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71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2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71화
공손백은 이를 갈면서도 가슴이 무거워졌다.
그때 추산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싸움으로 양측 무사가 수백 명이나 죽고, 장천운도 정상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주군.”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공손백의 눈빛이 번쩍 빛을 발했다.
장천운도 부상이 심하다고?
‘그래, 금룡신군이 누군데…….’
장천운의 내상이 심각하다면 한번쯤 절호의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추산, 장천운의 상태를 정확히 알아보라고 해라.”
“예, 주군.”
* * *
동문 밖이 고요해진 직후 몇 사람이 은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거나 들은 상황을 작은 쪽지에 적어서 전서구를 날렸다.
전서의 내용 중에는 진실도 있지만, 과장된 부분도 없지 않았다.
비령각 전령도 득달같이 달려와서 사마경에게 보고를 올렸다.
그 시각 그녀의 방에는 그녀와 우문각, 구양명, 소연추만 있었다.
“동문 쪽도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소성주.”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요?”
“사백에 가까운 무사들이 죽었습니다.”
예상보다 큰 피해였다.
“그 지경이 되도록 대령주와 대장로는 뭐하고 있었던 거죠?”
우문각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처음에 뒤에서 지휘만 하고 있었다고 하던데, 숫자가 월등히 많으니 방심했던 것 같소.”
“흥! 처음부터 전면에 나섰으면 그렇게 많은 피해가 나지는 않았을 거예요. 다른 적도 아닌 청산궁을 상대하면서 방심하다니. 대령주는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거예요.”
방심치고는 너무 큰 피해였다. 그로 인해 공손백을 몰아붙일 수는 있겠지만, 아까운 사람들을 너무 많이 잃었다는 사실이 그녀를 화나게 만들었다.
“우문 숙부, 성의 조직을 재편할 방법을 생각해보세요.”
“재편이라 하면…… 어느 정도를 생각하는 거요?”
우문각의 질문을 받은 사마경은 입술 끝을 올리며 차디 찬 냉소를 지었다.
“대령주의 세력을 최대한 축소시킬 생각이에요.”
“반발이 심할 것이오.”
“쉽게 반발하지 못할 거예요. 대령주도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우리 쪽 힘이 강하다는 걸 알았을 테니까요.”
우문각은 혀를 내둘렀다.
설마 그것까지 생각하고 이번 계획을 밀어붙였나?
어쨌든 해볼 만한 일이었다.
공손백의 힘을 약화시키면 그만큼 구천성을 관리하기가 편해질 테니까.
* * *
“금룡신군이 도망치듯 떠나갔다고?”
청산자가 되묻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영산자를 바라보았다.
영산자는 그가 그런 표정을 짓는 걸 처음으로 보았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뜻.
하긴 자신 역시 보고를 받고도 믿어지지 않아서 다시 조사를 명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금룡장 무사 이백수십 명이 목숨을 잃거나, 포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천성의 피해도 상당합니다.”
“구천성의 피해는 문제가 아니다. 금룡신군이 도망치듯 떠나가다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구나.”
“계획을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형.”
“으으음, 사실이라면 그래야겠지.”
“계속 이곳에 계실 건지요? 좀 더 외곽으로 옮기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영산자는 말을 던져놓고 청산자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청산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것까지는 없다. 아무래도 계획을 바꾸어야 할 것 같구나.”
“하오면……?”
“어차피 세상이 피로 뒤덮인 판이다. 정의를 위해서 피를 조금 더 흘린다 한들 하늘도 우리에게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영산자는 청산자가 조급해하는 것 같아서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당장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곳에 머문다는 전제로 계획을 꾸며보겠습니다.”
청산자가 한마디 덧붙였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도록 해라. 전쟁이든, 암살이든.”
“…….”
영산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위선자들이 곧잘 내놓는 핑계였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악이나 다름없는 수법을 행한다.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생각인가.
‘원시천존. 사형, 저를 너무 구석으로 몰아넣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 *
금룡장으로 돌아가던 금룡신군은 저만치, 어둑해진 숲속 길에 서 있는 자들을 보고 전진을 멈추었다.
“웬 놈들이냐?”
금룡장 무사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다그쳐 물었다.
고요히 서 있던 자들 중 하나가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그려.”
굵고 힘이 실린 목소리를 지닌 중년인.
금룡신군은 그를 알아보고 표정이 급변했다.
