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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81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76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81화

“일단 제 말을 들어보시고…….”

“그만해라. 그 일은 이미 결정된 일이니까.”

남궁하가 남궁호의 말이 길어지는 것을 차단하고 손을 휘휘 저었다.

“너는 어서 가보래도?”

결국 남궁호는 떨리는 손을 들어서 공수의 예를 취하고는 몸을 돌려서 방을 나섰다.

뒤에서 밝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인사를 나누는 목소리에 그 어떤 걱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나라도 가봐야 하나?’

 

* * *

 

흑월대원들의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오늘은 전처럼 불만투성이가 아니었다.

장천운을 상대로 교육을 진행한 게 아니었다. 이번에 그들이 상대한 사람들은 흑영대였다.

땀범벅 흙범벅인 흑영대원들의 모습을 보니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상쾌했다.

흑영대원들이야 질린 표정이었지만.

솔직히 흑영대원들은 흑월대에 밀릴 게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비무를 해본 결과 흑월대는 무공뿐만 아니라 정신력에서도 그들보다 더 강했다.

특히 젊은 고수들, 사공명신과 혁련기, 단승은 자부심에 차 있던 조백과 하응산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심지어 두양양조차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한편, 장천운은 그들이 비무를 펼치며 수련에 열중일 때도 독기와의 싸움에 열중했다.

이제 독기는 전처럼 고통만 주지 않았다.

묘한 쾌감.

자신이 미쳤는지 몰라도 고통과 함께 쾌감이 느껴졌다.

‘후우우우우.’

대주천을 마치고 심호흡을 한 뒤 긴 숨을 내쉰 그는 눈을 떴다.

‘남 노선배님 말씀이 옳았어. 독기는 독이되 독이 아니었어. 잘하면 금룡신군이 말한 부작용을 벗어날 수 있을지도…….’

기분이 좋아진 그는 밝은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이제 구 할 정도 몸 상태를 회복했다. 사마경, 우문각과 세운 계획을 실행으로 옮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

무림맹과 안휘의 정파세력이 적절한 시기에 와준다면 승산은 충분했다.

‘기회는 한번 뿐이다. 두 번의 기회는 없어.’

 

방을 나선 장천운은 흑월대와 흑영대를 점검해보았다.

추소철과 한명후, 유고원, 오관 등 부상이 심했던 대원들도 이제는 완전히 회복되었다.

부상만 회복된 게 아니라 무공도 상당히 발전해 있었다. 부상당한 상태에서 쉬지 않고 무공을 연구하며 지낸 덕분이었다.

장천운은 그 모습을 보며 내심 마음이 편해졌다.

어쩌면 천외와의 전쟁이 끝난 후에도 살아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을 듯했다.

“죽기 싫으면 더 독해지도록 하쇼. 독하지 못하면 살아남는 게 그만큼 더 힘들어질 테니까.”

이제는 흑월대뿐만 아니라 흑영대원들의 눈빛에도 독기가 번뜩였다.

괜한 걱정을 했나 싶을 정도.

그때 경비무사가 무화원 안으로 뛰어왔다.

“대주, 대장간의 대장장이가 대주를 찾아왔습니다.”

뭔가를 짐작한 장천운은 일장연설을 그쯤에서 끝내고 돌아섰다.

“어디 있소?”

“무화원 입구에 있습니다.”

 

이응은 장천운이 무화원에서 나오자 긴장한 표정으로 나직이 말했다.

“령주, 아무래도 그들이 아직 양각동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아이들을 풀어서 양각동 외곽부터 안쪽으로 세밀하게 조사해봤는데, 그들이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자는 있어도 나오는 것을 봤다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도 보지 못했다?”

“예. 다시 말해서 들어간 사람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뜻입죠.”

“그럼……?”

순간적으로 장천운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그렇군, 깜박 속았어.”

 

* * *

 

어스름이 밀려들면서 바람까지 제법 세차게 불었다.

비라도 오려는지 바람은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바람을 타고 밀려든 구름에 어스름이 더욱 짙게 느껴졌다.

술시 초, 습한 바람을 타고 십여 명이 양각동으로 날아들었다.

그로부터 반각쯤 지났을 무렵.

운공을 마치고 눈을 뜬 장산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토굴인 만큼 천장도 흙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너머 어딘가에서 강렬한 살기가 느껴졌다.

칙칙한 죽음의 기운을 내포한 살기.

