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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2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52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파계 2화

파계 1권 - 2화

 

 

 

 

 

늙은이는 자신의 과거를 거의 이야기해준 적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여러 가지 기술을 알려주고, 그걸로 돈을 벌어오게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일 중에는 청부를 받아 사람을 죽이는 기술도 있었다.

 

물론 이야기에 나오는 무슨 무슨 대단한 살수집단처럼 산을 무너트리고, 강을 뒤집어엎는 어느 어느 고수를 죽였다, 등등의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저 보통의 원한 관계에 끼어든 청부살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쌓은 기술과 경험들은 지금 내가 하려는 일에는 더 없이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하오문 두목이 무공에 문외한은 아니겠지만, 무슨 무슨 대단한 고수는 더더욱 아닐 테니까 말이다.

 

스윽.

 

거의 소리도 내지 않고 담을 넘고는 잠시 동안 어둠에 가려진 공간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뚜벅뚜벅.

 

경비를 맡고 있는 사람 하나가 눈앞으로 지나갔다.

 

오늘은 달이 구름에 가려지는 데다 입고 있는 옷도 흑의였고, 얼굴과 손, 심지어 손톱도 달빛에 번들거리지 않게 흑탄을 발라서 경비는 나의 존재를 전혀 감지해낼 수 없었다.

 

‘병신.’

 

하지만 주변을 세밀하게 살피지 않는 경비무사의 안이함도 아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후, 난 담장의 어둠 속을 따라 움직여나갔다. 장고동이 있다는 곳은 흔히 장원의 내원이라고 하는 후원이 아니라, 장원 중심에 위치한 곳이었다.

 

하는 짓들이 언제 칼 맞을지 모르는 짓들이다 보니 방비 차원에서 거처를 그리 잡았을 것이다. 하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멍청하기 그지없는 짓이었다.

 

하오배들은 의리를 내세우기보다는 실력에 우선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배반이란 것에 그리 여유로운 집단이 아니다.

 

그러니 만약 장고동의 수하 중에 반심을 먹고 일을 계획하면, 장원 중심에 있는 장고동은 단번에 포위되어 빼도 박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뭐, 어떤 상황에도 도망치는 재주가 있거나, 신의가 높아 배반자가 생기지 않게 할 자신이 있거나 한다면 모르지만, 탐문한 정보로 볼 때 장고동은 절대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저기다.’

 

장고동이 거처로 삼는 건물이었다.

 

한데, 접근할 수가 없었다. 초련의 말 이상으로 삼엄한 경비가 곳곳을 지키고 있어 건물로 가까이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젠장.’

 

늙은이가 잠입 방법에 대해 가르친 것 중에는 어디 어디에 경비가 있고, 어디 어디에 매복을 하는지, 그리고 그런 경비와 매복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처럼 사방에 횃불을 피워두고, 그 틈새마다 경비가 서 있는 곳들은 내가 하늘을 나는 재주가 있다면 모를까, 전혀 해당사항이 아닌 것이다.

 

덜컹!

 

다음을 노려야 할까, 아니면 이곳 장원에 은신하여 때를 기다려야 할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데 건물의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척 보아도 덩치 크고 인상 더러운 놈이 나왔으니, 바로 내가 죽여야 할 장고동이었다.

 

‘개자식!’

 

그저 어깨를 부딪쳤다는 이유로 그렇게 칼을 쑤셔대다니.

 

늙은이가 누군지도 모르고 욕을 내뱉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이유로 사람을 죽인 장고동에게 절로 살심이 일었다. 물론 열다섯에 이미 사람 여럿 죽여 본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참으로 웃기는 일인 건 안다.

 

그러나 난 이기적인 놈이고, 그런 만큼 좋은 늙은이는 아니더라도, 지금의 내게 가장 가까웠던 사람을 죽인 저 개자식에게 살의를 느끼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서재에 갈 것이다!”

 

워낙 목소리가 우렁차서 멀리 있는 내게까지 그 말소리가 들려왔다.

 

‘서재!’

 

보통 서재란 자신이 거처하는 곳에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장고동은 자신이 거처하는 곳과는 별개의 건물에 따로 서재를 만들어놓았다. 초련의 말을 빌자면, 자기의 무식함을 감추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별의별 책들로 사방을 가득 채워서는 그를 만나려고 온 사람들을 그곳으로 불러 자랑을 한다나.

 

‘하릴없는 자식!’

