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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76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02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76화

“적상천입니다. 친구들은 피부가 검다고 해서 흑랑이라고 부르죠. 근데 이름은 왜 물으십니까?”

수더분한 인상. 게다가 근골이 제법 괜찮았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다. 진흙 속에 묻힌 진주였다. 공력도 제법 탄탄하고.

게다가 마침 그는 백주대낮에 마음대로 자신을 드러내놓고 다닐 처지가 아니었다.

나름대로 모습을 많이 바꾸어서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해도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만에 하나 자신을 알아보는 자가 있으면 문제가 커진다.

“너, 나 좀 도와다오.”

“공짜는 사양합니다. 먹고 살려면 저도 벌어야 하니까요.”

“대가는 충분히 주마.”

“뭐 그렇다면야…… 근데 뭘 도와드려야 합니까?”

“사람을 찾으려 한다. 너보고 찾으라고 하지는 않을 거다. 너는 그저 나와 함께 다니며 자잘한 심부름이나 하면 된다.”

“하하하, 제가 남 심부름 같은 것은 잘하지 않지만, 나이 드신 분이 부탁하니 들어드리죠.”

“열심히 도와주면 무공도 더 강해질 수 있을 거다.”

무공이 더 강해진다고?

이 노인이 자신을 강호초출로 보는 건가?

그래도 명색이 섬서에서 알아주는 흑랑인데 말이지.

“정말이십니까?”

“물론이다. 노부는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니라. 어쨌든 너는 나와 계약했으니 이제부터 나를 따라다녀라.”

“돈은……?”

“후불로 계산하자.”

“…….”

적상천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노인이 불쌍해보여서 바로 거절도 못했다.

‘그래, 어차피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남은 돈으로 아직 며칠은 버틸 수 있었다.

돈이 떨어질 때까지 도와주고, 그래도 돈을 안주면 헤어지면 되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흑랑마제 적상천이 강호를 종횡하던 청년시절, 전대의 암천신마 단목화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에는 그러한 사연이 있었다.

 

* * *

 

무림맹 총단에서 그 일이 벌어진 것은 가을이 깊어가던 시월 중순이었다.

“이게 무슨 짓이오?”

종무진인은 눈을 부릅뜨고 앞에 서 있는 세 사람을 노려보았다.

종남파의 정소도장, 황보세가의 황보경, 청성파의 정양자.

모두 무림맹의 장로인 자들이었다.

그들은 조금 전 긴급히 현안 문제를 논의할 게 있다고 찾아왔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황보경이 느닷없이 종무진인의 혈도를 제압했다.

종무진인은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지만, 절정고수인 황보경이 뻗은 손을 피하기에는 거리가 너무나 가까웠다.

“맹주, 이해해 주시오. 우리는 더 이상 무림맹이 혈풍에 휘말리는 걸 바라지 않소.”

정소도장이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종무진인은 차가운 눈빛으로 정소도장을 바라보았다.

“그대들도 청산궁 사람들이오?”

“아니외다. 다만 청산진인의 뜻이 옳다고 생각할 뿐이오.”

“무량수불. 참으로 참담한 마음이외다.”

“우리를 이해해달라고는 하지 않겠소. 강호의 안녕을 위해서 택한 길, 욕을 먹는다 한들 대수겠소.”

“아쉽게도 그대들 뜻대로는 되지 않을 거요.”

그때였다. 전각문이 활짝 열리면서 차가운 목소리가 전각 안을 울렸다.

“천외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 감히 맹주님을 위협하다니! 세 분은 순순히 무릎을 꿇고 투항하시오!”

“헛!”

“이런……!”

대경한 세 사람은 홱 몸을 돌려서 전각의 문 쪽을 바라보았다.

제갈승조가 전각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최근에서야 알게 된 무천단이 담강융과 함께 들어섰다.

“이미 장로들의 동료를 포박했소이다! 순순히 검을 내리고 투항하시오!”

세 사람의 표정이 흔들렸다.

도대체 언제 그런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자신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은밀하게 처리했다는 것은, 자신들 역시 의심을 사고 있었다는 뜻.

세 사람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떠올랐다.

“물러서라, 제갈승조! 물러서지 않으면 맹주의 목을 자를 것이다!”

정양자가 검을 종무진인의 목에 들이댔다.

