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72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8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72화
도악이 냉랭히 소리치자, 암천문 무사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추적에 나섰다.
탁무겸은 그들을 놔둔 채 금룡신군을 내려다보았다.
숨이 끊어진 금룡신군은 그저 고급 금색비단옷을 입고 있는 늙은이에 불과했다.
“기분이 괜찮군.”
하늘 밖의 하늘이었던 금룡신군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지 않은가. 참으로 감개무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천외의 하늘은 셋이 아닌 둘이다. 그리고 곧 홀로 우뚝 서게 되리라!
* * *
공손백은 동문에서 철수한 후 기이할 정도로 조용했다.
나극 역시 별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동문과 남문 쪽에서 발생한 사망자만 칠백이 넘었다. 엄청난 피해였다.
시신을 처리하는 데만도 며칠은 걸릴 듯했다.
오가는 사람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팽팽한 긴장감만 느껴졌다. 누군가가 소리라도 치면 깜짝 놀라서 손이 무기 쪽으로 갔다.
폭풍전야와 같은 긴장감이 구천성을 무겁게 짓눌렀다. 하늘에 살얼음이 낀 듯했다.
장천운은 하루 종일 남사명의 도움을 받으며 운기요상에 전념했다.
두 번에 걸쳐서 대주천을 마치자, 남사명이 그의 몸을 점검해보았다.
“좀 어떻습니까?”
장천운이 남사명에게 무거운 표정으로 물었다.
운기요상으로 내상은 조금 나아진 상태였다. 하지만 독기가 쉽사리 배출되지 않아서 고민이 컸다.
독기를 배출하지 못한 채 계속 품고 있으면 강적을 상대할 때마다 목숨을 거는 상황이 반복될 테니까.
“독기를 제거하기가 쉽지 않구나.”
남사명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이 절독곡에서 만든 해독단은 천하제일의 극독인 백령혼도 해독할 수 있는 일세의 해독약이었다.
그러나 독각독룡의 독만큼은 해독할 수가 없었다.
독각독룡의 독기가 백령혼보다 더 독한 것도 아니거늘.
그래서 더 괴이했다.
자존심도 상하고.
“독이 아닐 리는 없고…….”
무심코 중얼거리던 남사명이 눈을 치켜뜨고 입을 꽉 다물었다.
만약 독이 아니라면?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독인 것만큼은 분명해. 금룡신군이란 미친 늙은이도 독이라고 했다잖아?’
그때 문득 오래 전 그의 스승인 상천독의로부터 들었던 어떤 이야기가 떠올랐다.
“세상에는 독이라고 해서 다 독인 것은 아니다. 극히 드문 경우지만, 독의 기운을 띠고 있으면서도 독이라기보다 기(氣)로 봐야 하는 것이 있다. 특히 영성을 띤 영물의 독 중에 그런 경우가 가끔 있다고 들었다. 영물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독처럼 가장한 기운을 품고 있는 것이지. 나도 평생 접해보지는 못했다만.”
아련한 표정으로 스승의 말을 떠올린 남사명은 시선을 돌려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하나만 묻자, 혹시 그 독이 발작하면 공력이 늘어난다든가 하는 일이 없더냐?”
장천운은 눈을 깜박였다. 그 일에 대해서는 남에게 말한 적이 없었다. 말할 필요도 없었고, 괜한 자랑 같아서 말을 아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럼 정말…… 공력이 늘어나더냐?”
“예, 노선배님. 처음에는 강한 충격을 받고 나면 공력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심장이 뜨겁게 달아올라서 터질 것 같은 고통을 겪고 나면 공력이 조금 늘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고통의 대가인가 싶어서 힘들더라도 참았죠.”
설마 스승의 말이 사실이란 말인가? 자신이 지금 스승께서 말한 그 독이 아닌 독을 상대하고 있는 거란 말인가?
아직 확실한 것은 없었다. 다만 독각독룡도 영물인 것은 분명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한 가지 취해볼 방법이 있긴 하다.”
“말씀해보십시오. 아무리 어려운 방법이라 해도 심장이 터지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그게…… 독기를 아예 네가 받아들여봐라.”
“예?”
“쉽진 않겠지만, 그 독기를 너의 기운으로 받아들여보란 말이다.”
