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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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58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22화
파계 1권 - 22화
‘내가 무슨 천하의 역적이라도 된 거야?’
오칠은 과거 어릴 적 아주 약간의 경험상, 역적이라 해도 이리 다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의아하고, 불안해졌다.
자신이 가장 큰 죄라고 생각한 살인 외에 더 악독하고, 심각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스멀거리며 피어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걸어라.”
승려의 목소리라기에는 너무나 차가운 음성이었다.
하지만 걸으라니 걸을 수밖에. 말도 하지 못하니 어떻게 반항할 여지도 없었다.
철컹, 타탁. 철컹, 타탁. 철컹, 타탁.
석실을 나오면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쇠사슬 흔들리는 소리와 한 척밖에 벌리지 못하는 걸음 폭 때문에 황급히 바닥을 디뎌야 하는 오칠의 발소리뿐이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왜 이리 처량한 신세가 되었을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선택을 했기에, 소림사에서 이러한 처지가 되어버린 걸까.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 해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 고민도 하지 않는 오칠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절로 과거를 돌아보게 되었다.
‘요 몇 달간 조용히 살았다고!’
늙은이와 다니던 때는 정말 나쁘다! 라고 하는 짓을 질리게도 저질렀지만, 산에 오르고부터는 아무 일도 없었지 않은가.
사건이라면 고작 행자승 구정이 목이 부러져 죽은 정도?
그것도 오칠 자신이 죽인 것도 아니니, 문제 될 것이 없는 일이었다. 설사 자신의 사소한 습관으로 빗어진 일이라 해도, 그 정도는 예전에 비해 아주 양호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리 착하고, 성실하게 지내고 있는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정말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모르겠다, 모르겠어. 우선 살고 보자. 후회란 것도 우선 살아야 후회하는 맛이 나지!’
오칠은 아까 고민하다 만 생존방법에 대해서 좀 더 깊은 생각에 빠져 들어갔다.
* * *
철컹, 타탁. 철컹, 타탁. 철컹, 타탁…….
얼마나 걸었을까?
계단을 오르고, 평지를 걷고, 다시 오르막길을 걷고, 다시 평지를 걷고, 때론 내리막길을 걷는 등의 일이 반복되었다.
소림사 내부의 구조를 알지 못하는 오칠은 그저 많이도 가네, 하는 생각만 할 뿐, 승려들이 이끄는 방향을 따라 열심히 걸어갈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점점 지겨워졌다.
‘하하하! 웃기는 일이군.’
오칠은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암담한 상황에서 너무 늦게 걷는 것이 지겹다고 생각하다니.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면 죽음이 기다릴 수도 있는데 웃고 있다니.
하지만 지겨운 것은 지겨운 것이고, 웃기는 것은 웃긴 것이었다.
아무리 암담하고, 참담한 상황에 놓여 있다 해도 감정에 솔직한 것이 무슨 문제가 될 것인가. 또 본능에 충실하자는 신조를 이제 와서 바꾸는 것이야말로 정말 웃기는 일이었다.
물론 그 신조란 것도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변덕스러운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철컹, 타탁.
“…….”
고삐처럼 연결되어 있던 쇠줄이 더 이상 당겨지지 않았다.
승려들이 쇠줄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니, 목적지에 도착했거나, 혹은 거의 다 왔다는 뜻일 것이다.
‘떨리네.’
스스로의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침착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슬슬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끼기기기긱!
소리로 봐서는 철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그리고 왠지 열린 철문 안에서 차가운 기운이 빠져나오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실 이런 상황 자체가 좋지 않은 것이니, 그런 느낌도 기분 탓일지 모른다.
철컹!
쇠줄이 당겨졌다.
아직 완전히 목적지에 당도한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서 오칠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먼저 열일곱 개로 된 계단을 내려가고, 다섯 장 정도 거리의 돌바닥으로 된 평지를 걸은 뒤에, 이리저리 방향을 짐작할 수 없는 곳으로 왔다 갔다 하며 움직였다.
긴장감이 증폭되면서도, 또다시 지겹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로 꽤나 오랜 시간이 흘러갔다.
하지만 그러면서 오칠이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다.
철문이 열리면서 느낀 냉기가 기분 탓이 아닌, 진짜 차가운 기운이 철문 내부에 가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점점 깊이 들어갈수록,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많이 걸어갈수록 그 냉기는 보다 분명하게 오칠의 피부를 자극하고 있었다. 즉, 오칠이 당도해야 할 목적지가 바로 철문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냉기의 근원지라는 뜻이었다.
‘아니면 말고.’
어떻게 살아남느냐 하는 방법은 사실 몇 가지가 되지 않았고, 또 어떻게 변명을 해야 하느냐 하는 것도 당면하여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기 때문에 오칠의 머릿속에선 쉼 없이 잡생각만 떠올랐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런 잡생각이 지금의 긴장감을 조금이라도 줄여주는 것일지 모른다.
철컹!
또다시 쇠줄을 당기는 것이 멈춰졌다.
‘이곳인가?’
지나왔던 길에 비해 조금 더 공기가 차갑다는 느낌 외에는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주변은 조용하고, 오칠을 끌고 온 승려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끼긱. 끼긱. 끼긱. 끼긱.
문이 열리는 소리가 아니라, 오칠의 몸을 옥죄고 있는 원고리에 연결된 네 개의 쇠줄이 어딘가에 걸리는 소리였다.
‘여기군.’
오칠은 드디어 목적지에 당도했다는 걸 확신했다.
