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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425화 (완결)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95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425화 (완결)

백리우진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눈의 떨림이 커졌다.

장천운이 그를 보며 말했다.

“좋아, 너를 내 친구로 인정해주지, 백리우진. 밉던 곱던 한때 강련곡의 동기니까. 영광으로 알아라.”

“나쁜… 새끼…….”

입으로는 욕하면서도 희미한 미소가 입가로 번지는 백리우진이다.

그 후 그의 모든 움직임이 멎었다.

장천운은 웃음이 맺힌 채 뜨여 있는 백리우진의 눈을 감겨주었다.

‘이제 편히 살아라. 그래도 마지막에 마음을 고쳐먹었으니 지옥에는 가지 않을 거다. 뭐, 내가 염라대왕에게 부탁도 할 거고.’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마혈을 빨리 풀어낼 수 있었다. 덕분에 은창현이 사마경을 데려가기 전에 손을 쓸 수 있었다.

백리우진이 제대로 점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고의로.

극천혈을 점혈한 백리우진이 전음을 보냈다.

 

<운이 좋으면 살아날 수 있을 거다, 장천운. 어디 재주껏 벗어나봐라.>

 

마지막으로 백리우진을 눈에 담고 일어선 장천운은 무 노인에게 갔다.

무 노인은 조백의 재빠른 조치로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그의 옆에는 소천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는데, 상태가 전보다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자신과 사마경을 위기에서 구해주었으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또 떠나실 겁니까?”

“이제 나도 지쳤다.”

 

 

 

158장 미안하다

 

 

장로원의 상황이 대충이나마 정리되자, 장천운은 구천무원으로 달려갔다.

사마경이 담담한 표정으로 앉아서 그를 맞이했다.

방에는 그녀 혼자 있었다.

이상하게 소연추도 구양명도 없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응. 이제 괜찮아.”

“대장로 쪽은 모두 정리되었습니다. 이제 아무 걱정 마시고 마음 편히 쉬십시오.”

“그 사람은 좀 어때?”

갑작스런 사마경의 질문에 장천운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 말입니까?”

“그 사람, 검은 가면을 쓴 사람.”

“…….”

“훗, 천운은 나를 바보로 아나 봐.”

“그게…….”

“저번에 봤을 때부터 이상했어. 그런데 뭐가 이상한지 몰랐을 뿐이야.”

“소성주.”

“그러다 오늘 보고 확신을 가졌어.”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마친 사마경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더니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 생각이 맞지?”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녀의 눈 안에서는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장천운도 더는 속일 수가 없었다. 폭풍에 휘말리더라도 진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맞습니다.”

“왜…… 말 안했어? 천운이 말하지 않았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후우, 알겠습니다. 제가 아는 걸 다 말씀드리죠.”

장천운은 한숨을 길게 내쉰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단, 장철산에 대한 이야기는 빼고 소천에 대해서만 말했다.

사마경은 차를 마시며 한마디도 끼어들지 않고 끝까지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장천운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야 찻잔을 내려놓았다.

찻잔에는 한 방울의 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야기를 마친 장천운은 처분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묵묵히 서서 사마경을 바라보았다.

한참 만에 사마경의 입이 열렸다.

“나쁜 분들이야. 정말…… 나쁜 분들이야. 그렇지?”

들릴 듯 말 듯 나직이 말한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커다란 두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차고 차다가 넘친 눈물이 뺨에 기다란 물줄기를 만들며 흘러내렸다.

“저…….”

장천운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사마경이 그의 입을 빤히 바라보았다. 뭐든 말해보라는 듯.

“죽은 줄 알았던 제 아버지도…… 살아 계신 것 같습니다.”

“뭐?”

사마경에게는 눈물이 쏙 들어갈 정도로 충격적인 말이었다.

“알고 보니…… 장철산…… 그분이 제 아버지라고 하네요.”

“…….”

이번에는 사마경이 할 말을 잊었다.

“이십 몇 년 동안 아버지로 알고 있었던 분은 그분의 수하였고요.”

“천운…….”

“얼마 전에는 어머니의 얼굴을 닮았다는 그림을 봤습니다. 정말 아름다우시더군요. 진짜 어머니는 아닙니다만.”

사마경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다.

이번에는 자신의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장천운이 불쌍해서 우는 것이었다.

자신은 삼 년이었다. 그런데 장천운은 이십 년이 넘었다.

