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9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64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98화
“내가 왜 토사구팽을 걱정한단 말이냐?”
“제가 누군지 아셨다면, 서신의 내용 역시 잘 알고 있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요?”
정말로 그놈이다. 그놈이 아니고서야 어찌 암천문에 보낸 서신의 내용을 알 수 있겠는가.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너도 내가 탁무겸과 갈라섰다는 것을 잘 알 텐데?”
“물론 갈라섰겠지요. 다시 손을 잡기 전까지.”
“흥! 나는 그런 적 없다.”
“저도 그렇게 믿고 싶은데, 어젯저녁 칠산사에서 들은 말이 있으니 어쩝니까?”
“무슨……?”
“세상에 나온 기념으로 칠산사를 헤집어 놓았지요. 아마 사오십 명은 죽었을 겁니다. 아! 구암사라는 노인네도 둘을 처리했지요. 그곳에 들어갔을 때 들었는데, 대령주께서 약속대로 움직였으면 진즉 끝났을 일을, 미적거리는 바람에 피해가 컸다고 불만이 많더군요.”
“…….”
“아마 이제는 약속을 지킨다 해도 그들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공손백의 눈꺼풀이 세찬 바람 앞의 문풍지처럼 파르르 떨렸다.
“칠산사에서 혈풍을 일으킨 게 너였단 말이냐?”
장천운은 대답 대신 차가운 표정으로 씩 웃어주었다.
“정말…… 그들이 그렇게 말했단 말이냐?”
“제가 왜 대령주께 거짓말을 한단 말입니까?”
“그거야 나를 떠보려고 그랬을 수도 있지 않느냐?”
사실 그랬다. 떠본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해줄 마음은 없었다.
“대령주의 속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시간 아깝게 왜 떠봅니까?”
은근히 기분이 상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공손백은 화가 나기보다 등골이 오싹했다.
“좋다, 네 말이 사실이라고 하자. 그런데 왜 나를 찾아온 거냐?”
그 질문이 떨어지자, 장천운의 눈빛이 서릿발처럼 차가워졌다.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어서 찾아온 겁니다.”
“건방진 놈…….”
공손백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발작하지는 않았다.
경비무사 수십 명이 밖을 지키고 있다. 내부에 은신해 있는 호위만 해도 열 명은 된다.
그런데 방안의 동정에 대해서 아는 자가 아무도 없다.
‘아마 이 방에서 나는 소리도 진기로 차단했겠지.’
장천운도 공손백의 속이 모닥불에 올려놓은 솥단지의 죽처럼 끓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모른 척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저는 대령주께 구천성을 위하는 진정이 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아마 그 때문에 그 동안 소성주를 공격하지 않고 참았을 겁니다. 이긴다 해도 피해가 크면 구천성이 위험해질 테니까.”
“…….”
“아마 대령주께선 젊음을 바쳐서 키운 구천성을 남의 손에 넘겨주는 게 싫었을 겁니다. 오래 전에도 그랬고, 그리고 지금도. 아닙니까?”
공손백의 눈이 벌게졌다. 꾹 다문 입술이 잘게 떨리면서 몸 전체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분노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랜 세월 깊숙이 잠들어 있던 감정이 북받친 것이다.
사마중천이 구천성 후계자로 정해진 그때부터 그는 그 감정을 억눌러 놓았지 않은가.
장천운은 차갑고 무심한 눈으로 공손백을 바라보며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떨리던 공손백의 입술이 느릿하게 열렸다.
“그래…… 그랬지. 나는…… 구천성을 남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든. 사마중천에게도, 사마경에게도. 구천성은 본래부터 내 것이 되어야 했어.”
“다행입니다. 오늘 제가 대령주를 죽이지 않게 되어서.”
“놈……!”
발끈해서 노성을 내지르려던 공손백이 눈을 부릅떴다.
단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심장이 조여들고, 온몸에 만근 바위가 매달린 듯했다.
그는 이런 기분을 두어 번 느껴본 적이 있었다.
전대의 암천신마와 마주했을 때.
얼마 전, 탁무겸 앞에 섰을 때.
“맙소사……!”
