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9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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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88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90화
“없소?”
“이, 있습죠.”
점소이가 폭풍 속의 돛단배처럼 떨리는 눈을 들으며 대답했다.
장천운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럼 한 병 주시오.”
그의 얼굴은 전과 판이하게 달랐다. 적상천을 시켜서 몇 가지 역용할 수 있는 물건을 구한 후 꼼꼼하게 얼굴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옷도 다른 옷을 입었다. 연검만 차고 현월 역시 갖고 나오지 않았다.
아직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서는 안 되었다.
“저…… 혹시…… 령주?”
점소이가 나직하게 물었다
“오랜만에 왔더니 거리 분위기가 전과 많이 달라졌군요.”
장천운의 말에 점소이의 눈이 붉어졌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한쪽에서 고개를 기계적으로 끄덕이고 있던 자가 고개를 들고 장천운을 노려보았다.
여전히 취한 모습이었지만 눈빛은 조금 전과 달리 짙은 의혹으로 물들어 있었다.
장천운이 그를 불렀다.
“거기서 뭐하는 거요? 대낮부터 취해서. 이리 오쇼. 장원홍이나 한잔 합시다, 이 형.”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취객, 그는 대장장이 이응이었다.
장천운은 이응과 내실로 들어가서 장원홍을 마셨다.
이미 취했으면서도 이응은 주는 대로 받아마셨다.
술이 먼저 떨어지나 자신이 먼저 죽나 내기라도 하는 듯했다.
그러다 끝내 울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처박았다.
장천운은 탁자에 고개를 처박은 이응을 보며 술잔을 목구멍 안에 털어 넣었다.
탁.
소리 나게 술잔을 내려놓은 그가 말했다.
“미안하게 됐소. 한 달 동안 정신을 잃어서 연락을 할 수 없었으니 이해하시오.”
이응은 한참 만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에서 흘러넘친 눈물로 인해서 뺨에 지저분한 선이 그려져 있었다.
“모두…… 소성주도… 흑월대도… 독왕 노선배님도… 령주를 아는 사람들 모두…… 령주가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라 했습니다. 죽었다는 걸 절대로 믿으려 하지도 않았지요.”
장천운은 이응의 말에 피식 웃었다.
“청산궁과 암천문은…… 령주가 돌아오시기 전에 구천성을 괴멸시키려고 공세를 강화했습니다. 정말 무시무시했습니다. 그들이 강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강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을 못했습죠.”
아마 청산자나 탁무겸도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걸. 살아서 나타나면 전처럼 쉽지 않으리라는 걸.
“그런데 웃기게도 대장로가 불러들인 마도문파들 때문에 그들의 계획이 차질을 빚었습니다.”
“흐음,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더니, 마도문파들을 움직였군.”
“물론 지금까지 버틴 게 그들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마 무적장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번 이차 공격 때 무너졌을지도 모릅니다.”
“흑월회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호 군사께서는 무조건 기다리라고만 하셨습니다. 령주께서 머지않아 나타나실 거라면서.”
“그 친구, 내가 불사신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군.”
이응은 흔들리는 눈으로 장천운을 노려보았다.
불사신 맞잖수.
꼭 그런 말을 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입에서는 다른 말이 나왔다.
아직 전해줄 말이 남아 있었다. 아주 중요한 말이.
“소성주께서…… 이번에 령주가 돌아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듣기로는 이를 박박 갈면서 말하셨다는데…….”
장천운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정말로 겁나는 말이었다.
두고두고 들들 볶아댈 테니까.
‘진짜 죽은 척할까?’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러다 들통 나면 몇 곱절 더 험난한 세월을 보내야 할 것이 분명하다.
고민해봐야 답도 안 나올 일.
장천운은 암담한 미래를 일단 뒤로 젖혀두고 당장 현실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대령주는 어떻게 하고 있소?”
“그게 이상합니다.”
“뭐가 말이오?”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암천문과 손을 잡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지금이 절호의 기회일 텐데도 특별한 움직임이 없습니다.”
장천운은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천하의 권력이 탁무겸에게 넘어가면 공손백은 영원히 그의 종으로 살아야 한다.
공손백은 그렇게 되는 걸 절대로 원치 않을 것이다.
더구나 수많은 눈이 그를 지켜보고 있을 게 분명하다. 우문각 역시 눈을 떼지 않고 있을 것이고.