 

내가 볼 때, 장고동은 머리통에 똥만 찬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지금처럼 늦은 시간에 서재는 왜 간단 말인가!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초련의 말로는 가끔 밤에 서재로 가는 장고동은 주변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그녀도 이곳에서 자다가 밖으로 가는 그를 쫓아가려고 했는데, 단박에 제지를 받았다고 한다.

 

‘웃기는 놈!’

 

장고동의 오른팔이라 하는 칼잡이조차 따라오지 못하게 할 정도이니, 그 행동이 심히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홀로 떨어진 그를 죽이기에 아주 적절한 상황이니, 이런 기회를 제대로 살리면 그뿐인 것이다.

 

스윽.

 

서재가 있다는 건물의 위치가 어디인 줄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장고동보다 먼저 자리를 잡기 위해 최대한 빠르고 은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서재로 사용하는 건물에 당도하여 창문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쾨쾨해.’

 

책이 수북하게 쌓인 곳에서 나는 특유의 텁텁한 냄새가 목을 칼칼하게 자극했다.

 

하지만 과거의 나에겐 이런 냄새가 꽤나 익숙한 것이었다.

 

나의 집안은 풍비박산 나기 전에는 매우 막강한 권력에 올라선 세도가였고, 그런 만큼 부친은 내가 학문에 깊이 빠져들기를 바랐으니까. 아마 역적으로 몰려 집안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난 아직까지 이런 서재에서 코를 박고 공부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빌어먹을!’

 

그런 생각을 하니, 나로 위장하여 죽은 아이가 떠올랐다.

 

신분은 달랐어도 친한 녀석이었는데.

 

주인의 아들을 살려보겠다는 어쭙잖은 충정으로 제 자식을 나와 바꿔치기한 충복은, 그렇게 아들을 죽게 만들고 자살해버렸다.

 

도대체 충(忠)이 뭐란 말인가.

 

도대체 의(義)가 뭐란 말인가.

 

염병.

 

다 잊고 있었던 것들이 갑자기 떠올라 기분을 더럽게 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 서재를 죄다 뒤집어엎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장고동을 죽이기 위함이고, 그런 목적 속에서 헛짓거리를 할 정도로 나는 어리석지 않았다.

 

끼익!

 

‘온다.’

 

재빨리 의자 뒤쪽에 있는 서재 한쪽 구석 틈바구니에 몸을 숨겼다.

 

서재 안에 있는 것은 하나의 책상과 의자, 그리고 주변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책들뿐이지만, 이곳의 어둠을 밝힐 것이 촛불 하나이기에 장고동은 나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뚜벅뚜벅.

 

눈까지 감고서 존재감을 최대한 죽이고 있던 나는 점점 또렷해져가는 발자국에 촉각을 더욱 예민하게 곤두세웠다.

 

우뚝!

 

장고동이 서재 한 귀퉁이에 선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촛불을 켜고, 무언가를 뒤적거리는 것이 책을 찾는 모양이었다.

 

‘책?’

 

저 무식하게 생긴 놈이 진짜 이 야밤에 책을 읽기 위해 서재에 온 것이란 말인가?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면 장고동은 나의 생각 이상으로 영리한 자일 수 있고, 어쩌면 무공도 고강한 자일지 모르는 일이었다. 외적으로 누군가를 속이고, 내적으로는 충실히 자신을 갈고닦는 이는 여러 방면으로 뛰어난 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까 말이다.

 

뚜벅뚜벅.

 

나의 긴장감은 장고동의 발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점점 커져갔다.

 

‘어쩌면…….’

 

놈은 나의 존재를 이미 감지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치 고양이가 쥐를 구석으로 몰아놓고 장난을 치듯 그렇게 나의 행동을 살피고 있는 것이다.

 

끼익, 털썩.

 

의자를 당기고 앉는 소리마저도 나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었다. 마치 나는 이렇게 느긋하게 책을 볼 테니, 네놈이 하고 싶은 일을 한번 해봐라! 라고 말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어떻게 하지…….’

 

놈은 등을 보이고 있었다.

 

거리는 두 장.

 

빠르고 은밀한 세 걸음 정도면 단번에 짓쳐들어 등에 비수를 박아줄 수 있는 거리였다. 혹은 목덜미를 단번에 그어버려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고 있는 장고동의 뒷모습은 갑자기 너무 커져 있었다.