그다. 그가 왔다.
탁무겸이!
당대의 암천신마가!
왜?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제가 왜 왔을 것 같습니까?”
금룡신군의 시선이 탁무겸의 뒤쪽으로 옮겨갔다.
처음에는 십여 명쯤 되는 듯했다.
검은 그림자가 스멀거리며 숲에서 나오더니 이제는 사오십 명쯤 되었다.
그리고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네놈이 혹시……?”
탁무겸의 입술 사이로 하얀 이가 드러났다.
“맹약이 이미 깨졌다는 걸 신군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맹약이 깨졌다? 그래서? 나를 죽이려고 온 거냐?”
“보아하니 장천운에게 제대로 당한 것 같군요.”
“흥! 내 비록 그 애송이를 이기진 못했다만, 패하지도 않았다. 그저 구천성의 머릿수에 밀려 잠시 후퇴한 것일 뿐.”
“신군답지 않은 말씀이군요. 아무래도 이제는 가실 때가 되었나 봅니다.”
“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다.”
“후후후후, 하늘은 항상 새로운 주인을 바라지요. 신군께서 저와 함께 하시겠다면 받아들일 마음은 있습니다만.”
“우하하하, 본좌에게 네 밑으로 들어오라고 한 것이냐, 지금?”
“세상이 변하다 보면 이런저런 일도 생기는 법 아니겠습니까?”
“탁무겸, 하늘이 왜 하늘인지 아느냐? 하늘은 결코 남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느니라.”
“싫다면 할 수 없지요. 예의는 다 차린 것 같으니 가야 할 곳으로 보내드리는 수밖에.”
탁무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손을 들어서 흔들었다.
촤아아아악.
어스름이 짙게 깔린 숲속에서 음산한 소리가 났다.
금룡장 무사들은 암천문과의 격전을 대비해서 만반의 경계태세를 취했다.
그 순간, 숲이 갈라지며 검은색 야행복을 입은 자들이 박쥐 떼처럼 쏟아져 나왔다.
“신군의 목숨은 제가 거두어 드리리다.”
탁무겸이 냉랭히 말하며 금룡신군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한 걸음에 이 장을 쭉 미끄러져 갔다.
고오오오오.
숲속 길을 검게 물들인 어스름이 그를 중심으로 휘돌았다,
두 번째 걸음을 내딛었을 때는 거대한 어둠의 해일이 금룡신군을 향해 밀려갔다.
암천의 절대 무공, 암흑천신기가 펼쳐진 것이다.
양손을 좌우로 뻗은 금룡신군은 태천금룡신기를 일으켰다.
지금의 몸 상태로는 무리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장천운과의 싸움에서 입은 내상이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천외삼성의 자존심은 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콰과과광!
어둠과 금빛 기운이 얽혀들며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이 경천동지의 격전을 벌이는 사이 금룡장과 암천문 무사들도 서로를 향해 살기 띤 공세를 퍼부었다.
그 와중에 기괴한 행동을 일삼는 자가 있었다.
이제 이십대로 보이는 청년, 독고민이었다.
그는 정신이 어떻게 된 사람처럼 희죽거리며 금룡장 무사들을 공격했다.
기괴하게도 금룡장 무사들은 그의 공격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했다.
독고민은 상대의 팔을 잡아 뜯고, 목뼈를 부러뜨리고, 심장을 꺼내고, 머리를 부수었다.
죽음이 너무나 참혹해서 금룡장 무사들마저 악을 썼다.
“이 악귀 같은 놈!”
“참으로 사악한 놈이구나! 네놈만큼은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
“독고민? 네놈이 독고악이라 불리는 독고민이더냐!”
누군가가 독고민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독고민은 그자를 향해 하얗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맞아, 내가 독고악이야. 크카카카카!”
독고민이 온몸을 피로 물들이며 금룡장 무사들을 처참하게 죽이고 있을 때였다.
쿠과과광!
금룡신군과 탁무겸의 공세가 아홉 번째로 격돌했다.
그 직후, 금룡신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진기가 순간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천하제일의 패도무공인 태천금룡신기도 공력이 이어지지 않자 무력해졌다.
탁무겸은 금룡신군의 기운이 흔들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시커먼 장력이 어둠을 뚫고 금룡신군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금룡신군이 이를 악다물고 몸을 틀었지만 탁무겸의 공세를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쾅!
