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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92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89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92화

남궁력은 남궁호의 이야기를 듣고 눈이 튀어 나올 듯이 커졌다.

“네가 범인을 안다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범인이 아닙니다. 이제 청산궁은 세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남궁력은 남궁호를 새삼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술에 찌들어서 주정뱅이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아무래도 헛소문인 듯했다.

너무나 멀쩡했다. 과거의 둘째아들, 그대로였다.

다만, 그때는 천방지축 제멋대로였다면, 지금은 제법 무게감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청산궁의 마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하느냐?”

“설령 본 세가 안에 그들의 끄나풀이 남아있다 해도 이제는 힘을 쓸 수 없습니다. 그것만큼은 분명한 진실입니다.”

“도대체 누구냐? 누가 그들을 처리한 것이냐?”

“지금은 말할 수 없습니다.”

“아버님께도 말씀드릴 수 없단 말이냐?”

굳은 얼굴로 입을 꾹 다문 채 앉아 있던 남궁유천이 다그쳤다.

하지만 남궁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어찌 보면 이전보다 더 성숙해진 듯했다.

“약속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형님.”

“혹시 구천성과 관련된 자 아니냐?”

“그것 역시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가 구천성 사람이든 아니든, 당장 중요한 것은, 본 세가를 위해 청산궁의 수족들을 잘라냈다는 겁니다.”

“그자가 정말 우리 세가를 위해서 나서주었다고 보느냐?”

남궁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자를 어떻게 믿는단 말이냐?”

“믿든 못 믿든, 어차피 더 물러날 곳도 없지 않습니까? 물러날 곳도 없는 본 세가가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무엇이 두렵단 말입니까?”

남궁호는 힘을 주어 말하고, 남궁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아버님.”

남궁력은 눈을 두어 번 꿈틀거리더니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좋다, 네 말대로 어차피 이 상황까지 왔는데 무언들 못하겠느냐.”

짤막하게 승낙의 말을 우회적으로 던진 남궁력은 허리를 곧게 폈다.

차라리 마음의 결정을 내리니 속이 다 시원했다.

“이제부터 본 세가의 모든 결정은 내가 내릴 것이다. 당분간 원로원 어르신들은 배제할 것이니라.”

남궁유천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우려의 말을 내놓았다.

“아버님, 그러다 숙조부님들이 반발이라도 하시면…….”

“어쩌겠느냐? 세가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모른 척한 분들이다. 그분들에게도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이 없다할 수 없느니…….”

말끝을 흐리며 이를 악다문 남궁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릅뜬 두 눈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정광이 번뜩이며 깨어났다.

“호아야, 그에게 전해라. 우리 남궁세가는 청산궁이 사라질 때까지 전력을 다해서 그들과 싸울 거라고.”

* * *

 

남궁력이 결정을 내릴 그 시각. 장천운은 육안에서 서쪽으로 백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고개를 넘고 있었다.

‘그가 잘 해결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남궁세가를 끌어들이기 위해 이틀을 허비한 것은 그에게 무척 아까운 시간이었다.

그 사이 구천성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안단 말인가. 청산궁과 암천문이 재차 공격한다면 구천성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가세한다 해도 구천성의 힘만으로는 기세가 오른 청산궁과 암천문을 꺾을 수 없었다.

더구나 구천성이 천외에 밀리자 구천성에 가입하겠다고 찾아오는 무사들도 없었다. 몰래 짐 싸서 떠나는 무사만 있을 뿐.

다른 힘이 필요했다. 그것도 강력한 힘이.

‘남궁세가가 황산검문과 남천신문까지 끌어들인다면 한 축은 감당할 수 있을 텐데…….’

남은 문제는 무림맹이었다.

사람을 보내긴 했는데, 그들이 자신의 제의를 받아들일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그들로서는 청산궁과 암천문, 구천성이 양패구상하기를 바라고 있을 테니까.

제갈승조가 전권을 휘어잡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긴 하나, 우내이선을 비롯한 무림맹 장로들이 그의 뜻을 따라줄 지는 미지수였다.

정파 노인네들의 고집이 오직 세던가.

“후우우,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했다. 일단 최선을 다해보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고개를 든 장천운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높다란 봉우리 정상을 짙은 회색구름이 집어삼킨 상태였다.

