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75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89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75화
장천운이 우문각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예, 소성주. 총사께서 도와주시면 소란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겁니다.”
우문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끄응, 물귀신이 따로 없군.’
그렇다고 해서 못한다고 할 수도 없는 일.
“내가 뭘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느냐?”
“명단만 주시면 됩니다.”
“명단?”
“의심이 가는 자의 명단을 다 뽑아놓으셨잖습니까?”
“그건 말 그대로 의심이 가는 자를 파악해놓은 것일 뿐, 천외의 간자여서가 아니다.”
“제가 원하는 게 그겁니다.”
장천운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우문각은 그제야 장천운의 뜻을 눈치 챘다.
명단에 적힌 자는 대부분 공손백과 나극 쪽 사람들이었다.
* * *
명단에는 사십여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각 조직의 간부들이 절반을 차지했고, 빈객도 열 명 이상 되었다.
개중에 절정고수는 이십여 명.
제법 많이 알려진 사람도 있었고, 명단을 보고서야 이름을 알게 된 자들도 상당수였다.
그들을 잡는 작전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겉으로는 율검당이 주도하는 것으로 했다. 하지만 그들 뒤에는 장천운이 이끄는 흑월대와 흑영대가 있었다.
거기다, 환마 우곡과 패왕 진교청 등 노고수들도 함께 나섰다.
명단에 적힌 자들을 찾아간 율검당원들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대구천령의 명령을 받들어서 몇 가지 사항에 대해 조사 중입니다. 동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분이 나빠도 반발할 수 없었다. 대구천령의 명령은 반발 자체가 죄였다.
그래도 몇 사람은 수상한 분위기를 눈치 채고 동행을 거부했다.
그들은 흑월대가 기다렸다는 듯 공격해서 반쯤 기절 시킨 후에 잡아갔다.
빈객 중 하나인 여곽은 도주하려고 몸을 날렸다가 환마와 마주쳐서 다리가 부러졌다.
공손백은 한바탕 거칠고도 거센 바람이 구천성 내를 벼락처럼 휩쓴 뒤에야 사건의 전말을 보고받았다.
그때는 이미 전격적인 체포 작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이년이 어디서 잔머리를……!”
노화가 솟구친 그는 곧장 청묵전을 나섰다.
마침 장천운이 율검당에 있다는 보고도 들어온 터였다.
그놈이 돌아오기 전에 사마경을 만나서 단단히 따질 작정이었다.
만약 만남을 거부하면, 나름대로 그 상황을 이용할 계획까지 서 있었다.
의외로 사마경이 순순히 만나주는 바람에 두 번째 계획은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공손백이 방 안으로 들어갔을 때 사마경은 책을 보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대령주.”
책을 덮은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공손백을 맞이했다.
공손백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 목에 힘을 주었다.
“소성주,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쓸 만한 자들을 잡아가두면 어쩌자는 건가?”
그가 으르렁거리듯 다그치는데도 사마경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만에 하나 있을 상황을 대비해서 조사해보려는 것뿐이에요.”
“이런 일이 성의 무사들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걸 모르는가? 더구나 지금처럼 강적을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는 사소한 일이 치명적인 독으로 발전할 수 있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미천해서 잘 모를 것 같으면 윗사람과 상의를 해봐야 할 것 아닌가!”
“대령주께선 제가 그들을 무턱대고 잡아가두었을 거라 생각하시나요?”
“물론 이유야 있겠지만…….”
“간자가 아니라 해도 한두 가지씩 구천률을 어기는 죄를 지은 사람들이에요. 그 중에서 간자들을 추려낸다면 사기가 더 올라갈 수도 있겠죠.”
공손백은 이를 악물고 사마경을 노려보았다.
슬쩍슬쩍 감정까지 건드려가며 흔들어보았지만, 도도한 그녀의 모습은 한 치의 미동도 없었다.
‘독한 년. 해볼 테면 해봐라, 이거지? 오냐,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
작심한 그가 반박하기 위해 입을 열려는데, 사마경이 한발 먼저 불쑥 질문을 던졌다.
“어제 암천문의 탁무겸 문주가 대령주를 찾아가지 않았나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공손백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이 목에 턱 걸렸다.
