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7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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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76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73화
사마경의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우문각의 말 뒤에 숨은 또 다른 뜻을 바로 간파했다.
“암천신마도 이곳으로 왔군요.”
“그런 것 같소.”
“어디 있는지 알아냈나요?”
“모든 정보망을 가동해서 찾으라 했소. 혼자 오지는 않았을 테니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요.”
“결국 모든 싸움은 이곳에서 끝나겠군요.”
“아무래도…… 그렇게 될 것 같소.”
우문각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고는 무거운 표정으로 사마경을 바라보았다.
사마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가로 다가갔다.
반쯤 열린 창문 사이로 둥근 달이 보였다. 어느새 보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몇이나 올까요?”
우문각은 사마경이 말한 ‘그들’이 누굴 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사마경의 명령으로 십이지부에 은밀히 명령서를 보냈다. 천하가 혼란에 빠져서 몇 곳이나 명령에 따를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청산궁과 암천문도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을 터. 사마경은 그 점을 우려하고 있었다.
“절반만 온다 해도 승산은 우리에게 있소. 문제는 늦지 않게 와야 한다는 거요. 결국 하늘이 승패의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오.”
우문각의 말에 사마경이 돌아서서 도도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문 숙부, 난 하늘을 믿지 않아요. 승패는 하늘이 아니라, 내가 정할 거예요.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어떤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이기고 말 거예요.”
* * *
청산궁 역시 비상이 걸렸다.
청산자는 금룡신군의 사망소식을 보고 받고 이마를 깊게 찌푸렸다.
“금룡 시주가…… 죽었단 말이지?”
“예, 사형.”
“무량수불…….”
“탁무겸 시주가 온 것 같습니다.”
“그래, 그가 아니면 누가 금룡을 죽일 수 있겠느냐.”
“작정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구천성을 삼킨 후 천하를 노릴 생각인 게야.”
“금룡신군을 죽였다면, 본 궁 역시 언제 공격해올지 모릅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허나 바람은 꼭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니라.”
영산자는 눈을 들어서 청산자를 바라보았다. 왠지 기이한 뜻이 담긴 말이었다.
“무슨 뜻인지요?”
“탁무겸이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아니니라. 암천문의 힘만으로는 구천성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그가 잘 알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생각을 할 거라 보느냐?”
영산자의 눈이 커졌다.
“설마…… 연수를 생각할 거란 말씀이십니까?”
“원시천존. 그래, 금룡이 죽었으니 현재로선 그것이 최상의 방법이지.”
청산자의 말에 영산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적의 적은 친구’라고 하지 않던가.
더구나 상대는 탁무겸이다. 아랫사람들의 죽음 따위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자.
‘목적을 위해서 마와 손을 잡는 게 정말 정의를 위한 길일까?’
영산자는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암천문은 마중의 마, 천하의 공적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나 청산자는 흘러가는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 내기도 끝날 때가 머지않은 것 같구나. 마지막을 앞두고 상황이 아주 재미있게 흘러가고 있어.”
* * *
‘크윽!’
장천운은 속으로 비명을 삼켰다.
남사명의 말을 듣고 독기를 자신의 기운과 융화시켜보려고 했다.
일단 공력을 끌어올려서 독기가 움직이게 해보았다.
심장을 태울 것처럼 뜨거운 기운이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그 고통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이 지독한 기운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어보라는 것이지?
처음에는 그런 마음이 들면서 짜증도 났다.
―그냥 포기하고 독기를 자극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적당히 싸우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세상이 그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게 뻔했다.
금룡신군의 말이 사실이라면, 백일이 되는 날 독기에 의해서 기운이 폭주하고, 결국 자신은 혈맥이 터지면서 죽음에 이를 것이다.
독기를 배출하든지 융화시키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그런데 배출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죽든 살든 융화를 시도해보는 수밖에.
다행히(?) 그는 죽음 직전에 살아난 경험이 많았다. 극한의 고통을 겪은 적도 몇 번이나 되었고, 얼마 전만 해도 독기로 인한 고통에 의해 정신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다.
―까짓 거, 못할 것도 없어! 한번 해보자!
