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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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78화
“…….”
윤서문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눈도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씨발…….’
똥을 밟은 정도가 아니었다. 삼 년 묵은 똥통에 목까지 빠진 기분이었다.
차가운 눈길로 그를 쳐다본 장천운이 몸을 돌렸다.
“나갑시다, 노인장.”
장천운이 노인, 단목화종과 함께 객잔을 나간 후, 한 사람이 이층의 작은 방 창문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퀭한 눈, 뼈에 가죽만 씌운 것 같은 얼굴, 백골귀마 공회였다.
“저놈, 내가 살려준 걸 알기나 할지 모르겠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소림사의 대환단을 준 사람은 장산이지만, 자신이 구해왔고, 정신을 차릴 때까지 돌보았지 않은가. 썩은 냄새나던 이상한 약도 먹였고.
통나무집에서도 자신이 재빨리 빼돌리지 않았다면 천외의 놈들이 쳐들어왔을 때 죽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그 빚을 받아야 하는데…….
입맛을 다시다 몸을 돌린 그는 방을 나서서 후원으로 갔다.
후원에는 작은 창고가 있었다. 창고 안으로 들어간 그는 지하로 향하는 비밀문을 열고 밑으로 내려갔다.
음식재료를 저장해 놓는 저장고였다. 그런데 그곳에는 음식 재료 외에도 세 사람이 더 있었다.
무 노인과 장산, 소천이었다.
“장천운이 왔다 갔습니다.”
무 노인과 장산의 표정이 흔들렸다.
“천운이 왔다갔다고?”
“예, 어르신. 지금은 갔지만 다시 올지 모릅니다. 당분간 밖으로 나가지 마시고 이곳에 계십시오.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는 바로 전해드리겠습니다.”
무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씁쓸한 미소가 입가에 매달려 있었다.
장산이 물었다.
“공 형, 우리를 찾는 노인이 누군지 아시오?”
“모르는 사람인데, 왠지 께름칙하더군.”
대답하는 공회의 얼굴이 굳어 있다. 천중십마에 속한 고수가.
“묘한 것은, 그 늙은이는 어르신을 찾는 게 아니라 자네를 찾고 있었네.”
“저를요?”
장산은 곤혹스런 마음이었다.
천하에서 자신의 정확한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한 손으로 다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었다. 노인이 누군데 자신을 찾고 있는 걸까?
그때 공회가 말했다.
“그 늙은이의 소매 속에 쇠사슬이 감겨 있었네. 그런데 쇠사슬이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움직이더군.”
“쇠사슬이 뱀처럼 움직인다? 편이 아니고?”
“그렇다네.”
장산은 이마를 찌푸렸다.
“사람을 풀어서 그 노인에 대해 알아보십시오.”
“알았네.”
* * *
장천운은 비령각으로 하여금 무 노인의 흔적를 쫓게 하고 단목화종과 함께 양각동을 나섰다.
노인, 단목화종은 아무 말 없이 장천운을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보통 놈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마경의 남자, 겁을 상실해서 천외삼성조차 막 대한다는 장천운이라니.
어떤 놈은 그를 삼두육비의 괴물처럼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데 직접 보니 평범한 애송이였다.
뭐, 애송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강했지만. 생긴 것도 평범한 편은 아니었고.
그래도 성격은 소문과 일치하는 듯했다.
“개인적인 사정이 뭔지 말씀해주시면 제가 도와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장천운이 먼저 미끼를 던졌다. 걸리면 좋고, 걸리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단목화종이 말했다.
“그와 해결할 문제가 남아 있다. 그에 대해선 말해줄 수 없으니 이해해라. 그런데 내가 찾는 사람과 네가 찾는 노인이 함께 있다는 건 정확한 거냐?”
“물론입니다. 제가 두 눈으로 봤으니까요.”
“그 늙은이는 왜 찾는 거냐? 원한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개인적인 사정이 조금 있습니다.”
“…….”
자신과 똑같은 대답에 단목화종은 어이가 없었다. 꼭 자신을 놀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도 똑같이 말했다.
“그 사정이 뭔지 말해주면 노부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정말입니까?”
“노부가 왜 너에게 거짓말을 하겠느냐? 대신 너도 노부를 좀 도와주어야 한다.”
“상부상조?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그럼 어디 말해봐라.”