쇠줄을 어딘가에 걸었다는 것은, 말의 고삐를 묶어놓듯 오칠을 이 자리에 고정시킨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꿇려라.”
나직한 음성이지만, 마치 동굴에서 들리는 것처럼 이리저리 공명되어 들려왔다.
‘동굴 같은 곳인가?’
동굴 같은 곳이 아니라, 그냥 동굴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곳이 어떤 곳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오칠의 다리에 둔탁한 충격이 가해졌다. 당연히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칠은 딱딱한 바닥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벗겨라.”
오칠의 눈을 가리고 있던 거친 천이 벗겨졌다.
“윽!”
바로 코앞에서 커다란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오칠은 순간 눈이 부셔서 고개를 아래로 돌렸다.
하지만 곧 불빛에 눈이 익숙해지자 고개를 들어 주변을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횃불은 오칠의 몸을 속박한 쇠줄이 연결된 곳에서 피워지고 있는 네 개뿐이었고, 그래서 주변은 초저녁처럼 어둑하고, 횃불 너머는 흐릿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곳의 전체적인 모양이 작은 원형 광장처럼 생겼고, 둘레에는 한 장 높이로 해서 사람들이 둘러앉게 만들어졌다는 건 분명하게 식별할 수 있었다.
‘다섯 명이 아니었구나.’
오칠은 이곳으로 끌려 올 때, 다섯 명 정도의 승려가 같이 움직인다고 생각했었다.
그의 몸에 걸려 있는 네 개의 쇠줄을 잡은 이가 네 명, 그리고 앞장 선 이까지 해서 모두 다섯 명.
그 정도면 자신 한 명 정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숫자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말이다. 아니, 그 숫자만 해도 과한 인원이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오칠의 주위에는 형형한 눈빛을 번뜩이는 장년의 승려들이 열여덟 명이나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눈에 익은 두 명이 있었으니, 십팔나한승인 담성과 담웅이었다.
‘역시 고수는 고수구나. 쭉 같이 움직였을 텐데도 전혀 모르고 있었어.’
십팔나한의 명성이 왜 무림을 떨어 울리는지 오칠은 이제야 분명히 깨달았다.
‘그런데 내가 그리 중한 죄를 지었나? 내가 그렇게 위험한 인물이야?’
그저 의문으로 머물러 있던 것들이, 이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다가왔다.
밧줄 같은 것으로 몸을 철통같이 옭아매고, 다섯 정도의 무승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지키는 것은 그럴 만하다 생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다섯 명의 무승들이 십팔나한이고, 알고 보니 나머지 열세 명도 주변에서 은밀히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칠은 그의 정면 한 장 높이 위로 쭉 둘러 앉아 있는, 나이 든 승려들을 두려움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두려움.
이제야 그 감정이 생겨났다.
그저 막연하게 무섭겠지 하던 것이, 이제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강렬하게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이제부터 묻겠다. 대답은 고개를 움직이는 것으로 하라.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느냐?”
오칠의 정면 정중앙에 앉아 있는 승려가 아니라, 바로 그 옆쪽에 앉은 깐깐하게 보이는 승려가 묻는 것이었다.
오칠은 최대한 담담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이 정도면 만족스러울 정도로 침착한 행동을 취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칠만의 생각이었다.
“갈!”
순간, 질문을 한 승려의 입에서 귀가 멍멍할 정도의 노성이 터져 나왔다.
처렁.
오칠은 저도 모르게 움찔 놀라서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몸을 속박하고 있는 원고리로부터 네 방향으로 뻗어나가 고정된 쇠줄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사도에 물들어 본사의 제자들을 다치게 한 것을 부인하겠다는 것이냐!”
사도?
무슨 사도?
오칠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승려의 질문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부인하는 거냐고 물었으니 고개를 끄덕여야 했고, 그래서 내젓던 고개를 황급히 끄덕이는 동작으로 바꾸었다.
‘답답해! 말을 하게 해줘! 말을 하게 해달라고!’
“응응응! 응응응응!”
간신히 입을 움직여 소리를 냈다.
어떤 상황이든, 설사 큰 죄를 지었다고 해도 직접 해명을 해야 했고, 혹시 연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지금같이 바보 같은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더욱 불신감만 심어주게 될 것이 분명했다.
“풀어줘라.”
정중앙에 앉아 있는 늙은 승려.
오칠은 그가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 중에서 가장 위치가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면 소림사의 방장밖에 없어!’
오칠의 짐작을 확신시켜주는 음성이 질문을 했던 늙은 승려의 입에서 나왔다.
“방장 사형, 저 마인의 입을 열게 해주어서는 안 됩니다.”
질문을 했던 늙은 승려, 계율원의 원주 굉요는 혹시라도 오칠이 음공을 펼쳐 공격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것이었다.
이미 십팔나한들과의 싸움에서 오칠이 사악한 소리로 심기를 뒤흔들었던 적이 있음을 상기하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나 방장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명이 바뀌지 않을 것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리고 곧바로 한 명의 나한승이 오칠의 입에 물려 있던 재갈을 풀어주었다.
“저… 전 아닙니다!”
재갈이 풀리자마자 오칠은 황급히 소리쳤다.
한동안 턱이 고정되어 있었기에 발음이 부정확했지만, 그런 것은 목숨보다 중요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사도라니요! 싸움을 했었… 아니 비무를 했었기에 다치게 했을지는 모르지만, 절대 사도 같은 것에 물든 적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