그는 그런 살기를 오래 전에 접해본 적이 있었다. 그것도 자주.

‘설마…… 그들이 왔단 말인가?’

공력을 갈무리한 그는 가부좌를 풀고 일어났다.

“노야, 아무래도 암천문의 살귀들이 온 것 같습니다.”

한쪽에서 침상에 누워 있던 무 노인이 상체를 일으켰다. 조금도 놀란 기색이 없었다.

암천문이 나타난 이상 언젠가는 닥칠 일이었다. 시기가 빨라진 것이 아쉬울 뿐.

“뒤로 빠져나가자.”

“노야. 저희들이 그냥 가면 많은 사람이 죽을 겁니다.”

“지금 너는 공력을 오 할밖에 쓸 수 없는 상태다. 소천 역시 완전하지 않고. 더구나 지금은 밤. 정면대결을 해서는 저들의 살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실이 그랬다. 그래서 장산은 가슴이 더 답답했다.

무 노인이 어찌 장산의 마음을 모를까. 그는 담담한 어조로 장산을 안심시켰다.

“피해는 많이 보겠지만 공가도 순순히 당하지만은 않을 거다. 그에게 맡겨 둬라.”

장산도 무 노인의 말이 옳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자신들 때문에 다른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미안하오, 공 형.’

결정을 내린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소천, 앞장서게.”

 

점소이 왕칠은 문 밖으로 고개를 슬쩍 내밀고 투덜거렸다.

“제길, 비가 오면 내일도 고생 좀 하겠군.”

먹먹한 하늘에 구름이 많이 끼어 있었다. 비가 많이 오면 들판에 물이 고일 터, 내일 날이 밝으면 곡식들이 물에 잠기지 않게 묶어줘야 한다.

하지만 왕칠은 비가 아무리 많이 오더라도 고생할 일이 없었다.

그가 문을 닫으려 하는데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서 문이 닫히는 걸 막았다.

“누구……?”

손님인가 싶어서 문을 열어주었다. 문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더럽게 기분 나쁜 인상을 지닌 자였다.

“한번만 묻겠다. 이틀 전에 한 노인과 사오십 대 무사 둘이 이 객잔에 왔을 거다. 그들은 어디로 갔지?”

그자를 쓱 훑어본 왕칠이 목에 힘을 주었다.

“조까고 있네. 내가 그걸 어떻게 알…… 컥!”

우두둑.

나름대로 간덩이가 크다고 자부했던 왕칠은 그렇게 목뼈가 잘게 으스러진 채 십구 년 인생을 마감했다.

도악은 왕칠을 한쪽으로 던지고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붉은 기 도는 그의 입술 끝이 비릿하게 열렸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죽여라.”

 

* * *

 

장천운은 성을 나서서 양산객잔으로 향했다. 그곳에 단목 노인과 적상천이 있었다.

단목 노인은 장천운의 말을 듣고 눈을 치켜떴다.

“이런, 빌어먹을. 당장 가세.”

장천운이 단목화종과 단 둘이서 양각동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둠이 사위를 뒤덮기 시작한 후였다.

그런데 양각동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시끄럽지는 않아도 간간이 욕설과 다투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이 양각동이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비릿한 느낌마저 들 정도.

“너는 여기 있어. 가봐야 다치기만 할 테니까.”

단목노인이 갈퀴처럼 생긴 손가락으로 바닥을 콕콕 찍으며 적상천에게 말했다.

적상천도 이제 단목 노인이 평범한 노인이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래도 무시당했다는 마음에 입술이 한 주먹 튀어나왔다.

‘쳇, 저도 섬서에서는 일류고수로 알아준다고요.’

 

찜찜한 느낌의 정체는 양각동 안으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서 드러났다.

장한 하나가 어둑해진 골목길의 돌담 벽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제 삼십대 초반의 나이에 평범한 복장을 한 자였다.

그가 숨을 쉴 때마다 옆구리에서 시뻘건 피가 흘러나왔다.

장천운은 그를 보고 눈을 치켜떴다. 장한의 소매에서 조잡한 표식이 보였다.

소매에 먹물이 묻은 것으로 보일 수 있는 흔적. 그것은 암월당의 표식이었다.

황급히 그에게 다가간 장천운은 부상 상태부터 살펴보았다. 안타깝게도 장한은 이미 저승의 문턱에 발을 디딘 상태였다.

장천운은 일단 전음을 보냈다.