“무, 무슨…… 말인가? 그가 왜 나를 찾아온단 말인가?”
“대령주를 만나러 왔다가 잠시 저에게 들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군요.”
“……?”
공손백은 머리에 바늘이 꽂힌 기분이 들었다.
무슨 소리지? 누가 누구를 만나?
“어제 탁무겸 문주가 저를 찾아왔거든요.”
“그가…… 소성주를 찾아왔다고?”
“그래요. 제가 뭐 득볼 게 있다고 거짓말하겠어요. 저쪽 창문이 새 것으로 바뀐 것 보이지요? 세상에, 그가 창문을 부수고 들어왔지 뭐예요.”
“…….”
정말이었다. 창문이 새것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그가 왜 소성주를……?”
“저보고 부인이 될 의향이 있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싫다고 했더니, 며칠 시간을 줄 테니 잘 생각해보라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어요.”
담담히 말을 맺은 사마경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눈 속에서 피어난 빙화처럼 차디찬 냉기를 풍기는 미소였다.
복수를 위해 십 년을 기다릴 만큼 냉정하고 치밀한 공손백조차도 그 순간만큼은 머릿속이 텅 빈 기분이었다.
‘그놈이 미쳤나?’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사마경에게 부인이 되라는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헛소리 할 시간 있으면 사마경의 목이나 따버릴 것이지!
그럼 자신이 이렇게 화가 나서 쫓아올 일도 없었을 것 아닌가 말이다.
물론 사마경의 미모가 천하를 모두 포기해도 될 정도로 대단한 것은 사실이었다. 자신조차 보고 있으면 눈을 떼기 싫을 정도니까.
그러나 암천신마가 여자 때문에 천하를 포기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대령주께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뭘…… 말인가?”
“제가 탁무겸 문주의 부인이 되는 것 말이에요.”
“말도 안 되는…….”
공손백은 말꼬리를 흐렸다.
어쨌든 탁무겸에게 한 발을 걸치고 있는 처지 아닌가. 자신이 한 말을 탁무겸이 알게 된다면 이익 될 게 없었다.
그놈이 진짜로 사마경에게 홀려 있다면 말이다.
“그렇죠? 확실히 말도 안 되는 소리죠? 호호호호, 남들이 암천문주에 대해 신처럼 말해서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정말 주책없는 사람이지 뭐예요.”
공손백은 어이없어 하는 표정으로 사마경을 바라보았다.
주책없는 사람.
탁무겸을 그렇게 표현하는 사마경이 대단하게 보였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 가슴에 살심이 두껍게 쌓였다.
자신은 말 한마디도 함부로 못하는 탁무겸을 여자에 눈이 먼 주책바가지 노인 취급하다니.
그녀의 도도함에 질투심마저 일었다.
‘이제 보니 반드시 죽여야 할 놈은 장천운 만이 아니다. 결국 이 계집을 죽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어.’
그때 뒤쪽에서 무형의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그의 뒤에는 영호관과 구양명이 있었다. 그의 살심을 눈치 채고 경고를 보내는 듯했다.
‘건방진 놈들.’
그들 정도는 그의 안중에 없었다.
문제는 그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구천호령도 있고, 흑월대의 애송이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제법 쓸 만한 실력을 지닌 놈도 많았다.
거기다 환마와 교왕, 패왕까지 나타난다면, 공격하고도 사마경을 죽이지 못한다면 그 동안 쌓은 탑이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에 있는 계집이 전과 비할 수 없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오냐, 오늘은 참으마.’
당장은 속으로 삭이는 수밖에.
“아! 대령주께서도 청산궁과 암천문이 손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으셨지요?”
기다렸다는 듯 사마경이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당연히 알 거라는 투.
“언뜻 듣긴 했네.”
“그럼 내부의 혼란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아실 거예요. 오늘 일도 그럴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조치이니, 대령주께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조사해서 이상이 없는 사람은 바로 돌려보낼 거예요.”
절묘한 마무리.
반박할 말이 마땅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공손백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언쟁은 자신이 졌다는 걸.
“물론 나도 소성주의 마음은 이해하네. 그래도 기왕이면 미리 언질을 주었으면 싶군.”
“그 점은 죄송해요. 앞으로는 그렇게 하겠어요.”
