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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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31화
혈하-第 31 章 내 몸을 걸겠어요
시끌벅적.
웅성, 웅성.
도박장 안에는 무수한 인물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도박에 열중하고 있었다.
사군보는 무슨 생각인지 제일 큰 도박판을 찾기 시작했다.
“제기랄! 또 지다니! 번번이 이길 것 같은데 깨진단 말이야.”
유달리 큰 음성이 한 가운데 도박판에서 터져 나왔다.
말코 중년인이 뇌까린 음성이었다.
그의 앞에 있는 상대방은 전표를 수북하게 쌓아놓고 있었다.
말코 중년인이 그에게 은자를 모조리 털린 모양이었다.
“제기랄! 한 달 동안 모은 돈이 한꺼번에 사라지다니, 이봐 총관, 혹시 당신 속인 거 아니오?”
말코 중년인이 상대방을 향해 눈알을 부라렸다.
그의 상대는 도박장의 총관이며, 도박의 귀신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그를 도귀(賭鬼)라 부르며 그와 도박하기를 꺼려했다.
사군보는 그 판을 주시했다.
그때 사람들 말소리가 들렸다.
“구준서, 저 새끼 또 털렸네.”
“고리대금으로 번 돈을 몽땅 도박으로 날리네.”
“인신매매도 하잖아.”
“정말?”
“다들 쉬쉬하지만 분명 그렇다니까.”
“와, 천하에 죽일 놈. 돈이 떨어지면 지 마누라를 담보로 돈을 빌리는 미친놈이란 건 알았지만 미친놈이 아니라 죽일 놈이었네.”
“저거 다 털려도 곧 다시 올걸.”
“대체 하늘은 뭐하는지 몰라, 저 딴 놈 안 잡아 가고.”
수군거리는 소리에 사군보는 이맛살을 찡그렸다.
‘고리대금에 인신매매……’
살 가치도 없는 종자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사군보는 구준서가 있는 탁자로 걸어갔다.
“끝났으면 내가 해도 될까요?”
사군보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보아하니 귀하가 물주 같은데, 나와 한판 합시다.”
“……”
사군보의 말에 도귀의 시선이 그의 얼굴로 향했다.
그의 눈에 야릇한 광채가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이 도귀는 원래 도박은 사양치 않습니다. 어떤 종류로 하시겠습니까?”
“난 아무 것이나 자신 있는데. 당신이 물주니 적당히 골라잡아요.”
도귀의 입가에 미미한 냉소가 스쳤다.
“주사위는 어떻습니까?”
“좋군요.”
사군보는 흔쾌히 대답하고는 곁에 있는 말코 중년인, 구준서를 응시했다.
“귀하도 낄 건가요?”
구준서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제기랄! 하고 싶은 데 돈이 떨어졌다.”
그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도귀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사군보는 빙그레 웃었다.
“돈이 없다고 하니, 귀하에겐 돈을 요구하지 않겠어요.”
“정말인가?”
“대신, 조건이 있어요.”
“어떤 조건인데?”
“귀하가 이기면 딴 돈은 다 가져가도 좋아요. 단, 모두 잃고 진다면 나는 당신의 몸에서 10근의 살점을 뜯어낼 겁니다. 돈 대시 살을 받겠다 이거요.”
“뭐?”
“결정은 귀하가 하시지요.”
사군보는 시종 미소를 지으며 구준서를 향해 기묘한 제의를 했다.
구준서의 눈이 찢어져라 부릅떠졌다.
“이런 젖비린내 나는 놈이……”
그는 시커먼 털이 숭숭한 주먹을 사군보의 면상을 향해 들어올렸다.
금시라도 내리칠 기세였다.
그때다.
“구준서, 자넨 이 도박장의 규율을 잘 알고 있을 텐데?”
도귀가 차가운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구준서의 주먹이 부르르 떨었다.
“제기랄! 돈 잃고 조롱까지 당하다니……”
그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탁자를 내리쳤다.
쾅!
거대한 도박용 탁자가 요란하게 떨었다.
“난 귀하를 조롱한 적이 없어. 내 제안을 받고 안 받고는 귀하의 자유요.”
사군보는 태연히 미소 지으며 품속에서 은자 만 냥짜리 전표를 꺼내었다.
구준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만 냥!’
그는 사군보의 얼굴을 응시하며 탐욕의 눈빛을 던졌다.
