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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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4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21화
파계 1권 - 21화
퍼펑!
담종의 발길질에도 끄떡없던 오칠의 신형이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연이어 아홉 명이 승복을 펄럭이며 나타나서는, 비틀거리는 오칠에게 강력한 공격을 퍼부어 바닥을 나뒹굴게 만들었다.
“담성 사형!”
소나한진의 중심에 서서 진을 움직이고 있던 담종이 밝게 소리쳤다.
진 속에 내려선 사람들은 팔대호원의 원주인 담성을 비롯한, 나머지 십팔나한들이었던 것이다.
“안전한 곳으로 물러나라!”
담성은 간신히 소나한진의 축을 담당하고 있던 대 자 배열의 승려들을 물러나게 하고, 다른 나한들과 함께 비어버린 나한진의 방위에 자리를 잡았다.
“불살생(不殺生:살생하지 말라)을 명심하라!”
소나한진을 본격적으로 발동하기 전, 담성이 모두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담종을 비롯한, 지금껏 오칠을 상대하고 있던 나한들이 깜짝 놀랐다.
“담성 사형, 저 아이는 사도에 들었습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마인이 되었으니, 절대 살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담성의 시선이 담종에게 향했다.
그리고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불살생!”
절대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다는 뜻이었고, 담종도, 그리고 다른 나한들도 더 이상 반대할 수 없었다.
“크아아―!”
바닥을 나뒹굴고 쓰러져 있던 오칠이 벌떡 일어났다.
분노했음인가.
오칠은 인간의 것 같지 않은 고함을 내지르며 바닥을 쿵쿵 찍어댔다.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땅이 푹푹 파이고, 진동 때문에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이 흔들려 기왓장이 떨어질 정도였다.
“행진!”
모두가 그 엄청난 위력에 안연실색하고 있는데, 담성이 진을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분노를 분출할, 사지를 뜯어내서 피를 뽑아낼 누군가를 원하는 오칠은 정면에 보이는 나한승을 향해 달려들었다.
쾅!
무지막지한 기세로 달려든 오칠과 진이 발동하여, 이전에 비할 바 없이 강력해진 나한진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크아!”
오칠은 사방으로 팔을 휘저어 걸리는 대로 두들기고, 발로 걷어찼다.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하나의 일격마다 무엇이든 짓이겨버릴 듯한 엄청난 위력이 뿜어졌다.
쾅! 쾅! 쾅! 쾅!
하나 나한진을 구성하는 무승들은 소림에서도 고르고 골라 뽑은 무승들.
오칠의 무지막지한 공격에도 나한진은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오칠의 위력은 더욱 강해졌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힘이 끊임없이 오칠의 몸에서 뿜어졌다.
오칠의 눈동자는 마치 불처럼 타오르는 듯했고, 온몸에서 발산되는 살기는 커다란 막처럼 줄기줄기 사방으로 뻗쳐 나왔다.
이대로 더 시간이 간다면 무림제일의 진법이라는 나한진조차 깨어지는, 전혀 상상치 못할 일이 생길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나한진에서 뿜어지는 공기의 진동음과 무승들의 기합성, 그리고 오칠과의 격돌로 인해 터져 나오는 굉음 사이로 조용히 염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주 조용히 퍼져나가던 염불소리는 점점 큰 울림으로 증폭되고, 주변에 그 어떤 소리도 제압하는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나한진은 멈췄다.
진의 중심에서 광폭하게 움직이던 오칠이 석상처럼 굳어버리면서 진도 자연히 멈춘 것이었다.
“크으…….”
나한진의 막강한 위력에도 밀리지 않고, 더욱 크게 반발하던 오칠의 몸이 점점 움츠러들었다.
나한승들은 어리둥절해하며 염불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노스님?’
그곳에 외학전의 노승이 있었다.
두 손을 합장하고 서서 조용히 염불을 외우는, 하지만 엄청나게 큰 소리로 증폭시켜 주변의 모든 소리를 제압하는 사람은 바로 노승이었다.
나한승들 중 절반은 노승을 모르고 있었고, 담장과 그 주변을 방어하듯 에워싸고 있던 승려들도 마찬가지라 온통 의문의 시선으로 노승을 바라보았다.
하나, 노승을 알고 있는 이들도 의문의 시선을 보내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찌 이런 막강한 음공을!’
노승이 그저 배분만 높은 학승이라 생각하고 있던 이들은, 그저 입만 벌리고 서서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합장을 하며 노승의 염불을 따라 읊조리기 시작했다.
노승의 뒤에 서 있던 방장이 노승을 따라 염불을 하기 시작했고, 그 뒤에 있는 여러 높은 위치의 승려들 역시 그렇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거의 땅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오칠을 계속 견제해야 하는 것인가, 하고 고민하던 십팔나한들도, 곧 합장을 하고 그들 사이사이를 가득 채우는 소리를 따라 크게 염불을 외웠다.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야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노승 혼자서도 가히 압도적인 울림을 만들어내던 염불소리는, 백 명이 훌쩍 넘는 승려들이 함께 하면서 그 위력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광기에 물들어 이성을 잃고 있던 오칠은 정신을 차렸다.
‘어떻게 된 거지?’
왜 자신이 땅바닥에 웅크리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오칠은 간신히 고개만 들어 앞을 흘깃 쳐다보았다.
‘노스님!’
그곳에 노승이 있었다.
오칠을 향해 합장을 하고, 오늘 아침에도 들었었던 염불을 하고 있었다.
‘난 왜 떨고 있지?’
오칠은 자신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다.
하지만 왜 떨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귀를 꽉 막히게 하는 이 염불소리를 멈추었으면 하는 마음만이 간절했다.