“그러다 독기에 의해서 심장이 터지면요?”
‘그럼 할 수 없지.’
하지만 아무리 거침없는 남사명이라 해도 차마 그 말은 할 수 없었다.
“터지기 전에 멈추면 되지.”
장천운은 남사명의 말이 못미더웠다.
아무리 자신의 몸이 아니라지만 너무 심하잖아?
그런데 남사명이 오히려 버럭 소리쳤다.
“이놈아! 내가 손주사위를 죽음으로 내몰 사람으로 보이냐?”
손주사위!
그 말이 억만 근 바위보다 더 무겁게 장천운의 머리를 짓눌렀다.
“노선배님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잔말 말고 해봐. 옛날에 내 스승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느니라.”
결국 남사명은 스승께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장천운은 이야기를 듣고도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입니까?”
“나도 정확한 것은 모른다. 그래도 독이 제거되지 않으니 무슨 방법이든 써봐야 하지 않겠느냐?”
아무리 그렇다고, 독기를 배출하지 않고 받아들이란 말인가?
한편 생각해보면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은 아닌 듯했다. 어쨌든 독기가 움직이고 나면 공력이 늘어난 것만은 분명하지 않은가 말이다.
어차피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거라면…….
“좋습니다. 해보죠, 뭐.”
“잘 생각했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내가 항상 곁에 있을 것이니, 너무 염려마라.”
“그런데 노선배님, 독기를 제 것으로 만드는데 도움이 될 만한 약이 없을까요?”
은근슬쩍 던져본 그 말에 남사명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는 걸 보면 뭐가 있기는 있는 모양인데, 주기는 싫은 모양이었다.
“하긴 손주사위 따위에게 뭘 주겠습니까. 제가 괜한 말을 했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장천운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남사명이 그의 뒤통수를 째려보았다.
“주면 될 거 아냐, 이놈아!”
* * *
“탁무겸이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예, 주군. 곧 이곳으로 올 겁니다.”
동백의 대답을 들은 공손백의 안면 근육이 씰룩거렸다.
비참한 마음마저 들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상상치 못했던 일이다.
사마경이 나타나기 전만 해도 손아귀에 다 들어왔던 구천성의 대권이 어느 순간 모래처럼 변해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거기다 이제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탁무겸의 밑으로 자신해서 들어가야 할 판이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한번쯤은 마지막 기회가 올 게야.’
숨을 깊게 들이쉰 공손백은 동백을 바라보았다.
“다른 말은 없더냐?”
“없었습니다.”
동백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정말 없었을까?
아닐 것이다. 그냥 조용히 넘어갔을 탁무겸이 아니다.
자신이 분노할까봐 동백이 아무 말을 안 하는 것이겠지.
아니면…… 말할 수 없는 뭔가가 있든지.
“그래? 알았다. 삼혼객을 언제든 움직일 수 있도록 해두어라.”
“예, 주군.”
공손백은 고개 숙인 동백의 머리를 노려보았다.
문득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뭔가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그쳐서 기분을 상하게 해봐야 좋을 것도 없었다.
“동백, 파천회에 연락해라.”
* * *
공손백이 동백과 마주하고 있던 그 시각.
나극은 그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칠십 대 노인 둘과 마주앉아 있었다.
오른쪽 노인은 무기가 없었는데,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구부리고 있는 두 손이 먹물에 담근 듯 시커먼 색이었다.
묵천마수 위중평.
오래 전에 강호를 떠난 것으로 알려진 마도고수 중 하나.
이름만 따져도 오왕이나 칠절, 십마는 물론이고, 정파의 대표적인 고수인 칠군에 뒤지지 않았다.
왼쪽의 노인은 녹존살 이격. 진녹색 무복을 걸친 그 역시 한때 강호에 공포로 군림했던 고수였다.
“오랜만이네. 생사곡에 들어간 지 십칠 년째던가?”
“십칠 년이라…… 세월이 꽤 많이 흘렀군.”
“그러게 말이네.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는구먼.”
“죽을 때가 되었다고 해서 나왔네. 죽을 자리를 만들어주겠다는 뜻으로 들었네만.”
“맞아. 자네들에게 죽을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불렀지.”
“그들이 세상에 나왔나?”
“푸른 산의 늙은 말코가 근처에 있네.”
