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404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404화
탁무겸의 이마에 깊은 골이 파였다.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천하의 탁무겸이 고민을 하다니.
‘정말로 소성주를 좋아하는 것 같군.’
참 대단한 소성주다. 암천신마의 마음을 훔치다니.
“알려준다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일단 시도는 해봐야지요. 혹시 압니까? 제가 해낼 수 있을지.”
피바다가 된 전쟁터. 숨을 한번 쉴 때마다 사람들이 몇 명씩 죽어나가는 곳에서 엉뚱한 대화만 오갔다.
하지만 그 어느 곳보다도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말 한마디에 소성주의 목숨이 결정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탁무겸은 장천운의 청을 거부했다.
“아무래도 그건 안 될 것 같다. 사마경의 목숨을 불확실한 너에게 맡길 수 없다. 살리고 싶다면 사마경을 본좌에게 넘겨라.”
장천운은 사마경의 고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뱉은 말을 반드시 지킬 여자였다.
“그럴 순 없습니다.”
“그럼 본좌도 알려줄 수 없다.”
그때 문득, 장천운의 뇌리에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암천신마 탁무겸이라는 명예를 걸고 사실대로 말해주십시오. 소성주께서 지금 마기를 몰아내지 못하면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 거라 보십니까?”
이름을 건다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거짓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치료를 해달라는 것도 아니니 말을 못할 것도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콧등을 서너 번 씰룩거린 탁무겸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짧으면 사흘, 길면 닷새. 너 정도 고수가 마기의 확산을 막으면 보름까지는 버틸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래봐야 결국에는 미쳐서 죽게 될 거다.”
“나는…… 죽어도 상관없으니…… 죽이라니까!”
사마경이 소연추의 품에 반쯤 안긴 채 악을 쓰듯 말했다. 그래봐야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지만.
장천운은 어깨를 으쓱한 후 담담히 말했다.
“아쉽게도, 저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소성주를 지켜야 하는 호위무사입니다.”
그런데 사마경은 죽이라고 명령 아닌 명령을 내렸다. 죽이기도 쉽지 않지만. 명령에 따르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저는 끝까지 소성주를 지킬 것입니다.”
“그럼 너도, 사마경도은 죽을 수밖에 없다.”
“세상의 이치란 게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고 하더군요.”
“가끔은 생각지도 못할 만큼 단순할 때도 있느니라. 죽이고 뺏어오면 간단하게 해결될 테니까.”
그 말이 끝남과 동시, 탁무겸의 전신에서 검은 구름이 피어났다.
장천운도 공력을 십성 끌어올리고 눈을 반개한 채 연검을 들었다.
천멸일원과 비슷한 듯 보이면서도 뭔가가 달랐다.
탁무겸은 초인경에 이른 고수답게 그 차이를 바로 느꼈다.
양각동 외곽에서 싸울 때, 장천운이 마지막에 펼치려 했던 그 검이었다.
먼저 이상할 정도로 몸이 붕 뜬 기분이 들었다. 그의 무공 때문이 아니었다.
문제는 움직임이 원활치 않다는 점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그물에 갇히기라도 한 것처럼.
두 사람은 그 자세 그대로 망부석처럼 서서 반의반 각 정도 시간을 보냈다.
누구도 그들 곁으로 접근하지 못했다. 괴이하게도 반경 십 장 안에 있는 물체들이 허공에 뜬 채 그대로 멈춰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람에 날아든 낙엽도, 지나가던 벌레도, 심지어 바람조차도.
시간이 멈춰버린 공간.
그 안으로 들어가면 영혼이 짓뭉개질 듯했다.
“으으음.”
악착같이 버티고 있던 사마경이 부르르 떨며 신음을 흘렸다.
동시에 멈춰버린 시간이 돌기 시작했다.
오 장 거리에 있던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쌍장과 검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러다 셋을 셀 즈음,
쩌저적!
한 줄기 빛이 어둠을 얼음처럼 갈라내며 천공으로 솟구쳤다.
장천운과 탁무겸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세 걸음씩 물러서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외곽에서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난 것은 그때쯤이었다.
머리에 하얀 띠를 두른 무사 수백 명이 개미떼처럼 양각동으로 들어섰다.
그들 중 일부는 검은 신월이 그려진 하얀 띠를 머리에 두르고 있었고, 일부는 녹색 무복을 입고 있었다.
흑월회와 광양산장의 무사들이 도착한 것이다.
“암천문의 마도무리를 쳐라!”
