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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19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63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파계 19화

파계 1권 - 19화

 

 

 

 

 

피.

 

오칠은 붉디붉은 선혈을 원했다.

 

두 손이 온통 피범벅이 되었지만, 그 보다 더 뜨겁고, 그 이상의 생동감 넘치는 피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건 오칠이 원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정확히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이 분노와 갈증으로 터져버릴 것만 같은 힘을 사용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오칠은 피를 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기에 망설임 없이 그 힘을 끌어올렸다.

 

“줘!”

 

오칠은 온몸에 가득히 채워진 알 수 없는 힘을 분출하며 장가송을 향해 몸을 날렸다.

 

피를 갈구하듯 충혈된 눈동자에선 광기까지 보였다.

 

‘뭐지?’

 

장가송의 얼굴이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그저 달려드는 오칠일 뿐인데, 갑자기 엄청난 중압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솟구쳐오를 정도로 말이다.

 

퍽!

 

하지만 장가송은 두려움과는 별개로 주먹을 내지르는 오칠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팔뚝으로부터 전해지는 극심한 충격에 당황하여 곧 뒤로 물러나야 했다.

 

‘이럴 수가!’

 

황급히 물러나면서도 장가송은 자신이 물러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옥대공의 공력에다 호조수의 운용까지 겹쳐진 장가송의 양팔은, 가히 철수(鐵手)라고 불리어도 될 정도로 단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양팔에 이리 충격이 오다니.

 

그것도 조금 전까지 스치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벗겨지고, 피가 흘러나오던 오칠의 손을 막은 것뿐이지 않은가.

 

퍽!

 

또다시 오칠의 주먹을 막은 장가송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오칠을 따돌릴 수가 없다는 것에 놀라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오칠은 보법을 펼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처음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무식하게 저돌적으로 달려들고 있을 뿐인데, 따돌릴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다.

 

“줘!”

 

오칠은 그렇게 외치며 주먹을 휘둘렀다.

 

쾅! 쾅! 쾅! 쾅!

 

그리고 장가송은 그 주먹을 막는 것에 급급했다.

 

“줘!”

 

오칠은 간절하고, 울분에 찬, 그리고 지독한 욕망에 물든 음성으로 계속 소리쳤다.

 

‘뭘 달라는 거야?’

 

같은 말만 해대는 오칠의 외침에 장가송이 의문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팔에 전해지는 충격을 장가송이 더 이상 감당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밀려나는 것도 수치스러운데, 상황을 반전시킬 틈도 찾지 못하는 것이 그의 자존심을 사정없이 구겨버리고 있었다.

 

“하압!”

 

장가송은 날아오는 오칠의 주먹을 막지 않고 마주 내질렀다.

 

퍼퍽!

 

“크…….”

 

장가송은 팔로부터 전신을 휘감는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잠깐 주춤한 오칠을 향해 갈고리처럼 구부러진 양손을 좌우로 휘둘렀다.

 

촤악!

 

“……!”

 

장가송이 펼친 호권의 일초 흑호시조(黑虎試爪)는 정확하게 오칠의 가슴을 긋고 지나갔다.

 

행자복 상의가 찢겨나가고, 그 안으로 고랑 같은 상처가 생겨났으니 완벽한 성공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성공시킨 장가송은 더 공격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작지 않은 상처를 입었는데도 오칠이 웃음을 지으며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크크크!”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괴소였다.

 

그리고 오칠은 그렇게 괴소를 흘리며 장가송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뭐… 뭐야!”

 

장가송은 갈고리 같은 양손을 앞으로 내리그으며 비명처럼 소리쳤다.

 

하지만 둔탁하게 휘두르는 오칠의 주먹은 갈고리 손을 튕겨내며 장가송의 가슴을 두들겼다.

 

퍼퍽!

 

“크윽!”

 

뒤로 물러나고 있던 장가송의 몸은 더욱 빠르게 뒤로 밀려나 바닥을 나뒹굴었다.

 

“크크크!”

 

괴소와 함께 오칠의 신형이 바닥을 뒹구는 장가송을 덮쳐들었다.

 

장가송은 오칠이 덮쳐 들어오는 것을 본능처럼 느끼고 재빨리 바닥을 굴러 일어났다. 그가 조롱해마지않던 나려타곤을 펼친 것이다.

 

하나, 위험이 코앞에 있기 때문에 장가송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그저 옥대공과 호조수를 극으로 운용하여 오칠을 향해 갈고리 손을 휘둘러야만 했다.

 

“……!”

 

하나 장가송은 한 가지를 뒤늦게 깨달았다. 그의 손가락 중 절반이 이미 부러져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멈추시오!”