게다가 어머니의 얼굴은 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사마경은 소매로 눈물을 훔치기 바빴다. 장천운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고개를 쳐든 채 천장만 바라보았다.

 

한참 만에야 사마경이 말했다.

“어떻게 할 거야?”

장천운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받았다.

“그냥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나도.”

“그분들은 혼 좀 나셔야 돼요.”

“맞아. 정말 혼 좀 나야 돼.”

“그래도 뭐…… 없는 것보단 낫겠죠?”

“그러겠지?”

 

* * *

 

그날 밤.

비령각에 간 장천운이, 천으로 온몸을 감싸고 누워 있는 우문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놀라지 말고 들으십시오.”

“걱정 말고 말해봐라. 다 죽었다 살아난 내가 더 놀랄 게 뭐 있겠느냐?”

“그럼 말씀드리죠. 전대 성주께서…… 살아계십니다.”

“뭐? 푸하하하하! 컥컥컥.”

우문각이 자신도 모르게 대소를 터트리다가 기침을 해대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온 몸의 뼈가 다 분해되는 듯했다.

그러든 말든 장천운이 말을 이었다.

“다만 이지를 상실해서 사람을 못 알아보실 뿐이죠.”

우문각이 몸을 떠는 와중에도 눈을 치켜떴다.

“설마…… 나하고 장난하려는 건 아니겠지?”

“장철산이란 분도 살아 계시지 않습니까.”

“그건 그런데…….”

장철산과 사마중천은 상황이 달랐다.

장철산이 살아 있다고 해서 사마중천 역시 살아 있다는 게 정상이라고는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장천운이 그 말을 하고 가만히 바라만 보자, 우문각의 눈이 흔들렸다.

“뭐, 뭐야. 그럼…… 정말이란 말이냐?”

“소성주께도 말씀드렸습니다.”

“맙소사…….”

“원래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아무래도 총사께서는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린 겁니다.”

우문각은 한참 동안 멍한 표정이었다.

사마중천이 살아 있다고? 이지를 잃은 채?

자신의 눈으로 시신을 보고,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뇌혈산. 그게 바로 숨을 일시적으로 끊어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장천운이 뇌혈산에 대해 이야기해주자 그제야 우문각은 상황을 깨닫고 헛웃음을 지었다.

“허, 허, 허. 이거야 원……. 도대체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모르겠군.”

“무 할아버지가 그러시더군요.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그 말에는 우문각도 할 말이 없었다.

자신 역시 청산궁 쪽과 깊은 관계였지 않은가 말이다.

그는 무안함을 감추려고 말을 돌렸다.

“좌우간 그 사실이 알려지면, 천하 강호인 모두 놀라서 뒤로 넘어갈 이야기군.”

“그리고…… 장철산이란 분 말입니다.”

“장철산? 맞아, 그 친구는 지금 어디 있나?”

“저도 모릅니다.”

“으음, 꼭 좀 보고 싶었는데…….”

“제가 찾아낼 겁니다. 아무리 깊은 곳으로 숨어도 반드시 찾아낼 겁니다.”

“그래?”

“저한테 혼 좀 나셔야 하거든요.”

“무슨…… 말인가?”

“제 친아버지라더군요. 장철산, 그분이.”

“……!”

‘어쩐지…….’

 

* * *

 

청묵전 사건 열흘 후.

무창에서 남초초가 올라왔다.

“할아버지!”

남사명은 남초초가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자 미소를 지었다.

“허허허, 그 녀석.”

“몸은 괜찮으세요?”

“오냐, 괜찮다.”

손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눈 남사명이 선물보따리를 풀 듯이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내가 그 녀석의 허락을 받아냈으니 이제 혼사는 걱정 마라.”

“혼사요?”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 것이니라.”

눈을 깜박이며 듣고 있던 남초초가 발갛게 홍조 띤 얼굴로 말했다.

“정말요? 정말 제가 원하는 대로 해주실 거예요?”

“그렇다니까?”

하나 남은 손녀에게 무엇을 못해주랴.

그런데 남초초가 한쪽을 향해 손짓했다.

“호 공자, 이리 와보세요. 어서요! 할아버지께서 우리 혼사를 승낙해주시겠데요.”

응? 뭐?

남사명은 남초초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는 호양청을 번갈아보았다.

