동하며 거대한 충격이 대지와 천공을 뒤흔들었다.

정강이까지 땅에 박힌 장천운의 입술 사이로 핏물이 배어나왔다.

버텨내기에는 너무나 강했다. 무공의 패도적인 위력만큼은 청산자보다도 더 강한 듯했다.

전력을 다해서 환술을 펼친다면 빠져나갈 수 있을까?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을 듯했다. 그의 환술은 전에 비해서 진일보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때, 둘 사이의 공간으로 한 사람이 날아들었다.

아니, 한 사람이 아니었다. 간발의 시간 차이를 두고 또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탁무겸의 목소리가 들린 후 한쪽에 몸을 숨기고 있던 장산과 단목화종이었다.

그들은 탁무겸을 향해서 자신들이 지닌 모든 기운을 쏟아냈다.

이마를 찌푸린 탁무겸은 좌수의 방향을 틀어서 두 사람을 향해 흔들었다.

콰광!

먼저 뛰어든 장산이 뒤로 튕겨 나갔다.

나중에 뛰어든 단목화종도 주르륵 밀려났다.

그래도 그 두 사람의 공격으로 인해서 장천운에게 가해지던 압력이 삼사 할은 줄어든 듯했다.

장천운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남은 공력을 모조리 끌어올린 그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천멸일원을 다시 한 번 펼쳤다.

대노한 탁무겸은 노성을 터트리며 장천운을 향해 암흑천신기를 펼쳤다.

“어딜 감히!”

콰르르릉!

벽력음이 천지를 뒤흔들고, 장천운의 몸이 뒤로 주욱 날아갔다.

탁무겸도 연속된 공격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특히 마지막, 공력이 흐트러진 상태에서 맞부딪친 장천운의 공격은 초인지경에 이른 탁무겸의 내부를 뒤흔들어 놓았다.

입을 꾹 다문 그는 미끄러지듯 이 장이나 밀려났다.

분노와 충격으로 눈을 치켜 뜬 그의 얼굴이 아수라가 현신한 듯 일그러졌다.

“모조리 핏물로 만들어주마.”

산발한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치며 어둠보다 더 검은 기운이 폭사했다.

단목화종은 재빨리 장산을 옆구리에 끼고서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있던 살귀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먹이를 발견한 승냥이처럼 뒤쫓았다.

분노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던 탁무겸이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장산이 펼친 무공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철혈……마절?”

그가 알던 철혈마절과는 많이 달랐다. 그렇다고 해서 그 본질까지는 숨길 수 없었다.

탁무겸은 단목화종이 사라진 곳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장철산, 정말 너였구나!”

노성이 어둠을 뒤흔들었다.

그런데 그가 단목화종을 추적하려면 장천운의 머리 위를 지나가야 했다.

돌아서 갈 수도 있지만 마음이 급해진 그는 그대로 장천운을 향해 날아가며 일장을 내리쳤다.

그 당시 장천운은 정신이 반쯤 아득해진 상태였다. 날아드는 탁무겸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본능이 위험을 감지하고 선천의 기를 움직였다.

순간, 기이한 전율이 벼락처럼 빠르게 온몸을 치달렸다.

장천운은 무의식중에서도 현월을 머리 위로 들었다.

괴이하게도 느릿하게 들어 올리는 그의 검을 따라서 대지가 통째로 들리는 듯했다.

더 괴이한 것은, 바위도 가루로 만들어버릴 탁무겸의 장력이 그의 일 장 거리 앞에서 실바람처럼 흩어져버렸다는 것이다.

탁무겸은 허공에서 반사적으로 몸을 틀며 옆으로 흘렀다.

그 자신도 자신이 왜 피했는지 확실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순간적으로 피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의 몸은 뜻이 움직이는 대로 이동한 것일 뿐.

그 바람에 단목화종과 장산을 쫓는 시간이 늦추어졌다.

짧은 순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진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땅에 내려선 탁무겸은 죽일 듯이 장천운을 노려보다가 다시 신형을 날렸다.

“네놈의 목숨은 나중에 거두어가마.”

장철산을 잡는 일은 장천운을 죽이는 것 이상으로 중요했다.

게다가 여전히 하늘을 향해 검을 쳐들고 있긴 하나 장천운은 이미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놈의 목숨은 자신의 손안에 든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탁무겸이 떠난 뒤로도 장천운은 눈을 반개한 채 한참 동안 검을 들고 있었다.

사실 그의 내상은 탁무겸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심했다.

내부에서 독각독룡의 독기가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바람에 진기가 왕성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을 뿐.

천행이라면 천행이고, 운명이라면 운명이었다. 탁무겸이 일수만 더 공격하고 쫓아갔어도 진짜 목숨이 끊어졌을지 모르거늘.

‘그런데…… 마지막…… 그게 뭐였지?’

장천운은 의문을 품은 채 스르르 무너졌다.

그를 지탱하고 있던 마지막 끈마저 뚝 끊어지면서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탁무겸의 마지막 공격이 흩어지긴 했어도 그에게는 치명적인 충격을 준 것이다.

