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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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26화
혈하-第 26 章 월영산장의 위기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공금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독연은 엷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용화화는 발을 동동 굴렸다.
‘저러다가 큰일 나지.’
딸의 치료도 좋지만 계속된 진기소모는 결국 사군보에게 위험을 가져오게 한다.
진기가 고갈되면 시술을 하는 사군보나 치료를 받는 공금연이나 둘 다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다.
게다가 지금 공금연은 혼몽(魂夢)한 상태다.
만약 공금연이 어느 정도 정신이 있어 사군보의 진기를 받아들여 스스로 체내의 독을 밀궁 쪽으로 내몰 수만 있어도 치료의 속도는 배가될 수 있다.
하지만 순전히 사군보 혼자 치료를 해야 한다.
용화화는 치료에 여념이 없는 사군보의 듬직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청년이라면……기왕 보여서는 안 될 곳을 모두 보인 딸아이의 장래를 저 청년에게 맡길까?’
딸을 가진 어미의 마음은 오직 딸아이의 행복한 장래뿐이다.
출신도 모른다.
사문도 모른다.
아는 것은 오직 사군보라는 이름 하나 뿐이다.
그러나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환자를 치료하는 의협심 하나만으로도 용화화는 사군보가 믿음직스러웠다.
그녀는 딸아이의 장래를 사군보에게 맡길 생각뿐이었는데 일순,
“흠……!”
나직한 숨을 내쉬며 사군보가 공금연의 밀궁에 대었던 손을 떼었다.
그의 왼손바닥은 시커멓게 물들여져 있었다.
용화화가 떨리는 시선으로 죽은 듯 누워 있는 딸과 사군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사군보는 조금 피로한 눈길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아아……은공, 고……고맙습니다.”
용화화에게 있어서 사군보의 말은 곧 하늘의 말이었다.
사군보는 용화화에게 말했다.
“쉬고 싶은데……자리 좀 마련해 주시겠습니까?”
“아이구! 내 정신 좀 봐! 은공, 어서 절 따라 오십시요. 상방을 치워드릴 테니 쉬십시오.”
이윽고 사군보는 용화화와 함께 지하 석실을 나섰다.
그들이 막 지하로 통하는 내당 입구로 올라오는 순간이다.
“아악-!”
“적이다!”
“웬 놈이……아악-!”
처절한 비명성이 내당 밖 정원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사군보와 용화화는 흠칫해 급히 내당을 벗어났다.
**
휘이익!
무수한 인영이 월영산장의 담을 넘으며 날아들었다.
사군보는 날아드는 그들을 주시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순간,
“악!”
“으-아-악!”
순식간에 비명이 월영산장을 뒤덮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피 보라가 솟구치며 피비린내를 풍기었다.
용화화와 하륜이 쏜살처럼 장내로 뛰어나갔다.
그 뒤를 총관과 당주들이 따랐다.
월영산장의 수하들은 쳐들어오는 적을 막고 있었다.
창-창-창-!
꽝! 꽈르르르릉-!
병장기가 울리고 장력이 터질 때마다 비명은 속출했다.
무수한 장영이 장원을 휩쓸며 폭발했다.
싸움이 치열해짐에 따라 월영산장의 무사들은 사지가 잘리고 전신이 터져 날았다.
수급이 잘리고 머리통이 으스러진 곳에서는 허연 뇌수가 쏟아졌다.
“멈추어라!”
하륜은 끔찍한 현장을 쓸어보며 소리쳤다.
그에 답하듯 음산한 웃음이 울려 퍼졌다.
“흐흐흐, 하륜! 아주 잘 만났다. 먼저 간 공자립이 외롭지 않겠구나.”
나타난 사람은 머리털이 반쪽 밖에 남아있지 않은 흑의노인이었다.
흑의노인은 얼굴에 화상을 입었는지 안면이 몹시 붉었다.
그 화상은 오른쪽 귀까지 이어져 피부가 당기 듯 엉켜 있었다.
그 곁에는 여섯 명의 노인이 나란히 섰다.
그 뒤에는 스물다섯 가량의 청년이 버티고 서 있었다.
금의를 걸친 청년의 모습은 화려한 옷차림과 고색이 창연한 장검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얼굴 또한 준수했다.
두 눈에 번뜩이는 눈빛이 무공의 심도를 잘 나타내 주고 있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섬뜩한 표정이었다.
얼굴에 흐르는 것 같은 음산한 기운은 그의 성품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앞선 일곱 명의 흑의노인을 일견한 하륜의 검미가 찡그려졌다.
“네놈들은 구유칠혈(九遊七血)!”
하륜의 얼굴엔 흠칫한 놀라움이 서려 있었다.
“흐흐흐! 알기는 아는구나.”
화상을 입은 흑의노인이 틀어진 입을 벌리며 거드름을 피웠다.
구유칠혈.
그들은 살인을 밥 먹듯 하는 마왕들이었다.
일단 살인을 생각하면 이들은 그 즉시 죽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또 특이하게도 그들의 공격을 받아내 죽음을 면한 상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 싸우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실력은 만만치 않아 구유칠혈과 부딪친 자 가운데 온전한 자는 없을 정도다.
구유칠혈을 만남은 곧 죽음이었다.
구유칠혈의 출현에 하륜이 놀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혼자서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죽음을 자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저들을 막아 싸울 만한 사람이 없었다.
용화화마저 많은 내력을 소모하여 지쳐있고, 총관도 마찬가지였다.
“음!”
그는 무겁게 침음했다.
그때,
휘-이-익!
허공을 가르며 사군보가 나타났다.