위중평의 주름진 입술 가장자리가 푸들푸들 떨리며 벌어졌다. 눈꺼풀의 주름도 떨렸다.
숨을 깊게 들이쉰 그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군, 아주 좋아.”
“암천의 왕 자리는 단목 늙은이의 제자가 이어받은 것 같네. 아마 그도 곧 이곳으로 올 거야.”
“죽을 자리는 제대로 고른 것 같군.”
“기회는 한두 번밖에 없을 거네.”
“그 정도면 충분해. 어차피 우리도 많은 기회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위중평과 이격, 그리고 이곳에 오지 않은 나머지 세 사람은 생사에 대해서 미련이 없었다. 목숨은 이미 오래 전에 버린 터였다.
오래 전에 당한 그 참담한 치욕을 되갚아줄 수만 있다면 목숨이 대수랴.
“다른 세 친구는?”
“그들도 곧 도착할 거네.”
“당분간은 이곳에서 지내게. 불편하지는 않을 거야.”
140장 내 여자가 돼라
금룡신군의 죽음이 알려진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그가 죽은 지 만 하루만이었다.
우문각은 정유의 보고를 받고 벌떡 일어났다. 평소의 그를 생각하면 얼마나 놀랐는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뭐야? 금룡신군이 죽어?”
“예, 총사. 금룡장으로 가는 길목, 연사림 내의 숲길에서 수십 명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에 금룡신군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있었다 합니다.”
“도대체 누가……!”
무심코 말을 내뱉던 우문각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하늘 아래에서 금룡신군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더구나 금룡장의 무사들마저 수십 명이나 죽었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설령 장천운과의 싸움으로 부상을 당했다 해도 천외삼성 중 한 사람인 금룡신군이다.
“혹시…… 그가 왔나?”
탁무겸. 암천문의 문주이자, 새로운 암천신마인 그가 금룡신군과 만났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정유, 지금 즉시 비상을 걸고,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서 백 리 안을 철저히 감시해라.”
“예, 총사.”
“암천신마가 나타났을지 모른다. 절대 가까이 접근하지 말고 발견 즉시 보고하라고 전해라.”
정유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암천신마. 그는 금룡신군이나 청산자와 또 달랐다.
마의 하늘.
당금 천하를 혈풍에 휘말리게 한 장본인이 그였다.
만약 그가 구천성 근처에 왔다면 또 한 차례 거대한 피의 폭풍이 불어댈 것이다.
어쩌면 혈해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정유는 암천신마의 등장이 가져올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총사.”
* * *
“사공 조장, 천운은 어때?”
사공명신은 사마경의 질문을 받고 아는 대로 대답했다.
“내상 치료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남 노선배님 말씀으로는 내상이 많이 나아졌다고 합니다.”
“그래? 다행이네.”
말은 가볍게 했지만, 탁자 밑에 있는 사마경의 손에 힘줄이 돋아 있었다.
그녀는 사공명신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움켜쥔 손의 힘을 풀었다.
장천운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특히 연송하는 평소 하지 않던 실수를 하루에 두 번이나 했다.
사마경은 남들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태연하게 행동하고, 말했다.
하지만 속마음은 새카맣게 타들어간 지 오래였다.
그러다 사공명신의 대답을 들으니 긴장이 한꺼번에 풀어졌다.
“나가서 일 봐.”
“예, 소성주.”
사공명신도 사마경의 마음을 눈치 챘지만 모른 척했다. 두양양만 해도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거늘, 사마경의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정말 무서울 정도로 대단한 여인이야.’
하지만 자신의 이상형은 아니었다. 소성주와 연인 사이라면, 아마 간이 쪼그라들어서 제 명을 살기 힘들 것이다.
‘나에게는 두 소저가 딱이라니까.’
그런데 단승이 끼어들어서 문제다. 무공이라도 약한 놈이면 비무를 핑계로 흠씬 두들겨 패줄 텐데.
‘언제 단가하고 담판을 짓든가 해야겠어.’
사공명신이 방을 나간 후 일각쯤 지났을 때, 우문각이 침중한 표정으로 사마경을 찾아왔다.
사마경은 그의 얼굴만 보고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걸 눈치 챘다.
도대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무슨 일인가요?”
“금룡신군이 탁무겸에게 죽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