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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400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70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400화

149장 밤하늘은 피로 물들고

 

 

그날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하늘에 구름이 짙게 끼어 있는데, 지상에는 바람 한 점 없었다.

폭풍전야가 이러할까.

장천운은 바람도 없는 언덕에 서서 저 멀리 웅장하게 서 있는 광명사를 바라보았다.

칠산사에 얻은 정보에 의하면, 오늘 석양이 지기 전에 구천성을 대대적으로 공격할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이번 싸움으로 모든 것을 끝내려 할지도 모른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겨울이 되면 방어하는 측보다 공격하는 측이 더욱 힘들어지는 법이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청산자와 암천신마가 그런 고생을 자초할 리 만무하다.

‘당신들 뜻대로 되진 않을 거다. 어디 누가 이기나 끝장을 보자!’

걱정 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파천회가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다.

무림맹의 도움은 물 건너간 상태다. 그들이 움직였다는 보고조차 없다. 사실 그 점이 이상하긴 하지만 지금은 목전의 상황에 집중해야 할 때다.

‘일단은 최선을 다하면서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수밖에.’

 

신시 말이 되자 하늘이 어둑해졌다. 짙은 구름 때문인지, 아니면 찬바람 때문인지 분위기가 음산하게 느껴졌다.

끼이이익.

송곳으로 철판 긁는 소리가 나면서 광명사 정문이 서서히 열렸다.

그리고 승려 대신 무기를 든 무사들이 정문을 나섰다.

끊임없이 정문을 통과한 무사는 일천 명이 넘었다. 그 중 절반은 천하 각지에서 암천신마의 명을 받고 달려온 자들이었다.

그들을 이끌고 선봉에 나선 사람은 도악이었다.

‘오늘 모든 전쟁을 끝내야 해. 사마경, 그 계집도.’

전날 제법 큰 피해를 보긴 했지만, 그 정도로는 암천의 마군을 흔들 수 없었다.

광명사를 나선 그들은 서쪽을 향해 해일처럼 밀려갔다.

그때쯤에는 하늘의 구름이 조금 짙어진 상태였다. 바람도 불기 시작했다. 왠지 스산하게 느껴지는 바람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지는 듯했다.

“피 보기 좋은 날씨군.”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살기 진득한 목소리가 무사들의 심장을 뜨겁게 달궜다.

 

암천문 무사들이 광명사를 나서던 그 시각.

금양관에서도 일천오백에 달하는 무사들이 두 차례에 걸쳐 도관을 나섰다.

청산자는 공격에 대한 작전을 한 시진 전에야 각 조직의 수장에게 알리게 했다. 출동 이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차단했다.

설령 구천성의 간자가 공격에 대해서 알았다 해도 대처할 시간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일진을 이끌고 나선 양산자는 만감이 교차했다.

‘원시천존, 오늘 결판이 나겠군. 차라리 잘 된 일일지도…….’

그 동안 너무 많은 피를 보았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피를 볼 때마다 가슴이 무거워졌다.

아니, 어쩌면 사형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전과 달리 사형은 피를 좆고 있었다. 가슴에 웅크린 살기가 눈에 드러날 정도였다.

‘끝나면 떠나야겠어.’

피비린내 나는 강호를 떠나 산속 깊은 곳에 들어가서 도나 닦으며 지내는 게 나을 듯했다.

하늘이 허락한다면.

 

청산궁과 암천문의 움직임을 감시하던 비령각 비조원들은 금양관과 광명사, 칠산사에서 무사들이 쏟아져 나오자 다급히 전서구를 날렸다.

전서를 읽은 우문각은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한 표정으로 정유에게 명령을 내렸다.

“놈들이 나왔다.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해라. 그리고 즉시 구천대전으로 간부들을 소집해.”

 

* * *

 

휘이이이잉.

고요했던 하늘이 바람을 토해냈다.

잔잔하던 바람이 점점 강해지는가 싶더니, 황무지에서 누런 모래바람이 머리를 쳐들고 마을을 향해 밀려갔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마을 입구를 모래바람이 쓸고 지나갔다. 그러잖아도 휑하던 풍경이 더욱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바람은 모래만 몰고 온 것이 아니었다.

일천이 넘는 무사들도 몰고 왔다.

어쩌면 바람이 그들을 몰고 온 게 아니라 그들이 모래바람을 몰고 왔는지도 몰랐다.