사군보는 구유칠혈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구유칠혈, 난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 허락 없이 살인이 일어나도록 수수방관한 적이 없음은 물론 당신네들이 월영산장을 피로 씻는 것을 원치 않으니 물러가라.”
잔잔한 어조였다.
또한 광오하기 그지없었다.
어이가 없다는 양 구유칠혈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실소했다.
“애송이, 네놈의 허풍은 하늘도 놀라겠구나.”
얼굴에 화상의 흔적이 남은 노인이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그는 구유칠혈 가운데 첫째인 대혈이다.
“아무렇게 생각해도 좋다. 그보다 네놈들이 무엇 때문에 월영산장을 침입했는지 이유를 밝혀라.”
“흐흐흐…… 애송이, 네놈이 저승에 가서 먼저 간 공자립에게 물어보면 알 것이다.”
둘째 이혈이 얼굴을 씰룩이며 뱉어냈다.
“유감이로구나, 도협이 죽지 않아서.”
사군보가 경멸하듯 쳐다보자 구유칠혈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 그들은 웃음을 흘리며 여유를 보였다.
“네놈의 허풍을 누가 믿을 것 같으냐?”
삼혈이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믿어지지 않아도 믿게 될 것이다.”
말과 함께 나타난 사람은 바로 공자립이었다.
저벅. 저벅.
당당한 걸음이다.
장내로 나타나는 공자립의 표정은 아직 파리했지만 움직이는 데는 별다른 불편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럴 수가……”
대혈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이때 오혈이 말했다.
“형님, 놀라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놈들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육혈도 동의했다.
“놈들은 우리의 손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제야 대혈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그때였다.
그들 뒤에 섰던 금의청년이 싸늘하게 내뱉었다.
“구유칠혈, 빨리 처치해 버려라.”
“예, 공자님.”
대혈이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놀라운 일이다.
죽음의 염라사자라는 구유칠혈이 약관을 갓 넘긴 금의청년에게 극경의 예를 표하다니.
공자립이 금의청년을 향해 입을 열었다.
“거유종(居瑜棕), 나는 네놈을 살려줬거늘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구나.”
“흐흐흐……! 도협, 나는 5년 전의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금의청년 거유종은 입술을 실룩였다.
공자립의 얼굴에 살기가 일었다.
“네놈은 무고한 양민을 희롱해도 네놈만 좋으면 그만이란 말이로구나.”
공자립의 표정에도 노기가 서려 있었다.
“도협, 네놈의 참견이 내 멋진 유희를 방해했다. 나는 지금까지 내 일을 방해한 사람을 살려둔 적이 없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거유종, 지금도 늦지 않았다. 순순히 물러간다면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겠다.”
공자립은 분노를 억제하며 말하였다.
“도협, 나는 5년 전의 거유종이 아니다. 내가 네놈을 독살하려고 했던 것은 5년 전 네놈에게 패한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알겠느냐?”
이제야 밝혀졌다.
공자립에게 독을 살포한 원흉의 정체가……
바로 5년 전의 빚을 돌려받기 위해 거유종이 공자립을 독살하려 한 것이다.
거유종은 거만하게 공자립과 하륜을 번갈아 보았다.
사군보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는 태도였다.
“죽일 놈, 그때 네놈을 없애는 것인데……”
“도협, 후회해도 소용없다. 난 네놈뿐만 아니라 월영산장에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거유종은 싸늘하게 내뱉으며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어서 베어버려라.”
거유종의 명령이 떨어지자 구유칠혈을 비롯한 그의 수하들이 일제히 병장기를 휘둘렀다.
그때,
“멈추어랏!”
쩌렁-
혼을 앗아가는 것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거유종의 수하 절반 까까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쨍그랑-
심지어 몸에 힘이 빠져 손에 들고 있는 무기들을 놓치는 자들도 속출했다.
여기저기서 병장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뒤를 이어,
“으-웨-액-”
“웩!”
피를 토하는 소리가 들려 나왔다.
“탈명귀음(奪命鬼音)!”
대혈이 몸을 떨며 외쳤다.
그 소리에 거유종도 흠칫했다.
‘탈명존이 나타났다고?’
그는 소리가 발해진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사군보가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저, 저 죽일 놈이!”
치미는 분노.
탈명존인 줄 알고 놀란 것이 창피하고 열 받았다.
그러나 거유종은 바보가 아니다.
‘탈명마음은 탈명존의 독문 절기다. 그것을 펼칠 줄 안다는 것은 탈명존의 제자일 가능성이 높다.’
10년 전 묵혈방 붕괴와 함게 사라진 탈명존.
10년이면 제자를 키우고도 남는 세월이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거유종은 몸을 뒤로 날려 후퇴하면서 소리쳤다.
“어서 죽여라!”
그의 음성에 정신을 차린 구유칠혈과 몇 몇 수하들을 굶주린 맹수처럼 고함을 질렀다.
“차앗!”
“와우!”
크케 소리를 지름으로써 탈명마음의 음공에 저항하고 호기를 끌어올리는 자들.
“놈을 잡아!”
스슥.
순식간에 구유칠혈이 사군보를 포위했다.
사군보가 탈명귀음을 발휘해 수하들을 음강(音罡) 하나로 격살시키자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눈치 챈 구유칠혈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
이곳 월영산장에서 가장 강한 적을 사군보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사군보의 움직임은 빨랐다.
구유칠혈이 포위망을 구축하는 순간,
팟-
그들 안으로 뛰어 들어간 사군보는 가장 먼저 시야에 잡힌 자의 주먹을 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