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80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8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80화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장천운이 어찌나 태연하게 말하는지 위중평이 오히려 대꾸하지 못했다.
“십 수 년 동안 죽은 것으로 알려진 분이 살아서 이곳에 계시니 그런 말이 나오지요. 좌우간 저런 분이 한분만 계신 것은 아닐 거고…… 그렇다면 계획을 세우기가 한결 편할 것 같군요.”
게다가 자신의 명줄도 좀 더 길어질 듯했다.
이런 자를 숨겨놓은 걸 보면 또 다른 힘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역시 마제는 마제다, 이건가?’
* * *
나극과 일각 정도 대화를 더 나누고 장로원을 나선 장천운은 비령각으로 향했다.
어느새 하늘은 어둠의 장막이 펼쳐져서 별과 달이 앞 다투며 흐르고 있었다.
장천운이 방으로 들어가자, 우문각이 붓을 놓고 다탁에서 그를 맞이했다.
우문각은 내심 우려되는 바가 없지 않았지만, 사마경의 계획을 받아들이기로 한 상태였다.
어차피 무림맹주가 죽은 이상 암천문과 청산궁이 어떤 식으로든 움직일 테니까.
장천운은 공손백과 나눈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한마디도 끼어들지 않고 이야기를 다 들은 우문각은 고개를 느릿느릿 두어 번 주억거렸다.
“일단 첫 번째 문제는 해결됐군. 내부의 박쥐들도 대충 처리가 되었고. 대장로 쪽은 어떻더냐?”
“그게 조금 이상합니다.”
“이상하다?”
“대장로는 대령주와 다른 길을 가는 것 같습니다.”
장천운은 대장로에 대해서 그 정도만 말했다.
아직은 두 사람의 약속에 대해서 말할 때가 아니었다. 소성주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공염불이 될 테니까.
“흠…… 안 그래도 나 역시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고는 있다만, 너까지 그리 생각한다니 확실히 뭔가가 있긴 있는 것 같군.”
“어쨌든 대령주와 대장로가 함께 손발을 맞추는 것보다는 낫다고 봐야겠지요.”
“그건 그렇지.”
우문각의 표정이 조금 가벼워졌다.
공손백과 나극이 공동체가 아니라면 최악의 경우는 피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장천운이 그런 우문각을 빤히 바라보며 슬쩍 말을 돌렸다.
“총사께 하나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뭐냐?”
“장철산이라는 분, 혹시 살아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철산이 살아 있다? 훗, 살아있다면 왜 여태 나타나지 않았겠느냐?”
우문각이 어깨를 들썩이며 실소를 지었다. 말도 안 된다는 듯.
“하긴…….”
장천운도 피식 웃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질문 같았다.
그런데 문득 또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철혈마절이라는 무공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철혈마절?”
“암천문이 총단으로 사용했던 곳에서 발견한 무공의 흔적입니다만.”
이마를 찌푸리고 있던 우문각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설마……?’
그는 그와 비슷한 이름의 무공을 알고 있었다. 그 무공은 그의 친구가 썼었다. 장철산이.
철혈무정검.
그게 그 무공의 이름이다.
친구는 그 패도적인 무공을 절대 절명의 순간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았다. 공력소모가 커서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 외에 다른 이유가 있는 듯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저놈은 장철산이라는 이름과 철혈마절이라는 무공을 연이어 말하는 걸까. 무슨 연관이 있다고.
“뭐가 궁금한 거냐?”
“별 거 아닙니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살아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요.”
“그건…….”
우문각은 반박을 하지 못했다.
장철산이 죽었다는 것은 보고로만 알려졌다.
그것도 시신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부하들과 함께 모종의 비밀 임무를 부여받고 떠나서 행방불명되었으며, 석 달 후 부하들의 시신이 일부 발견되었을 때에도 그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는 보고만 올라왔다.
그가 사라진지 반 년 후, 구천성의 모든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는 걸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사마중천도, 우문각도.
철산을 사랑했던 여인, 미설도 그래서 두 사람을 원망하며 떠나지 않았던가.