“비가 올 것 같군.”

그는 걸음을 빨리 했다. 풀잎 위를 스치듯 미끄러져가는 속도가 경공을 펼친 것만큼이나 빨랐다.

그렇게 이십 리쯤 달리자 하늘에서 한 방울씩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저만치 앞쪽의 숲속에 전각이 보였다.

‘관운묘군. 잠깐 비를 피했다 갈까?’

 

전각 다섯 채로 구성된 관운묘는 전면에 본채가 있고, 칠성각과 요사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입구를 통과하는 장천운의 눈에서 흥미가 동한 눈빛이 번뜩였다.

관운묘 안에는 그보다 먼저 피를 피하기 위해서 온 선객들이 있는 듯했다. 그들에게서 뿜어진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절정고수의 기운. 이런 고수들이 이 외진 곳에 모여 있다니. 누구지?’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전각 여기저기 서 있거나 앉아 있던 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모두 십여 명. 어디서 한바탕 싸움이라도 벌인 듯했다. 절반 이상이 피로 물들거나 찢어진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입구로 들어서는 장천운을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을 보던 장천운도 이채 띤 눈빛을 반짝였다.

흐트러진 차림새 속에 엄중한 기세를 감춘 자들. 그들 중 두어 명이 눈에 익었다.

‘응? 금룡장 사람들?’

무명장에서 봤던 비천당 무사들이 분명하다.

다른 자들도 금룡장 사람들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그래도 금룡장 사람과 함께 있는 걸 보면 생판 모르는 사이는 아니라고 봐야 했다.

반면 그들은 역용한 장천운을 알아보지 못했다.

장천운은 사람이 적은 쪽으로 가서 처마 밑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기세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기다렸다는 듯 빗줄기가 조금 굵어졌다.

“하마터면 비 맞은 쥐새끼처럼 홀딱 젖을 뻔했군.”

장천운은 중얼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흘러가는 구름을 보니 비가 오래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도 몇 사람의 바늘처럼 날카로운 눈빛이 그의 전신에 꽂히고 있었다.

그는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먹을 것 좀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그를 바라보던 자들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정말 겁이 없는 놈이었다.

아니면 둔한 놈이거나.

“받아라.”

누군가가 불쑥 말했다.

장천운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뭔가가 날아오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손을 뻗은 장천운은 그 물체를 잡았다. 말린 육포였다.

“고맙수.”

육포를 던진 사십대 중년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그냥 던진 것이 아니었다. 강한 진기가 실려 있었다. 육포로 저 겁도 없는 젊은 놈을 시험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잡아서 입으로 가져간다.

뼈가 부러지지는 않아도 시큰한 고통이 느껴져야 옳거늘.

그는 바위에 걸치고 있던 엉덩이를 떼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좌우에 있던 자들도 장천운을 노려보며 살기를 뿜어냈다.

“이름이 뭔가?”

“나? 운천.”

전에 한번 써먹었던 가명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어디서 왔지?”

“육안 쪽에서 왔수.”

“어디로 가는 중인가?”

“신양으로 가는 중이오.”

“사문은 어찌 되는가?”

“호구조사 하는 거요? 관에 있는 분들은 아닌 것 같소만?”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다.”

“그럼 나도 몇 가지 물어봐도 되오?”

“물어봐라. 대답해준다는 보장은 없다만.”

“어디 계신 분들이쇼?”

“그건 자네가 알 것 없다.”

“어디 가는 길이오?”

“그것도 알 것 없다.”

피식 웃은 장천운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비밀이 많은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 없다던데…….”

“비밀은 우리만 있는 게 아니라 너에게도 있는 것 같군.”

육포를 던져준 자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며 검병을 잡았다.

다른 무사들도 언제든 손을 쓸 자세를 취하고 장천운을 노려보았다.

그때 칠성각 쪽의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을 본 장천운의 눈매 끝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칠성각 안에서 나온 두 사람 중 하나가 금룡장의 비천당을 지휘하던 자였다. 다른 한 사람은 처음 보는 자였고.

“비가 그치면 바로 이동할 것이다. 멀리 가지 말고 대기하도록.”

명령을 내린 비천당 당주 규호태가 뒤늦게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장천운 쪽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가?”