형식적으로나마 마을 안을 오가던 황군들도 오늘따라 보이지 않았다.

구름이 끼고 모래바람이 부니 안쪽으로 들어가서 쉬는 듯했다.

하긴 그들로서는 황군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는 행세만 해주면 되었다.

무사 나부랭이들이 설마 황상의 군대에 대항하겠는가 말이다.

모래바람을 몰고 온 무사들이 지나다니는 이 거의 없는 마을로 들어섰다.

십로로 나누어진 그들은 대로와 골목길, 심지어 담장과 지붕을 넘어서 빠르게 구천성 쪽으로 이동했다.

마치 마을 전체가 해일에 쓸려가는 듯했다.

 

남동쪽에서도 암천문 무사들이 마을 외곽의 양각동으로 들어섰다.

짙은 회색구름과 그 밑에서 밀물처럼 밀려가는 칙칙한 복장의 무사들.

그들 특유의 살기는 쥐새끼조차 덜덜 떨며 쥐구멍에서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붕 위에서 편히 쉬던 새들도 부리나케 날갯짓을 하며 도망쳤다.

 

둥둥둥둥둥둥!

구천성의 고루에서 북소리가 울린 것은 청산궁 무사들이 마을을 삼분지 일쯤 통과했을 때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의 공격을 알리는 북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어둑한 곳에 있던 자들은 북소리를 듣고 결연한 표정으로 무기를 천천히 빼들었다.

“구천성의 무사로서 긍지를 갖고 싸워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자는 살아남을 것이다.”

나직한 목소리로 무사들을 향해 말하는 사람은 풍혼단주 엽가승이었다.

그들 외에도 무기를 빼드는 자들이 있었다.

 

양각동에 있던 모용문태는 세 치쯤 열린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람에서 지독한 살기가 느껴졌다.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오늘 모든 것을 던져 형제들의 영혼을 위로하리라.’

그때 문이 열리더니 모용진강과 모용예가 들어왔다.

“저들이 완전히 마을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각각 오백여 명씩 삼로로 나누어서 들어오고 있어요.”

모용문태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옆에 서 있는 고완을 바라보았다.

“운이 좋아 저들을 이기면 청산궁과도 싸워야 할 거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는가?”

그의 말에 고완이 쓴웃음을 지었다.

고완은 지금까지 청산궁과의 싸움에 나서지 않았다. 청산자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그 약속 안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그 비밀 때문에 고뇌했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모용문태와 끝까지 함께할 것인가, 아니면 청산자의 뜻에 따를 것인가.

최근에 와서야 하나의 길을 택했다. 청산자가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은 후였다.

“후회할 거면 돌아서지도 않았겠지요.”

“고맙네.”

짤막하니 자신의 마음을 전한 모용문태는 창밖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때 북소리가 달라졌다.

둥-! 둥-! 둥-!

모용문태의 표정도 달라졌다.

“그럼 시작하지.”

 

* * *

 

한편, 구천대전에는 구천성 고위간부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합해봐야 삼십여 명.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공손백 쪽 사람들이 많았다.

우문각은 간부들이 다 모이기를 기다리지 않고 보고부터 올렸다.

“놈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들의 숫자가 워낙 많아서 황군도 막지 못할 것 같습니다.”

“놈들이 오늘 싸움을 끝내기로 작정한 모양이외다!”

구평추가 침중한 목소리로 말하자, 묵직한 침묵이 흘렀다.

청산궁과 암천문의 전력이 크게 보강되었다고 했다. 이전에도 막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더욱 어려워졌다.

최후의 싸움이 될지 모른다는 중압감이 간부들의 심장을 짓눌렀다.

뒤늦게 구천대전에 들어온 사람들은 갑작스런 침묵에 표정이 굳어서 발걸음을 조심하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소성주, 명을 내려주시지요.”

우문각이 다시 운을 뗀 후에야 사마경이 침착하게 명령을 내렸다.

“화살과 암기를 있는 대로 모두 사용하라고 하세요. 어차피 오늘 이후로는 사용할 일이 없을지도 모르니까.”

“모두 나누어 줬습니다.”

앉아 있던 간부들 중 상당수가 조소를 지었다.

화살과 암기라니.

그것으로 청산궁과 암천문을 막아낼 수 있을까?

