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60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화
파계 1권 - 1화
서장
빌어먹을 늙은이가 죽었다.
술만 먹으면 때리고, 욕을 하던 무식한 늙은이.
배수짓(소매치기)에 도둑질까지 시키고, 사람 죽이는 것이나 가르치던 미친 늙은이.
얼굴 보면 이만 갈리고, 조금도 좋아할 수가 없는 그 늙은이가 죽었다.
하지만 난… 복수를 해야겠다.
제1장. 나는 어쩌다 숭산에 가게 되었는가
늙은이의 시체는 길거리 한쪽에 있었다.
내가 있는 골목에서 대략 오 장 정도 떨어진 거리.
마음만 먹으면 금방 달려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난 가지 않았다. 방금 전, 늙은이의 배때기에다 수십 개의 구멍을 뚫어놓고 간 놈의 수하들이 아직 주변에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한 식경이 흐르고, 한 시진이 흐르고, 몇 시진이 흐르도록 난 움직이지 않았다.
이 더럽고, 화려하고, 흥청거리는 거리에서 사람의 인적이 드물어질 때까지, 내가 늙은이의 시체를 짊어지고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시간까지 기다렸다.
다리가 저리지 않게 조금씩 몸을 움직이면서 하늘을 보았다.
축시(丑時:새벽 1~3시) 말.
대략 그쯤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새벽에는 술 취한 취객도 대부분 곯아떨어질 시간.
드디어 움직일 때가 되었다는 판단에 골목을 나왔다.
“…….”
질퍽하게 퍼진 핏물이 굳어져가고 있는 땅 위에 늙은이는 보고 있기도 짜증나는 자세로 죽어 있었다.
병신 같은 늙은이.
나를 가르칠 때는 살기가 어떻다느니, 경각심이 어떻다느니 하며 목소리를 높이더니만, 만취했다고 빤히 보이는 칼에 그리 쉽게 찔려 죽다니!
생각할수록 욕만 나온다.
도대체 내게 가르친 것들은 다 뭐란 말인가!
“그러게 술 좀 작작 처마시지.”
듣지도 못할 늙은이지만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핏물에 흠뻑 젖은 늙은이의 시체를 어깨에 짊어졌다. 시체가 몇 시진이나 길거리 대로에 있었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는 생각에 이놈의 세상이 더 개같이 느껴졌다.
난 얼른 골목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사람이 없는 시간이라도 가끔 눈먼 시선이 있을 수 있고, 괜히 나의 존재를 누군가의 기억에 남길 필요는 없었으니까.
“죽은 늙은이가 무겁기는 왜 이리 무거워! 젠장!”
사실 무거울 이유가 없었다.
매일 술만 처먹느라 각혈까지 해대던 늙은이였기에 몸은 앙상하기 그지없었고, 지금은 온몸의 피를 몽땅 쏟아낸 상태니 무게감이 있을 리가 없었다.
더구나 내 나이 이제 열다섯에 불과하지만, 늙은이 밑에서 살아가려면 악바리같이 힘을 길러야 했기에 시체 하나 짊어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리 무거울까.
너무 무겁고, 짜증나서 걷는 내내 욕만 나왔다.
* * *
등봉(登封).
이리저리 정처 없이 떠돌던 나와 늙은이가 찾아든 곳이다.
근방에 낙양이 있고, 소림사가 있는, 그리 크지 않은 작은 현이었다. 한마디로, 사람 살기 적당하게 발달한 곳이 등봉인 것이다.
난 지금 그 등봉의 중심지를 나와 산을 오르고 있었다.
늙은이를 묻을 산.
무슨 산인지도 모르고, 그저 등봉의 한쪽에 걸쳐져 있는 산이었다.
새벽바람은 싸늘했다.
가을을 넘어서기 직전의 계절이었으니, 지금 같은 새벽은 절로 몸이 으스스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난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높진 않아도 길도 없는 산을 오른다는 것은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힘이 드는 일이었으니까.