“구천성 무사들을 도와라!”
“소성주! 이 용화성이 왔소이다! 하하하하!”
그들의 무력은 대단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혼전이 벌어지는 와중에서는 승패를 가를 변수가 되고도 남았다.
탁무겸도 그 사실을 알기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들도 네놈이 불러들였느냐?”
“저에게 친구들이 조금 있지요. 그들이 온 모양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왔군요.”
탁무겸은 불길이 이는 눈으로 장천운을 노려보며 입술을 씹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단 한 놈 때문에 일이 이 지경이 되다니.
하지만 아직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좋아, 굉장해! 본좌가 너를 너무 얕보았나 보구나. 하지만 네가 아무리 날뛰어도 이번 싸움은 내가 이긴 것 같구나.”
기이한 느낌이 드는 말이었다.
막 반문하려던 장천운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사마경이 있는 쪽에서 노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놈을 막아!”
“독고민이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장천운과 탁무겸 쪽에 집중되어 있는 동안, 독고민이 사마경 쪽으로 접근해 있었다.
독고민은 거리가 사오 장으로 줄어들자 욕망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가 노리는 사람은 사마경이 아니라 연송하였다.
바로 그때, 독고민의 귀청으로 탁무겸의 명령이 떨어졌다.
<사마경을 취하라.>
혼을 억압하는 절대의 명령.
연송하를 노렸던 그는 사마경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구천호령 중 둘이 날아와서 그를 공격했다.
히죽 웃은 독고민이 오히려 그들의 공격 속으로 뛰어들었다.
몸에 무형의 막이라도 둘러 처진 듯 구천호령의 검은 기이하게도 독고민을 비켜서 흘렀다.
눈을 홉뜬 구천호령이 위험을 감지한 순간, 독고민의 갈고리 같은 손이 구천호령의 가슴을 뜯어냈다.
“끄어억!”
처절한 비명이 울리고, 피분수가 솟구쳤다.
순식간에 구천호령 둘을 죽인 독고민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사마경 쪽으로 다가갔다.
“어림없다!”
일갈을 내지른 구양명이 사마경의 앞을 막으며 한천검을 뻗었다.
도악의 일장에 약간의 내상을 입었음에도 그의 검에서 검강이 뻗쳐 나왔다.
독고민은 맨손을 뻗으며 검강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이지를 상실한 독고민이 어리석은 짓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경악할 광경이 벌어졌다.
독고민이 맨손으로 구양명의 검을 잡은 것이다. 그것도 검강이 서린 검을.
좌수로 잡은 검을 옆으로 밀어낸 독고민은 구양명의 가슴을 향해 우수를 뻗었다.
구양명은 다급히 좌수를 내밀어서 독고민의 공격을 막았다.
독고민의 손은 인간의 골육이 아니었다. 마치 무쇠로 만든 것처럼 단단했다.
거기다 마공의 공력까지 실려서 무엇이든 부수고 뜯어낼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크억!’
손바닥뼈가 부서지는 고통.
구양명은 고통에 찬 비명을 속으로 삼키며 검을 놓고 뒤로 물러섰다.
천한마검이 검을 포기하는 것은 목숨을 포기하는 것만큼이나 치욕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사마경을 지켜야하는 막대한 임무가 주어져 있었다.
치욕보다는 임무가 우선이었다.
독고민은 잡고 있던 검을 옆으로 던지고 사마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녀와의 거리가 이 장 남짓 남아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지붕 위에서 아래로 몸을 날렸다.
“민아!”
외마디 외침과 함께 날아든 그는 곧장 독고민 앞에 내려섰다.
그 외침을 들은 독고민이 멈칫했다.
땅에 내려선 사람은 독고태였다.
그는 땅에 내려섰다 싶은 순간 독고민을 향해 검을 뻗었다.
워낙 가까워서 피할 틈도 없었다.
검강의 기운이 서린 검이 독고민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순간, 독고민이 검을 잡는가 싶더니, 쩡! 하는 소리와 함께 청명한 음이 울리고 검이 부러졌다.
독고민은 두 걸음을 물러선 후 우뚝 섰다.
검을 내지른 독고태가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독고민이 심장에 꽂힌 검을 빼서 내던졌다. 깊이 파고들지 못한 듯 검첨의 끝에만 피가 약간 묻어 있었다.
찢어진 옷자락 사이에서 나오는 피도 잠깐만 번지다가 말았다.
그래도 충격은 작지 않은 듯, 인상을 찡그린 독고민이 독고태를 향해 손을 뻗었다.
