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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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8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93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장면이었다. 치열하게 싸우던 자들 중 그 광경을 본 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멈칫했다.
어쩌면 처마 밑에 서 있는 저 젊은 놈이야말로 진짜 무서운 놈일지 모른다.
“네놈은 내가 죽여주마!”
규호태와 중년인을 상대하기 위해 나섰던 암천문의 간부 중 하나가 장천운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장천운은 그자를 향해서 거꾸로 잡고 있던 검을 던졌다.
“흥!”
냉랭한 코웃음소리.
쩡!
암천문 간부는 가소롭다는 듯 면이 넓은 자신의 칼을 휘둘러서 날아드는 검을 쳐냈다.
순간,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육중한 칼로 검을 쳐냈을 뿐인데 마치 쇳덩이를 친 듯 손이 얼얼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한쪽으로 튕겨나간 검이 눈이라도 달린 듯 호선을 그리며 다시 그를 향해 날아갔다.
속도가 처음보다 배는 더 빨라진 듯했다.
게다가 검에 어린 은은한 기운.
그 변화의 의미를 깨달은 암천문 간부의 눈이 커졌다.
“이, 이기어검?”
그는 황급히 칼을 휘둘러서 강력한 막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기어검은 단순히 검을 날리는 비검술과 천양지차의 상승 검공이었다.
자유자재로 날아가는 검에 펼친 이의 공력이 그대로 실려 있는 것이다.
쩌저정!
강기로 형성된 도막이 유리처럼 깨져나가며 구멍이 뚫렸다.
검은 자체에 생명이 있는 듯 뚫린 구멍을 통과해서 암천문 간부의 심장을 노렸다.
암천문 간부의 눈에는 오직 검만 보였다. 검 외에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눈이 죽음의 공포로 물들었다.
찰나의 순간, 검이 그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퍽!
“크억!”
심장을 관통한 검은 반대쪽으로 빠져나와서 유유히 호선을 그리며 장천운에게로 다시 날아갔다.
암천문 무사들은 생각지 못한 강적의 출현에 표정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반면 금룡장 무사들의 얼굴에는 희망의 불씨가 살아났다.
장천운이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가 암천문 무사들을 죽였다는 것. 그것도 절대 경지의 무공을 사용해서 죽였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약간 기울어졌던 형세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쓰러지는 자도 암천문 쪽이 많아졌다.
금룡장 무사들은 사기가 충천해서 없던 힘까지 쏟아냈다.
“이곳을 빠져나가라!”
결국 암천문 간부 하나가 더 버티지 못하고 후퇴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장천운은 그들을 보내줄 마음이 없었다.
“갈 거면 오지를 말았어야지.”
하나를 더 제거하면 그만큼 구천성 무사들의 위험이 덜어지는 것이다.
싸움이 끝난 직후 비도 멈추었다.
마당에는 이십여 구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금룡장 무사가 일곱이었고, 나머지는 암천문 무사들이었다.
금룡장 무사들은 전장을 수습하는 것조차 잊은 듯 장천운만 바라보았다.
그가 아니었다면 빗물이 고인 땅바닥에 누워 있는 시신은 자신들 차지였을 것이다.
그걸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군. 좌우간 도와줘서 고맙네.”
규호태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하실 것 없습니다. 저도 저들이 싫었던 것뿐이니까.”
“어쨌든 그대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것은 사실 아닌가? 우리가 비록 정파의 협객은 아니지만, 고마움조차 모를 정도로 파렴치한 사람들도 아니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부탁하나 들어주시죠.”
“부탁? 뭔가? 말해보게.”
“찬강이란 분을 만났으면 합니다만.”
“…….”
규호태의 눈매가 가늘게 떨렸다.
찬강. 오래 전에 사라진 이름이다. 당시에도 아는 사람이 강호에 많지 않았다.
최근 들어서 구천성과 암천문을 상대하며 그의 이름이 알려지긴 했지만, 그래봐야 손에 꼽을 정도였다.
“우리가 누군지 알고 있었나?”
“대충은.”
조금 전이었다면 죽여서 입을 막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을 품을 수도 없었다.
적으로 삼았다가는 오히려 자신들이 다 죽을 테니까.
빗물 속에 널브러져 있는 암천문 무사들처럼.
빌어먹을 일이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그런데 자네가 어떻게 그분을……?”
“전에 한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의 제 모습은 모르실 겁니다만.”