털썩!
산의 중턱쯤에서 주저앉았다.
꼭대기에 올라갈까 생각도 했지만, 너무 힘들었다. 늙은이가 꼭대기에 묻힌다고 해서 달라질 건 또 뭐가 있나.
품에서 예리한 빛이 흘러나오는 비수를 꺼냈다. 늙은이와 지낸 오 년 동안 그가 준 유일한 것이었다.
원래는 이리 날카로운 비수도 아니었다. 늙은이가 그냥 호신하라고 툭 던져준 평범한 비수였는데, 내가 매일같이 갈고닦아 지금의 예리한 비수로 탄생시킨 것이다.
“땅이나 파려고 갈고 닦은 게 아니라고!”
한쪽에 내려놓은 늙은이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
그리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뿌리가 뒤엉켜 있고, 단단하기 그지없는 땅을 파는 것은, 게다가 사람 하나를 묻을 정도로 깊고, 넓게 파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거치적거리는 뿌리를 뽑아내고 다시 땅을 파는 내내 욕을 내뱉었다.
욕을 입에 달고 사는 늙은이를 닮는 것이 싫어서 한 번도 입에 올린 적이 없던, 걸레같이 더러운 욕들이 봇물처럼 계속 쏟아졌다.
“헉… 헉… 헉…….”
입에서 단내가 난다.
오른팔은 너무 욱신거려서 아파 죽을 지경이다. 괜히 죽은 늙은이를 노려보지만, 시체가 되어버린 늙은이의 눈동자를 보는 것은 절로 등골이 오싹한 일이라 얼른 시선을 돌려버렸다.
“오 년 동안 굶어죽지 않게 해준 거 고마웠수.”
되었다 싶어 늙은이를 끌어당겨 구덩이로 밀어 넣었다.
구겨지듯 구덩이에 들어간 늙은이의 팔다리를 잘 정리해줄까 하다가 그냥 두기로 했다. 죽은 사람이 팔다리가 이리저리 뒤틀렸다고 불편할 것은 없으니까.
“그럼 난 가오.”
파낼 때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구덩이를 메우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을 내려왔다. 아는 것이 없어 염불 같은 것도 해주지 못한다. 물론 안다고 해도 하지 않았겠지만.
‘복수해줄 테니 그리 섭섭케 생각 마오.’
난 속으로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래도 굶어 죽기 직전의 나를 데리고 먹여주고, 가르쳐준 늙은이니 은혜는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처음 이 년을 빼고, 삼 년 동안의 대부분을 자신이 늙은이를 먹여 살렸다고 해도 말이다.
* * *
약간의 탐문을 통해 알아낸 놈의 이름은 장고동이었다.
늙은이를 죽인 놈은 이곳, 등봉의 밑바닥을 틀어잡고 있는 하오배 문파의 두목인 것이다.
도끼파.
도끼파가 뭔가, 도끼파가.
작명을 한 놈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게 만드는 웃기는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도끼파의 초대 두목은 무식하고, 힘만 있던 놈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아 두목을 해먹는 장고동도 무식하고, 힘만 믿고 있는 놈이 분명할 것이다. 한마디로, 복수하기가 조금은 쉬울 수도 있다는 것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길거리의 왕 노릇을 하고 있는 놈을 죽이는 것이 누워서 만두 먹기처럼 쉬울 리는 없는 법.
그래서 놈을 죽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충분한 조사가 필요했고, 난 그렇게 했다.
거지처럼 분장해 거지들과 어울리고, 이리저리 술 취한 취객들 사이를 오가며 정보를 얻는 등의 짜증나는 탐문 끝에 놈의 장원에 숨어들 수 있었는데, 아주 유용한 정보를 가진 사람 하나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몇 가지 있었다.
먼저 객잔 하나를 잡고 몸을 깨끗이 씻은 다음, 고급스런 비단옷을 구해 입고, 비싸다는 장신구를 사서 치장을 했다.
