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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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5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8화
파계 1권 - 18화
하나, 곧 장가송은 표정을 더욱 딱딱하게 굳히며 단호히 말했다.
“됐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물러나 있게!”
이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더 이상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고, 분명하게 위신을 세워야할 상황인 것이다.
장가송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진도명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 표정에는 좋지 않다, 라는 기색이 가득했다.
‘저 행자승에겐 뭔가 다른 느낌이 들어…….’
그도 외학전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장가송이 왜 화를 내며 오칠을 벼랑으로 밀어버리려고 하는지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설마 장가송이 그들보다 어리고, 특별히 대단해 보일 것도 없는, 더구나 무공에 대해서 거의 무지하다고 알려진 외학전의 행자승에게 낭패를 당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기분이 편치 않았다.
“그럼 시작할까요?”
오칠은 누가 어떻게 생각하고, 누가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 개의치 않았다.
‘이건 싸움이다. 아무리 저놈이 무공을 익혔다 해도 소림의 정통을 전수받은 것이 아닐 테고, 실전 싸움에도 무지한 놈이 확실하니 문제 될 게 없어!’
오칠은 그렇게 조금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고 투지를 끌어올렸다.
지금 오칠에겐 어떻게 하면 장가송을 쓰러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없었고, 그렇게 집중하고 있는 오칠은 소림의 무공을 가장한 듯한 동작을 취하며 장가송에게 접근해갔다.
‘이 녀석들이 펼치던 동작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오칠은 전혀 의심받지 않는 수준이 필요했고, 장가송과 도진명을 비롯한 소년들이 펼쳤던 동작들을 떠올렸다.
제대로 수련하고, 익힌 그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최소한 흉내라도 내서 오해를 없애고, 실전적 공격으로 장가송을 쓰러트리려는 것이다.
“나한권!”
장가송이 오칠의 자세를 보며 의외라는 듯 소리쳤다.
다른 소년 소녀들이야 소림승이니 나한권 정도는 익혔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진도명도 장가송처럼 놀란 얼굴이 되었다.
외학전의 학승들도 배우지 않았다는 나한권의 자세를 정확히 잡고 있었고, 더구나 오칠이 무공을 모를 것이라 생각했던 두 사람인지라 그 놀라움이 더욱 컸던 것이다.
‘이깟 나한권 정도야.’
하지만 장가송은 곧 놀란 마음을 접었다.
그리곤 훌쩍 뛰어올라 조금씩 다가오는 오칠의 정면으로 덮쳐들었다.
파파팍!
팔보연환퇴의 매서운 발길질이 오칠의 얼굴을 뒤덮었다.
하지만 오칠은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고, 다시 앞으로 쭉 뻗어 나가 펼친 손바닥으로 장가송의 가슴을 밀어 쳤다.
“엇!”
쿠당!
강하지는 않지만, 예상치 못한 반격에 장가송은 뒤로 밀려나 엉덩방아를 쪘다.
‘어라? 이거 되네!’
쓰러진 장가송이나, 다른 소년 소녀들도 놀랐지만, 진짜 놀라고 당황한 것은 오칠이었다.
그저 아까 전에 본 동작이 떠올라 본능처럼 해본 것인데, 너무도 잘 먹혀버린 것이다.
‘나 무공의 천재 아냐?’
오칠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기분이 들뜨면서 실전적 싸움보다는, 아까 보았던 다른 무공들도 펼쳐봐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이…….”
얼굴이 발갛게 변한 장가송은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다시 달려들 것 같았던 그는, 싱글거리며 웃는 오칠을 보고 표정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흥, 그랬군!’
장가송은 오칠이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칠이 외학전의 행자승이라는 말로 무공을 익혔는데도 익히지 않은 척했고, 그러면서 자신을 방심하게 하여 단단히 골탕 먹이려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봐주지 않겠다!’
장가송은 그의 조부가 소림에서 전수받아 가문의 정통 내공심법이 된 옥대공(玉帶功)을 운기하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내공을 운용하여 무공을 펼치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에 참았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핫!”
장가송이 이제부터 내공을 운용하여 공격할 것이란 것도 모르는 오칠은 들뜬 마음에 먼저 덤벼들었다.
팔보연환퇴.