쨍.

현월이 떨어지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털썩.

그의 몸도 황토바닥에 처박혔다.

무정한 모래바람이 쓰러진 그를 지나쳐서 황량한 들판을 휩쓸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쓰러져 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적상천이었다.

초조한 표정으로 좌우를 빠르게 둘러본 그는 현월을 챙긴 후, 정신을 잃은 장천운을 어깨에 메고 그 자리를 빠르게 떠났다.

 

* * *

 

콰르르릉.

집채만 한 바위가 모래처럼 부서져서 무너져 내렸다.

그 앞에는 탁무겸이 서 있고, 그의 뒤에는 회의무복을 입은 무사 넷이 바짝 엎드려 있었다.

탁무겸은 짙은 어둠 속을 노려보며 분노를 삼켰다.

장철산을 놓쳤다.

어이가 없었다.

다 죽어가는 자를 놓치다니. 암천의 주인인 자신이 누군가의 눈속임에 넘어가다니.

‘그 늙은이를 너무 가볍게 봤어.’

왠지 찜찜한 기분이었다.

장철산에게 신경이 곤두서서 그 늙은이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그저 어딘가에서 기어 나온 노고수.

그 정도로만 생각했다.

자신의 일장을 큰 충격없이 받아낸 걸 보면 절대 경지에 오른 고수인 듯했다.

오왕, 십마, 칠절 등등…… 천하에 그 정도의 고수는 적지 않았다.

그런데 장철산을 놓치고 보니 어딘지 모르게 눈에 익은 듯했다.

누구지?

아무리 떠올려도 기억에 없는 모습이었다.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분노를 가라앉힌 그는 몸을 돌렸다.

아쉬움, 미련을 오래 끌어안고 있기에는 그의 성격이 허락하지 않았다.

지나간 일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았다. 그리고 과거보다는 미래가 더 중요했다.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르지.”

나직이 중얼거린 그는 가볍게 대지를 차고 어둠 속으로 날아갔다.

 

* * *

 

달빛조차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춘 자시 초.

어두컴컴한 곳에서 사소한 말다툼이 벌어졌다.

침상 위에는 장천운이 눕혀져 있고, 그에게서 이 장쯤 떨어진 곳에 단목화종과 창백한 얼굴의 장산이 앉아 있었다.

적상천은 멀뚱히 서서 그 광경을 힐끗거렸다.

‘도대체 왜 말싸움을 하는 거야? 다 죽어가는 사람이 둘이나 되는데.’

그들이 있는 곳은 다름이 아니라, 무 노인이 처음에 몸을 숨겼던 토굴 속이었다.

사력을 다해서 탁무겸과 암천귀들을 따돌린 단목화종에게 장산이 말했다. 토굴로 가자고.

등하불명이라. 맨 처음 그가 무 노인과 함께 지냈던 곳은 이미 청산궁과 구천성에 드러난 상태였다.

마을의 외곽은 구천성 무사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그래서 더 청산궁과 암천문의 살귀들이 찾아오지 않을 장소였다.

게다가 그곳에는 남들이 모르는 밀실이 존재했다.

그곳이라면 당분간 몸을 추스르며 지낼 수 있을 듯했다.

그런데 토굴로 향하던 중 장천운을 메고 도둑놈처럼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적상천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적상천은 장천운을 메고 있었다.

눈을 홉뜬 장산은 적상천과 장천운도 함께 토굴로 데려갔다.

단목화종과 장산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진 것은 그로부터 일각쯤 지났을 때였다.

 

“싫습니다. 저보다 저 아이의 내상이나 봐주십시오.”

“고집부리지 마라. 저놈이 비록 지금은 정신을 잃고 있지만, 워낙 튼튼해서 나중에 조금만 도와줘도 한두 달이면 거뜬해질 거다.

하지만 너는 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살아난다 해도 무공을 모두 잃을지 모른다.”

“상관없습니다.”

“도대체 저놈이 너에게 뭔데 그러는 거냐? 너라면 또 모르겠다. 내가 왜 저놈에게 아까운 공력을 써야 하는데?”

단목화종이 짜증스런 투로 빽빽 쏘아댔다.

장산, 장철산은 단목화종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안색은 백짓장처럼 창백했지만 눈빛만큼은 서리가 내릴 것처럼 차갑게 번뜩였다.

“제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해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에게 진 빚을 갚고 싶다면서요?”

“그야 물론이지.”

“그럼 제 부탁도 들어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뭐든 해주려는 건 너지, 저놈이 아니다. 정 부탁을 들어주길 바란다면 확실한 이유를 대봐라.”

장철산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시선을 장천운에게로 향한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장천운…… 저 아이…… 제가 살아온 이유입니다.”

“뭐라?”

“아시잖습니까? 제가 무엇 때문에 외숙부님 곁을 떠났는지.”

“그거야…… 설마……?”

뒤늦게 뭔가를 깨달은 단목화종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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