“무 노인은 제가 어릴 때 모셨던 할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요즘 와서 청산자에게 쫓기고 있죠.”
장천운은 최근의 일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단목화종에게 말해주었다.
다만 무 노인이 구천성과도 적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최근에 와서는 적인지 아닌지조차 애매했다.
“그래서 그분을 찾으려고 하는 겁니다. 위험하니까요.”
단목화종은 청산자의 이름을 듣고 멈칫했을 뿐, 천외에 대해서 일절 말하지 않았다. 자신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 늙은이가 너를 잘 안다면 왜 구천성으로 가지 않는 거냐?”
“말 못할 사정이 조금 있습니다. 당장은 대답하기 힘든 이야기니 양해해주십시오.”
단목화종도 더 묻지 않았다. 탁무겸은 철혈마절을 익힌 자가 용환종을 죽였다고 했다.
더 묻지 않아도 대략적인 정황은 유추할 수 있었다.
어쨌든 장천운과 협력하면 자신이 원하는 일도 해결될 수 있을 터.
마음에 걸리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자신으로선 막다른 골목에 선 입장이었다.
“대답하기 힘들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럼 이제 서로 원하는 것을 말해보자.”
“먼저 말씀해보십시오. 장유유서(長幼有序)라고 하지 않습니까?”
“너 정도라면 비밀리에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있겠지?”
“조금 있죠.”
“그들을 이용해서 내가 찾으려는 자를 찾아줘라. 단, 구천성과는 별개로 처리해야 한다.”
“알았습니다. 해보죠.”
“이제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봐라.”
장천운은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돌린 그가 단목화종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더도 말고 한 달만 도와주시죠.”
“설마 노부더러 네 부하가 되라는 말은 아니겠지?”
단목화종이 으르렁거리듯 나직이 말했다. 목소리에 은근한 분노가 실려 있었다.
참으로 건방진 놈 아닌가. 감히 자신을 부하로 부리려 하다니!
장천운은 노인에게서 분노를 느끼고도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 욕심은 없습니다. 제가 언제 부하가 되라고 했습니까? 도와달라고 했지요. 노인장께선 그저 노인장이 하시고 싶은 일만 하시면 됩니다.”
“네가 바라는 일 중 노부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 된다?”
“그렇습니다. 하기 싫으면 대별산에 들어가셔서 한 달 내내 놀면서 지내셔도 됩니다. 어차피 계약서를 쓰는 것도 아닌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너에게 뭐가 남지?”
“손해 볼 것도 없지 않습니까?”
단목화종은 장천운을 빤히 바라보았다.
별 웃기는 놈 다 봤다는 표정. 은근슬쩍 끓던 분노도 빠르게 식었다.
장천운의 말대로라면 자신에게도 손해될 것이 없었다. 탁무겸에게 노출될 위험도 줄일 수 있을 것이고.
“좋다. 네 요구를 받아들이마.”
장천운이 씩 웃었다.
언뜻 생각하면 남는 것 없는 장사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단목화종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말이다.
그것만 해도 손해가 아니었다.
그때 문득 든 생각.
“아! 노인장께서 말한 사람,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알려주시면 찾기가 더 쉬울 것 같습니다만.”
대답을 미룬 채 두어 걸음 더 걸은 단목화종이 고개를 미미하게 저으며 말했다.
“노부도 정확한 이름은 모른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왜 찾는단 말입니까?”
“노부가 아는 사람과 관련 있는 것 같아서.”
“아는 분이 누군데……?”
단목화종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봐야 입꼬리가 살짝 비틀린 정도에 불과했지만.
장천운이 재차 물을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저울질하고 있을 때, 단목화종의 비틀린 입술 사이로 이름 하나가 새어나왔다.
“장철산이다.”
“……!”
장천운은 단목화종과 헤어진 후 비령각 무사들과 함께 무 노인의 흔적을 한 시진 정도 더 찾아보았다.
그 시간 내내 장철산이라는 이름이 떠나지 않았다.
노인이 말한 장철산이 정말 자신이 알고 있는 장철산일까?
노인은 이름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도.
혹시 구천성에서 오래 전에 사라진 장철산이냐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대답하지 않았다.
‘장철산은 죽었다고 했는데…….’
사마경도 그랬고, 우문각도 그랬다.
혹시 동명이인 아닐까?