종무진인은 검이 목에 닿아 있는데도 놀라지 않았다. 놀라기보다는 착잡한 표정으로 처연하게 말했다.

“군사, 노도는 신경 쓰지 말고 이자들을 잡게나. 노도도 이 정도면 살 만큼 산 것 같구먼.”

“맹주…….”

“무량수불. 무림의 정의가 바로세워질 수 있다면 노도는 언제든 목숨을 버릴 수 있다네. 앞으로 맹을 부탁하네.”

담담히 도호를 외며 말을 마친 종무진인이 느닷없이 목에 닿은 검을 잡더니 자신의 목을 그어버렸다.

“맹주!”

제갈승조가 소리쳤다.

세 사람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설마 종무진인이 자결을 택할 줄이야.

“저들을 잡아라!”

제갈승조가 분노의 외침을 터트렸다.

담강융과 무천단 무사들이 맹주전 안으로 진입했다.

정소도장 등 셋은 전각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창문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와장창!

창문을 부순 그들은 줄지어서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전각 밖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무림맹의 최정예 무사단인 정천무룡단 무사 백여 명이 맹주전을 에워싸고 있었다.

 

정천무룡단이 정소도장 등을 잡는 동안 제갈승조는 종무진인의 상처에 긴급조치를 취했다.

“빨리 의선당주를 불러라!”

목의 동맥이 잘린 곳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지혈을 했음에도 피가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노도 걱정은 말게나.”

종무진인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군사 말이 옳았네. 그들에게 한줌이나마 선의의 마음을 품은 노도가 어리석었어.”

암천문 무리를 공격하면서 청산궁 사람들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했다. 어쨌든 그들은 정파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제갈승조가 몇 번이나 우려를 표명했지만, 종무진인은 그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닙니다, 맹주. 그게 어찌 맹주의 잘못이란 말입니까?”

“우내이선을 모시고 군사의 뜻대로…… 하게, 모든 걸.”

“맹주…….”

“천외…… 그들을 반드시…… 정리하게나, 원시천존께서도…… 그리 되길 바랄 터…….”

 

* * *

 

사흘이 지나자 장천운의 내상이 거의 다 완쾌되었다.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회복이었다.

장천운은 자신의 내상이 빠르게 나은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사마경과 밤을 보낸 것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독기라고 생각했던 그 기운 때문인 듯했다.

독기를 자유스럽게 풀어놓고 운기를 하면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전에 비하면 고통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

의외라면 고통을 겪으며 대주천을 하고 나면 내상이 많이 나아진다는 것이었다.

몸이 나아지자, 장천운은 우문각을 찾아가서 솔직히 말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무 할아버지를 찾아야겠습니다.”

“동방 노인을?”

“예. 비령각의 정보망을 최대한 가동해 주십시오.”

“아직도 그가 이 근처에 있을 거라고 보느냐?”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목적이 있어서 이곳에 왔을 테니…….”

무심코 대답하던 장천운이 말끝을 흐리며 우문각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응? 뭘…… 말이냐?”

“무 할아버지가 이 근처에 있었다는 거, 알고 계셨습니까?”

“그게…….”

“알면서도 말하지 않은 겁니까?”

“그게 아니라…….”

“아하! 무 할아버지가 근처에 있다는 걸 말하면 제가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줄 알았나 보죠?”

“말하려고 했는데,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제가 무 할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 청산자와 싸우러 가기 전부터 알았죠?”

“우연히 알게 되었을 뿐이야.”

“왜 말하지 않은 겁니까? 말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잖습니까?”

“청산자가 그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네가 끼어드는 걸 원치 않았다. 잘못하면 청산자에게 죽을지도 모르니까! 됐냐?”

우문각이 벌게진 얼굴로 버럭 소리쳤다.

장천운은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아무래도 무안함을 모면하려고 과장된 투로 말하는 듯했다.

“정말 저를 위해서라면 당장 비령조를 동원해서 동방 노인의 행방을 알아봐 주십쇼.”

“오냐, 알아보마. 하면 될 거 아니냐?”

버럭, 소리를 지른 우문각이 몸을 홱 돌렸다.

“정유를 들어오라 해라! 급한 일이라고 해!”

밖을 향해 명령을 내린 그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후우우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괜히 말실수를 해서…….’

