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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24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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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24화

파계 1권 - 24화

 

 

 

 

 

우선 두 손목의 힘줄을 잘라낸다. 그 죄가 크면 양다리의 힘줄도 잘라내는 경우도 있다 한다. 그리고 단전을 파괴해서 내공을 없애고, 마지막으로 이마에 파계(破戒)라는 문신을 새기어, 중원 어디에서든 그가 어디에서 파문되었는지를 알게 하는 것이다.

 

다른 거파는 무공의 특성에 따라 어디 한 부분을 자르고, 배운 무공을 쓰지 말라는 경고 정도에 그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심한 죄를 지은 것이라면 그냥 죽여 버리니, 오히려 그것이 더욱 나은 배려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오칠을 소림사 밖으로 내쫓는 것이 아니라, 쇄마동에 가둔다지 않는가.

 

그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니 무섭다는 감정이 덜한 것이지, 오칠은 병신이 되어 평생 동안 감옥에 갇혀서 살고 싶은 생각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살… 살려주십시오!”

 

오칠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연기가 아니라,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무릎이라도 꿇고 싶었다.

 

진정 파문되고 싶지 않았다. 아니, 파문은 상관없었지만 사지 근맥이 잘리고, 배에 구멍이 뚫려서 어두운 동굴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그건 사는 것이 아니었다. 죽음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죽는 것도 싫었지만, 그런 삶도 죽는 것만큼이나 싫었다.

 

“전 기억이 없습니다! 제 의지로 한 것이 아니라, 그… 그… 아리만이 그렇게 한 겁니다!”

 

굉요가 눈을 빛내며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아리만이 무엇이냐!”

 

굉요의 관심을 드러내는 표정에 오칠은 잠시 안도하는 마음이 일었지만, 역시 잠시에 불과했다.

 

오칠도 아리만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까.

 

“그 이상은 저도 모릅니다! 다만 꿈에서 들었을 뿐입니다! 그냥 꿈에서 나타난 파란빛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오칠은 모든 걸 이야기했다.

 

양피지에 관한 일, 그걸 해석한 일, 그리고 모든 내용을 해석했을 때에 정신을 잃고 꿈을 꾸었던 일 등등.

 

다급한 마음에 말을 더듬었고, 두서가 없어 몇 가지 내용은 빠지기도 해서 횡성수설하는 것과 다름없어 보였지만, 오칠은 생각나는 대로 모든 걸 설명하려 노력했다.

 

“…….”

 

그러다 어느 순간, 오칠은 입을 다물었다.

 

그를 바라보는 승려들의 싸늘한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다.

 

‘역시 소용없는 것이었어.’

 

오칠의 고개가 아래로 푹 숙여졌다.

 

지금 한 말로 인해 오칠이 마인이고, 사도에 들었다는 것이 보다 분명해졌을 것이다. 결국 오칠의 말은 알지도 못할, 괴이한 악몽이나 만들어내는 이상한 곳의 후계자가 되기를 자청했다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니까.

 

오칠이 처음부터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집행하라!”

 

굉요의 단호한 외침이 광장 안을 울려 퍼졌다.

 

‘죽을 수 없어!’

 

절망하여 고개를 숙이고 있던 오칠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잖습니까!”

 

“무슨 말이냐?”

 

“제가 사람을 죽였습니까?”

 

“…….”

 

굉요가 아무 말 않는 걸 보면 그렇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제가 저지른 죄가 무엇입니까?”

 

“범조사모독(犯祖師冒瀆)이다!”

 

윗사람을 모독했다는 뜻이었다.

 

오칠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들이 나의 윗사람이란 말입니까? 속가제자들이 내 윗사람이라고요? 난 외학전과 소림사를 통틀어 두 번째로 항렬이 높습니다!”

 

오칠은 절벽 끝자락까지 밀려난 상태였고, 그래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어떤 말도 할 수 있었다.

 

“갈!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소림사에서 가장 항렬이 높으신 분이 암자의 노스님입니다. 전 그분의 제자란 말입니다!”

 

“……!”

 

굉요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다른 승려들의 얼굴도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유일하게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는 것은 방장뿐이었다.

