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4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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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8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421화
서문주경이 파리한 안색으로 정신없이 물러서고 있었다.
반대편에 서 있는 모용문태도 얼굴이 일그러진 상태였다. 그는 칼을 쥔 손으로 왼쪽 어깨를 움켜쥐고 있었는데, 뼈가 잘못 되었는지 팔이 축 늘어져 있었다.
몸을 똑바로 세운 서문주경이 모용문태를 보며 비웃었다.
비밀리에 배운 장법을 적시에 펼쳐서 모용문태의 팔을 하나 못쓰게 만들었다.
심장을 부수지 못한 게 아쉽지만 그 정도만 해도 승부를 뒤집기에 충분했다.
“후후후, 그렇게 잘난체 하더니, 북천도왕도 오늘로서 끝이구나.”
비아냥거림이 끝나기도 전, 그의 뒤에서 냉랭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수법, 탁무겸에게 얻은 것인가!”
장천운의 목소리!
소름이 끼친 서문주경은 다급히 돌아서며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반사적으로 검을 뻗었다.
하지만 일 장 거리에서 벼락처럼 뿜어진 뇌정무극수가 간발의 차이로 그를 덮쳤다.
떠덩!
“크윽!”
옆구리를 얻어맞은 서문주경은 고통에 찬 표정으로 주르륵 물러섰다.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하필이면 모용문태 근처였다.
그 순간, 모용문태가 몸을 날리며 칼을 벼락처럼 휘둘렀다.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서문주경은 몸을 홱 틀며 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모용문태의 칼에서 뻗친 뇌전이 서문주경의 목을 스쳤다.
“안……!”
공포에 질린 외마디 외침이 도강에 잘려나갔다.
비틀비틀 물러서는 서문주경의 목에서 핏줄기가 피시식, 소리를 내며 뿜어졌다.
안색도 점점 창백해졌다.
덜덜 떨리는 왼손을 올려서 목을 움켜쥔 그의 눈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퉤!
피 섞인 침을 뱉어낸 모용문태가 서문주경을 역겨워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지. 남들 몰래 암천문의 발바닥을 핥고 있었군.”
참으로 교활한 자였다. 정파의 대협이라 불리는 자가 암천문의 사주를 받았었다니.
그때,
“청운신검이 죽었다!”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놀라서 내지른 소리라기보다는 다분히 의도적인 외침이었다.
파천회 무사들이 그 소리를 듣고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공세의 강도도 현저히 약해졌다.
반면 척마대는 이때라는 듯 더욱 거세게 파천회를 몰아붙였다.
“들었는가! 청운신검 서문주경이 암천문의 사주를 받았다는 말을!”
“그런 놈이 감히 정의를 말하다니!”
그 소리는 파천회 무사들의 사기를 땅속으로 파고들게 만들었다.
“모두 후퇴하시오!”
뒤로 처져서 눈치만 보던 제갈승우가 악을 쓰며 후퇴명령을 내리고는 제일 먼저 도주했다.
파천회 무사들은 차라리 잘 됐다는 듯 뒤돌아서 내달렸다.
일부 고수들이 자존심 때문에 망설였지만, 그들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들 역시 입술을 깨물며 뒤로 신형을 날렸다.
‘젠장! 두 배의 인원으로도 패하다니. 서문주경을 믿는 게 아니었어!’
이를 갈며 계곡을 빠져나가던 제갈승우는 등골이 오싹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튀어나올 듯이 커진 눈이 공포로 가득 찼다.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검이 그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이기어검……!”
공포에 질린 그 한마디가 그의 삶을 장식하는 마지막 말이었다.
이십여 장 거리에서 날아간 검이 그의 심장을 관통했다. 그러고는 완만히 선회하더니 다시 뒤로 날아갔다.
제갈승우는 가슴에서 피를 뿜으며 삼 장을 더 날아간 다음 커다란 바위에 처박혔다.
그 광경을 본 파천회 무사들은 이를 악물고 혼신의 힘을 다해 경공을 펼쳤다.
그때 뒤에서 심혼을 짓누르는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계곡을 나가거든, 파천회를 떠나시오! 떠나지 않는 자는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요!”
분노한 하늘이 울리는 듯했다.
가슴이 먹먹하고 숨을 쉬는 것도 힘들었다.
일성을 내지른 장천운은 돌아온 검을 거두고 돌아섰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들 그렇게 보십니까?”
