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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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21화
혈하-第 21 章 훗날을 기약하며
“네에?”
이건 너무 파격적인 것이다.
일대마존을 형님이라 칭한다니.
사군보는 지옥혈제의 속마음을 읽고 검미를 찌푸렸다.
‘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그늘에 넣을 생각인 것 같은데. 그렇게 호락호락한 난 아니다. 그러나……’
지옥혈제와 인연을 갖는다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다.
사군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우, 사군보가 노형님께 인사드립니다.”
사군보가 자신을 향해 배례를 올리자 지옥혈제의 노안에는 격동과 감격의 빛이 넘실거렸다.
얼음처럼 차갑고 흉흉한 그의 두 눈에서 한 줄기 이슬이 반짝였다.
“하하하……”
또다시 광소를 터뜨렸다.
그 웃음은 조금 전의 그 비통과 분노가 아니라 희열에 찬 것이었다.
“내가 너처럼 뛰어난 기재를 아우로 거두다니 정말 기쁘기 그지없구나.”
“하하하! 두고 보세요. 아우 잘 둔 덕분에 말년에 호강길이 필 테니까.”
“호강길? 핫핫핫! 어디 기대해 보자.”
그러더니 돌연 지옥혈제는 눈을 번쩍였다.
“그렇다면 이 형이 선물 하나 주지.”
“선물 요?”
“우선 네게 형의 절학 중의 하나인 귀영만겁신법(鬼影萬劫身法)을 전수해 주겠다.”
“헉! 그건!”
귀영만겁신법.
그것은 사군보가 익힌 귀영신법의 상승무공이다.
귀영신법은 명왕교 일반 제자들이 익히는 무공이다.
귀영만겁신법은 교주만이 익힐 수 있는 비전이다.
“맞다! 네놈 말마따나 내 말년이 호강하기 위해선 우선 네놈이 굳세게 살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재수 없게 죽으면 말장 도루묵이 아니냐?”
“죽긴 누가 죽는다고.”
“세상 일이란 아무도 모른다. 이걸 익히면 죽지는 않는다.”
“그렇겠네요, 잘 도망칠 수 있으니까요.”
“꼭 그렇게 말해야 하냐?”
“사실인 걸요.”
핏 웃는 사군보.
“그 귀영만겁신법인지 뭔지 하는 걸 가르쳐주려고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아니까, 어서 무공이나 전수해 주시죠. 형님.”
“노오옴! 나잇살도 얼마 처먹지 않은 놈이 뱃속에 구렁이가 너 댓 마리 들어있구나.”
“히힛!”
“자, 똑똑히 보아라.”
그 말이 막 끝났을 때였다.
팟-!
지옥혈제의 몸이 번뜩였다 싶은 순간 그의 몸이 사군보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뒤를 이어 소리 없이 수백, 수천 줄기의 환영이 흡사 무지개인 듯 허공에 표출되는 것이 아닌가.
스스스슥……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그 무지개는 환영처럼 사군보의 몸을 둘러쌌다.
어른거리는 백색 물체가 눈앞에 나타났는가 싶으면 금세 수십 개의 똑같은 모습으로 화했다.
그 어느 것이 실체인지 도무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실로 교묘한 움직임이었다.
사군보는 멍하니 그것을 쳐다보았다.
파팟-
사군보의 눈앞을 가득 메웠던 그 수백 개의 환영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아……”
사군보가 크게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어느새 유령처럼 지옥혈제가 서 있었다.
지옥혈제는 인자한 미소를 띠며 입을 떼었다.
“하하하…… 어떠냐? 너는 이 형이 전개한 귀영만겁신법의 묘용을 얼마나 느꼈느냐?”
사군보는 그 말에 얼굴을 붉히며 자신 없는 어투로 대꾸했다.
“아우가 느낀 바로는 귀영만겁신법은 귀영신법에 몇 가지 변화를 더 덧붙인 듯 하네요?”
그는 고개를 들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귀영신법의 묘용과는 다르게 내가공력을 전개하여 일종의 신비한 환각을 일으켜 상대를 현혹시키는 무서운 절학인 것 같아요. 이것은 일반 신법과는 전혀 다른 묘용을 지니고 있군요.”
“으음……”
지옥혈제의 얼굴에는 경이의 빛이 떠올랐다.
그는 이내 감탄하듯 크게 눈을 뜨며 소리쳤다.
“놀라운 일이다. 네가 단 한 번 보고 이렇듯 귀영만겁신법을 깨우치다니 말이다.”
조금 전 사군보가 말한 것이 바로 귀영만겁신법의 요체다.
지옥혈제는 참을 수 없는 듯 희열에 찬 광소를 터뜨렸다.