짧게 한마디 내뱉은 공손백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파들거리는 눈빛에는 허탈감마저 배어 있었다.
‘놈은 이제 하늘이 되었구나.’
믿을 수 없었다.
세상에 나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초인지경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저놈은 정말 사람이 아닌 것 아닐까?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가 어찌 알까, 장천운이 하늘의 기운을 얻기까지 세 번이나 죽음의 강을 건너야 했다는 걸.
“이제 대령주 앞에 남은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를 악다문 공손백의 눈에 핏발이 섰다.
“결정을 내리시지요. 함께 갈 것인지, 말 것인지.”
“함께 가지 않겠다고 하면…… 죽이려 하겠지?”
장천운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떠나시면 됩니다. 대신 돌아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셔야 합니다.”
공손백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그냥 떠나라? 죽이지 않고?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다. 당연히 죽이겠다고 할 줄 알았거늘.
“만약 함께 간다면……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
“당연히 소성주께서 상을 드리지 않겠습니까?”
뭐?
공손백의 눈매 끝이 위로 올라갔다.
상이나 받고 떨어져라, 그 말인가?
자신을 놀리는 것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이 건방진 놈이!’
그런데 장천운이 뜻밖의 말을 했다.
“그리고 지금 계신 그 자리에 계속 계시면 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성주자리를 노려볼 수도 있겠지요.”
예상치 못했던 대답.
공손백의 핏발선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 말…… 진심이냐?”
“구천성의 대령주로서 적과 열심히 싸웠으니 상을 타는 건 당연한 일이고, 능력이 되면 성주가 될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공손백은 머릿속에 복잡해졌다.
장천운의 진심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하실 거 없습니다. 저와 소성주가 가진 생각이 대령주와 약간 다를 뿐이니까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공손백은 입술을 씹었다.
장천운의 말대로 길은 외길이었다.
순순히 굽히고 싶지 않은 자존심 때문에 대답을 망설이는 것뿐.
“으으음, 좋다. 함께 하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사실 이도저도 싫다 하시면 마지막 선택을 하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공손백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가 생각할 때, 장천운이 할 수 있는 세 번째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다.
죽이는 것!
“어차피 나도 탁무겸이나 청산자에게 구천성이 넘어가는 건 원치 않는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당장은 굽혀주지.’
‘내가 당신 속을 모를 줄 아쇼?’
그래도 겉으로는 미소를 지었다.
“원만히 해결되어서 다행이군요.”
“나머지 사안은 전쟁이 끝난 후 따지는 게 좋겠군.”
“아! 하나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만.”
“말해봐라.”
“귀독마종에게 얻은 뇌혈산이 정확히 어떻게 쓰였는지 아십니까?”
공손백의 얼굴이 구겨졌다.
대답 한마디 잘못하면 책임을 뒤집어쓰기 딱 좋은 질문이었다.
“그건 나도 정확히 모른다. 노 장로와 황 당주가 알아서 했으니까.”
공손백은 모든 죄를 죽은 두 사람에 떠넘기고 자신은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명령은 대령주께서 내렸지만, 실행은 노 장로와 황 당주가 맡았다, 그 말이군요.”
결국 당신이 명령을 내렸잖아! 그 말.
그러나 공손백도 쉬운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직접 명령을 내린 적은 없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알고도 지켜보기만 했다는 것 정도다.”
“아, 뭐 대령주께 그에 대한 죄를 물으려는 건 아닙니다. 그저 치명적인 독이라 할 수 없는 뇌혈산으로 인해 전대 성주님이 돌아가신 게 이상해서…….”
그때였다.
장천운의 뇌리에 두어 줄 문구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황 당주가 은밀히 그 기물을 구해달라고 했다. 대장로와 공손 장로의 명령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렵게 그 기물을 구해 황 당주에게 건넸다. 그런데…….]
노회현 장로가 남긴 글에 적힌 문구다.
뇌혈산을 원한 사람은 황 당주였다. 그는 대장로와 공손백의 명령이라는 말을 듣고 뇌혈산을 구해서 황 당주에게 넘겼다.
목적은 전대 성주를 중독시키는 것.
이미 나극과 공손백이 자신들의 입으로 밝힌 사실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중요한 사실 확인이 한 가지 빠져 있었다.