그 과정 속에서 죽은 늙은이의 품에서 가져온 적지 않은 돈을 몽땅 써야만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내 돈이 아니라 그리 아까울 것이 없었다. 물론 내가 번 돈을 늙은이가 가지고 있던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 돈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늙은이의 시선 밖에서 갖은 방법을 다해 몰래 감춰두었던 내 돈을 몽땅 쏟아 부어야 했던 것이다.
‘미친 늙은이! 그 많은 돈을 술 처먹는 데 다 써버렸으니, 내가 빈털터리가 되잖아!’
복수를 해야 하는 건가? 하는 회의감까지 일었다.
그러나 이미 시작한 일이고, 돈을 다 쓴 마당에 이제 와 멈추는 것도 기분이 더러운 일이다.
“어서 옵쇼!”
기루에 들어서자 점소이가 활기찬 음성으로 나를 맞이했다.
그런데 점소이가 바라보는 눈길이 예사롭지가 않다.
“뭘 보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요.”
놈은 분명 내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외모가 여인처럼 섬세하고, 아름답다는 것에도 놀랐을 것이다.
‘빌어먹을!’
어릴 때도 그랬다.
집안이 쫄딱 망해서 종놈으로 팔려갔더니, 그 주인집 마나님이 내 곱상한 외모에 음심이 동해서, 별 이상한 것을 다 가르치며 나를 노리개처럼 다루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런 건 참을 수 있었다. 이것저것 배우면서 남녀 간의 관계라는 것이 어떤지는 충분히 깨우쳤으니까.
오히려 내 나이가 열이 되자 그 마나님을 성적으로 완전히 굴복시키는 경지에까지 도달하지 않았던가. 한마디로, 그 어린 나이에 나도 즐기는 수준에 올라서버린 것이다.
그래서 마나님은 밤일에 완전히 타고난 놈이라고 찬탄을 금치 못하면서 잠시도 날 곁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그렇지만 난 그곳을 뛰쳐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의 곱상한 외모가 더욱 빛을 발하니까, 집주인까지 날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아무리 그쪽에 도가 텄다고 해도 남색은 나하고 전혀 맞지 않는 짓거리였다.
열 살 되던 해 겨울에, 난 집주인의 거시기를 입으로 뜯어 발기고 도망쳐 나왔다.
그리고 추운 겨울, 동상과 아사 직전에 이른 나는 늙은이를 만나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이다.
“초련이를 부르게.”
제법 그럴싸한 방을 잡고서 기루의 총관에게 툭 내뱉자 그의 눈이 놀란 빛을 띠었다.
당연한 것이 초련은 이곳 등봉 최고의 기녀였고, 그녀는 도끼파 두목의 여자로 완전히 굳어진 상태라 아무도 그녀를 찾지 않았던 것이다.
“술만 먹으면 되잖아.”
내 품에서 열 냥짜리 은덩이 하나가 총관의 품으로 던져졌다.
총관의 얼굴이 살짝 변하기는 했지만, 아직 마음을 정한 표정이 아니었다.
“자네와 내가 입을 닫으면 누가 알겠나.”
이번엔 다섯 냥짜리 금덩이가 총관의 품으로 들어갔고, 그제야 그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공자님.”
“그러지.”
총관이 방을 나갈 때까지 느긋한 표정을 짓고는 있었지만, 내 속은 완전히 썩어문드러져 진물이 흐를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이로써 내 수중에는 다섯 냥짜리 금덩이 하나밖에 남지 않게 된 것이다. 그것도 적은 돈은 아니지만, 잠시 동안 이것저것 즐기면서 지낼 생각을 하고 있던 내겐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한 일 년간은 죽어라 일만 해야 하겠군.’
지금껏 돈을 벌기 위해 턴 집이 얼마이며, 죽인 사람이 몇이던가.
열다섯밖에 되지 않은 나의 두 손은 이미 검게 물들어 있는 것이다. 물론 전혀 죄책감이나 후회는 없다. 먹기 위해, 살기 위해 해야만 했던 일들이었는데 거리낄 것이 무엇인가.
