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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23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61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파계 23화

파계 1권 - 23화

 

 

 

 

 

오칠은 절박했다.

 

사도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란 말인가!

 

사도라 하면, 쉽게 말해 나쁜 길에 들었다는 뜻이었다. 더구나 굉요는 마인이라고까지 했으니, 이 안에 있는 승려들이 자신을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는 눈에 빤히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승려들이 사도를 어찌 생각하는지, 마인을 어찌 생각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처리할는지는 굳이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흥! 네놈이 광기에 물들어 있는 것을 모두가 보았는데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냐!”

 

굉요는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짓이라는 듯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오칠은 그게 진실이든, 거짓이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왜?

 

오칠은 절대 죽고 싶지 않았으니까.

 

“제 나이 이제 열여섯입니다! 어떤 사악한 종교에도 귀의한 적이 없고, 세상의 험악함에서 목숨을 부지한 것만도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이런 제가 사도에 들었다니요! 이런 제가 마인이라니요,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말씀입니다!”

 

얼굴 가득 억울함과 안타까움을 담았다.

 

연기이기는 하지만, 가식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솔직한 심정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라, 누구라도 오칠의 말을 믿게 만들 듯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의 그 어떤 승려도 오칠의 연기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두가 사흘 전 오칠의 광기 어린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으니까.

 

“좋다. 너는 외학전에 들어올 때에 기억을 잃었다고 했다. 맞느냐?”

 

“예.”

 

오칠은 굉요의 질문을 통해, 자신에 대해서 많은 조사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보다 신중하게, 외학전에서 자신이 어떠한 말을 했었는지를 분명하게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너는 매우 심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맞느냐?”

 

“예.”

 

“너는 등봉에 있는 도끼파를 알고 있느냐?”

 

“…….”

 

“답하라!”

 

“예… 예,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 겨울이 되기 전에 그 하오배 무리의 수장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 그리고 그 살해범이 고작 십여 세의 소년이라는 소문이 있었고, 우리는 등봉에 직접 제자를 파견하여 그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너는 그 일에 대해 알고 있었느냐?”

 

“제…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저는 단시 등봉을 지나던 중에 도끼파에 대해서 들었을 뿐입니다.”

 

“그래? 그럼 네가 그 비슷한 시기에 큰 부상을 입고 외학전에 들어온 것이 우연이란 말이구나. 그럼 대답해보거라. 너는 왜 부상을 입었던 것이냐?”

 

“그… 그것은…….”

 

오칠은 침착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껏 쌓아온 연기력도, 어떤 상황에서도 잃어버리지 않던 냉철함도 쿵쿵거리며 마구 뛰고 있는 심장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궁색한 변명이었다.

 

그렇게 잘 돌아가던 오칠의 머리가 바위에라도 부딪쳤는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괴로운 과거처럼 말이냐!”

 

굉요의 신랄한 지적에 오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두 달여 전에 살해당한 행자승 구정은 어떠하냐? 너는 그 아이의 죽음에 대해선 알지 못하느냐?”

 

“모… 모릅니다.”

 

분명하게 알지 못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증명할 방법도 없었고, 그 말을 믿어줄지도 의문이었다.

 

말을 한다고 해도, 사냥을 나간일, 악몽을 꾼 일, 그리고 양피지에 대해서까지 이야기를 해야 했고, 그렇게 되면 오칠의 모든 말이 거짓이 되며, 해야 할 말은 끝이 없을 것이었다.

 

“왜 갑자기 암자로 거처를 옮겼느냐? 왜 갑자기 노스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했느냐?”

 

“배… 배움을 얻고 싶었습니다! 깨달음을 얻고, 부처의 길을 걷고 싶었습니다!”

 

노승에게 말을 할 때에는 그럴듯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어색했고, 몇몇 승려들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같은 심정은 오칠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말이 얼마나 황당하고, 유치한지 얼굴이 다 붉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든 자신은 마인이 아니고, 사도로 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지 않겠는가.

 

“왜 무공 수련을 하는 것을 훔쳐보았느냐?”

 

굉요의 질문은 드디어 소림사의 일까지 진행되었다.

 

“궁금했을 뿐입니다. 기합소리를 듣고서 위명이 자자한 소림무공을 보고 싶어 그리하였습니다.”

 

오칠은 지금부터 시작되는 질문들이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았다.

 

지금껏 보여주었던 바보 같은 대답들을 만회하기 외해서라도 보다 완벽한 대답을 해야 했다.

 

“왜 장가송에게 비무를 하자 하였느냐?”

 

“장 소협이 외학전을 우습게 보는 것 같아 화가 났었습니다. 공부가 부족하여 화를 참지 못했고, 싸워서라도 분노를 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죽이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냐?”

 

“아닙니다! 저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싸움 기술로 맞섰을 뿐입니다!”

 

굉요는 오칠을 빤히 쳐다보았다.

 

오칠도 지지 않겠다는 듯, 하지만 억울하다는 듯한 감정을 눈에 담아 마주 쳐다보았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굉요의 질문에 오칠의 눈동자는 냉정을 잃고 크게 흔들렸다.

 

“왜 말리는 진도명을 공격했지?”

 

오칠은 곧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진도명이 속가제자들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자였다는 건 기억나지만, 그가 싸움을 말리려고 했다는 것은 전혀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그건 어찌 싸우다 보니…….”

