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9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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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74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99화
바로 그때, 어둑한 그림자가 그들의 머리 위를 덮쳤다.
동시에 가공할 기의 그물이 그들을 휘감았다.
“헛!”
동백이 제일 먼저 그 기운을 느끼고 대경했다.
공손백과의 거리는 석 자, 하지만 그 거리가 삼백 리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속았어!’
경고를 보낼 시간도 없었다.
제일 먼저 춘화가 눈을 치켜뜨고 쓰러졌다. 뒤이어 염하와 추산이 뒤로 날아가서 기둥과 벽에 처박혔다.
동백은 혼신의 힘으로 몸을 틀어서 기의 그물을 벗어나려 했다. 그 정도는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는 실력을 제대로 펼쳐본 적이 없었다.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도 극한 위기가 아니면 모든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마 그가 본 실력을 모조리 드러내면, 공손백도 그를 이기기 위해서 수십 초는 펼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기의 그물에 실려 있는 힘은 그가 생각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콰직!
뼈 으스러지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동백의 몸이 훌훌 날아가서 바닥에 널브러졌다.
공손백은 차가워진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나에 대한 충성의 맹서가 모두 거짓이었단 말이지?”
참으로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가장 믿었던 수하들이 자신을 배신하다니.
분노와 한탄을 넘어서서 허탈할 지경이었다.
쾅!
공손백의 일장이 동백에게 떨어졌다. 겨우 힘을 내서 일어서려던 동백이 다시 이 장을 떼굴떼굴 굴러갔다.
“말해봐라, 동백! 나를 따랐느냐, 아니면 나에게 거짓 얼굴을 보이고 탁무겸을 따랐느냐?”
굴러가다 멈춘 동백이 상체를 일으키며 조소를 지었다.
“당신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분을 이길 수 없어.”
“내가 네놈들을 자식처럼 대해줬거늘, 감히 어디서 간사한 혓바닥을 놀리는 거냐!”
분노가 활화산처럼 터져 나온 공손백은 동백의 머리를 부숴버리려고 손을 들었다.
그 순간,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거대한 기운이 동백의 머리 위를 짓눌렀다.
동백이 피를 토하며 널브러졌다.
“일단은 그 정도로 하시지요. 동백에게 물어볼 것도 있으니.”
공손백은 분노가 식지 않는지 이를 악물고 씩씩거렸다.
“어쨌든 이번 내기는 제가 이겼군요.”
장천운이 무심한 어조로 말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숨을 깊이 들이쉰 공손백은 겨우 분노를 삼키고 이를 갈 듯 말했다.
“그래, 네가 이겼다.”
* * *
남풍루로 간 장천운은 귀독마종을 찾아갔다.
꼼지락거리며 뭔가를 만들고 있던 귀독마종이 화들짝 놀라서 탁자 위의 물건을 가렸다.
“이,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인가?”
“물어볼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잠도 안 자고 뭘 만드는 거요?”
“아무 것도…….”
“독입니까? 하긴 귀하가 독 외에 또 뭘 만들겠수.”
“…….”
사실이었다. 귀독마종은 심심풀이로 독을 만들고 있었다.
사발 두어 개, 술잔, 수저, 호리병 등을 도구로 활용했다.
“어디 얼마나 독한 독을 만들었는지 봅시다.”
“그렇게 독한 것은 아니다. 재료가 없어서…….”
“전에 혈시독과 흑명지독도 먹어보고, 백령혼까지는 먹어봤는데…….”
귀독마종의 쭉 찢어진 눈이 왕방울처럼 커졌다.
“네, 네가 흑명지독을 먹어봤다고?”
“그거 복용하고 겨우 살아났죠. 그래도 백령혼에 비하면 별 거 아니었습니다.”
귀독마종은 입까지 벌린 채 몸이 굳었다.
흑명지독은 독왕이 자랑하는 최고의 독이었다. 자신도 흑명지독을 해독하려면 열흘 밤낮을 고생해야 한다.
그런데 그걸 복용하고도 살아났다고?
허망했다.
저런 놈을 독으로 중독 시켜서 어떻게 해보려고 했다니.
가만? 그런데 백령혼은 또 뭐지?
정말 흑명지독보다 강한 독이라면…… 자신도 이제는 독왕의 독을 무시할 수 없었다.
“뭐, 그건 그렇고…… 뇌혈산처럼 흔적이 남지 않는 독이 또 있습니까?”
그제야 정신을 차린 귀독마종이 기운 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거야 많지. 아마 열 가지도 넘을 거다.”
“구하기가 뇌혈산보다 어렵습니까?”
“구하는 거야 뇌혈산이 제일 어렵지.”