그때 그의 등 뒤에 대고 장천운이 말했다.

“무 할아버지와 함께 있는 두 사람에 대해서도 아는 대로 말해주쇼.”

우문각이 다시 몸을 돌렸다.

“동방 노인과 함께 있는 두 사람이라니, 그게 누군데?”

“정말 모릅니까?”

“모르니까 묻는 거 아니냐?”

“하도 거짓말만 하셔서 믿을 수가 있어야죠.”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

울컥한 우문각이 빽 소리쳤다.

그제야 장천운이 넌지시 물었다.

“총사, 무 할아버지가 전대 성주의 시신을 가져갔다는 건 아십니까?”

우문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그게 사실이야?”

사마경이 아직 우문각에게 말하지 않은 듯했다.

“모르셨습니까?”

“이런…… 그걸 이제야 알다니…….”

미리 알았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동방 노인을 찾아 나섰을 것이다.

청산자와 싸우는 한이 있어도.

“그런데 왜 동방 노인이 전대 성주의 시신을 가져간 거지? 어디에 쓰려고?”

“소성주를 협박하려고 했을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시신을 어딘가에 두었다는 건데…… 아냐, 앞뒤가 맞지 않아. 지금 상황에서 전대 성주의 시신을 놔둔 채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는 게 말이 된다고 보느냐? 차라리 시신을 돌려주는 대가로 안전을 보장 받든지 하겠지.”

그 일은 장천운이 생각해도 이상했다.

협박이나 대가를 원하는 게 아니라면, 전대 성주의 시신을 가져간 목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좌우간 최대한 빨리 찾아보쇼.”

“알았다. 최대한 정보망을 가동해서 찾아보마.”

이제는 우문각도 동방 노인의 행적이 궁금해졌다.

그 노인은 왜 전대 성주의 시신을 가져간 걸까?

‘분명히 뭔가 있어.’

 

* * *

 

금양관은 거대한 절벽 아래 자리 잡고 있었다.

원시천존을 모시는 금양궁을 중심으로 주 도관과 신도를 위한 건물 십여 채가 전면과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광경은 장엄하게 보였다.

그러나 오늘 날에는 도인들이 아닌 무사들이 그 커다란 도관을 차지하다시피 한 상태였다.

양떼구름이 하늘을 느릿느릿 흘러가던 날, 청산자와 탁무겸은 금양궁 바로 옆의 이층으로 된 도관에서 마주 앉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죽이기 위해 칼을 들이대던 걸 생각하면 너무나 평온한 모습이었다.

“원시천존, 금룡이 이 자리에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살다보면 이런저런 일이 생기는 법이지요. 제가 진인과 마주앉아 있듯이 말입니다.”

“하긴 세상은 항상 같을 수가 없는 법이지. 오늘은 바람이 불고 비가 오더라도 내일은 해가 뜰 수 있다네. 그렇다 해서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을.”

“현명하신 말씀. 이래서 제가 진인을 좋아 하는가 봅니다.”

“각설하고, 내기에 관심이 없던 시주가 노도를 찾아왔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제가 온 이유를 잘 아실 거라 믿고 있습니다만.”

“노도가 어찌 모든 걸 알 수 있겠는가.”

“모르셨다면 저와 단 둘이 마주앉으셨겠습니까?”

자신을 잡기 위해서 많은 사람을 대기시켰을 것이다, 그 말이었다.

한편으로는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잖아?’라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었다.

“허허허허, 원시천존. 시주가 이 늙은 말코를 부끄럽게 만드는구먼.”

“별 말씀을. 그리 말씀하시니 무안합니다.”

“어쨌든 탁 시주의 생각이 그렇다면 노도도 불필요한 저울질은 하지 않겠네.”

“저 역시 어제까지의 기억은 잊고 내일만 생각하겠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암천문을 공격한 일은 잊겠다, 그 말.

청산자는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하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이번 내기는 올해를 넘기지 않고 마무리 짓는 게 나을 것 같구먼. 아마 지금쯤 여주가 시끄러울 게야. 그럼 암천에 대한 공격도 멈추겠지. 해서 청산의 그늘 아래 있는 아이들에게 이곳으로 오라고 했네.”

탁무겸은 그 말을 듣고 눈을 칼날처럼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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