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3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76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3화
파계 1권 - 3화
‘젠장, 이게 뭐야!’
내심 욕을 내뱉으며 바닥에 납작 엎드려 앞으로 구르고, 상대의 낭심을 힘껏 걷어찼다.
“억!”
앞으로 숙여지는 상대의 가슴에 비수를 찔러 넣은 나는 재빨리 일어나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온몸에 난 자잘한 상처 때문에 처음처럼 빠르게 달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뭐가 잘못된 거야?’
장원을 빠져나와 등봉을 빠져나갈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로 달렸다.
대로가 아닌 골목을 위주로 해서 달렸기 때문에 조금 시간이 걸릴 뿐이지, 계획대로라면 절대 아무런 막힘도 없이 도망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 반쯤 도망칠 때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 바짝 붙어 달리는 내 앞을 막아선 두 명의 험상궂은 사내들.
척 보아도 거리의 하오배들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다짜고짜 칼을 휘두르는 것으로 봐서 내가 그들의 두목을 죽인 사람이란 것도 아는 것이 확실했다.
어떻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생각하고, 이해하고 할 시간도 없이 그들의 칼을 피해 죽기 살기로 싸워야 했다.
두 명의 어른과 나이 열다섯의 소년.
객관적으로 보면 상대가 아니었지만, 난 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기술을 가진 독종이었다.
늙은이에게 배운 것들은 배수짓이나 잠입술도 있지만, 사람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어떻게 대응하여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있었기에, 두 명 정도는 적당한 부상을 입고 죽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계속해서 나타나 길목을 막고 선 하오배들을 상대하는 것은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죽인 자가 열이 넘고부터 숫자를 세지 않았지만, 내가 이렇게 싸움을 잘하는지, 사람을 잘 죽이는지 새삼 깨닫게 될 정도로 처절한 도주행이었다.
“헉… 헉… 헉……!”
숨이 턱까지 찼다.
요소요소 골목골목에서 잘도 나타나던 하오배들도 더 이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이 어찌 안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그들의 영향 범위도 한계를 드러낸 것이 분명했다.
“……!”
하지만 그것이 나의 착각이었다는 걸 곧 깨달았다.
골목만 빠져나가면 이제 등봉을 벗어날 수 있다 생각하고 어둠 속에서 밖으로 나온 순간, 또다시 나의 앞을 막는 자가 나타난 것이다.
“제법이야.”
이번에 나타난 자는 다른 하오배들과 달리 다짜고짜 죽이겠다고 덤벼들지 않았다.
얼굴이 뱀처럼 생겨 왠지 잔인한 인상을 풍기는 놈은, 그저 흥미롭다는 듯 나를 향해 묘한 웃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네가 죽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아냐?”
열을 넘고부터 세지도 않았는데, 어찌 알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말할 기운도 없었다.
그런데 눈앞의 놈은 매우 묘한 느낌을 발산하고 있었다.
‘살기.’
피부를 따끔따끔하게 하는 질척한 기운.
언젠가 늙은이가 화났을 때 한 번 발산한 적이 있었던 그런 기운이었고, 매우 위험하고 무서운 사람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기운임을 알고 있기에, 나는 지친 가운데도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궁금하지?”
“……?”
“내 수하들이 어떻게 네가 도망치는 길을 알고 지키고 있었는지 말이다.”
“…….”
“왜냐하면 처음부터 내가 널 주시하고 있었거든. 네가 산에 묻은 그 늙은이가 두목에게 살해당한 후부터.”
날 주목했다고?
왜?
난 처음 며칠을 빼고 늙은이와 같이 다니지도 않았고, 배수짓이나 하고 다녔는데, 그런 나를 주시할 이유가 뭐야!
“뭐, 특별한 이유는 없어. 우연히 두목을 찾아가다가 골목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널 보았지. 그리고 그 냉철하게 가라앉은 눈빛. 그 어린애답지 않은 눈빛이 마음에 걸려서 계속 너를 주시했다.”