 

오칠은 이성을 잃었다느니, 본능적으로 손이 나가는 바람에 공격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아니었다느니 등등의 말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 모든 말이 변명에 불과함을, 이곳에 있는 그 어떤 승려도 그러한 말로는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말하지 못했다.

 

오칠은 그저 바보처럼, 병신처럼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왜 장가송과 진도명을 공격했느냐?”

 

“…….”

 

“왜 그곳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던 아이들을 공격했느냐?”

 

“…….”

 

“왜 나한승을 공격했느냐?”

 

“…….”

 

“왜 나한진에 맞서 싸웠느냐?”

 

“…….”

 

“왜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을 죽이려고 했느냐?”

 

“…….”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냐?”

 

“…….”

 

쾅!

 

굉요가 돌바닥을 구르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오칠을 똑바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네가 말한 아리만이 무엇이냔 말이다!”

 

오칠은 멍하니 굉요를 쳐다보았다.

 

내가 두 사람을 상대로 싸웠다고?

 

내가 다른 사람도 공격했다고?

 

여자에게 폭력은 절대 불가! 라고 외치는 내가 소녀들을 공격했단 말인가?

 

나한승은 뭐야, 내가 그 대단하다는 나한진에 맞서 싸웠다는 말은 뭐냐고?

 

‘믿을 수 없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칠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 없던 일들이었다.

 

은밀히 숨어들어 사람이나 죽였던, 남의 주머니나 몰래 뒤적거리던, 그리고 아는 무공이라고는 고작 십팔나한공이 다인 자신이 그럴 수 있다는 걸 누가 믿어줄까.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데, 도대체 누가 그 말을 믿을 수 있냔 말이다.

 

“노… 농담하시는 거죠?”

 

“…….”

 

오칠은 아무 말도 없이 더욱 차갑게 눈을 빛내는 굉요의 시선 속에서 소리 없는 대답을 들었다.

 

사실이란 말인가!

 

오칠은 그 모든 게 진실이라는 것에 더욱 할 말을 잃었다.

 

만약 이곳과는 다른 곳에서 그 같은 말을 들었다면, 난 이제 고수다! 라고 환호성을 질렀겠지만, 지금은 절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럴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이제 오칠이 맞닥뜨려야 할 것은 그 자신의 죽음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 아리만!’

 

순간, 굉요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번뜩 떠올랐다.

 

너무나 큰 충격에, 그리고 몇 달 전을 마지막으로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간과하고 있던 그 이름을 뒤늦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했다가는…….’

 

오해가 더욱 깊어질 것이 분명했다.

 

외학전 서각을 정리하는 중에 양피지를 발견했다, 이해할 수 없는 집착으로 그 내용을 해석했고, 그때부터 악몽에 시달렸으며, 소림사에 오기 전 새벽에도 그 악몽을 꾸었다, 아마도 이성을 잃고 다른 사람들을 공격한 것은 그 악몽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소용이 있을까?

 

‘절대 믿어주지 않을 거야. 아니, 믿게 된다면 더욱 큰일이지!’

 

양피지를 모두 해석하고 꾸었던 꿈은,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꿈에서 오칠은 아후라 마즈다니, 아리만이니 하는 것과 연관된 교의 후계자가 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물론 거짓말을 하면 상관없을 것이다. 그런 꿈의 내용은 쏙 빼고 그저 양피지만 찾았었고, 그 내용을 해석했는데 아무 일 없었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더 말이 안 돼!’

 

앞뒤가 맞지 않고, 말해보았자 오칠에겐 전혀 도움이 안 될 것들이었다.

 

그럼 어찌하지?

 

“모… 모르겠습니다. 장 소협과 싸우는 중간부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때론 진실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일 수가 있으니까. 그리고 오칠은 그러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한 경험이 있기에, 내심 상황을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기대했다.

 

아니, 승려들이 아주 조금이라도 그의 피치 못할 사정을 살펴주고, 좀 더 심사숙고할 마음을 먹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암울하게도 이 경우에는 오칠의 모든 생각들이 빗나가고 있었다.

 

이미 승려들은 오칠에 대한 판단을 모두 끝냈고, 이 자리는 그저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고, 오칠이 마인이며, 사도에 물들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에 불과한 것이니까.

 

“외학전 행자승 오칠.”

 

소림사 방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오칠은 방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 나쁜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또 그렇게 될 것이라 믿었다. 오칠 자신은 죽음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인생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운이 좋은 놈이었다고 스스로에게 외쳤다.

 

“문적(門跡)에서 파(破)하고, 쇄마동(鎖魔洞)에 가두어 금(禁)한다.”

 

“……!”

 

오칠은 놀란 시선으로 방장을 쳐다보았다.

 

어찌 저 선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마치 발아래 놓인 돌을 한쪽으로 치우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찌 그리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안 돼!’

 

쇄마동이 어디에 있고, 어떤 곳인지는 알지 못했다.

 

아마도 감옥과 같은 곳이겠지, 라고 그저 막연하게나마 추측하는 정도에 불과하니 그리 무섭지 않았다.

 

그러나 문적에서 파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구대문파와 같은 거대문파에서 일어난 파문은 그 절차와 규모, 그리고 희소성으로 인해 무림에서 충분한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더구나 그중 소림사의 파문은 드물고도, 드문 경우에 속했다.

 

그리고 다른 거파에 비해 소림의 파문은 특히나 냉혹하기로 유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