의아한 표정을 지은 그는 사마경 곁으로 돌아갔다.
그를 바라보던 몇 사람이 한숨을 쉬었다.
“무슨 놈의 호위무사가…….”
또다시 이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가 늘어난 거야 말할 것도 없고.
척마대는 반시진을 더 보낸 후 계곡을 나왔다.
그런데 계곡 밖에 도착한 그들을 향해서 달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파천회 사람들이 아니었다. 무림맹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본 척마대원들은 이를 갈았다.
암천문에 이어서 파천회와 싸웠다. 그런데 이제는 무림맹이란 말인가.
“좋아! 어디 오늘 끝장을 보자!”
“무림맹도 결국 파천회 놈들과 똑 같군! 아니지, 더 비겁하다고 해야 하나?”
“싸우려고 왔으면 덤벼라!”
몇 사람이 악을 쓰듯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 앞에 도착한 무림맹 무사들은 공격할 생각이 없는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그들을 이끌고 온 제갈승조와 담강융이 앞으로 나섰다.
“우린 구천성과 싸우러 온 것이 아니오.”
“제가 봐도 그런 것 같군요.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혹시 파천회와 싸우기라도……?”
장천운이 말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가 그리 말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무림맹 무사들의 옷에 핏자국이 선연했다. 개중에는 부상을 당한 자도 상당수였다.
누군가와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는 뜻.
당장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은 조금 전에 계곡을 빠져나간 파천회밖에 없었다.
그런데 제갈승조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파천회와 싸운 것이 아니네.”
“그럼……?”
구천성과 파천회를 제외하면 천하의 누가 무림맹의 최정예 무사들을 적으로 삼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의문은 제갈승조의 입이 열리면서 풀렸다.
“암천문의 잔당들과 싸웠네.”
“예?”
“원래 우리는 파천회의 뒤를 따라왔다네. 혹시라도 그들이 엉뚱한 짓을 하면 막기 위해서 저쪽 산봉우리 뒤쪽에 몸을 숨기고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암천문 무사들이 암봉을 돌아서 나타나더군.”
장천운은 그 말뜻을 알아듣고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암천문 무사들은 음양곡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밖에서, 그것도 암봉 쪽에서 나타났다면 동굴 속으로 들어간 자들일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이었다.
암천문 무사들이 동굴 반대편의 다른 통로를 통해서 동굴을 빠져나간 것이다.
다만 무림맹 사람들이 몰랐던 점이라면, 암천문 무사들은 공격하기 위해서 이동하던 중이 아니라, 산을 빠져나가던 길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을 계곡으로 가지 못하게 하려다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로 인해 많은 형제들이 죽거나 다쳤다네. 후우,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도록 강한 자들이었네. 만약 그들이 갑자기 나타난 어떤 노인의 말을 듣고 후퇴하지 않았으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죽었을 거야.”
“우리를 돕기 위해서 왔단 말이오?”
“그렇다네. 싫든 좋든 약속을 했으니까.”
장천운은 제갈승조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얼굴에 씁쓸한 마음이 드러나 있었다. 뭔가 말 못할 이유가 있는 듯했다.
무림맹이 약속을 지키려 했으면 진즉 나섰어야 했다. 그런데 청산궁과 암천문이 구천성을 공격하고 있는데도 움직이지 않았었다.
지금에 와서 약속 운운한다는 것은, 하고 싶어도 누군가가 방해를 해서 하지 못했다는 뜻처럼 들렸다.
사마경도 제갈승조의 말에 담긴 뜻을 바로 간파했다. 하지만 자세한 것은 묻지 않았다.
말할 것이라면 변명으로라도 먼저 말했을 것이다.
“어쨌든 고마워요. 나중에라도 약속을 지키려 하셨으니, 지난 일의 아쉬움은 잊겠어요.”
“이해해줘서 고맙소, 소성주.”
제갈승조와 무림맹 무사들은 그렇게 척마대와 헤어져서 돌아섰다.
우내이선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핑계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그 일은 어차피 자신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마음이 무거워진 제갈승조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만약 끝까지 모른 척한다면, 장로회의를 거쳐서 맹주를 바꾸는 수밖에…….’
* * *
동백현에 도착한 척마대는 차분하게 부상자를 치료했다.