그랬나?
그렇게 조심을 했는데, 나를 본 자가 있었단 말인가.
“사실 너한테 고마워하고 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네가 하는 짓거리를 그냥 두고 보고만 있었는데, 진짜 두목을 죽일 수 있을 줄은 몰랐어. 내 지금 마음 같아선 너에게 돈이라도 덥석 쥐어주고, 거나하게 환송까지 해주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매우 좋은 상태야.”
이제야 이 눈앞의 사내가 누군지 알았다.
장고동의 오른팔, 도끼파의 이인자라고 하는 그 칼잡이가 눈앞의 사내였다.
그리고 내 행동을 방관하고 있었던 것은 장고동이 죽어주길 바랐기 때문이고, 내가 성공하자 내 목을 들고서 도끼파의 일인자로 올라서려 한다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스릉!
놈이 칼을 뽑았다.
아주 매섭고, 날카로운 칼.
놈이 칼을 뽑아드는 동작만 보아도 분명 뭔가 제대로 익힌, 말 그대로 칼잡이란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살 수 있을까?’
자신은 없다.
하지만 죽기는 싫고, 살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할 생각이다.
스윽!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날카로운 바람이 어깨를 먼저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여지없이 어깨에서 붉은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난 화끈거리는 고통을 느끼며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스악!
하지만 몸을 날리는 내 종아리에 다시 핏줄기가 뿜어지고, 난 바닥을 구르며 더욱 거리를 벌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역시 제법이야.”
놈의 목소리에는 조롱기가 묻어 있었다.
분명 놈은 날 단번에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있다.
왜?
놈은 강자고, 난 약자니까.
언제든 죽일 수 있다는 강자의 여유가 지금 날 가지고 논다, 라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난 그 틈새를 노리고 최대한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스악!
황급히 오른쪽으로 움직였지만 왼팔에 핏줄기가 뿜어진다.
스악!
허리를 숙이니 뺨에 화끈한 통증이 일었다.
내 곱상한 얼굴에 크나큰 오점이 남겨질 것이지만, 죽는 것보단 나았다.
스악!
피했다.
놈의 칼을 몸에 맞으며 그 속도 등에 익숙해져간다는 뜻이었다.
스스악!
놈의 칼이 빨라지고, 좀 더 날카로워졌다.
이제는 날 죽여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모양이다. 그러니 간신히 익숙해진 감각이 흐트러지기 전에 어떻게든 활로를 뚫어야 했다.
스악.
뒤로 구르듯 물러나며 간신히 칼을 피했다.
그리고 재빨리 흙을 한 줌 쥐어들고, 품에서 석회가루가 든 작은 헝겊 주머니를 빼어들며 오른쪽으로 뛰었다. 놈이 쫓아온다. 설마 내가 도망칠 줄 생각 못했는지 약간 당황한 몸놀림이었다.
“이 새끼!”
바로 등 뒤에 바짝 다가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난 달리는 기세 그대로 옆쪽의 벽을 힘껏 밀어 몸을 돌리고, 놈을 향해 석회가루와 흙을 뿌렸다.
“크윽!”
눈에 석회가루와 흙이 들어가면 어느 놈이 당황하지 않을 수 있을까.
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눈을 감싸 쥐면서도 놈은 칼을 마구 휘둘러 나의 접근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난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놓치면 죽음인데 칼에 베이는 걸 두려워할 리가 없는 것이다.
츠아악― 카캉!
가슴을 일자로 베고 지나가는 칼날의 섬뜩한 기운이 나의 뒷골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하지만 난 파고드는 기세를 멈추지 않고 놈의 품으로 뛰어 들어가, 지금껏 소매 속에 감추고만 있던 비수로 가슴을 힘껏 찔렀다.
“윽!”
놈의 떡 벌어진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석회가루와 흙이 들어가 잔뜩 충혈된 눈동자가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운 빛을 뿜어내며 나를 노려보았다.