그럴 가능성도 컸다. 세상에 동명이인이 어디 한두 사람이던가?
‘좌우간 찾아보면 알겠지.’
무 노인을 찾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마음을 다잡은 장천운은 양각동 인근 마을까지 샅샅이 뒤져보았다.
그러나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무 노인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석양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갈 무렵, 구천성에서 급보가 전해졌다.
“대주, 즉시 구천무원으로 돌아오시라는 명령입니다.”
“지금 바로?”
“예, 무림맹 맹주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 * *
무림맹주의 죽음은 강호를 또 다른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병으로 죽은 것도 아니고, 싸우다 죽은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는 청산궁의 계교로 인해 죽었지만, 세상에는 내부에서의 알력으로 인한 죽음처럼 알려졌다.
제갈승조는 무림맹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했다.
우내이선이 와 있었기에 혼란 상태는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각 문파의 장로들이 차기 맹주 자리를 놓고 주도권다툼을 하는 바람에 전열을 정비하기가 쉽지 않았다.
구천성에 무림맹 상황이 전해진 것은 그때쯤이었다.
구천성으로 돌아간 장천운은 곧장 사마경의 방으로 갔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사마경과 우문각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사마경이 방으로 들어서는 장천운을 보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어서와.”
“종무진인이 죽었다는 게 사실입니까?”
“제갈 군사가 직접 연락해왔어. 읽어 봐.”
사마경은 제갈승조로부터 전해진 서신을 건네주었다.
서신을 세밀하게 읽어본 장천운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일이 골치 아프게 되었군요.”
“제갈 군사가 상황을 수습한다고 해도, 맹주가 죽었으니 전처럼 움직이기는 힘들 거야.”
청산궁을 따르는 정파세력에 한 동안 무림맹의 영향력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암천문으로 향했던 칼끝을 구천성 쪽으로 돌릴 수도 있다.
“청산자와 탁무겸은 이 기회를 철저히 이용하려고 할 겁니다.”
우문각이 그 말에 자신의 생각을 더했다.
“내 생각도 그렇다. 무림맹이 움직이기 전에 세력을 모아서 우리를 치려고 할지도 모른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즉시 금양관 쪽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야 합니다.”
“이미 지시를 내렸다. 무림맹에도 정확한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서 사람을 보냈다.”
그때 사마경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문 숙부, 우리가 먼저 선수를 치는 건 어떻겠어요?”
“서두르면 그들의 계책에 휘말려들 수 있소.”
“무사의 숫자만 해도 다섯 배나 되요. 고수들도 많이 늘었죠. 철저히 계획을 세워서 치면 되지 않을까요?”
우문각도 그러고 싶었다. 빨리 끝내는 게 희생을 줄이는 길일지 몰랐다.
그러나 상대는 청산궁과 암천문이었다.
청산자와 탁무겸.
그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깨달음을 얻은 자들, 일반 무인들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우문각이 실익을 계산하고 있는 사이 장천운이 말했다.
“대령주 쪽이 움직이지 않으면 뒤통수를 맞을 수 있습니다.”
“먼저 움직이게 만들어 봐.”
장천운은 사마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표정이 어찌나 싸늘한지 하얀 뺨에 서리가 내려앉은 듯했다.
이미 공격할 생각을 굳힌 것 같다.
왜 서두를까. 부친의 시신을 찾지 못하는 것 때문에 마음이 급해진 걸까?
공손백 쪽이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소성주 쪽에서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후다. 소성주 세력의 피해가 커지면, 공손백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모른다.
심한 경우 검을 거꾸로 잡고 소성주의 등을 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에게 선물을 주는 건 어떻겠습니까?”
“선물?”
“전에 얻은 응한곡의 서신 정도면 선봉에 서는 걸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공손백이 암천문의 사람이라는 실질적인 증거는 응한곡의 서신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손백으로서는 그 서신만 없으면 어떤 거짓말을 하든 관계를 부정할 수 있으리라.
다른 증거가 또 있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좋아, 줘버려. 어차피 그 서신만으로는 대령주를 몰아붙이는데 한계가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소성주.”
“근데 정말 그 서신 말고 증거가 없어?”
사마경이 툭 던진 질문에 장천운이 조소를 지었다.
“하나 더 있습니다. 서신보다 더 확실한 증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