“하하핫…… 이것은 진정 기뻐할만한 일이다. 본교의 역대 교인 중에서 귀영신법을 익힌 자는 많았지만 귀영만겁신법과의 차이를 안 자는 아직 어느 누구도 없었다.”
지옥혈제는 사군보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본교의 귀영만겁신법은 네 말대로 일종의 환영, 환청을 이용한 기공이다. 여기에다 일종의 무형지기를 유형으로 바꾸어 상대로 하여금 진실한 형체를 찾을 수 없도록 만드는 절세기학이다.”
사군보는 지옥혈제의 설명을 듣자 그 오묘함에 더욱 감탄을 금치 못했다.
“형님, 아우는 정녕 그 오묘한 깊이까지 숨겨져 있었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지옥혈제는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너는 한 번 보고 그 진의를 깨우쳤으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이제 네가 이 형이 전수해주는 구결을 들은 후 깨우친다면 너 또한 그런 깊이를 능히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자, 잘 들어라.”
“……”
사군보는 단정히 그의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귀를 기울였다.
-귀영만겁신법(鬼影萬劫身功)!
지옥혈제의 유명칠절 가운데 단연 일절이다.
사군보는 구결 중 한 자라도 놓칠세라 그의 귀는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찾아가듯 열심히 경청했다.
조용한 침묵이 실내를 휩쓸었다.
이곳은 오직 두 사람이 있을 뿐이건만 두 사람이 주고받는 것은 전음이라 석실 내에는 죽음 같은 적막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누가 있건 없건 각대문파의 비전절기를 전수할 때는 항상 신중을 기하는 강호인들의 습성 탓이었다.
이윽고 사군보는 지옥혈제의 전음이 끝나자 그가 전수해 준 구결을 온 정신을 가다듬고 암송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가 눈을 떴을 때 지옥혈제의 인자하게 웃는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너는 방금 이 형이 전수한 귀영만겁신법에 얼마만큼의 깨달음이 있었다고 생각하느냐?”
“아우는 비록 익숙하지는 못하지만 귀영만겁신법을 펼쳐낼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뭐?”
지옥혈제는 그 대답에 뜻밖인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그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알겠다. 자, 어서 형 앞에서 한 번 펼쳐보아라.”
“예.”
사군보는 대답하며 일어나 가볍게 자세를 취했다.
팟-!
사군보의 몸이 돌연 사라졌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헤아릴 수 없으리만큼 많은 수십, 수백 가닥의 환영이었다.
아름다운 무지개인가.
허공에는 사군보의 몸이 마치 가느다란 선으로 이어진 듯 번쩍이며 지옥혈제의 몸을 감쌌다.
그 속에는 사람의 눈을 교란시키는 것 외에 무형의 지고한 압력이 있었다.
파치칙.
갑자기 수십, 수백 줄기의 환영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지옥혈제의 앞에는 사군보가 포권을 올린 채 미소를 띠고 있었다.
지옥혈제는 사군보의 모습을 보자 석실이 떠나가듯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이리도 기쁠 수가 있으랴! 과연 천하에 다시없는 절세기재로다!”
지옥혈제는 박수까지 쳤다.
너무 기쁜 것이다.
“기실 이 형은 귀영만겁신법을 익히는데 1년여의 시간을 허비했다. 그런데 너는 단 한 번 보고 연성할 수 있다니, 너의 그 놀라운 성취를 그 누가 따를 수 있단 말이냐? 오냐, 너의 절학은 본교 개교조사보다 더욱 뛰어나구나.”
기실 지옥혈제가 이처럼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귀영만겁신법은 명왕교의 독보적인 절정신법이었다.
귀영만겁신법을 연성하려면 귀영신법을 화경에 이르도록 연마해야 한다.
또한,
일신의 귀영만겁신법은 본신의 내가진력을 밑바탕으로 하여야 한다.
마치 어떤 진력을 격출 시키는 것과 똑같이 무수한 환영을 연출해야 하는 무상절예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옥혈제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사군보는 이미 일신에 반박귀진의 내공을 지녔고 또 수많은 무공을 알고 있다.
특히 그의 뇌리에 기억되어 있는 무공들은 흑도무공 외에도 가장 정심하다는 불문 무공까지 다양하지 않은가.
그런 그가 귀영만겁신법을 대번에 깨닫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옥혈제는 절세기재인 아우를 눈앞에 두고 만족감에 가득 찼다.
희열이 그의 내부를 감싸는 가운데 그는 엄숙한 음성으로 천천히 입을 떼었다.
“이제 너는 본교의 가장 뛰어난 절학 중의 하나인 귀영만겁신법을 터득했으니 만일 무서운 강적을 만났다 하더라도 일신의 안전을 도모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는 여기서 말을 자르며 부드러운 어조였으나 명령하듯 이었다.