하지만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만큼 살아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확률은 일 푼도 되지 않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철산은 죽었어.’
장천운은 우문각이 아무 말도 안 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죽은 사람이 살아 있을 리는 없죠. 그만 가보겠습니다. 내일은 할 일이 많으니 몸이나 마저 다스려야겠습니다.”
“그래라.”
우문각은 짧게 대답하고 장천운이 밖으로 나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녀석,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입을 열면 눈에 물기가 고일 것 같았다.
그가, 그녀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이럴 때 그 그림이라도 있었으면 좋을 텐데.
‘제길, 명월나녀도를 괜히 줬나?’
* * *
무림맹주의 죽음은 안휘성 정파세력에게도 청천벽력 같은 충격이었다.
남궁세가는 물론이고 합비 전체에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오후, 가주의 집무실에서 열린 회의도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탕!
두 손으로 탁자를 내려친 남궁호가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무슨 말씀입니까? 출동하지 않겠다니요? 모른 척하겠다니요?”
“호야! 어른들 앞에서 무슨 짓이냐!”
남궁력이 엄한 목소리로 남궁호를 다그쳤다.
남궁호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구천성에서, 정확히는 장천운이 사람을 보냈다. 천외와 구천성 간의 싸움이 벌어지면, 남궁세가를 비롯한 안휘 정파의 고수들이 천외의 배후를 공격해주길 바란다고.
이미 기본적인 계획은 동의를 한 상태였다. 남천신문이나 황산검문 쪽에서도 긍정적인 답변이 왔다.
그래서 당연히 허락이 떨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정파 수장들 간의 회의에서 그 요청을 거절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맹주의 갑작스런 사망이 가장 큰 이유였다.
무림맹이 당장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만 움직일 수는 없다는 것.
하지만 내면에는 또 다른 이유가 깔려 있었다.
“아버님! 그와 한 약속을 어기시겠다는 겁니까?”
“약속을 어기려는 게 아니다.”
남궁력이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남천신문의 사공관도 그를 거들었다.
“어허! 호 조카가 뭘 착각하고 있군. 우리는 그와 약속을 한 적이 없네. 약속을 한 사람은 조카지. 그리고 그의 요청을 무작정 거절하겠다는 게 아니라,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니 조금 기다려보자는 것이야. 맹주께서 돌아가셨다는데 우리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지 않은가?”
“사공 문주의 말씀이 맞다. 우린 그와 약속을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느니라!”
원로인 남궁하는 노기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구천성과의 약속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할아버님, 청산궁의 간자들을 누구 덕분에 잡아냈습니까? 장천운이 아니었다면 본가에 숨어 있던 쥐새끼들에게 농락당할 뻔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해를 끼쳤느냐? 그들이 구천성 만큼 우리 형제들을 죽이기라도 했느냐?”
남궁호는 남궁하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할아버님?”
“말이야 바른 말이지, 청산궁은 그래도 정파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하지만 구천성은 마도의 무리가 주를 이루고 있지 않느냐? 게다가 그들에게 죽은 형제가 얼마나 많은데 그들 뜻대로 움직인단 말이냐?”
결국 무림맹주의 사망보다 더 큰 이유는 그것이었다.
구천성이 싫으니 손을 잡을 수 없다는 것, 구천성은 친구가 아닌 원수라는 것.
남궁호는 파르르 떨리는 눈길로 방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방 안에는 남궁세가와 남천신문의 원로를 비롯한 주요 간부 십여 명이 앉아 있었다.
“정말 모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버님, 그럼 왜 저를 보내서 그에게 협조 의사를 타진했던 겁니까?”
남궁력이 무거운 표정으로 답했다.
“어찌 되었든 천외의 간자를 잡아냈으니 나름대로 성과를 거둔 셈 아니냐? 이제 그만하도록 해라.”
“부친의 말씀대로 따르게, 호 조카. 성주의 요청을 받은 것도 아니고, 구천성의 일개 호위가 요청한 것을 거부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한가? 맹주께서 돌아가신 지금은 내부를 정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네.”