“하겠다. 대신 만일 네가 지면 만 냥을 한꺼번에 줘라.”
그는 연신 사군보와 만 의 전표를 번갈아 응시했다.
그의 눈엔 사군보의 얼굴조차 만 냥짜리 전표로 보이고 있었다.
‘어리석은 녀석! 오늘 내가 횡재하겠군. 네놈 같은 서생이 무슨 힘으로 내 몸에서 10근의 살을 떼 가가?’
그는 입을 함지박만큼 벌린 채 도귀를 응시했다.
“도귀, 들었지? 셋이서 다시 한 판 붙자.”
그의 말에 도귀가 간사한 미소를 지었다.
“원래 난 밥 먹는 것보다 도박을 더 좋아하지.”
도귀는 찬성했다.
구준서는 입가에 탐욕의 미소를 담은 채 탁자 곁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하늘이 나를 위해 이런 얼간이를 보내주었다.’
그는 내심 뛸 듯이 기쁜 마음을 억누르느라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사군보는 그의 모습을 야릇한 시선으로 힐끗 응시하고는 도귀를 주시했다.
“도귀, 우리 조금 색다른 방법으로 도박하는 것이 어때요?”
“다른 방법?”
도귀의 얼굴에 냉소가 스쳐갔다.
사군보는 야릇한 조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주사위 통 속에 4개의 주사위를 담은 다음 흔들어서 숫자를 만들어요. 그럼 내가 4개의 주사위가 나타내는 숫자의 합을 맞추겠어요.”
도귀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를 주시했다.
“그것은 공자께 불리하지 않아요?”
사군보는 고개를 내저었다.
“도박은 원래 운. 난 한 판에 모든 것을 걸지. 대신 이것만은 지켜야 합니다.”
“뭐요?”
사군보의 말에 도귀와 구준서는 의아한 눈초리를 던졌다.
“도귀, 행여 그런 일이 없겠지만 원래 도박엔 속임수가 난무하는 법. 난 이 자리에서 속임수 없는 진정한 도박을 하고 싶군요.”
“……”
“도귀, 당신이 주사위를 주사위 통으로 덮어 흔든 다음 당신과 나는 두 손을 뒤로 돌린 채 제삼자로 하여금 그것을 확인하게 하는 거요.”
사군보의 말에 도귀의 안면이 미미하게 떨렸다.
‘치밀한 녀석이다. 두 손이 뒤로 돌려지면 속임수를 쓸 수 없다. 하나 그것은 네놈 역시 마찬가지다.’
도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공자, 그렇게 되면 가장 공평한 도박이 되겠군.”
주위의 도박꾼들은 이 기묘한 도박에 몰려들어 구경하고 있었다.
“와, 만 냥 짜리 판이다.”
“이거 쫄리겠는데.”
“지 돈도 아니면 서 뭘 쫄아. 구경이나 해, 언제 이런 큰판 볼 수 있겠어.”
“그렇지. 그나저나 저 젊은이는 돈도 많나봐, 나에게도 좀 주지.”
“근데, 속임수 없는 진판이라.”
“두 손을 돌리며 속임수는 쓸 수 없으니 정말 운이다. 이건.”
그들 역시 도박에 조예가 깊지만 사군보의 말에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도귀가 물었다.
“공자, 제삼자는 어떤 인물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하하하…… 그것은 당연히 주인이 알아서 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군보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했다.
좌중의 시선이 일제히 그의 얼굴로 향했다.
“공자, 제삼자를 주인 뜻대로 한다면 손해지 않아요?”
“공정히 하려면 두 분 다 모르는 인물로 하심이 어때?”
중인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던졌다.
사군보는 미소를 지으며 낭랑하게 뇌까렸다.
“하하하…… 여러분 모두가 증인인데 아무나 한들 어때요?”
이때다.
“제삼자는 제가 하면 안 되나요?”
여인의 아름다운 음성이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입구에서 들려왔다.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는 듯.
심산유곡의 옥수가 흐르는 소리인 듯.
사람의 심신을 시원하게 해주는 교성이었다.
아니 차라리 황홀하게 해준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미, 미염부인이다!”
“오늘 웬일이데, 미염부인도 보고.”
탁자를 둘러싸고 있던 중인들이 썰물 밀리듯 좌우로 쫙 밀려갔다.