“그런데 왜 대령주가 뇌혈산을 사용했다고 보쇼?”
“나도 그게 의문이다. 아무리 뇌혈산이 대단하다 해도 굳이 그걸 구할 필요까지는 없었을 텐데…….”
“그럼 다른 이유가 있어서 뇌혈산을 구한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다른……이유?”
갑자기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귀독마종이 몸을 잘게 떨었다.
“생각나신 거라도 있습니까?”
“그럼 정말로…… 그걸 만들려고……?”
“뭘 만든단 말입니까?”
부르르 몸을 떤 귀독마종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오래 전, 인세에서 연단이 금지된 마단이 있다. 선조들께선 그걸 뇌령이혼마단이라고 불렀지. 뇌혈산은 그 마단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재료다.”
* * *
그림자 하나가 유령처럼 흘러서 의당의 건물 안으로 진입한 것은 인시가 다 된 지나갈 때쯤이었다.
“뉘, 뉘시오?”
새벽에 잠이 없던 송명선은 몸을 일으키려다가 저만치 방 중앙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뉘신데……?”
“황사중 당주에 대한 겁니다.”
송명선은 문득 든 생각에 눈을 가늘게 좁혔다.
처음 보는 자였다. 그런데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황사중 당주에 대한 걸 묻고 싶다고?
언젠가 황사중에 대해서 알고 싶다며 찾아왔던 사람이 떠올랐다.
그와 목소리가 같았다.
“혹시 귀공은……?”
“그렇습니다. 장천운입니다.”
송명선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죽었을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던 사람이 살아서 자신을 찾아왔다. 다행히 귀신은 아닌 듯했다.
“뭘 알고 싶다는 거요? 어지간한 건 전에 다 말씀드린 것 같소만.”
“황 당주가 왜 뇌혈산을 구했는지 아십니까?”
“내가 그걸 어찌 알겠소?”
“뇌혈산이 어디에 쓰이는 약인지는 아십니까?”
“모르오. 사실 뇌혈산이란 독에 대해서도 최근에서야 알았소.”
“혹시 황 당주가 남긴 일지나 서신 같은 것은 없습니까?”
“없…….”
없다고 대답하려던 송명선이 멈칫했다.
장천운은 그가 뒷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렸다.
“일지나 서신은 없는데…… 집필 중이던 책이 하나 있소.”
“책?”
“의약서요. 자신이 얻은 것을 남기고 싶으셨던 모양이오.”
“어디 있습니까?”
송명선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쪽에 있는 서대로 갔다. 그는 그곳에서 깨끗한 책을 한 권 뽑더니 장천운이 있는 곳으로 가져왔다.
“이거요. 아쉽게도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셨소. 그래도 배울 게 많아서 내가 가끔 읽고 있소. 뒤는 나중에 내가 채워볼까 생각 중이오.”
“뭔가 눈에 띄는 내용은 없었습니까?”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송명선이 책을 뒤적거리더니 어느 한곳에서 멈췄다.
“보시오. 일반적인 의약과는 약간 괴리가 있는 내용이오. 어쩌면 여기에 그대가 찾고자 하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소.”
장천운은 선 채로 책을 읽어보았다.
송명선 말대로 의약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의문을 품은 내용도 있었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왜 그는 뇌혈산이라는 이상한 약을 원하는 걸까. 정말 그 일이 가능할까? 혼을 죽이면 몸이 따라 죽는 게 당연한 일이거늘…….]
천천히 서너 장을 읽어본 장천운은 다시 의약에 대한 내용이 나오기 시작하자 눈을 들었다.
‘이 글대로라면 황사중 역시 뇌혈산이라는 독을 알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런데도 그는 누군가의 부탁으로 뇌혈산을 구했고, 그 누군가가 황사중에게서 뇌혈산을 가져갔다는 말…….’
왜? 무얼 하려고?
혼을 죽이면 몸이 따라 죽는다는 내용도 괴이했다.
그 내용은 귀독마종이 말한 부분과 일말의 연관성이 있는 듯 느껴졌다.
‘정말 파고들수록 더 이상해지는군.’
책을 덮은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허공을 응시했다.
‘어쨌든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어.’
* * *
정유는 고개를 들고 창문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동이 텄는지 창문이 밝아지고 있었다.
‘후우, 또 날을 샜군.’
천하 각지에서 끊임없이 보고가 들어왔다. 줄어들 줄 모르는 보고서를 읽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 되어 있었다.
벌써 이레 째. 우경에게 일을 맡기고 낮에 잠깐 쪽잠을 자는 것 외에는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이러다 내가 제 명에 못 죽지.’
한숨을 내쉰 그는 탁자 위를 바라보았다.