 

당황하는 장가송과 그런 장가송을 덮쳐가는 오칠의 사이로 일갈의 외침과 함께 진도명이 뛰어들었다.

 

타탁!

 

장가송의 얼굴을 노렸던 오칠의 주먹이 진도명의 발에 걷어차이고, 오칠의 신형이 팽그르르 돌아 멀찍이 밀려났다.

 

“가송, 괜찮은가?”

 

진도명의 걱정스런 물음에 장가송은 부끄러웠지만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하나, 진도명의 뒤에서 흉신악살(凶神惡煞)처럼 웃고 있는 오칠을 보고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저…….”

 

장가송이 말을 잇지 못하고 손을 들어 뒤쪽을 가리키자, 진도명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

 

흉신악살.

 

진도명이 보고 있는 오칠의 얼굴을 표현하자면 그랬다.

 

머리만 길게 했다면 아름다운 소녀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듯했던 오칠의 얼굴이, 보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섬뜩하게 변해 있었다.

 

그렇다고 상처가 생겼다거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져 있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 아름답기까지 한 얼굴로 웃고 있을 뿐이었다. 이가 다 드러나도록 환하게 말이다.

 

하지만 그건 웃음이라고 불릴 수가 없었다.

 

분노와 욕망, 뭔가 좋지 않은 것에 대한 탐욕과 갈망밖에 없는 웃음은 그 자체로 공포였다.

 

“당신은 누구요!”

 

진도명은 참지 못하고 그렇게 소리쳐 물었다.

 

그뿐만 아니라, 한쪽에서 창백하게 질려 있는 소년 소녀들도 그것이 궁금했다. 처음 그들이 보았던 오칠과 지금의 오칠이 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 그들의 가슴속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심장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키려면, 오칠이 행자승이라는, 제발 오칠 자신이 외학전의 행자승이라고 하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난…….”

 

오칠의 웃음기 어린 입에서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음성도 변해버린 얼굴처럼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도저히 이전의 목소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이 거칠고, 음침하며, 소름끼쳤다.

 

“아리만이다.”

 

마치 동굴 속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오칠의 음성은 깊고, 낮게 울려 진도명을 비롯한 모두에게 전해졌다.

 

“…….”

 

“…….”

 

잠시간 침묵이 감돌았다.

 

‘아리만?’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이었다.

 

그리고 아리만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좀 더 깊어진 의문의 시선으로 오칠을 쳐다봤다. 하나, 더 이상 어떤 대답을 기대할 수가 없었다.

 

오칠이 흉측한 괴소를 흘리며 진도명과 장가송을 향해 몸을 날렸기 때문이다.

 

“……!”

 

몸을 날렸다.

 

말 그대로였다. 얼마 전까지 바닥을 구르고, 얍삽하게 속임수나 쓰는 싸움패처럼 덤벼들었던 오칠이, 삼 장의 거리를 단번에 뛰어넘어 장가송의 머리 위로 내려서고 있었다.

 

“피해!”

 

진도명이 멍하니 있는 장가송을 한쪽으로 밀쳐내며 오칠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펑!

 

짧고 작은 격타음.

 

하지만 가슴을 얻어맞은 오칠은 두 장이나 날아가 땅바닥에 처박혔고, 진도명의 다리는 땅속으로 한 치나 파고들었다.

 

“아라한신권(阿羅漢神拳)!”

 

장가송이 놀라서 소리쳤다.

 

아라한신권은 소림칠십이절예 중 하급에 속하는 무공이긴 하지만, 속가제자가 전수받은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아니, 그 상중하를 논하기 전에 근래의 소림칠십이절예는 본사의 무승이 아니라면 전수를 금한 것과 거의 다름없는 무공이었다.

 

그런데 미숙하기는 하지만, 진도명이 아라한신권을 펼치다니.

 

‘누가?’

 

당연하게도 누가 전수를 해준 것인지, 어떻게 전수받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떠올랐지만 그뿐이었다.

 

추측만으로는 알 수도 없었고, 땅바닥에 처박혔던 오칠이 일어나면서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사라져버렸으니까 말이다.

 

“카카카카카!”

 

몸을 일으키자마자 입에서 울컥울컥 핏물을 뱉어내던 오칠이 광소를 터트렸다.

 

양팔을 쫙 펼치고, 하늘을 향해 미친 듯이 웃어댔다.

 

“좋아! 아주 좋아!”

 

순간, 그렇게 외친 오칠은 더욱 음침해지고, 붉게 달아오른 눈동자로 주변을 쓱 둘러보며 말했다.

 

“너희들의 피로 내 몸을 흠뻑 적시리라!”