소성주가 아직 어려서 뭘 모르는군.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개중 우문각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나누어줬다? 언제? 회의는 이제 시작했는데…….’

사마경이 생각지 못한 말을 한 것은 그때였다.

“내부에서 혼란을 야기하는 자가 있으면…… 누구든 목을 치세요.”

그 말에 십여 명이 움찔했다. 워낙 미세해서 표가 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세심히 주시하고 있던 사람들의 눈에는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들은 사마경의 말만으로도 속이 시원했다. 대답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알겠습니다, 소성주!”

“그런 자가 있으면 나부터 나서서 목을 치겠소이다!”

공손백도 한마디 보탰다.

“본 성을 배신하려는 자가 아니고서야 어찌 혼란을 야기하겠소? 걱정 마시구려!”

그와 장천운이 약속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의 얼굴 가죽 두께가 정말로 궁금했다.

어쩌면 가죽이 아니라 철판일 거라 생각하는 사람조차 있었다.

둥둥둥둥둥!

북소리가 빠르게 울린 것은 그때였다.

사마경이 고개를 쳐들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시작이군요.”

흠칫한 공손백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말씀이오?”

“저들이 마을로 진입했어요. 이제 곧 본 성의 무사들이 적을 공격하기 시작할 거예요.”

사마경의 설명에 공손백이 이마를 찌푸렸다.

“외곽의 무사들 정도로는 공격해봐야 피해만 커질 텐데…….”

“걱정 마세요. 본 성의 주력이 나설 것이니까요.”

“그게 무슨……?”

“제가 임시 성주의 권한으로 그들을 출동시켰어요. 대장로께서 여기 못 오신 것도 그 때문이죠.”

그제야 공손백은 자신 모르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마경의 말대로 나극이 오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다. 풍혼단 등 소성주를 따르는 주요 조직의 수장들도 보이지 않았다. 무적장도, 구천삼대의 수장도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

설마 그들이 모두 나섰단 말인가?

“어찌 그런 일을 우리와 상의하지 않은 거요?”

“일일이 상의하기에는 시간이 없으니까요. 제 권한으로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보는데, 아닌가요?”

임시 성주에게는 무사를 출동시킬 권한이 얼마든지 있다.

공손백도 그것만큼은 따질 수 없었다.

“그건 그렇소만…….”

“이제부터가 정말 중요해요. 여기 계신 분들이 해주셔야 할 일이 있어요.”

사마경의 언변에 말려들어간 간부들은 반발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사마경의 입만 바라보았다.

공손백조차 반발을 뒤로 미루었다.

어차피 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시비를 걸 마음이 없었다.

“일차 공격이 시작되면 적은 흩어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에겐 기회가 되는 거죠. 그들의 힘이 다시 정비되기 전에 최대한 피해를 줘야 해요. 그 일을 여러분들이 해주셔야겠어요.”

말은 부탁조지만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공손백의 칼날 같은 눈매가 꿈틀거렸다.

약속이야 지키면 되는 것. 주도권까지 넘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대로 끌려가면 나중에도 끌려갈 수밖에 없어.’

그런데 그보다 먼저 사마경이 말했다.

“암천문은 제가 맡겠어요. 대령주께서는 청산궁 공격을 지휘해주세요.”

막 말을 꺼내려다 멈칫한 공손백이 되물었다.

“내가…… 청산궁을?”

“그래요. 청산궁을 상대함에 있어서 대령주만큼 적절한 분이 어디 있겠어요? 구천성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최대한 권한을 드리겠어요.”

권한을 최대한 준다고?

그대로 따르자니 이용당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못하겠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

둥-! 둥-! 둥-!

공손백이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 두 번째 북소리가 울렸다.

“드디어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되었군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못하시겠다면 다른 분에게 맡기겠어요.”

이제는 망설일 시간조차 없다.

그나마 암천문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청산궁을 상대하는 거라면 거리낄 것도 없다.

입매를 두어 번 씰룩거린 공손백은 두 손을 맞잡으며 포권을 취했다.

“알겠소. 소성주의 뜻에 따르겠소.”

“고마워요, 대령주.”

사마경은 짤막하니 치하하고는, 좌중을 향해 힘찬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자! 모두 적을 맞이하러 나가요! 모두가 한마음으로 힘을 합쳐서 상대하면 저들을 이길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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