“왜 그분을 만나려 하는가?”
“드릴 제안이 하나 있습니다. 서로에게 좋은 일이지요.”
“서로에게 좋은 일이라…….”
“같은 적을 상대하는 사이라면 친구로 지낼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규호태의 얼굴이 약간 밝아졌다.
“같은 적? 그럼…… 암천문을?”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암천문을 무척 싫어합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살수를 펼칠 수 있었지요.”
* * *
금룡장은 본래 하나의 문파라기보다 여러 문파가 운집해서 세력을 이룬 형태였다.
금룡신군이 살아 있을 때에는 그를 신처럼 떠받들었기 때문에 감히 아래에서 분란을 일으킬 수 없었다.
그런데 금룡신군이 죽자 혼란에 빠졌다.
누구도 금룡신군과 같은 절대적인 권위로 그들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찬강과 양적, 금룡장의 원로 두어 명과 휘하세력 중 두세 곳의 주인들이 절대경지의 고수였지만, 그들조차도 결코 금룡신군이 될 수 없었다.
몇몇 문파는 독립을 표방하며 금룡장과의 관계마저 끊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금룡장이라는 이름조차 허망하게 스러질 판이었다.
결국 찬강과 양적은 마음에 맞는 자들만 모아서 금룡장을 유지시켰다.
목적은 금룡신군의 복수!
과거에 비할 바는 아니나, 아직도 그들에게는 어느 대문파도 얕볼 수 없는 힘이 남아 있었다.
몇몇 문파가 이탈하긴 했지만 아직도 상당한 세력이 그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들은 총단을 암천문이 쉽게 찾지 못하도록 깊은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내부를 철저히 단속하며 힘을 응집시켰다.
비천당주 규호태를 안휘로 보낸 것도 휘하세력의 이탈을 막고, 고수들을 지원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안휘에서 돌아온 규호태가 뜻밖의 손님을 데려왔다.
규호태의 설명을 들은 찬강은 눈을 칼날처럼 날카롭게 떴다.
“운천? 이제 이십대로 보이는 자가 이기어검을 자유자재로 펼친다고?”
“예, 동주.”
“그가 암천문과 싸우기 위해서 우리와 손잡기를 원한단 말이지?”
“그렇다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나보시겠습니까?”
“흐으음.”
숨을 몰아쉰 그는 규호태의 말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남들은 그의 살기 띤 무공 때문에 그를 무공만 아는 사람 취급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양적조차 감탄할 만큼 계책에 밝았다.
“일단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양적이 넌지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찬강도 결정을 내렸다.
“좋아, 그럼 한번 만나보세. 지금 어디 있는가?”
“양한의 풍여루에 있습니다.”
양한은 새로운 금룡장의 총단에서 이십 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에는 잠자리와 술장사를 겸한 작은 객잔이 하나 있었다.
겉으로는 마을 사람이 운영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금룡장이 주인이었다.
그 작은 객잔에 무사 십여 명이 나타난 것은 오후 햇살이 따가울 정도로 세차게 내리쬐던 신시 무렵이었다.
그들 중 세 명만이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객잔 안에 손님이라고는 안쪽의 허름한 탁자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청년 하나가 전부였다.
세 사람 중 중앙에 서 있던 중노인이 앞으로 나서서 청년에게 다가갔다.
“그대가 나를 보자고 했나?”
찻잔을 앞에 두고 앉아 있던 장천운은 눈을 들어서 찬강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렇습니다.”
찬강은 장천운의 맞은편 의자를 빼더니 털썩 앉았다. 그 잠깐 사이 그의 눈은 매처럼 상대를 철저히 살펴보았다.
특별해보이지는 않았다. 규호태의 말이 아니었다면 앞에 있는 자가 이기어검을 펼칠 수 있을 정도의 고수라는 걸 믿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와 함께 암천문을 상대하고 싶단 말이지?”
“정확히는 암천문을 무너뜨리자는 것이지요.”
“간이 크군. 혼자서 나를 찾아오다니. 지나친 객기는 자칫 죽음을 앞당길 수 있다네. 죽음이 두렵지 않나?”
“만약에 말입니다. 암천신마나 청산자가 이곳에 있다면 귀하들을 겁냈을 거라 보십니까?”
찬강의 부리부리한 눈매가 꿈틀거렸다. 눈에서는 싸늘한 살기마저 흘러나왔다.