퍽!
“윽!”
놈의 주먹에 얼굴을 맞고 뒤로 나뒹굴었다.
제대로 못 찔렀나?
놈의 뒤이은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얼른 일어났다.
“…….”
비수가 아직도 놈의 오른쪽 가슴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오른쪽 가슴이지만, 제대로 찌르긴 찌른 것이다. 다만 놈이 쓰러지지 않고 버틸 뿐이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가슴을 찌른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기다렸다가 놈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을 시간이 내겐 없었다.
놈의 칼이 가슴을 긋고 지나갈 때, 품에 있던 금덩이와 은덩이들이 방어구 역할을 해서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그 상처와 기타 여러 다른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핏물이 점점 많아질 테니, 얼른 이곳에서 멀리 도망쳐 상처를 치료해야만 했다.
“바… 반드시 네놈을…….”
쓰러지려는 몸을 억지로 버티고 있는 놈은 내게 죽이고 말겠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놈의 말을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 그깟 놈의 말 같은 것은 듣지 않아도 뻔한 것이고, 그래서 난 등봉에서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 열나게 달리고 있었으니까.
* * *
머리가 몽롱하고, 눈앞이 아른거린다.
어설프게 싸맨 상처에선 여전히 핏물이 불거져 나오고, 이제는 고통이 무감각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염병할 도끼파!’
놈들은 생각 이상으로 집요한 놈들이었다.
두목이 죽고, 부두목이 크나큰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끝까지 나를 추적한 놈들이니까. 어쩌면 그 부두목 칼잡이가 나를 꼭 잡아 죽이라고 악다구니를 쳤을지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놈들은 등봉을 빠져나와 은신처를 찾는 나의 종적을 쫓아왔다.
몇 명이나 죽였더라?
모르겠다. 대충 치료한 상처를 부여잡고 죽기 살기로 싸워서 살아남은 것만 해도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또 쫓아올 텐데…….’
따돌렸다고 생각하면 쫓아오고, 따돌렸다고 생각하면 쫓아오는 놈들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정신없이 도망치느라 산속으로 뛰어 들어가 이리저리 헤맸는데, 눈앞에 작은 소로가 나타났다.
그리고 소로 옆에는 흐릿하고, 몇 개의 글자가 지워지긴 했지만 이곳이 어디쯤인지를 알려주는 돌비석이 하나 놓여 있었다.
소림사(少林寺).
‘소림사?’
그럼 여기가 숭산(崇山)이란 말인가?
소림사는 하남성(河南省) 등봉현 숭산의 서쪽 기슭, 소실봉(少室峯) 중턱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불교 사찰이다.
물론 소림사는 소림파(少林派)라 불리며, 불교의 수양지로서가 아니라 중원무공의 발원지, 정파 무림의 태산북두, 구대문파의 수좌로 그 명성이 더욱 높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 점이 나에게 아주 좋은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
등봉 근방은 도끼파의 감시망에 딱 잡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칼잡이는 나를 꼭 죽이겠다고 했으니, 쉽게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다.
‘소림사에서 잠시 중노릇 하며 지친 몸을 보양하고, 무공까지 익힌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일이지!’
평생 중노릇을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소림사만큼 내게 안전한 곳은 없었다. 그리고 몇 수라도 무공을 배워두면, 내 몸 하나 간수할 힘을 얻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물론 소림사가 나를 받아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내겐 이 방법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왠지 아주 마음에 드는 방법 같아서 생각은 이미 그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였다.
‘얼른 가자.’
힘도 빠지고, 머리도 몽롱하고, 눈앞도 점점 아찔해져서 이대로 쓰러지기 전에 소림사에 당도해야 했다.
그래서 난 온 힘을 다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하며 소로를 따라 열심히 걸어갔다. 시간이 갈수록 눈앞이 어질어질해질 정도로 지쳐갔지만, 쭉 따라 올라가던 소로 하나만을 믿고서 그냥 계속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