더구나 간부들도 지금은 천외를 철천지원수처럼 생각하고 있을 터. 공손백이 암천문의 편에 서는 순간, 그를 지지했던 간부 중에서 등을 돌릴 자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공손백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테니, 당장 반역의 깃발을 들고 일어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기다리겠지. 결정적인 한방을 노리면서.’
그가 당장 칼을 거꾸로 잡지 않는다 해도 탁무겸은 함부로 그를 내칠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어장검처럼 이용하려고 하겠지.’
생각을 정리하고 냉소를 베어 문 장천운이 질문을 던졌다.
“청산궁과 암천문의 상황은 어떻소?”
“겉으로는 연합이 굳건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최근 들어서 약간 균열이 생겼습니다.”
“균열?”
“구천성이 붕괴 직전에 이르니까 서로를 견제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요?”
장천운의 눈빛이 번개처럼 번뜩였다. 이응의 말이 사실이라면 뭔가 길이 보일 듯했다.
“서신을 써줄 테니 무창에 전해주시오.”
* * *
[네가 내 부인이 된다면 더 이상 구천성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원한다면 함께 청산궁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거부한다면, 결국 구천성의 주인이 바뀔 것이다.]
서신의 내용은 단순했다.
―내 부인이 돼라. 받아들이지 않으면 구천성을 무너뜨리겠다.
결국은 그 말이다.
쫙! 쫙! 쫘아악!
사마경은 서신을 갈기갈기 찢었다.
손아귀에 쥐어서 가루로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화를 푸는 데는 찢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흥! 어디서 헛수작이야?”
싸늘하게 코웃음 친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창문을 바라보았다.
탁무겸이 다시 창문을 부수고 들어온다면 그녀의 칼날 같은 눈빛에 서신처럼 갈기갈기 찢겨질 듯했다.
“이 인간은 왜 연락도 없어? 정말 연락하기도 힘들 정도로 부상이 심한 거야, 뭐야?”
그녀는 끓는 화를 장천운에게 풀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잖아요.”
연송하가 슬며시 장천운의 편을 들었다.
전이었다면 사마경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러나 몇 차례 천 명이 넘게 죽어가는 싸움을 겪다 보니 전처럼 느긋하게만 대할 수 없었다.
“송하는 왜 멍청하게 천운 편만 들어? 천운이 밉지도 않아?”
“사정이 있어서 못 오는 사람에게 뭐라고 해요.”
“혹시 어디서 여자하고 놀고 있는 거 아냐?”
연송하는 어이가 없었지만 사마경의 마음을 알기에 실소를 지었다.
“그럴 리 없어요. 그 정도면 바로 연락하든가 돌아왔겠죠.”
“천운이 나와 송하만 좋아하는 줄 알아? 독왕 노선배님의 딸도 있고, 모용예도 어쩌면 이미 천운에게 넘어갔을지 몰라.”
그 점은 연송하도 불만이었다.
여자 쪽에서 장천운을 좋아하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그럴 만한 행동을 했으니 좋아하는 것 아니겠는가 말이다.
“하긴 오빠도 너무 여자에게 잘해줘서 탈이에요. 소성주님께 하는 것 보면 어떤 여자가 안 좋아하겠어요.”
“쳇, 잘해주기는…….”
어쨌든 투덜거리고 났더니 화가 조금 풀린 듯했다.
사마경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밖을 향해 말했다.
“구 조장, 가서 총사 좀 모시고 와.”
“예, 소성주.”
우문각이 사마경을 찾아온 것은 구산에게 명령을 내린지 이각쯤 지났을 때였다.
그의 표정은 무겁다 못해서 땅을 파고들 것처럼 보였다.
“상황은 어때요?”
우문각이 포권을 취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사마경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썩 좋은 상황은 아니오.”
“그건 저도 알아요.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얼마나, 왜 안 좋은지, 저는 그걸 알고 싶은 거예요.”
“십이지부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소. 무림맹 역시 내부를 다스리기에 정신없고, 안휘는 청산궁의 공격으로 한바탕 피바람이 불어댄 후 전전긍긍하고 있소이다.”
우문각의 말대로, 십이지부는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암천문과 청산궁이 구천성 지부가 있는 지역의 문파를 움직여서 지속적으로 견제하고 있었다.