무림맹에 의해 암천문의 잔당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면 크게 걱정할 것 없었다.
그날 밤, 장천운이 사마경의 명령을 받고 찬강을 만났다.
마주앉은 자리에서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구천성에 들어오십시오.”
찬강은 더 들을 것 없다는 듯 냉정하게 거절했다.
“우린 우리대로 살아갈 거네. 뱀의 머리가 되더라도 용의 꼬리로는 살아가고 싶지 않네.”
“구천성에서 십이지부는 독자적인 세력을 이루고 있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합심해서 성주를 몰아낼 수도 있지요.”
“싫네. 그래봐야 결국 구천성 아래에 속하는 것 아닌가.”
“그래도 적이 되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적? 지금…… 나를 협박하겠다는 건가?”
“예, 협박하는 겁니다. 저나 소성주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금룡장은 풀어놓기에 너무 껄끄러운 상대니까요.”
찬강의 얼굴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자네 정말……!”
“지금 구천성은 피해가 너무 큽니다. 그 피해를 만회하고 전열을 정비하기 위해서는 무력시위를 벌이는 방법이 최선이지요. 저는 함께 손을 잡고 암천문과 싸운 금룡장이 무력시위의 대상이 되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으으음.”
빌어먹을 놈.
찬강은 입술을 씹으며 고민했다.
당장 거절하자니 부담이 너무 컸다. 상대는 청산자와 암천신마를 죽인 놈 아닌가.
장천운이 그런 찬강을 자근자근 밀어붙였다.
“솔직히 금룡장도 이제는 거의 흩어졌지 않습니까? 구천성에 들어오시면 최고의 대우를 해드리겠습니다.”
찬강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장천운의 말대로 금룡장은 서너 개의 세력으로 갈라졌다. 그 중 자신이 이끄는 세력이 가장 컸다.
하지만 이번 암천문과의 싸움에서 입은 피해로 이제는 그조차 자신할 수 없었다.
장천운은 그가 고민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진심을 전하려고 애썼다.
“진심입니다. ……진심이라니까요? 못 믿겠습니까? 제가 책임지죠.”
“으음, 아무래도 나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군.”
“구천성에 도착할 때까지 답을 주시면 됩니다.”
* * *
― 소성주께서 암천문을 물리치고 돌아오신다!
― 장천운이 암천신마 탁무겸을 죽였다고 한다!
소식이 전해지자, 살을 에는 긴장감에 숨도 쉬기 힘들었던 구천성이 환호로 뒤덮였다.
천외가 세상 밖으로 나온 지 백일,
모두가 천하제일이라는 구천성이 무너진다고 했을 때 일어난 기적이었다.
승리의 대가로 척마대의 절반이 희생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지만, 천외를 상대하며 지옥 끝까지 가보았던 사람들은 담담히 받아들였다.
한편, 죽음보다 더 짙은 침묵 속에 잠긴 청묵전에서는 환호 대신 무거운 목소리만 흘렀다.
“다 죽어가던 계집이 끝내 암천신마까지 제거했소이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소이까? 돌아오면 내년을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성주 자리에 오른다 해도 반대할 사람이 없을 거외다.”
눈매가 길게 찢어진 육순의 노인이 답답하다는 투로 말했다.
공손백은 말없이 허공을 주시하더니 나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대장로도 죽었단 말이지요?”
“그렇소이다. 철혈단 위지행 단주도 목숨을 잃었다 하더이다.”
공손백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세력을 뒤집기에는 너무 차이가 컸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뒷방 늙은이가 되어 살아갈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너무 억울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마지막 반격쯤은 한번 해봐야하지 않겠는가.
“만약 지금 상태에서 사마경을 제거하면 어떻게 될 거라 보시오, 은 장로?”
눈매가 길게 찢어진 육순의 노인. 그가 바로 한때 장로원의 이인자로 알려졌던 마령도 은창현이었다.
나극이 죽은 지금 차기 대장로 일순위.
“장천운까지 죽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소이다.”
공손백은 은창현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마경이 문제가 아니다.
장천운. 초인경에 올라선 그를 죽이지 못하면 모래로 성을 쌓는 것이나 다름없다.
“방법이 있겠소?”
“내부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외다. 외부의 힘도 끌어들일 만한 힘이 없소이다.”
“결국 길이 없다는 말이구려.”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말해보시오.”
은창현은 길게 찢어진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