입술을 잘근 씹은 그가 짜증스런 표정으로 대답했다.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지만, 솔직히 그들은 우리가 상대할 수 없는 하늘이다. 그들은 우리가 아무리 위협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거다.”
“그럼 대답은 된 것 같군요.”
뭐?
찬강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장천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장천운의 말뜻을 깨달고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내뱉었다.
“훗, 네가 감히 그들과 동등하다고 말하려는 거냐?”
“못할 것도 없지요. 그들을 하늘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귀하지, 제가 아니잖습니까?”
화아악!
찬강의 전신에서 가공할 살기가 피어났다.
어지간한 절정고수조차도 그 앞에 있으면 숨조차 쉴 수 없을 듯했다.
“네가 지금 나를 모욕하겠다는 거냐?”
입구 쪽에 있던 자들도 장천운이 빠져나갈 만한 곳을 미리 막아섰다.
“네가 나를 모욕하려는 게 아니라면 나를 납득시켜봐라.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너는 오늘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없을 것이다.”
찬강의 말이 끝난 순간,
탁!
장천운이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웅웅웅웅.
그저 찻잔을 내려놓았을 뿐인데 탁자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진동을 일으켰다.
동시에 찬강의 몸에서 피어난 살기가 밀물처럼 밀려났다.
“납득만 시키면 되는 겁니까?”
가공할 공력을 일으킨 것만으로도 모자라 그 상태에서 말까지.
찬강의 눈매가 심하게 떨렸다.
‘뭐 이런 놈이…….’
장천운이 그런 찬강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말씀드리지요. 싸워서 조금 밀리긴 했지만 패하지는 않았습니다. 금룡신군에게도.”
뭐가 어째?
“더 확실하게 납득시켜달라면 해드릴 수는 있습니다만…… 아마 후회하시게 될 겁니다.”
어이가 없어서 한마디 더 쏘아붙이려던 찬강이 멈칫했다.
왠지 묘한 뜻이 담긴 말이었다.
싸워서 패하지 않았다? 금룡신군에게도?
그럼 저 젊은 놈이 언제 금룡신군과 싸워보기라도 했단 말인가?
당금 천하에서 금룡신군이 대결 상대로 직접 대한 사람은 서너 명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젊은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장천운, 그놈 외에는 없는 것으로 아는데…….’
문득 어떤 생각이 뇌리를 때렸다.
찬강은 눈에 힘을 주고 장천운을 노려보았다. 얼굴에서 약간 이질적인 부분이 보였다.
본 얼굴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
“설마 네가 장……?”
무심한 표정이던 장천운이 입꼬리를 살짝 비틀며 찬강의 말을 끊었다.
“거기까지만 합시다. 아직은 알려져서 좋을 것 없으니까.”
그럼 진짜로 이놈이 장천운?
찬강의 눈이 커졌다.
전음이 귀청을 파고들었다.
<탁무겸과 청산자를 제거할 때까지만 손을 잡읍시다. 그 후에는 마음대로 하쇼.>
확실하다. 앞에 있는 운천이란 놈은 장천운이 분명하다.
그놈을 제외하고는 하늘 아래에서 탁무겸과 청산자를 죽이겠다고 설쳐댈 놈이 없다.
얼굴이 다른 것은 다른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일 뿐.
<할 거요, 말 거요?>
호랑이굴에 들어와서 오히려 큰소리치는 미친놈도 그놈 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어차피 장천운을 제외하고는 탁무겸과 청산자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가 죽었다는 소문만 나지 않았다면 자신이 그를 찾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바로 승낙하면 자신을 가볍게 볼지도 모르니 한번 튕겨보았다.
<차분하게 생각해보고 답을 주마.>
장천운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싫다면 할 수 없지요.>
<내가 언제 싫다고 했나?>
<그게 그거 아닙니까? 언제 저들이 구천성을 공격할지 모릅니다. 저는 마음이 급해서 기다릴 시간이 없으니 그만 가보겠습니다. 귀하들은 당장 급할 것이 없는 모양인데, 그럼 천천히, 차분하게 잘해 보십시오.>
정말 성질 하나는 빌어먹게 급한 놈이다.
금룡신군 앞에서 툭툭 대들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두들겨 패면 속이 시원하겠는데, 실력에서 밀리니 그것도 힘들고…….
<좋다, 당장 대답을 원한다면 말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