장가송이 썼던 각법이었고, 오칠은 이것도 되네! 하는 생각을 하며 신나게 발길질을 했다.
타타타탁!
“윽!”
두 번씩 연달아 세 번이나 발길질을 한 오칠은, 고통스런 신음과 함께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온 힘을 다해 발길질을 했고, 방어를 하는 장가송의 손과 부딪쳤는데, 부딪친 발과 발목이 엄청나게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어떻게 된 거야!’
발이 손을 못 이기다니.
더구나 장가송은 그저 손을 내뻗어 막았을 뿐이었다. 공격한 것은 자신인데, 오히려 이렇게 밀려나버린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누가 속을 줄 아느냐!”
장가송은 노한 외침과 함께 비틀거리는 오칠에게 덤벼들었다.
‘젠장!’
오칠은 납작 엎드렸다가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바닥을 구르는 것은 무림에선 수치이지만, 무공을 모르고 싸움만 아는 오칠에겐 전혀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나려타곤이라니! 부끄럽지도 않으냐!”
게으른 나귀가 바닥을 구른다고 하는, 무림인들이 가장 모멸감을 느낀다는 초식이었다.
“실전에서의 싸움을 보여드린다 하지 않았습니까!”
분하긴 하지만, 부끄러울 것이 없으니 대수롭지 않게 맞받아 소리쳤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오칠은 더 이상 무공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기억된 무공을 펼쳐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뭔가 확연하게 달라진 장가송에겐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니, 계속 무공만으로 상대했다가는 코뼈가 주저앉고, 어디 한 군데는 부러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포기하는 것이었다.
‘내 몸은 소중하니까!’
“얍!”
오칠은 앞으로 풀쩍 뛰어올라 장가송의 품으로 파고들듯 바짝 다가섰다.
“흥!”
코웃음과 함께 장가송의 날카롭게 모아진 손이 오칠의 가슴을 향해 쏘아졌다.
칠성당랑권.
속도와 정확도를 우선하는 무공으로, 그 특성에 걸맞게 벌써 오칠의 가슴에 바짝 밀착해 있었다.
휙!
하지만 장가송의 손은 공허하게 허공을 갈랐고, 오칠의 신형은 등을 바닥으로 하며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철판교!”
누군가 그렇게 소리쳤다.
발목의 힘을 극대화하여, 등이 땅바닥에 거의 닿을 정도로 몸을 뒤로 누이는 상승의 경지였다. 뒤로 누인 몸을 곧바로 일으켜 상대를 공격하는, 공수전환의 특성을 살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사용하기 어려운 수법인 것이다.
털썩!
하지만 철판교라 소리친 사람은 곧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오칠은 등을 땅바닥에 닿을 듯 누운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뒤로 쓰러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상체를 일으켜 앞으로 굴러서는 장가송의 발치에 바짝 붙었다.
퍽!
오칠은 꽉 움켜진 주먹으로 장가송의 무릎을 내질렀다.
예상대로라면 장가송은 무릎을 부여잡고 비틀거려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장가송은 끄떡도 없이 오칠을 내려다보며 비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젠장할!’
오칠은 당황하면서도 장가송의 뒤쪽으로 돌아서 팔꿈치로 허벅지를 내리찍었다.
“흥!”
오칠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들려오는 것은 코웃음뿐이었다.
분명 팔꿈치로 찍힌 부위는 꽤나 고통스러워야 할 부위였다.
하지만 그건 보통 사람, 혹은 내외공을 통해 다리를 단련시키지 않은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장가송은 어릴 때부터 수년간, 상하체를 단련했고, 더구나 옥대공의 공력으로 몸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있는 상태라, 단순히 힘뿐인 오칠의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은 것이다.
“고작 이거냐?”
퍽!
장가송은 순간적으로 몸을 돌려 오칠의 어깨를 걷어찼다.
콰당탕!
오칠은 당황한 데다 너무도 빠른 장가송의 발차기에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얻어맞아 바닥을 나뒹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정신을 놓은 것도 아니었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어깨가 아팠지만, 곧바로 일어나 장가송의 지척으로 달려들었다.
“어딜!”
장가송은 양손을 날카롭게 세워 앞으로 쭉 뻗었다.
슈악―
제비의 움직임을 따라 만들었다는 연형권(燕形拳)이었다.