그래서 그렇게 결심하고 하루 종일 독기를 융화시키려 해봤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지독한 고통에 시달린 것만 해도 벌써 세 번째. 그러다 보니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지금 모습을 보면, 심한 내상 때문에 곧 뒈질지 모른다고 쑥덕거려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남의 눈을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독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면 죽을 테니까.
‘융화시킨다는 것은 내 기운 속에 녹여내야 한다는 건데, 독기가 제어되지 않고 제멋대로 폭주하니 문제군.’
청산궁 치는 시기를 너무 늦추면 안 되는데, 청산자가 언제 어떤 식으로 반격해올지 모르는데, 탁무겸도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을 텐데…….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가슴만 답답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풀어놓을 수도 없고…….’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풀어놓아?’
지금은 독기가 심장 부근 구미혈에 봉인되어 있다.
공력을 강하게 끌어올렸을 때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제어하고 있는 상태.
풀어놓을 경우 독기가 전신에 퍼져서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모두 독기가 ‘독’일 때의 이야기다.
그런데 독기가 독이 아니라면?
‘젠장, 한번 해봐?’
장천운은 오래 갈등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수많은 위험을 겪어온 그다. 자신을 믿지 않았다면 지금 살아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 나를 믿자!’
결심을 굳힌 그는 구미혈의 봉인을 천천히 풀었다.
알싸한 느낌의 기이한 기운이 마치 찻잔의 김처럼 피어났다.
봉인해둔 독기였다. 독기는 천천히 움직여서 심장 쪽으로 이동했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독기가 심장 쪽으로 이동하면서 서서히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장천운은 이를 악다문 채 구륜심법을 운용했다.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 * *
그날 밤 해시가 되었을 때였다. 우문각도 돌아가서 사마경의 방 안에는 그녀와 구양명, 연송하만 있었다.
소연추도 잠시 볼 일이 있다며 방에 없었다.
사마경은 잠들기 전에 두 시진 쯤 수련을 할 생각이었다.
최근 들어서 무공이 빠르게 늘고 있었다. 무공이 늘수록 강해지고 싶은 열망도 커졌다.
단순히 전대 성주의 딸이기 때문이 아니라, 실력으로 성주가 되고 싶었다.
그녀는 보고 있던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련하러 들어갈 거예요.”
그때였다.
몸을 돌리려던 사마경이 홱 고개를 돌려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츠츠츠츠츠.
창문이 가루로 변하면서 사방으로 폭발하듯 퍼졌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이 대경했다.
천장에 있던 철무는 창문에 이상이 생긴 걸 아는 즉시 아래로 뛰어내렸다.
잔해만 남기고 사라진 창문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흑색 비단장포를 입고서 뒷짐을 진 채 오연한 자세로 서 있는 자는 삼십대인지 사십대인지 나이를 알기가 어려운 중년 남자였다.
철무는 소리 한 점 내지 않고 그의 머리 위를 덮쳤다.
오연히 서 있던 자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사마경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물러서요!”
거의 동시에 중년 남자가 손을 들었다.
자연스러운 동작, 중년 남자의 손에서 검은 바람이 일어난 듯했다.
쾅!
단발의 폭음이 방 안을 울리고, 중년 남자를 덮치던 철무의 몸이 철벽에 부딪친 듯 튕겨나갔다.
빙글 돌면서 바닥에 내려선 그의 눈매가 잔파동을 일으켰다.
경악할 일이었다. 절대경지에 들어선 그가 일초식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고 튕겨나가다니.
그 사이 구양명은 사마경의 앞을 가로막고 검을 빼들었다. 구천호령 중 내부에 있던 네 사람도 사마경과 중년 남자 사이를 가로막았다.
“웬 놈이냐?”
구양명은 눈을 치켜뜨고 검에 공력을 집중시켰다.
“구천호령과 구양 대협도 물러서세요.”
사마경이 빠른 목소리로 말했다.
“소성주, 위험하오.”
“저 사람이 제가 아는 그 사람이라면, 그대들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어요.”
원세명과 나머지 구천호령 넷이 들어와서 사마경을 호위했다.