특히 암천문과 청산궁을 공격할 때는.
사마경은 담담히 말을 맺고 찻잔을 잡았다.
“괜찮은 차를 구했는데, 차 한 잔 하시겠어요?”
“괜찮네. 그만 가봐야겠어.”
공손백은 뜨거운 차보다 차디 찬 냉수를 한 잔 마시고 싶었다.
“그럼 냉수라도 한잔 드릴까요?”
“됐네.”
냉수도 목에 걸릴 것 같았다.
빌어먹을!
141장 양각동(羊角洞)에서의 만남
공손백이 떠난 지 이 각쯤 지났을 때 장천운이 구천무원으로 돌아왔다.
“대령주가 왔다 갔어.”
“들었습니다. 찍소리도 못하고 돌아갔다더군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별 일없이 돌아갔어.”
나날이 발전하는 사마경의 말솜씨를 장천운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도 가끔은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물며 마음이 조급해진 공손백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모두 마흔한 명을 잡아넣었습니다. 그들 중 최소 절반 이상은 천외의 끄나풀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그들 외에도 하수인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만, 점조직의 특성상 선이 끊어졌으니 우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 이제 저들을 상대할 계획을 본격적으로 세워봐야겠어.”
사마경은 일천 무사를 추가로 파견해서 동문 쪽 마을 외곽에 방어전선을 구축했다.
구천성에서 금양관까지 사십 리. 그 거리를 두고 살을 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천외 세력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천하 강호의 모든 시선이 구천성으로 집중되었다. 무림맹도 파천회도 언젠가부터 조용해졌다.
며칠 동안은 서로 간에 아무런 충돌도 없었다.
구천성은 청산궁과 무명장을 치면서 발생한 사상자를 처리하느라 공격을 감행할 여력이 없었다.
청산궁도 아직은 공격할 여력이 되지 않았고, 암천문 역시 금룡신군 일행을 치며 본 피해가 적지 않았다.
서로가 전열을 정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당장 전격적인 싸움이 벌어지면 결국 남 좋은 일만 시켜줄 뿐.
덕분에 장천운은 내상 치료와 독기를 다스리는 일에 전념할 수 있었다.
아마 청산자나 탁무겸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지금처럼 조용히 있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구천성과 장천운으로선 천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천하의 이목이 구천성에 집중된 어느 날, 한 사람이 북문 밖에 있는 마을로 들어섰다.
동문이나 남문에 비하면 북문 쪽은 그나마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다.
길게 늘어진 머리, 거친 수염, 촌노나 입을 법한 허름한 마의의 옷소매가 손까지 뒤덮인 그는 나이를 짐작키 힘든 노인이었다.
노인은 허름한 객잔에 방을 잡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밤이 되었을 때 어슬렁어슬렁 객잔을 나섰다.
‘그 아이가 정말 철산이고, 아직 구천성 근처에 있다면 찾아낼 수 있을 거다.’
눈으로 봐야만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다른 방법으로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특히 상대가 특정한 무공을 익힌 자고, 그 무공을 익힌 자의 몸에서 특정한 기운이 흐르고 있다면.
그런데 장철산은 천하에 오직 그만이 아는 매우 특이한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노인은 그 기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장철산이 그 기운을 끌어올린다면 백 장 떨어진 곳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노인은 난생 처음으로 하늘에 기원했다.
‘하늘이여,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 아이를 한번만 만나게 해주시구려.’
노인은 갈지자로 이동하며 남문 쪽 마을까지 갔다가 북문 쪽으로 되돌아왔다.
갈 지(之)자로 이동하다 보니 두 시진이나 걸렸다.
“이보슈, 노인장. 여차하면 목이 달아나니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쇼.”
지나가던 무사 하나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노인에게 말했다. 행색을 보아하니 떠돌이 무사인 듯했다.
최근 며칠 사이에 많은 무사들이 구천성으로 몰려들었다. 개중에는 떠돌이 용병들도 많았다.
노인은 자신을 걱정해주는 떠돌이 무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이십대 후반이 됐을까 싶은 청년이었다. 정말로 걱정이 되어서 말한 듯했다.
평생 처음 누군가가 자신을 걱정해주는 말을 들어본 노인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름이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