 

오칠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진도명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몸서리쳤다.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은 오칠의 목소리는 분명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피로 온몸을 적시리라는 믿음을 심어주고 있었다.

 

“도망치시오!”

 

한쪽에 서서 두려움으로 창백하게 질려 있는 소년 소녀들에게 진도명이 소리쳤다.

 

그리고 그 의도를 깨닫고 장가송이 사람을 찾으라고, 지금 이곳의 상황을 알리라고 말했다.

 

“꺄악!”

 

진도명 등의 말 때문이었을까.

 

소녀들은 참고 참았던 공포심을 가느다란 비명으로 토해냈다. 그리고 세 명의 소녀는 문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못 가!”

 

오칠은 히죽 웃으며 소녀들이 달려가는 곳으로 움직였다.

 

단 한 걸음에 한 장의 거리를 줄이는, 도저히 인간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없는 속도와 보폭이었다.

 

“마… 막아야 돼!”

 

두려움에 떨고 있던 소년들이 소녀들에게 향하는 오칠을 막아섰다.

 

그러나 장가송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공이 약한 그들이, 오칠을 막는다는 것부터가 만용이었다.

 

퍽! 퍼퍼퍽!

 

예닐곱 명의 소년들이 순식간에 피를 뿜어내며 사방으로 나자빠졌다.

 

아직 미숙하다고는 하지만 수년간 무공을 익혀왔던 그들이, 제대로 무공도 익히지 않은 오칠의 일격을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어서!”

 

길목을 막아주던 소년들이 쓰러지자 소녀들은 석상처럼 굳어버렸고, 그런 그녀들에게 진도명이 어서 도망치라고 소리쳤다.

 

“크하하하!”

 

소녀들과 진도명을 보며 오칠은 광소를 터트렸다.

 

고통스런 신음과 함께 땅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소년들은 피를 흘려대고, 바닥이 그 핏물에 흠뻑 적셔지자 오칠의 눈은 더욱 붉어졌다.

 

“핫!”

 

진도명이 오칠과 소녀들 사이를 막아서며, 내공이 가득 찬 주먹을 내질렀다.

 

오칠의 눈빛에 기가 죽어 있는 소녀들의 시야를 막아서 공포심을 가라앉히고, 어서 빨리 도망칠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다.

 

“하압!”

 

뒤에선 장가송이 부상 입은 손에 공력을 돋워 오칠의 등을 노렸다.

 

“크하하! 그래, 어서 내게 피를 줘!”

 

오칠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기뻐하며 양팔을 앞뒤로 휘둘렀다. 앞에서 뻗어오는 진도명의 권력과 뒤에서 등을 노리는 장가송의 갈고리 손이 오칠의 손과 맞부딪쳤다.

 

퍼펑!

 

“큭!”

 

“윽!”

 

장가송과 진도명은 신음을 내뱉으며 정신없이 뒤로 밀려났다.

 

그들의 손은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었고, 가슴에서부터 치솟는 울렁거림에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도대체……!”

 

입가로 흘러내리는 피를 닦지도 않고 있는 진도명은, 오칠의 정체가 뭐냐고 묻고 싶었을 것이다.

 

장가송 역시 이제는 방어조차 할 수 없게 된 손을 부여잡고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오칠은 이미 그들 사이에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의 공격을 받고 약간 몸서리를 쳤을 뿐, 오칠의 신형은 곧바로 문을 열고 나가려는 소녀들을 덮쳐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꺄악!”

 

“싫어!”

 

소녀들은 오칠의 존재를 느끼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맨 앞에 있던 소녀는 두려움 속에서도 문을 열고, 밖으로 한 발 내딛고 있었다.

 

“못 가!”

 

오칠은 밖으로 나가려는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너무나 빠르고, 쾌속한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소녀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꺄악―!”

 

고통의 비명일까, 아니면 오칠에게 잡혔다는 절망의 비명일까.

 

퍼펑!

 

하지만 소녀는 커다란 격타음과 함께 오칠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당탕탕!

 

“다… 담종 스님!”

 

부들부들 떨고 있던 소녀들이 문 앞에 선 단단한 인상의 장년인을 보고 기뻐 소리쳤다.

 

하지만 곧 그녀들은 맥이 풀려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한 명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으니, 방금 전까지 그녀들이 느끼고 있던 두려움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

 

“어떻게 된 것이냐?”

 

담종은 딱 누구를 지목하여 물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진도명과 장가송밖에 없었다.

 

“저 행자승이 갑자기…….”

 

장가송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담종이 쭉 시선을 주고 있던 오칠이 마치 나무인형처럼 둔탁하고, 삐딱한 움직임으로 일어서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