그러나 제비의 움직임 이상의 날카롭고, 살벌한 바람을 일으키며 오칠의 급소를 노렸다.
“……!”
장가송은 앞으로 내뻗은 손을 거두며 뒤로 물러났다.
달려오는 그대로 몸을 날려 허리를 움켜잡으려 하는 오칠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오칠은 거리가 벌어지자, 바닥을 굴러서 물러나는 장가송에게 바짝 붙어 종아리를 양팔로 휘어 감았다.
“으랏차!”
아무리 하체의 공부가 깊어도 균형을 무너트리는 직접적인 공격을 막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장가송은 아직 미숙하여 이러한 오칠의 공격을 막을 경험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장가송은 뒤로 벌렁 자빠졌고, 오칠이 그 위로 올라타 주먹을 내리쳤다.
퍽!
오칠의 주먹은 장가송이 십(十)자로 양팔을 교차시키면서 쉽게 막혔다.
게다가 내공이 운집된 팔이었기에, 도리어 오칠의 주먹에 고통이 왔다. 하지만 오칠은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한 번으로 안 되면, 스무 번, 백 번이라도 내리쳐주겠어!’
퍽! 퍽! 퍽! 퍽! 퍽……!
오칠은 주먹이 아프건, 살이 터져 피가 나건 계속해서 내리쳤다.
‘뭔가 힘이 솟구치는 기분인데?’
처음엔 고통을 참고 내리친 것이었다.
하지만 때리면 때릴수록, 고통이 점점 심해질수록 온몸에 힘이 불끈 불끈 솟구쳤다. 손은 점점 무감각해지고, 십자로 막고 있는 장가송의 팔에서도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점점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의 손이 터지면서 나오는 피였지만 붉은 선혈이 눈앞에 어른거리자, 흥분이 되기 시작했다. 이대로 더, 더 많이 피를 보고 싶었다.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이 쾌감을 더욱 만끽하고 싶었다.
‘빌어먹을!’
장가송은 당황했다.
놀라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솜방망이로밖에 느껴지지 않던 오칠의 주먹이, 점점 팔을 고통스럽게 하는 강인한 쇠방망이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당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바닥에 쓰러진 것도 부끄러운 일인데, 얼굴을 얻어맞기라도 한다면 지켜보고 있는 진도명 등에게 다시는 얼굴을 들 수 없을 것이었다.
“하압!”
장가송은 십자로 교차시킨 팔을 크게 휘저었다.
퍼퍽!
주먹을 내리치던 오칠의 몸이 뒤로 훌쩍 날아갔다.
스스로의 의지로 날아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칠의 신형은 바닥을 몇 바퀴나 구른 끝에야 멈춰질 수 있었다.
‘저건!’
사태가 커지는 것 같아 두 사람을 뜯어말리려고 했던 진도명은 우뚝 걸음을 멈췄다.
장가송이 오칠을 밀어낸 수법, 더 정확히는 장가송이 이전에 비할 바 없이 막강한 힘을 발휘한 수법이 무엇인지 알고서 멈춘 것이었다.
‘호조수까지 사용하다니.’
호조수(虎爪手).
그 유명한 소림오권 중에 호권(虎拳)의 위력을 높이기 위해 꼭 수련해야 하는 조공이 바로 호조수였다.
그리고 장씨세가는 소림사에서 호권을 전수받았으며, 그 후계자 구도에 있는 장가송이 호조수를 익힌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호적수라 할 수 있는 진도명이 보고 있는데 호조수를 노출시키다니.
‘그 정도로 행자승이 버거운 상대라는 말인가? 조금 더 지켜봐야겠군.’
진씨세가도 역시 장씨세가처럼 소림오권의 하나인 용권(龍拳)과 용권을 더욱 강력하게 할 수 있는 용조수(龍爪手)를 전수받았다.
그리고 장가송처럼 진도명도 진씨세가의 후계자 구도에 놓여 있기에 그 무공을 익혀가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진도명은 장가송의 실력을 파악하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문파와 표국, 그리고 무인으로서 경쟁자일 수밖에 없는 상대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기분 좋다!’
벌떡 일어난 오칠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입술이 터져 흐르는 핏물을 혀로 핥는 그 얼굴에는 어떤 희열 같은 것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