도와줄 거라 생각했던 무림맹과 남궁세가도 자신들의 문제를 뒤치다꺼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 구천성 문제는 구천성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판.
그나마 무적장 사람들이 떠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무사들의 동요는 어떤가요?”
“몇몇 무사들이 몰래 떠나긴 했는데, 염려될 정도의 숫자는 아니오.”
“원래 둑이 무너지는 것은 큰 구멍 때문이 아니라 작은 구멍 때문일 때가 많다고 했어요. 어느 순간에 동요가 더욱 커질 수 있으니 지금부터 세세히 살펴보라고 하세요.”
우문각도 그 말에는 토를 달 수 없었다.
“그리 하겠소.”
사마경은 그 후에야 자신이 진짜 듣고 싶은 이야기를 꺼냈다.
“천운에 대한 소식은 아직 없나요?”
“그게 이상하오. 비령조들이 반경 이백 리 이내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흔적조차 찾지 못했소.”
“그 정도 거리까지 조사했는데도 흔적을 찾지 못하다니, 이상하군요. 설마 바로 코앞에 있는데 찾지 못하는 건 아닐 거고…….”
사마경이 말끝을 흐리며 이마를 찌푸렸다.
그런데 우문각이 그녀의 말을 듣고 흠칫했다.
‘코앞에 있을지도 모른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면 진즉 구천성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조사를 외곽 쪽으로만 넓혔었다.
어쩌면 그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비령조를 풀어서 인근 마을을 조사해보라고 하겠소.”
“그렇게 하세요. 철저히 조사해보면 뭐든 나오겠죠.”
“알겠소.”
사마경은 우문각의 대답을 들으며 찻잔을 잡았다.
찻잔을 잡고 고개를 든 그녀가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숙부, 솔직히 말해보세요. 우리가 저들의 공격을 얼마나 막아낼 수 있을 거라 보세요?”
우문각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뭐라고 한단 말인가.
지금은 황군 때문에 저들이 조심하지만, 곧 결판을 내려고 총공세를 할 것이 분명하다.
그 사이 사마경이 자문자답하듯 말을 이었다.
“한 번? 두 번? 올해는 넘길 수 있을까요?”
목소리 끝이 잘게 떨렸다.
그제야 겨우 우문각이 입을 열었다.
“우린 이미 대공세를 세 번이나 버텨냈소. 자잘한 국지전까지 합하면 그 배는 될 거요. 이제는 저들도 본 성을 쉽게 무너뜨릴 수 없다는 걸 모르지 않을 거요. 그러니 너무 비관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시오.”
“비관적인 생각은 하지 않아요. 사실을 파악하고 싶은 거죠. 그래야 방법을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우문각은 하는 수 없이 자신이 예상하고 있는 바를 말했다.
“대대적인 공세라면 아마 한번 정도는 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오. 하지만 공격이 계속 이어진다면…… 무사들도 더 버티지 못할 거요.”
“그래도 한번 정도는 더 여유가 있단 말이군요.”
사마경은 그 와중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우문각은 그 말을 듣고 약간의 여유를 찾았다.
‘그래, 소성주의 마음가짐이 저렇다면 한번이 아니라 두 번 이상도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사마경이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제가 탁무겸의 부인이 되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소성주?”
놀란 우문각이 허리를 바짝 세우고 눈을 치켜떴다.
사마경은 찻잔을 붉은 입술로 가져가서 한 모금 마시고는 눈을 들었다.
“조건으로 청산자의 목숨을 요구할 생각이에요. 함께 청산궁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고 했으니 못한다고는 하지 않을 거예요.”
“그 방법은 생각할 것도 없소. 절대 안 되오.”
“왜 안 된다는 거죠?”
“이 우문각은 소성주가 불행해지는 걸 바라지 않소. 나뿐만 아니라 구천성의 모든 무사들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거요.”
심지어 천장에 있던 철무도 한마디 했다.
“그건 안 됩니다, 소성주.”
“그래도 제가 진행하겠다면?”
“소성주!”
우문각의 목소리가 커졌다.
구양명과 소연추도 절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사마경을 바라보았다.
“소성주님, 그건…….”
연송하가 두 손을 맞잡고 안타까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애원하듯 말했다.
하지만 사마경은 도도한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였다.
“탁무겸에게 내 제안을 전달하세요. 이건 명령이에요, 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