“대령주께서 노 장로에게 뇌혈산을 구해오라고 하셨습니까?”
“아니다.”
“그럼 대장로께서……?”
“나와 대장로는 적당한 독을 구해보라고 했을 뿐이다. 나는 뇌혈산이라는 독이 있다는 것도 처음 들었다. 그 독을 택한 건 황사중이지.”
뇌혈산을 콕 찍어서 구해달라고 한 사람이 황사중이라면, 왜 그는 수많은 독 중 구하기가 극히 어려운 뇌혈산을 선택한 걸까?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 독이어서?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흔적이 남지 않는 독이 어디 뇌혈산 뿐일까?
그 문제는 따로 알아보면 될 일.
장천운은 그쯤에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사실대로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대령주.”
“네놈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을 줄은 몰랐군.”
“앞으로도 열심히 하다 보면 몇 번은 더 있을 겁니다.”
뜻이 어째 요상하다.
꼭…… ‘열심히 하면 칭찬해주마.’ 그런 말처럼 들린다.
‘이 자식이 정말……!’
발끈한 그는 눈을 치켜떴다.
그때 장천운이 말했다.
“그럼 이제 마지막 정리를 하지요.”
“정리?”
“사계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들은 암천문의 사람인 걸로 압니다만.”
“그 아이들은 내 사람이다.”
“확실합니까?”
“물론이다. 비록 암천문에서 자란 아이들이긴 하나, 나에게 마음을 준지 오래다. 내 자식 같은 아이들이지.”
“확인해보면 알겠지요.”
“무슨……?”
“불러들여서 몇 가지 물어보십시오. 그럼 확인이 될 겁니다.”
공손백은 자신만만하게 사계를 불러들였다.
자정이 다 된 시간. 사계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공손백을 찾아왔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동백이 말하며 예를 취했다.
“몇 가지 논의할 것이 있어서 불렀다. 동백, 아무래도 탁무겸과의 약속을 파기해야할 것 같다.”
“예?”
“약속을 지킨다 해도 그놈은 나를 제거할 것이 분명해. 토사구팽 당할 걸 알면서 약속을 지킬 순 없지 않느냐?”
“하지만…….”
“차라리 사마경과 협상을 할 생각이다. 이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다는 조건이라면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
“구천성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태입니다, 주군.”
“내가 마음을 달리 먹는다면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 탁무겸은 내 마음이 바뀐 것을 알지 못할 테니까.”
“너무 위험합니다.”
“위험이야 항상 있는 것. 새로울 것도 없다. 어쨌든 그래서 하는 말이다만, 탁무겸을 몰래 불러들여서 제거할 생각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
동백은 입을 꾹 다문 채 공손백만 바라보았다.
공손백은 제 흥에 겨운 듯 그를 바라보지 않고 시선을 허공에 두고 있었다.
“탁무겸만 내손으로 제거할 수 있다면, 구천성의 간부들도 나를 지지하게 될 게다.”
“정녕 그리 생각하십니까?”
“무사는 결국 힘이 지배하는 법이다. 맥없이 굴욕을 당하고 있는 사마경보다는 당연히 나를 따르지 않겠느냐? 후후후후.”
웃음을 흘리는 공손백의 가슴이 텅 비어 있었다.
거리라고 해봐야 일장 남짓.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는데, 당신이 스스로 선을 넘었으니 우릴 원망하지 마시오.’
동백은 앞으로 발을 내딛으며 옆을 향해 슬쩍 눈짓을 주었다.
염하와 춘화, 추산이 그를 따라 움직였다.
공손백은 그들의 움직임을 보지 못한 듯 여전히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동백이 두 손을 가슴 높이로 들어 올린 순간, 공손백의 입에서도 분노가 서린 한탄이 터져 나왔다.
“역시 그랬단 말이지?”
그는 방어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동백은 의아한 와중에도 공손백의 심장을 노리고 빙백마수를 뻗었다.
염하와 춘화, 추산도 전력을 다해 공격했다.
그때만큼은 충성스럽던 사계가 아니었다. 그저 제거하겠다는 의지로 가득한 살수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