이제 보고서는 석 장이 남아 있었다.
그것만 다 읽고 나면 잠시 쉴 시간이 날 듯했다.
그런데 석 장의 보고서 중 마지막 한 장을 남겨놓았을 때였다.
정유의 눈이 보고서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흑월회?’
무창의 흑월회와 귀룡문 무사들이 은밀하게 북상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숫자는 모두 오백여 명.
사실 구천성과 천외가 전쟁을 벌이는 마당에 그 정도의 전력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문제는 당사자가 흑월회라는 점이었다.
장천운의 어린 시절과 연관된 곳.
하필이면 왜 지금 같은 시기에 그들이 귀룡문과 함께 북상하는 걸까.
‘혹시……?’
어제 소성주가 총사를 불러서 은밀히 계책을 논의했다.
그도 총사에게 그 계책에 대해 들었다.
현 상황에서는 최선의 계책이었다. 소성주가 건곤일척의 승부를 노리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왠지 이가 하나 빠진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는 그 빠진 이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채워지기 힘들다는 것도.
청산자와 암천신마.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두 초인경의 고수를 물리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계책도 공염불로 끝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만약 자신의 추측대로 그가 있다면?
‘그럼 가능성이 있어!’
벌떡 일어난 그는 즉시 우문각의 방으로 달려갔다.
동이 튼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벽이라는 것 정도는 가볍게 무시했다. 보나마나 총사도 잠을 자고 있지 않을 테니까.
아니면 새벽에 일찍 깨어나 있든지.
우문각은 오랜만에 숙면을 취하다가 일어나서 정유를 만나주었다.
“뭔데 새벽에 달려온 거냐?”
약간의 짜증이 묻어 있는 말투에 정유는 바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잠을 푹 잔 모습이었다.
왠지 모르게 손해 본 느낌이 들었다.
누구는 잠도 자지 않고 일을 했는데…… 수하에게 일을 시키고 본인은 숙면을 취하다니.
하지만 어쩌랴, 상대는 하늘같은 상관인데.
“아무래도 그가 나타난 것 같습니다.”
“그라니? 누구?”
정유는 나름대로 무게를 잔뜩 주고 힘주어 말했다.
“장, 천, 운 말입니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어떻게 알았느냐?”
“예?”
“장천운이 나타난 걸 어떻게 알았느냔 말이다.”
그 말뜻을 바로 알아들은 정유의 눈이 커졌다.
“그럼…… 총사께서는 알고 계셨습니까?”
“어제 소성주께 들었다. 아직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셔서 너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정유는 눈만 깜박거렸다.
아무래도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손해를 본 듯했다.
진즉 말해줬으면 지금쯤 푹 쉬고 있을 텐데…….
서운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자신을 못 믿었다는 뜻 아닌가 말이다.
그러다 보니 볼멘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셨군요. 전 또…….”
“내게 불만이라도 있느냐?”
“아뇨. 저 따위가 불만은 무슨…….”
“그래, 이제 보니 너도 많이 컸구나. 하긴 지금 삼십대 중반이지? 새파랗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정유가 후다닥 고개를 숙였다.
총사는 평소 때 조용하지만, 화나면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그럼 이제 가서 나머지 일을 처리하고…….”
“미안하다.”
“예?”
생각지 못한 말이었다. 총사가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다니.
아직 잠에서 덜 깨신 상태인가?
“내가 그 동안 너무 너를 무시했어. 삼십대 중반이면 세상을 뒤흔들 나이거늘. 자식처럼 생각하다 보니 아직도 너를 어리게만 본 것 같다.”
“아닙니다, 총사. 저는…… 괜찮습니다.”
갑자기 눈가가 찡해지더니 눈에 물기가 고였다.
아침이슬도 아니고…….
“너를 정식으로 비령각 부각주로 임명하겠다. 앞으로 사소한 부분은 네 책임 하에 스스로 진행하고 사후보고 하도록 해라.”
“총사…….”
“이번 싸움이 끝나면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구나. 만약 내가 죽으면 이 방의 모든 것을 네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해라.”
“총사!”
“그리 알고 그만 가서 쉬어라. 나도 잠을 조금 더 자야겠다. 아무래도 오늘부터는 더 바빠질 것 같거든.”
“알겠습니다. 그럼 쉬십시오.”
정유는 감동한 표정으로 눈가를 콕콕 찍으며 방을 나갔다.
그가 방을 나가고 방문이 닫힌 후에야 우문각은 피식 웃었다.
‘녀석, 순진하기는…….’
하지만 곧 차갑게 굳어진 표정으로 허공을 노려보았다.
‘어디 누가 이기는지 봅시다, 청산자 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