“수상한 자가 나타나서 심문을 하던 중입니다.”

규호태의 시선이 장천운에게 꽂혔다.

“자넨 누군가?”

“비를 피하려고 잠시 들렀지요.”

규호태는 장천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무기는 없지만 무사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것도 평범하지 않은 고수.

평범한 자라면 살기마저 품고 있는 무사들 속에서 저리 태연하게 행동할 수 없었다.

‘놈들과 연관된 자는 아닌 것 같군.’

그때 규호태의 옆에 서 있던 자가 슬쩍 고개를 쳐들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자는 나이가 사십대 후반쯤으로 보였다.

금룡장의 비천당 당주와 나란히 서있는 것만 봐도 예사롭지 않은 신분을 지닌 듯했다.

품고 있는 기운도 규호태에게 뒤지지 않았고.

“당주, 놈들이 쫓아온 것 같소.”

그자의 말에 규호태가 시선을 정문 쪽으로 돌렸다.

“정말 끈질긴 놈들이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살을 에는 살기가 관운묘를 향해 밀려들었다.

장천운은 그 살기의 정체를 깨닫고 냉소를 베어 물었다.

‘암천문인가?’

금룡신군이 죽었다 하나 금룡장의 힘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암천문과 청산궁으로서는 금룡장이 자신들의 뜻을 방해하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휘이이이익!

빗속을 뚫고 휘파람소리가 길게 울렸다.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수십 개 그림자가 담장을 넘어왔다.

처마 밑에 있던 금룡장 무사들도 기다렸다는 듯 무기를 빼들며 몸을 날렸다.

장천운에게 육포를 던져준 자도 슬쩍 장천운을 살펴본 후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젊은 놈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듯 태연히 서서 육포를 씹고 있었다.

너무 태연해서 정신이 이상한 놈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적과 한패면 먼저 죽일까 했는데, 아무래도 아닌 듯했다.

 

한편, 장천운은 처마 밑 한쪽에 서서 육포를 씹으며 갑작스럽게 싸움이 벌어진 관운묘 마당을 바라보았다.

제법 넓은 마당에서 삼십여 명이 서로를 죽이기 위해 무기를 들이대고 있었다.

팽팽한 접전.

몇 합의 생사투가 지나기도 전에 서너 명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마당의 나무와 석등 역시 때 아닌 수난을 당했다.

규호태와 중년인이 전장으로 뛰어든 것은 그때쯤이었다.

암천문 쪽에서도 빗속에 묵묵히 서서 구경만 하던 자들 셋이 나섰다. 그들 중 가운데 있던 자가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후후후후, 이제 더 이상 도망갈 수 없을 거다. 순순히 목을 내밀어라.”

그때 암천문의 무리 중 하나가 장천운을 향해 달려들며 검을 뻗었다.

그자의 쭉 찢어진 눈과 얇은 입술에는 비릿한 살소가 떠올라 있었다.

장천운은 좌수를 들어서 그자의 검을 잡았다. 동시에 우수를 펴서 상대의 가슴을 향해 뻗었다.

“미친놈…….”

쾅!

암천문 무사가 한소리 욕설을 내뱉는가 싶더니, 달려들 때보다 더 빠르게 튕겨져 날아갔다.

무사의 몸뚱이는 싸우는 자들을 가로질러서 삼 장이나 날아간 뒤 떨어졌다.

싸우던 자들 중 두엇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무의식중에 손을 멈추고 장천운 쪽을 바라보았다.

장천운은 여전히 처마 밑에 서 있었다.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아마 그의 좌수에 검신이 쥐어져 있지 않았다면 모두들 그가 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때마침 암천문 무사 하나가 또 다시 그를 공격했다.

장천운은 우수에 들고 있던 검을 휘둘러서 상대의 공격에 맞섰다.

그 모습을 본 무사들은 어이가 없었다.

장천운은 검신을 잡고 있었다. 그것도 거꾸로. 자칫하면 검을 잡고 있는 본인이 다칠 수 있었다.

그런데…….

쾅!

예상치 못한 굉음.

장천운을 공격한 암천문 무사가 몽둥이에 맞은 강아지처럼 옆으로 날아가서 한 아름이나 되는 기둥에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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