사공명신과 두양양 등도 입구 쪽에서 언제든 공격에 가담할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살기 띤 시선들이 창문 앞의 중년 남자에게로 향했다.
그때 사마경이 물었다.
“귀하가 암천문의 탁무겸 문주신가요?”
그 말이 다시 한 번 장내를 경악케 했다.
맙소사! 저 자가 마의 하늘, 암천문의 문주란 말인가!
사실 사마경도 넘겨짚었을 뿐이었다.
철무를 일수로 튕겨낼 수 있는 자가 천하에 몇이나 될까. 게다가 나이와 모습, 오만한 행동 등이 장천운에게 들은 말과 일치했다.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중년 남자가 순순히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맞다, 내가 암천의 주인이니라.”
정말 그다.
암천신마 탁무겸!
“아쉽군, 너무 아쉬워. 좀 더 일찍 찾아올 걸 그랬어. 전에 왔을 때 너를 봤다면 세상이 달라졌을 텐데 말이야.”
다른 사람은 안중에 없다는 듯 그는 오직 사마경만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너무 태연해서 마치 자신의 방에 있는 듯했다.
사마경은 입술을 살짝 깨물어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고는 턱을 쳐들고 도도한 어조로 말했다.
“사람을 만나러 오는 방법이 조금 특이하시군요.”
“본좌는 절차를 거치는 게 싫거든. 게다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러 오면서 피를 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경비무사들에게 말해놓을 테니 앞으로는 그냥 찾아오세요. 방문하실 때마다 창문을 다시 만들어서 달려면 귀찮으니까요.”
“하하하하. 사마경의 성격이 사마중천을 빼닮았다더니 정말이었군.”
“돌아가신 아버님을 아시나요?”
“오래 전에 두어 번 만났지. 아주 멋진 친구였어.”
“칭찬해 주셔서 고맙군요. 그런데 제 얼굴을 보러 왔나요,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으신가요?”
“너를 보러 왔지. 겸사겸사 장천운도 있으면 만나보고.”
사마경은 고개를 돌려서 좌우를 향해 말했다.
“모두 물러가세요. 찾아오신 손님에게 검을 들이대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요.”
구양명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성주…….”
“저희가 상대하겠소이다, 성주.”
원세명이 나섰다.
구천호령은 목숨을 던져서라도 성주를 구해야 한다.
설령 탁무겸을 이기지 못한다 해도 성주가 안전한 곳으로 빠져나갈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마경이 고개를 저었다.
“설마 저를 죽이기야 하겠어요? 탁 문주께서 저를 죽이려 마음먹으셨다면, 저는 벌써 목이 달아났을 거예요.”
“하나…….”
“송하야, 가서 차를 가져와. 그리고 구양 대협은 철 숙부의 부상을 살펴봐주세요.”
담담히 지시를 내린 사마경이 탁무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능어 같은 손을 뻗어서 탁자를 가리켰다.
“앉으시지요, 문주님.”
아직도 구양명과 원세명을 비롯한 무사들은 검을 거두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탁무겸은 여전히 뒷짐을 진 채 탁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금도 긴장하지 않은 표정, 행동이었다.
“뭐하세요? 모두 물러가 있으라고 했잖아요?”
사마경이 구천호령과 문 쪽에 서 있는 흑월대원들에게 다그치듯 말했다.
구천호령과 흑월대원은 사마경의 명령을 이해할 수 없었다.
탁무겸이 제아무리 강하다 한들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이길 수는 없으리라. 그만 잡을 수 있다면 암천문과의 싸움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런데 왜 말리는 걸까?
반면 사마경은 초조한 마음에 입안이 바짝 말랐다.
그녀가 본 탁무겸은 구천호령과 구양명, 흑월대만으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잡으려 했다가는 많은 사람이 피를 보게 될 것이다.
분노하게 만들어서 이익 될 것이 없는 사람.
탁무겸은 그런 존재였다.
“제 말이 우습게 들리나요?”
사마경이 워낙 강하게 소리치자, 구천호령과 흑월대원들이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사마경은 다시 탁무겸을 바라보았다.
“차가 군산의 은침인데,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