그 사이로 하늘색 궁장차림의 면사여인이 걸어왔다.
중인들의 시선이 그녀의 두 눈에 고정된 채 떨어질 줄 몰랐다.
면사여인의 드러난 두 눈빛은 말로 표현하기 곤란할 정도로 기이했다.
무엇이던지 빨아들일 것 같은 마력을 지녔다.
어떤 것이라도 다 녹여버릴 것 같은 정열도 그 안에 있었다.
면사여인의 눈빛은 너무 많은 색깔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차라리 색깔이 없었다.
그때였다.
“아! 진짜 몸매 끝내준다.”
“저 면사 뒤의 얼굴은 어떨까?”
누군가가 나직이 탄성을 터뜨렸다.
중인들은 넋을 잃고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아…… 그 음성,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다면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
중인들은 귀를 곤두세운 채 그 눈을 응시했다.
사락. 사락.
미염부인의 긴 옷자락이 끌리며 사군보의 앞에 멎었다.
그 신비한 두 눈이 사군보의 두 눈을 그윽하게 응시했다.
두 사람의 눈길이 묘하게 엉켰다.
“허락하겠습니다.”
사군보는 그녀의 두 눈을 직시하며 조용히 뇌까렸다.
미염부인의 눈빛이 기묘하게 흔들렸다.
딸랑! 딸랑! 딸랑!
주사위 통 속에서 4개의 주사위가 경쾌한 소음을 토해냈다.
도귀는 신중한 표정으로 시종 사군보의 얼굴을 주시했다.
사군보는 시종 시선을 다른 곳에 두었다.
그의 시선은 미염부인도, 도귀도, 탁자 주사위통도 아닌 곳에 있었다.
그는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주사위가 구를 때 주사위통에 부딪치는 소리에 따라 주사위가 어떻게 굴러 어떤 숫자를 나타내게 되는지 알 수 있다. 주사위의 어떤 면이 어떻게 주사위통에 부딪치는 가에 따라 소리가 각각 다르다.’
이때다.
“공자,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이제 공자가 맞히는 일만 남았군요.”
도귀의 입가에 희미한 냉소가 감돌았다.
‘흐흐흐…… 속임수는 쓰지 않았다. 네가 맞힐 확률보다 틀릴 확률이 백배는 더 많을 것이다.’
도귀는 손을 뒤로 돌리다 못해 아예 일어나 멀찌감치 뒤로 물러났다.
그가 물러난다는 것은 절대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는 일종의 대변이다.
사군보 역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 물러섰다.
“……”
“어때? 누가 이겼을 것 같아?”
“좀 조용히 해봐.”
긴장된 침묵이 도박장을 감돌았다.
중인들의 시선은 모조리 사군보의 입에 머물렀다.
사군보의 입이 드디어 열렸다.
“도귀, 난 한 판에 만 냥을 다 걸겠다.”
“……!”
“숫자는 도합 16.”
사군보의 말에 중인들은 반신반의했다.
하나 누구하나 또한 아니라고 얘기는 못했다.
뚜껑은 열어봐야 아니까.
팽팽한 긴장감이 은연중 그들의 얼굴에 드러났다.
정작 당사자인 사군보는 태연자약하건만 그들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사태의 추이에 귀추를 주목하고 있었다.
실로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사군보의 시선이 멍청히 서 있는 구준서의 얼굴로 향했다.
“내가 한 말이 맞을까, 틀렸을까요?”
“응?”
“어느 쪽에 걸겠어요? 만약 맞힌다면 내가 만 냥을 주죠. 대신 틀린다면 약속대로 갈겁니다.”
구준서의 얼굴에 회의의 빛이 스쳐갔다.
‘내 평생 저런 놈은 처음이다. 도무지 아래위를 짐작조차 불가능하게 하는 놈이다.’
그는 사군보의 얼굴과 만 냥짜리 전표를 번갈아 응시했다.
돈을 주시할 땐 탐욕이 스치고,
사군보의 얼굴을 응시할 땐 왠지 불안했다.
마침내 그는 도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에게서 무슨 단서를 찾고 싶었다.
도귀의 얼굴은 냉랭한 가운데 역시 불안의 기색이 어려 있었다.
그 역시 너무나 태연자약한 사군보의 얼굴에 일말의 불안감을 느낀 것이었다.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