“노스님…….”
오칠은 웅크린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아주 작게 노승을 불렀다.
“…….”
눈을 감고 합장을 한 채 염불을 외우고 있던 노승이 눈을 떴다.
하지만 염불을 멈추지는 않았다. 이제는 내공을 이용하여 크게 증폭시키지는 않았지만, 다른 승려들처럼 계속 읊조리며 오칠을 바라봤다.
‘왜 그리 슬픈 눈으로 보는 거죠?’
오칠은 노승의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노승의 시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싫었다. 저런 눈빛을 받는 자신이 싫었다. 오칠이 누군가를 속여서 받는 그런 시선이 아닌, 어떠한 이유도 없는, 오칠이 이해할 수 없는 저 슬픈 눈빛이 싫었다.
“…….”
“…….”
“…….”
염불소리가 멈췄다.
부들부들 떨고 있던 오칠도 더 이상 떨지 않았다. 주변은 아주 조용한 침묵만이 휘돌고 있었다.
‘피곤하다.’
오칠은 그런 침묵 속에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너무 힘들고, 피곤하여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지금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의문도, 당황스러움도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본능이 이끄는 대로 땅바닥에 웅크린 채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제12장. 아수라가 마신이 된 이유
오칠은 사방이 꽉 막힌 어둔 석실에서 깨어났다.
천장은 머리가 닿을 정도로 낮고, 빛이 들어올 수 있는 창도 없으며, 문조차 보는 것만으로도 압박감이 느껴지는 육중한 석문이었다. 아니, 사방이 다 돌로 되었으니, 그냥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칠은 알고 싶었다.
장가송과 싸우던 중간부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뭔가 매우 즐겁고도, 두려운 일이 있었다는 막연한 느낌만 떠오를 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자를 죽인 걸까?’
정신을 잃기 전 수많은 소림의 무승들이 둘러싸고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매우 큰 사건이 일어난 것이고, 오칠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살인밖에 없었다.
‘몸에 생긴 상처들을 보면 가능성이 아주 높지.’
정신을 차린 오칠의 몰골은 엉망진창이었다.
옷은 선혈로 얼룩져서 넝마처럼 찢겨져 있었고, 몸 곳곳에 멍들고 찢겨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다행이라면 뼈가 부러지지 않았다는 것인데, 엉망진창인 몰골에 비해 큰 상처가 없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물론 무엇보다 얼굴에 이렇다 할 상처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크게 안도할 일이었다.
‘그렇지만 왜 기억이 나지 않느냐고! 정말 돌아버리겠군! 그런데 내가 만약 진짜 살인을 저지른 것이라면 어찌해야 하지?’
도망쳐야 할까?
하지만 오칠은 도망칠 수 없었다. 아니,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럴 수 있는 능력이 되지 못했다.
상반신은 피가 잘 통하지 않을 정도로 밧줄과 쇠사슬에 꽉 묶여 있고, 발목에는 고작 한 척 정도밖에 벌리지 못하도록 만든 고리가 채워져 있었다. 더구나 입에는 말도 하지 못하게 짐승이나 하는 재갈을 물려놓았으니, 도망이고 어쩌고 할 무엇도 없는 것이다.
‘소림사에서는 원래 사람을 이리 묶어놓는 걸까?’
살인을 저질렀건, 도둑질을 했건 간에 그냥 묶어두면 되지, 왜 이리 철통같이 단단하게 해놓은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자신은 고작 십육 세의 소년이고, 이곳은 도망갈 구멍 하나 없는 방 안이지 않은가 말이다.
‘모르겠다. 우선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다!’
결론은 그것이었다.
어떤 상황이든 우선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칠은 자신에게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데, 그때 단단히 닫혀 있던 석문이 육중한 소리와 함께 열리며 오칠의 생각을 방해했다.
쿠쿠쿠쿠!
“…….”
재갈이 물려 있어 말도 못하는 오칠은 석문을 빤히 쳐다보고 있어야만 했다.
“제압하라.”
석문이 채 반도 열리지 않고 들려오는 소리에 오칠은 내심 코웃음을 쳤다.
‘이렇게 묶어놓고도 성이 차지 않냐! 아주 누에고치처럼 둘둘 말아버리지 그러냐!’
말을 할 수만 있다면 오칠은 그렇게 고함을 질렀을 것이다.
오칠은 소림사가 이리도 꽉 막힌 곳일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다.
무림에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즐비한 소림사가 무엇이 겁나서 이리 난리법석을 떤단 말인가.
‘윽!’
밧줄에다가 쇠사슬까지 해서 꽉 묶어놓은 오칠의 상체에, 검은 빛의 예사롭지 않은 굵고 큰 원고리가 씌워졌다.
한데, 이 원고리란 것이 양쪽에 삐죽 튀어나온 부분을 잡아당기자 가뜩이나 피가 통하지 않는 몸을 더욱 고통스럽게 조이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더 놀랄 일은 툭 튀어나온 곳에 각기 두 개의 엄청나게 굵은 쇠고리를 걸어서, 덩치는 산만 하고 몸동작과 눈빛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승려들 네 명이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통에, 오칠은 완전히 옴짝달싹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뭐, 원래부터 상하체가 이것저것으로 꽉꽉 채워져 있었으니, 그리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작 외학전의 행자승인 자신을, 그리 대단할 것이 없는 자신을, 왜 이리도 삼엄한 분위기로 다루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려라.”
승려들은 이번에는 두꺼운 검은 천으로, 그 촉감이 너무 까칠하여 눈꺼풀이 찢겨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까지 들 정도의 거친 천으로 눈을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