‘뭐, 뭐야? 그럼 초초가 저 녀석을……? 안 돼! 내가 장천운에게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는데……!’

“고마워요,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어르신.”

남사명은 호양청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어쩌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가 좋아한다는데.

그리고 사실 호양청도 과분한 청년이었다.

“커험! 우리 초초가 좋아한다니 어쩌겠느냐? 대신 명심해라, 이놈! 초초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면…… 노부가 얼마나 독한 사람인지 알게 될 거다.”

“아이, 할아버지도.”

남사명을 향해 눈을 곱게 흘긴 남초초가 호양청을 바라보며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세요, 호 공자. 할아버지가 만드실 줄 아는 독은 제가 다 해독시킬 수 있어요.”

 

* * *

 

원단(元旦)을 하루 남겨 놓은 날.

두 사람이 장천운과 사마경 앞에 서 있었다.

한 사람은 뻘쭘한 표정에 삐딱한 자세였고, 한 사람은 꼿꼿이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전면만 바라보았다.

낙양에서 놀다가 잡혀온 장철산과 겨우 목숨을 건진 사마중천이었다.

사마중천은 그 동안 전력을 다한 치료를 받고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장천운이 귀독마종을 닦달해서 뇌혈산으로 인해 상실한 사마중천의 이지를 조금이라도 살려보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사마중천은 사람의 얼굴을 알아볼 정도가 되었다. 그래봐야 과거의 기억은 대부분 잃고, 새로 본 사람들만 기억했지만.

 

“나도 사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장철산은 장천운의 시선을 피하며 대충 얼버무렸다.

무려 한 시진 동안 아들과 사마경의 잔소리를 들었다.

둘이서 어찌나 몰아붙이는지 귓속에서 공명이 울리는 듯했다.

물론 그로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자식에게 혼나는 것도 못마땅했다.

‘내가 이래서 만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막상 아들이 앞에 있으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반면 목석처럼 서 있던 사마중천은 무슨 말인가를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모기 날갯짓만큼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장천운과 사마경은 청력을 집중했다. 그제야 어눌한 목소리가 확실하게 들렸다.

“나는…… 잘못…… 없다. 나는…… 잘못 없다고 하라고…… 나는…… 잘못…… 없다.”

장천운과 사마경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시킨 듯했다. 시킬 사람이야 동방무기, 무 노인밖에 없지만.

‘어쩐지 방에 들어오자마자 몸이 아직 안 좋다며 바로 나가더라니…….’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천운, 그 영감님이 시킨 것 같지?”

“그런 것 같은데요?”

그때 사마중천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청력을 집중하지 않아도 내용을 알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조금 전과 내용이 달랐다.

“미안……하다, 미안…… 미안……하다……, 미안…….”

사마경의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찼다.

 

* * *

 

마침내 원단이 되었다.

이제 성주 위를 정하는 구천대평의회에서 사마경을 성주 위에 추대하면 지난 몇 년간의 갈등이 잠재워질 것이다.

그런데 그날 아침, 사마경이 장천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천운이 성주 자리를 맡아. 나는 좀 쉬고 싶어.”

“싫습니다. 제가 그 귀찮은 자리를 왜 맡습니까? 저는 아버지와 함께 무창으로 갈 생각입니다. 살아남은 흑월회 형들도 함께 갈 거고요.”

장천운은 무슨 소리냐는 듯 단호하게 거절했다.

사마경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조금도 실망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럼 나도 함께 갈 거야. 송하도 단리 공자 따라간다고 했으니 나라도 천운과 함게 가야지.”

“예? 구천성은 어떻게 하고요?”

“우문 숙부에게 성주 하라고 하지 뭐.”

“정말 그렇게 하실 겁니까?”

“못할 거 뭐 있어? 그리고 앞으로는 소성주도 아니니까, 동생처럼 대해줘. 알았지?”

“…….”

“나도 사실 천운을 오빠라고 불러보고 싶었어.”

“그래도 오빠는 좀…….”

“아이, 천운 오빠아아앙. 내가 동생 되는 게 싫어?”

싫진 않았다. 그저 온몸에서 닭살이 돋는 것 같아서 이상할 뿐.

“그냥 이름을 부르기로 하죠.”

“싫어. 오빠라고 부를 거야.”

이번에는 사마경이 단호하게 거부했다.

구천성의 성주 직위를 포기하고 ‘오빠’를 택한 그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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