 

“그렇다면 범조사모독은 내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질 않습니까! 오히려 그들이 범조사모독의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나한승들도 역시 그러하고, 이곳에 있는 당신들도 범조사모득의 죄를 지은 것입니다.”

 

오칠은 갑자기 생기를 찾았다.

 

승려들의 표정 속에서 확연하게 보이는 당황스러움을 느끼고 더욱 힘을 얻었다. 이제는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고개를 세우고, 사납게 눈을 치켜떠 승려들을 노려보았다.

 

“난 그대들보다 두 항렬이나 높은 사조야! 이런 내게 그대들은 불경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오칠은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확신했다.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노승의 존재가 지금 이 자리에서 크게 빛을 보고 있었다. 왜 처음부터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될 정도였다.

 

한데, 그런 오칠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방장이 일어났다.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범조사모독을 거론하고자 함이 아니오. 그대가 사흘 전에 보여준 모습은 말 그대로 마인의 모습이었소. 그대는 나한승들이 펼치는 나한진에 끄떡도 하지 않았소. 그 몸에 수십의 강력한 경력이 쏟아졌는데도 그대는 지금 이렇게 멀쩡히 서 있는 것이오. 이 자리의 누구도 나한진을 상대로 그대처럼 멀쩡할 수는 없소. 당시 그대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아시오?”

 

오칠은 대답할 수 없었다.

 

기억에도 없는 자신의 모습을 어찌 설명할 수가 있겠는가.

 

“광기에 물들어 있었소. 눈은 핏빛처럼 빛나고, 온몸에서는 눈에 확연하게 보일 정도의 살기가 꿈틀거렸소. 사흘 전의 그대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죽이려 했었소. 그대는 사람이라면 절대 걸어가지 말아야 할 사도에 들어선 것이고, 그것은 바로 마인이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오. 그리고 사도에 들어 마인이 된 자는 그 항렬을 불문하고 파문이오. 그대가 설사 노스님의 제자이고, 나의 사조가 된다 해도 예외가 될 수는 없소이다. 아니, 소림사는 마인을 방관하지 않소. 그것이 우리의 할 일이고, 꼭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오.”

 

방장은 오칠을 진정 윗사람으로 대하는 것처럼 공손하게 말을 했다.

 

또한 말은 조리 있고, 확신에 찼으면, 차분했다. 듣는 이로 하여금 설득 당할 수밖에 없는 묘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 그 모든 말은 오칠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방장은 오칠이 절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말하고 있었다.

 

“나한들은 어서 집행하라!”

 

굉요가 황급히 명을 내렸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나한승들이 오칠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오칠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난 그대들의 사조라고! 소림사에서 두 번째로 높은 항렬이야! 이런 나를 파문한다고? 그럴 수 없어!”

 

하지만 나한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그들은 그저… 조금 다쳤을 뿐이야! 그렇지? 그들은 어깨나 다리를 아주 약간만 긁혔을 거야. 안 그래? 그런데 나의 사지 근맥을 끊겠다고? 나를 병신으로 만들겠다고? 고작 마인이니, 사도에 들었다느니 하는 말로 내 배에 구멍을 뚫겠다는 거야! 당신들은 그럴 권한이 없어! 누구도 내게 그럴 수 있는 권한은 없다고!”

 

오칠은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욕을 하기도 하고, 자신이 그들의 사조임을, 소림사에서 두 번째 항렬임을 바락바락 우겨댔다.

 

하지만 그게 아무 소용이 없자 울먹이기 시작했다.

 

“잘… 잘못했습니다! 난 죄가 없어요! 내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난 아리만이 시킨 대로 한 거예요! 그 빌어먹을 놈이 내 몸을 조절해서 싸운 거라구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맹세할게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구요!”

 

오칠은 애원했다.

 

몸이 묶여 있지만 않았다면, 두 손의 껍질이 벗겨지도록 싹싹 빌었을 것이다. 몸을 꼼짝도 못하게 하는 쇠줄만 아니었다면, 무릎을 꿇고 바닥에 피가 흥건하도록 머리를 쿵쿵 찍으며 용서를 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한승들은 다가오는 걸 멈추지 않았다.