금룡신군의 몸이 뒤로 훌훌 날아가서 삼 장 밖에 떨어졌다.
그림자처럼 따라간 탁무겸이 그의 옆에 내려섰다.
땅에 떨어져서 널브러진 금룡신군의 입에서 핏물이 뭉클거리며 뿜어졌다.
가슴의 옷자락은 가루가 되어서 맨살이 드러났다.
그마저도 움푹 함몰되어서 심장과 내장이 성치 않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탁, 탁무겸…… 네놈이…….”
“그러게 왜 내민 손을 잡지 않는 거요? 목숨보다 자존심이 더 중요하다? 신군이 무슨 정파의 호걸이라도 되오?”
“네놈이 어찌…… 하늘의 무게를…… 알겠느냐?”
“하늘의 무게도 죽으면 결국 깃털보다 가벼운 법이라오.”
“곧…… 네놈도…… 내 뒤를…… 따라올 것…….”
금룡신군이 안간힘을 다해서 저주하듯 몇 마디 더 내뱉었다.
탁무겸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내 걱정은 해주지 않아도 되오. 지옥에 가면 아마 기다리는 사람이 많을 거요. 즐겁게 내기나 하면서 노시구려.”
씩, 조소를 지은 그는 금룡신군을 향해 우수를 뻗었다.
심장 부위가 등짝까지 움푹 꺼지는가 싶더니, 금룡신군의 입에서 피분수가 뿜어졌다.
탁무겸은 금룡신군에게서 시선을 떼고 전장을 바라보았다.
한쪽에서는 도악이 금룡장 무사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독고민이 찬강과 격전을 벌이는 중이었고.
그는 독고민 쪽으로 발을 내딛으며 손을 뻗었다.
“독고악, 물러서라.”
그의 말이 절대의 명령이라도 되는 듯 독고민은 찬강의 공격을 눈으로 빤히 보고도 뒤로 물러섰다.
그 바람에 오히려 찬강이 당황해서 멈칫했다.
그와 동시에 탁무겸의 장력이 그를 소리 없이 덮쳤다.
찬강도 다급히 탁무겸의 장력을 맞받아쳤다.
쿠궁!
둔중한 폭음.
얼굴이 일그러진 찬강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섰다.
그러고는 중심을 잡자마자 눈을 치켜떴다.
어느새 그의 앞에 탁무겸이 다가와 있었다. 절대의 존재라 여겼던 금룡신군의 심장을 부순 그가.
“찬강, 한번만 말하겠다. 그대의 대답에 금룡장 무사들의 목숨이 걸려있다는 점 명심하고 대답해라.”
찬강은 악다문 입에 힘을 주고 탁무겸을 노려보았다.
탁무겸이 말했다.
“그대는 천살기의 주인, 암천의 형제가 된다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를 주겠다.”
찬강이 눈을 부라렸다.
“탁무겸, 개소리 지껄이는 걸 보니 네놈도 죽을 때가 다 된 것 같구나.”
탁무겸은 그 말에 화를 내지 않고 피식, 실소를 지었다.
“이래서 내가 그대를 좋아한다니까.”
“네놈의 사악한 성정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죽이기는 쉽지 않을 거다.”
그 말과 동시, 찬강의 몸이 뒤로 쭉 날아갔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탁무겸이 뒤따라 날아가며 우수를 뻗었다.
찬강은 양손을 내밀어서 탁무겸의 공격에 맞섰다.
콰광!
폭음이 울린 순간, 찬강의 몸이 충돌한 반탄력을 이용해서 더욱 빨리 날아갔다.
“모두 이곳을 벗어나라!”
“훗! 너는 내 손을 벗어날 수 없다, 찬강!”
탁무겸이 냉소를 터트리며 재차 우수를 뻗었다.
그때 금룡장 무사 중 대여섯 명이 탁무겸의 공세 속으로 뛰어들었다.
천살광혼 찬강이 다스리는 천살동의 무사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탁무겸의 일장도 제대로 받아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서 빠져나가십시오, 동주!”
탁무겸의 장력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장세 안으로 들어간 자들이 피를 뿜으며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찬강은 탁무겸의 공세가 약해진 틈을 이용해서 전장을 벗어났다.
금룡장 무사 중 살아남은 자들도 전력을 다해서 죽음의 혈전장을 빠져나갔다.
“놈들을 쫓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