독고태는 피하지 않고 멍하니 독고민을 바라보기만 했다.
“민아…….”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독고민의 손이 독고태의 가슴을 뚫었다.
독고태는 하얗게 웃고 있는 독고민을 연민 가득한 눈으로 응시했다.
아무리 악마라 해도 자신의 자식 아닌가.
자식이 악마가 되어 아비를 죽이고 있으니 이 어찌 불쌍하지 않을까.
“모든 게…… 이 애비 잘못…… 너를…… 이렇게 만든 것도…… 결국…… 미안……하구나.”
순간적으로 독고민의 눈에서 붉은 눈빛이 출렁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이었을 뿐, 독고민은 독고태의 가슴에서 심장을 뽑아냈다.
“이 악마 같은 노오오옴!”
천둥처럼 터져 나온 노성이 어둠을 뒤흔들었다.
장천운은 극성에 이른 무영무종으로 탁무겸의 눈을 찰나 간 속이고 독고민을 향해 날아갔다.
구양명을 공격하려던 독고민은 본능적인 위험을 느끼고 몸을 돌렸다.
언젠가 대해본 느낌. 한때 그것은 그의 몸에 공포의 낙인이 되어 찍혀 있었다.
“장……천……운…….”
뇌정무극수가 삼 장 거리를 두고 독고민을 두들겼다.
콰과광!
굉음과 함께 독고민의 몸이 정신없이 밀려났다.
얼굴이 마귀처럼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 이상의 충격을 받지는 않은 듯 대여섯 걸음 물러선 후 우뚝 섰다.
장천운은 물러서는 그를 뒤따라가며 연검을 뻗었다.
이번만큼은 독고민도 손으로 잡으려 하지 않았다. 위험을 느낀 그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다시 물러섰다.
쉬아악!
어둠이 갈라지며 기다란 선이 쭉 뻗어나가더니, 독고민의 팔을 쓸고 지나갔다.
검강에도 끄떡없던 독고민의 팔이 반쯤 잘려서 덜렁거렸다.
장천운은 한번만 더 손을 쓰면 치명상을 가할 수 있음에도 재빨리 사마경 곁으로 돌아왔다.
탁무겸이 미끄러지듯 다가오고 있었다.
“너 혼자서는 사마경을 지킬 수 없을 거다.”
“그럴지도! 하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싸워줄 테니 자신 있으면 덤비시오!”
탁무겸은 분노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장천운을 노려보며 쌍장을 내쳤다.
장천운으로선 이제 물러날 길이 없었다.
뒤에는 마기에 시달리는 사마경과 내상이 심한 연송하가 있었다.
충돌의 여파가 뒤쪽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막아야 했다.
이를 악다문 장천운은 독고민을 경계하면서 탁무겸을 상대했다.
콰과광!
연이은 폭움과 함께 기의 폭풍이 일었다.
기의 폭풍은 옆으로 퍼지지 않고 하늘로 솟구쳤다.
두 사람이 모두 사마경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려고 기의 방향을 조절한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이 충돌을 일으킨 순간, 독고민이 사마경 쪽으로 움직였다. 반쯤 잘린 그의 팔은 어느새 피가 멈춘 상태였다.
구천호령과 흑월대는 암천문의 살귀들과 뒤엉켜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
부상당한 구양명과 소연추는 독고민을 주시하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때 허공에서 누군가가 떨어져 내렸다.
그자는 독고민의 일 장 앞에 내려서서 철벽처럼 버티고 섰다.
구양명과 소연추는 바짝 긴장해서 그자를 주시했다.
봉두난발에 검은 가죽가면으로 가려진 얼굴, 허름한 장포를 걸친 괴인은 그들에게 등을 보인 채 독고민만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런지 몰라도 분노의 불길이 전신에서 타오르는 듯 느껴졌다.
“비켜!”
독고민이 어눌한 소리로 욕하며 두 손을 뻗었다.
봉두난발의 괴인 역시 마주 손을 내밀었다.
구양명이 그 모습을 보고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그자의 손을 조심하시오!”
쾅!
북소리처럼 울린 단발의 굉음.
독고민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반면 괴인은 어깨를 한번 움찔하며 한 걸음을 물러선 게 전부였다.
그도 잠시, 이번에는 괴인이 먼저 독고민을 향해 쇄도했다.
입을 꾹 다문 채 몸을 날린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독고민을 공격했다.
독고민 역시 물러서지 않고 그와 맞섰다.
“죽여버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