<나요, 흑월의 주인.>

장한이 힘겹게 고개를 들더니 떨리는 입술을 가까스로 열었다.

“수, 수상한 자들…… 객잔으로…….”

장한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옆구리를 잡고 있던 손이 밑으로 툭 떨어지자 내장과 핏덩이가 함께 흘러나왔다.

장한은 그 상태에서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그놈은 놔두고 어서 객잔으로 가보자.”

단목화종이 서두르며 다그쳤다. 그에게 한 사람의 죽음쯤은 눈에 차지도 않았다.

장천운은 장한을 한쪽으로 조심스럽게 눕혀놓고 단목화종을 따라서 객잔을 향해 몸을 날렸다.

 

객잔까지의 거리는 기껏해야 오십여 장.

장천운과 단목화종이 도착했을 때 객잔은 기이하고도 음산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붉은 선혈과 비릿한 피비린내, 그리고 이미 숨이 끊어진 시신 십여 구가 보였다.

두 사람은 뒷마당으로 향하는 뒷문으로 나갔다.

뒷마당에도 시신이 대여섯 구 널브러져 있었다.

안에 있던 시신은 물론 뒷마당의 시신 역시 평범한 일반인이 아니었다. 모두 무공을 익힌 자들이었다. 주위 흔적을 봐서는 제법 강한 무공을 지닌 자도 있었던 듯했다.

그런데 누구 하나 제대로 반항도 못한 채 죽음을 당한 듯 보였다. 마치 거인의 손가락에 눌려서 죽은 개미처럼.

“썩을 놈들, 노부를 속이더니 제대로 당했군.”

단목화종이 투덜댔다. 그의 눈에서 한광이 번뜩였다.

장천운은 그 사이 구석진 곳에 있는 창고로 가보았다. 기이하게도 시신들의 위치가 창고를 향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창고 안쪽의 바닥이 통째로 주저앉은 것처럼 움푹 꺼져 있었다. 그 아래쪽은 시커먼 암흑이었다.

장천운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암흑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의 눈에는 컴컴한 지하실 안이 확연하게 보였다.

지하실 안에서도 싸움이 벌어진 듯 요리재료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시신도 세 구나 있었다,

“여긴 또 뭐냐?”

짜증이 잔뜩 묻어난 목소리와 함께 단목화종이 내려왔다.

“식재료들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짧게 설명해주고 주위를 둘러본 장천운은 한쪽에 등잔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등잔을 든 그는 삼매진화를 일으켜서 등잔 심지에 불을 붙였다.

극양의 진기가 심지에 집중되자 불꽃이 피어났다.

등잔 빛에 시신의 모습이 보다 더 확실하게 보였다.

시신을 바라본 장천운의 눈이 차갑게 번뜩였다.

눈에 익은 복장이었다.

칠산사에서 봤던 자들, 탁무겸의 호위들과 비슷한 복장.

그렇다면 암천문의 살객들이 이곳까지 들어와서 피바람을 일으켰다는 건가?

하긴 그들이라면 구천성의 방어벽을 뚫고 들어오는 것쯤이야 장님 눈 속이는 일만큼이나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옆에서 단목 노인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암귀들이 왔군.”

단순한 한마디였지만, 장천운은 가볍게 지나치지 않았다. 그 한마디 말에는 많은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는 자들입니까?”

당연히 안다. 아니, 아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키운 놈들이다.

그러나 단목화종은 대답을 미루고 말을 돌렸다.

“나중에 말해주마. 지금은 이곳에 있던 사람들부터 찾는 게 먼저니까.”

장천운도 그 말에는 동의했다. 궁금증은 나중에 풀어도 되었다.

그런데 그때, 어두컴컴한 저 안쪽에서 미세한 신음이 들렸다.

“으으으음.”

처음에는 신음인지 또 다른 소음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뒤이어서 가슴을 쥐어짠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

장천운은 그 소리의 울림이 가라앉기 전에 안쪽으로 들어갔다.

곳곳에 물건이 쌓인 창고가 있었고, 그 창고들이 미로와 같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통로를 서너 번 꺾어지자 주저앉아 있는 자가 보였다.

시신이라기보다는 백골처럼 보이는 자였다. 아마 옷만 걸치지 않았다면 지하창고에서 말라죽은 미라를 떠올렸을지 몰랐다.

그자의 옷은 암천문 살귀들과 달랐다.

장천운은 예리한 눈빛으로 그를 살펴보며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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