드르르.
문이 살포시 열리고, 코끝을 향긋하게 자극하는 체향이 기분 좋게 풍겨왔다.
그리고 그 체향의 근원지인 여인의 몸매와 얼굴은 더욱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초련이옵니다.”
기타 여러 조건에서 만족스런 여인인 만큼 그 목소리도 매우 흡족한 수준이었다.
“아!”
그리고 고개를 든 초련은 내가 기대한 것처럼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놈의 인기는 어딜 가도 식지를 않는군.’
한데, 그 인기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래서 평소에는 몰골을 더럽게 하고 다녀 혹시나 생길 불상사를 방지하는 수고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왜 그러나?”
내 미모에 놀란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소녀가 잠시 공자님의 아름다운 옥안에 놀라 실수를 하였습니다.”
초련은 약간의 솔직함과 아부 등으로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기술을 펼쳤다.
기녀로서는 아주 훌륭하고, 필히 갖추어야 할 기술이지만, 아무나 쉽게 갖출 수 없는 기술인 것이다. 아마도 도끼파 두목은 이런 초련의 기술에 흠뻑 빠진 것이겠지.
“사내에게 아름답다는 말을 하다니!”
나는 과히 싫지 않은 표정으로 웃음까지 터트리고 이리 오라 손짓을 했다.
초련은 오랜만에 다른 남자를, 그것도 어리고 얼굴까지 되는 나의 시중을 들게 되었다는 것에 꽤나 기분이 들떠 있었다.
‘아주 뻑 가게 해주마.’
가볍게 술을 마시고,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며 초련과의 관계를 좀 더 부드럽게 풀어나갔다.
그리고 조금씩 신체접촉을 시작했다.
“이러시면…….”
어느 여인을 불문하고 늘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 얼굴과 부드러운 말주변, 그리고 손기술에 여자는 결국 넘어오게 되어 있었다. 처음 그 기술을 가르쳐준 마나님 외에도, 여러 여인네를 상대로 충분히 시험하고 터득한 경험에서 나오는 실전적 기술인 것이다.
“헉… 헉… 헉……!”
초련의 아름답고, 적당하게 풍만한 몸을 감싼 옷이 내 손에 의해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방 안은 뜨겁고 격한 숨결로 가득 찼다.
술만 먹는다고 총관에게 말했지만, 그도 알 것은 다 아는 사람이었으니 이 방을 찾을 염려는 없고, 그래서 나는 온 힘을 다해 초련을 흥분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다.
물론 초련에게 알아낼 것이 있었기에, 손끝에 약간의 몽혼약을 묻혀 그녀의 정신 상태를 좀 더 캐내기 쉬운 상태로 만든 것은 불문가지.
“장고동의 집에 들어간 적이 있다고 했지?”
“허헉! 예… 예, 공… 자님!”
초련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후 난 초련에게서 장고동이 살고 있는 장원에 대해, 그리고 그 수하들에 대해 알아낼 것은 몽땅 알아냈다.
“아악!”
뾰족한 절정의 신음이었다.
그리고 땀에 번들거리는 초련의 새하얀 나신은 바닥으로 늘어져 아주 약간의 경련과 함께 힘을 잃어갔다.
“내일 아침까지 푹 자.”
어느 누가 열다섯의 소년이 산전수전 다 겪은 기녀를 이렇듯 절정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혼절하게 만들 수 있다 생각할까.
가끔 나 스스로도 이런 내가 무서울 지경이니, 다른 사람에게는 경악스런 일일 것이 분명하다.
각설하고, 난 충분한 정보를 얻었기에 슬며시 기루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입고 있던 비단옷과 장신구를 산 것에 비해 눈물이 날 정도로 싼 값에 되팔고는 등봉을 샅샅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틀 동안 충분한 준비를 마친 나는 드디어 도끼파의 본거지, 장고동이 있는 장원으로 은밀히 접근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