“됐다! 가주를 탓할 것 없다. 원로회의에서 결정 난 사항이니까. 만약 네가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당분간 옥에 가두어둘 것이니라!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사공관에 이어 남궁하가 눈을 부라리고 다그치자, 남궁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남궁세가는 가주의 권위보다 원로회의의 권위가 더 위에 있었다.
그 바람에 정말 중요한 사안을 가주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을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더 이상의 말이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남궁호는 몸을 돌렸다.
‘어쩌면 본 세가는 당분간 힘든 날을 보내야할지도 모르겠구나.’
그때 남궁력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호, 너는 당분간 쉬도록 해라. 합비 밖으로 벗어나면 안 된다. 이는 창궁검령의 이름으로 내리는 명령이니라.”
“아버님?”
“구천성의 일은 애비와 어른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명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네가 더 잘 알 것이다.”
“아버님, 요청이든 약속이든, 그와의 관계를 이런 식으로 처리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 결정된 사항이다.”
“그는 무서운 사람입니다! 절대 이렇게 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만 나가봐라. 계속 명령에 불복하면 잡아가둘 수밖에 없느니라.”
남궁하가 한쪽에 조용히 서 있는 중년 무사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두 중년무사가 남궁호의 옆으로 다가가서 나직이 말했다.
“그만 나가셔야 할 것 같소, 이 공자.”
그러나 남궁호는 그를 신경 쓰지 않고 악을 쓰듯 외쳤다.
“아버님!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십시오! 그와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만 합니다!”
“네 이놈! 너는 세가의 형제들이 누구에게 죽어갔는지 잊었단 말이냐? 저놈을 끌어내라!”
원로 중 하나인 남궁여가 벌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두 중년무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남궁호의 양팔을 잡고 밖으로 밀어냈다.
“내 발로 나갈 것이니 놓으시오!”
남궁호가 그들의 팔을 떨쳐냈다. 그러고는 답답해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방안을 둘러보았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속에 물기가 고였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고 나가겠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정파인이라면 신의를 어겨서는 안 된다고 배웠습니다. 신의를 목숨보다 더 중히 여겨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우리 남궁세가는 그런 정파에서도 위대한 가문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 모든 신념이 무너졌습니다. 아버님, 부디 후회하실 일은 하지 말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때 방 안으로 한 사람이 들어섰다.
“호 아우, 감히 아버님과 어른들 앞에서 그 무슨 말버릇이냐?”
낭랑하게 말하며 남궁호를 다그친 자는 이십대 후반의 당당한 체격을 지닌 청년이었다.
“오! 천이가 왔구나!”
남궁하가 반색하며 반겼다. 청년도 예를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버님과 조부님들께 천아가 인사 올립니다.”
남궁세가에서 백 년 만에 배출했다는 최고의 기재, 남궁유천.
남궁력의 장자인 그는 남궁세가 모든 이의 희망을 짊어지고 있는 젊은 고수로 중원십룡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가 그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삼청산에서 폐관수련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폐관수련 중에는 연락조차 불가능해서 세가가 위험에 처했을 때도 연락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내 그가 세가로 돌아온 것이다.
“언제 왔느냐?”
남궁력도 무거운 표정을 털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타 문파의 젊은 고수들을 보면서 얼마나 속이 쓰렸던가. 그런데 남궁유천을 보자 쓰린 속이 다 풀리는 기분이었다.
“사흘 전에 산을 내려와서 곧장 세가로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설명해줄 테니 앉아라. 호아는 그만 가보고.”
남궁호는 무거운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남궁유천이 불러 세웠다.
“잠깐 멈춰라, 호아야!”
남궁호는 혹시나 하며 한 가닥 희망을 걸고 걸음을 멈췄다.
“아버님과 어른들께 죄송하다는 말도 없이 그냥 나가겠다는 거냐?”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형님.”
실망한 남궁호가 힘없이 말하자, 남궁유천이 더욱 강하게 다그쳤다.
“아무리 기분 상한 일이 있다 해도 그렇지, 어른들께 후회할 일을 하지 말라니? 그게 어디 네가 할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