“자, 그럼 너는 일신상의 모든 일을 처리한 후 무이산(武夷山)에 있는 명왕교를 찾아와라.”
“형님, 그럼 형님께서는 옛 명왕교가 있던 무이산에 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렇다.”
지옥혈제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이 형이 보기엔 형의 제자들이 아무래도 강호 곳곳에 몸을 은신한 채 이 형이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그건 어째서입니까? 벌써 80년이 지났는데……”
“후후후…… 명왕교의 뿌리는 단단하다. 네가 본교의 무공의 일부를 익혔다고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부일 뿐이다.”
지옥혈제의 얼굴에 자부심이 어린다.
사군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역시 혹시 어딘가에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묵혈방의 후예들을 찾고 있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형님. 아우는 꼭 무이산을 방문할 테니 형님께서는 좋은 소식을 듣길 바라겠습니다.”
“허허허……고맙다. 너는 벌써 이 형이 뭘 하려는지 눈치를 챘구나.”
지옥혈제는 이어 그에게 명왕교의 위치를 설명해 주었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서로를 응시한 후 지옥혈제가 먼저 일어서서 통로를 향해 나갔다.
그 뒤를 사군보가 천천히 따랐다.
“꽉 막혔어요.”
통로 끝.
그곳은 우물이 박살나며 떨어진 돌 조각과 흙으로 메워져 있었다.
그러나 지옥혈제는 픽 웃었다.
“천룡대제, 그놈이 만든 관문도 부신 나다. 이까짓 것!”
그는 백연신공을 일으켰다.
그리고 천천히 쌍장을 밀어냈다.
쾅!
콰르르릉!
어른 상체만한 돌조각, 바위 조각들이 일제히 부셔졌다.
지옥혈제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회선풍(廻旋風)!”
휴류류류……
대기가 뒤집어진다.
땅이 솟구쳐 오른다.
마치 사막의 회오리바람처럼 모든 것을 빨아 당기는 힘.
그 힘은 조각난 돌조각들을 하늘로 솟구쳐 오리게 했다.
마치 화산이 터지듯.
땅이 터지며 지상으로 솟구치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이를 보며 지옥혈제가 어깨를 으쓱였다.
“자, 우리도 올라가자.”
“네, 형님.”
두 사람은 회오리치는 와류를 타고 위로 몸을 솟구쳐 올랐다.
**
“어? 이 여자는!”
지상에 올라온 사군보는 기겁했다.
우물 가.
그곳에 한 구의 시체가 엎어져 있었다.
바로 홍련이다.
서둘러 달려간 사군보는 홍련의 품을 뒤졌다.
“없다!”
그녀의 품에는 천겁이 없었다.
“아는 여자냐?”
“그게 그러니까……”
사군보는 잠시 주저거렸다.
홍련의 음양대법에 의해 내공을 빼앗기고 우물에 떨어진 상황을 말하자니 창피했다.
그러나 곧 그는 그 상황을 말했다.
사군보의 얼굴을 붉게 물들었다.
말을 다 한 후 그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창피하네요.”
“강호 경험이 미숙한 탓이다.”
“그러게 말이에요.”
“강호에서는 어린아이, 여자, 노인을 조심하라 했다. 다음부터는 함정에 빠지지 않게 유이해라.”
“네, 형님.”
“그나저나 뭔가를 찾는 것 같았은데?”
“아! 선친의 유품이에요.”
“유품?”
“네……그게 없네요.”
“흠……뭔가 중요한 것인가 모양이구나.”
“그냥 일기장인데……”
“눈에 보이는 게 전부 다는 아니다.”
“그렇죠.”
“꼭 찾길 바란다.”
“네, 형님.”
“자, 이제 헤어질 때가 왔구나.”
“벌써요? 이 산 너머에 가서 한 잔하고 가시죠.”
“이별은 짧은 게 좋다.”
지옥혈제 역시 아쉬웠다.
하지만 80년 만에 나온 세상이다.
명왕교가 어떻게 변했는지 너무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사군보는 그의 심정의 읽었다.
“그래요. 여기서 헤어져요.”
“꼭 복수를 하길 바란다.”
“형님도 듯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자식, 훗날 보자.”
괜스레 더 있다가는 발목이 잡힐 것 같은 지옥혈제는 서둘러 떠났다.
그가 완전히 사라진 후 사군보 역시 걸음을 옮겼다.
“대체 누가 그녀를 죽였을까? 그 사람도 천겁이 목적이었나?”
단서가 끊겼다.
그러나 언젠가는 기필코 찾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그는 천천히 산중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