 

숯불을 담아놓아 뜨겁게 달궈진 화로와 근맥을 끊기 위해 시퍼렇게 날이 선 계도(戒刀), 그리고 단전을 파괴할 선장(禪杖)을 들고서 오칠에게 바짝 다가서고 있었다.

 

내려다보고 있는 승려들의 표정도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오칠에 대한 결정을 내렸고,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안 돼! 안 돼! 난 싫어! 난 행자승이라고! 정식 승려도 아니잖아! 난 무승도 아닌데, 왜 근맥이 잘려야 하지! 내공도 없는 몸인데 왜 단전을 부시려고 하는 거야!”

 

생각만으로 두려웠다.

 

바로 지척에 다가온 계도와 선장들 때문에 더욱 겁이 났다. 그것이 현실이고, 이제 곧 자신의 몸에 닥칠 일이기 때문에 미쳐버릴 정도로 두려웠다.

 

‘이럴 때 왜 힘이 안 생기는 거야!’

 

아리만도 좋고, 아후라 마즈다도 좋았다.

 

파란빛도 좋고, 붉은빛도 상관없었다. 이 빌어먹을 상황에서 벗어날 힘만 준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제발, 제발 하고 바라는 모든 것들이 오칠을 외면했다.

 

그 무엇이라도 좋으니,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바칠 테니 살려달라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소리쳤지만, 나한승들은 오칠을 바라보며 여전히 계도를 치켜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곧 그의 사지 근맥이 절단되게 될 것이었다.

 

“노스님―!”

 

오칠은 소리쳤다.

 

“노스님―!”

 

왜 그 말이 터져 나왔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서 계속 소리쳤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놀랍게도 근맥을 끊으려고 하던 나한승들이 뒤로 물러난 것이다.

 

“물러나십시오!”

 

굉요였다.

 

당황스런 얼굴로 잔뜩 얼굴을 찌푸리며 오칠의 뒤쪽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노스님?”

 

오칠은 최대한 몸을 돌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쇠줄 때문에 그러기가 힘들었고, 고개조차 반밖에 돌릴 수가 없어 제대로 뒤를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때, 하나의 손이 오칠의 어깨를 잡았다.

 

“노스님!”

 

어깨를 잡았던 노승은 오칠의 앞으로 나와 섰다.

 

“노스님,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저들이 저를 죽이려 합니다! 저는 죽기 싫어요!”

 

오칠은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노승을 향해 애원했다.

 

자신이 노승의 제자라고, 이런 제자를 죽게 그냥 놔둘 거냐고 화를 냈다. 그러다 다시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또다시 화를 냈다.

 

오칠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평소의 영악하고, 냉정하며, 잔머리만 굴리던 오칠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병신이 되지 않기 위해 떼를 쓰는 아이일 뿐이었다.

 

그리고 노승은 그런 오칠을 보며 안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아 너무나 기쁘구나.”

 

“…….”

 

오칠은 멍하니 노승을 보았다.

 

자신은 미치기 일보 직전이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쓰는데, 이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노스님, 살려주세요!”

 

하지만 노망난 노승이라 해도 매달려야 했다.

 

그래서 오칠은 다시 매달렸다. 계속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노승이 오칠의 어깨를 두드렸다.

 

“두려워 말거라.”

 

노승은 오칠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오칠이 노승과 지내는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자애로운 미소였다.

 

그래서일까?

 

오칠의 마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차분해지다니, 병신이 되어 죽을 때까지 감옥에 감금될지도 모를, 지금 같은 상황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다니.

 

오칠은 스스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노승의 미소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노스님, 물러나십시오!”

 

당장이라도 뛰쳐나올 것처럼 벌떡 일어난 굉요가 노한 얼굴로 소리쳤다.

 

다른 승려들도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일어나, 십팔나한들에게 노승을 밖으로 모시라 소리쳤다.

 

“굉덕아!”

 

갑자기 노승의 나직한 음성이 광장을 메아리쳤다.

 

굉요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승려들의 얼굴이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