 

두 걸음도 걷기 전에 휙 하고 돌아선 장고동이 껄껄 웃으며 서슬 퍼런 칼을 휘둘러, 나의 몸을 두 동강 낼 것 같은 불안감이 가슴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탁탁탁.

 

‘……?’

 

이게 뭔 소린가?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도 아니고… 뭔가를 일정한 속도로 마찰시키는 듯한 이 소리는…….

 

‘이런 썩을!’

 

단번에 뛰어나가 놈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다는 생각에 무릎에 움찔움찔 힘이 들어갔다.

 

탁탁탁탁.

 

귓전으로 들려오는 소리는 점점 커지고, 빨라졌다.

 

용두질.

 

유식한 말로는 수음(手淫)이라고도 하는데, 사내가 자기의 성기를 손으로 주물럭거리며 성적 쾌감을 얻는 걸 이르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저 장고동 썩을 새끼는 지금 책이 아니라, 남녀의 은밀한 행위를 그려놓은 음사(淫事)책을 보면서 용두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장고동이 아무도 서재로 오지 못하게 한 것은 이런 괴이한 취미가 있기 때문임이 분명했다.

 

‘죽인다!’

 

조금 전까지 나의 가슴을 옥죄고 있던 불안감은 훨훨 날아갔다.

 

대신 늙은이에 대한 복수심과 잠시지만 나를 당황시킨 저 개자식에 대한 살의가 뭉클뭉클 피어났다.

 

왼쪽 소매 속에 잘 꽂아둔 비수를 움켜잡고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살기가 일고, 분노가 일어도 목표를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는 침착하게 냉정을 유지하는 것이 기본.

 

탁탁탁. 탁탁탁탁.

 

놈의 용두질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는 걸 알리는 소리가 점점 격렬하게 들려왔다.

 

원래는 단번에 뛰어 들어가 놈의 목덜미를 그어버려야 했지만, 남자는 한 번의 방출 뒤에 힘이 빠지고, 긴장감이 줄어드는 법이니 그 때를 노리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고, 안전하단 생각에 아주 느리게 접근하고 있는 중이었다.

 

“으윽…….”

 

놈의 신음이 좀 더 명확하게 들려왔다.

 

‘도대체 무슨 그림이 그려져 있기에 저리 좋아하는 거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품에 안을 수 있는 여자가 깔렸는데, 어찌 이런 괴상한 취미로 정력을 낭비한단 말인가. 초련에게 들은 말로 유추해보자면 그녀와 관계를 한 뒤에도 할 정도이니, 이 짓에 거의 광적인 수준에 올라 있는 놈이라 할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어깨를 들썩이는 놈의 움직임은 더욱 격렬해졌다.

 

“윽!”

 

지금이다!

 

난 순간적으로 소매에서 비수를 빼어들고, 놈의 등에 바짝 붙어 비수를 찔러 넣었다.

 

“큭!”

 

놈이 신음을 내뱉었다.

 

폐를 찔린 놈이 신음을?

 

뭔가 잘못된 것이다. 난 비수를 거칠게 비틀면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기 위해 눈을 아래로 깔았다.

 

내가 찌른 곳은 평소에 찌르던 곳이 아니었다. 놈이 절정을 맞보면서 몸을 들썩이는 바람에 겨냥이 약간 빗나가버린 모양이었다.

 

“너… 너…….”

 

등 뒤로 손을 뻗은 놈이 내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

 

덩치만큼이나 그 손아귀 힘이 엄청났다. 하지만 난 멍청하게 당하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얼른 비수를 빼서 다시 원래의 겨냥 부위에 깊숙하게 찔러 넣었다.

 

“……!”

 

이번엔 제대로 찔렀기에 놈은 입만 뻥긋거리고 아무 소리도 내뱉지 못했다.

 

난 찔러 넣은 비수를 더욱 거칠게 돌려서 놈의 속을 헤집어놓고, 내 어깨를 놈의 손에서 빼냈다.

 

쿠당탕!

 

놈이 넘어지는 소리가 조금 컸다.

 

얼른 부축해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어야 했지만 손을 빼내느라, 그리고 놈의 덩치가 커서 재빨리 반응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니, 후회하기보다는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먼저였다.

 

비수에 묻은 피를 놈의 옷에 닦아내고 건물을 나왔다. 그리고 최대한 빠르고 조심스럽게 장원을 빠져나와 이미 파악해놓은 도주로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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