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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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7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7화
파계 1권 - 17화
‘팔보연환퇴.’
나한권이 끝나자 팔보연환퇴였다.
장가송의 다리가 휙휙 하늘로 솟구칠 때마다 나한권을 펼칠 때처럼 낮게 깔린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소년들이 펼쳤던, 그리고 진도명이 다시 시현했던 무공들 역시 빠르고, 정교하게 펼쳐졌다.
‘별거 없군.’
하지만 오칠은 이렇다 할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다른 소년들이 펼칠 때와 다름없는 실망감만 들 뿐이었다.
왜?
오칠은 장가송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는 걸까?
아무것도 없었다. 오칠은 장가송의 동작에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에 실망하고 있는 것이다.
‘저건 소림의 무공이 될 수 없어.’
오칠이 알고 있는, 직접 견식한 무공이란 고작 몇 개에 불과했다.
노승이 가르쳐준 십팔나한공, 그리고 오늘 소년들이 보여준 나한권이니, 연형권이니, 칠성당랑권이니 하는 것들이었다. 물론 그런 것들도 소림을 대표하는 무공들이 아니었기에, 진정 소림의 무공을 보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 오칠은 단언할 수 있었다. 장가송의 무공은 소림의 무공이 아니었다.
‘저놈은 실전무공에 대해 개뿔도 모르는 놈이야!’
실전이란 말이 붙게 되면, 형식에 구애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이 설사 소림의 무공이든, 무당파의 무공이든 초식을 그대로 펼치면 그것은 그저 그 무공을 펼친 것이지, 실전무공이 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오칠이 장가송에게 기대했던 것은, 진도명이 감탄이 나올 정도로 진중하게 펼쳐낸 소림무공을 어떻게 실전적 무공으로 펼치려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장가송은 그저 빠르고, 좀 더 정교하게, 즉 크고 길게 내뻗어야 할 팔을 좀 더 짧고, 속도를 빨리해서 펼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이 모든 평가는 오칠의 아주 개인적인 평가였다.
싸움 기술이나, 사람 죽이는 기술만 알고, 무공에 대해선 거의 문외한인 오칠의 생각이기 때문에 진짜 고수가 뭐라 한다면 달리 변명할 거리가 없는 아주 개인적인 생각 말이다.
각설하고, 둘 사이에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선 오칠이 알 바가 아니었다.
‘경쟁심에 봐야 할 것을 못 보는 놈이라는 건 확실해.’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장가송은 진도명을 넘어설 만한 인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좋은 공부가 되었네.”
장가송이 무공을 다 펼치고 어떠냐는 듯 바라보자, 진도명이 포권을 해 보이며 살짝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오칠은 그 행동이 진정 공부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예의상 하는 말에 불과함을 알고 있었다. 물론 장가송은 그것도 모르고 잔뜩 거만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쨌든 이로써 보다 분명해졌다.
진도명이 보여주었던 무공이 오칠이 알고자 했던 소림의 무공이라는 것을 말이다.
“오~ 장 소협, 대단합니다!”
“정말 멋져요!”
어찌 말해야 할지를 모르고 눈동자만 두리번거리고 있던 소년 소녀들이, 진도명의 말을 듣고서 한마디씩 찬사를 터트렸다.
그들에겐 진도명의 무공과 장가송의 무공을 분명하게 나누어야 할 차이점이 보이지 않은 것이다. 빠르고, 느리다 정도의 차이는 보여도, 그 안에 숨겨진 소림무공의 기세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안목은 갖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어이없는 녀석들하고는. 저것들이 소림의 속가제자라고?’
“흥!”
오칠은 깜짝 놀랐다.
하는 짓거리들이 하도 기가차서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는 것이 첫 번째로 놀랄 일이고, 진도명과 장가송이 그 소리를 듣고 오칠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누구시오!”
진도명이 의심의 눈길과 함께 소리쳤다.
그리고 장가송은 보다 분명한 적의를 보이며, 오칠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제길!’
오칠은 내심으로 욕을 터트리고, 담장에서 내려와 흐트러졌던 옷을 정리했다.
모든지 첫인상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던가.
“아미타불. 소승이 담장을 청소하다 소협들의 수련을 방해한 모양입니다.”
행자승 주제에, 그것도 잘 쓰지도 않던 소승이란 말을 쓴 것은, 고작 행자승이라도 예의를 갖추어 상대해야 할 승려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담장 청소라는 어쭙잖은 거짓말에 보다 사실성을 주기 위함도 되었다. 그런데 다른 이들에겐 그게 꽤 먹혀들어간 듯했지만, 장가송이라는 놈은 여전히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어 오칠의 기분을 더럽게 만들었다.
‘꼭 저런 놈들이 있다니까!’
머리를 파랗게 밀어버린 상태이기는 하지만, 자신처럼 그럴듯한 외모의 인물이 가볍게 웃음을 지으면 보통은 그럼, 그럼, 하며 넘어가기 마련이었다.
물론 여자에게 특히나 더 잘 먹히긴 하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남자도 그러한 범주를 넘어가기는 힘든 법이다. 그런데도 장가송은 새눈을 뜨고 그게 아닌 거 같은데? 하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는 노릇이 아닌가 말이다.
“소승은 이만 물러갈 터이니, 계속 용맹 정진하십시오.”
오칠은 더 무슨 말이 나오기 전에 얼른 합장을 하고서 문이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하나, 그런 오칠을 장가송은 그냥 보내주지 않았다.
“법명은 어찌 되시오?”
일단 반경어를 썼다는 것부터, 장가송이 오칠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당황하여 표정을 굳힐 수는 없는 일. 오칠은 차분하게 몸을 돌려 다시 합장을 해 보였다.
“소승은 아직 공부가 부족하여 법명이 없습니다.”
그럼 이만! 하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강조까지 했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럼 행자승이란 말인데… 어디에 거처를 두고 계신 행자승이시오?”
“당연히 소림사에 있으니, 이곳에 거처하고 있는 행자승이겠지요.”
“이런, 행자승께선 저와 선문답을 하자는 겁니까?”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의미를 분명히 하고 있는 장가송에게 오칠은 그저 하하하!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소협들은 이곳에 들어온 지 반년에 불과하여 모를지 모르나, 저와 여기 도명은 벌써 오 년 동안이나 소림사에서 지내왔소. 그런데 행자승의 얼굴은 너무나 낯설구려.”
그러니 해명을 하라는 말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오칠도 더 이상 발뺌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소림무공이 궁금하여 몰래 훔쳐봤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실 소승은 사부님을 따라 잠시 소림사에 온 외학전의 행자승입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방장 스님과 만나시느라 저는 홀로 남겨지게 되었고, 이렇게 길을 잃어서 소협들의 수련을 방해하게 되었지요.”
방장 스님이라는 말을 유독 강조하였으니, 바보가 아닌 이상 더 이상은 캐묻지 않으리라 믿었다.
한데, 장가송은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하는 오칠의 생각을 뛰어넘는 존재였다. 다짜고짜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반말로 호통을 쳤으니까 말이다.
“네놈은 무슨 악심으로 소림사에 몰래 들어왔느냐!”
“……!”
오칠은 당혹스럽고, 황당해서 잠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짧고도 긴 순간 깨달았다.
‘이놈이 나를 가지고 놀려 하는구나!’
더구나 그냥 가지고 노는 정도에 그칠 장난이 아닌 게 분명했다.
오칠을 보는 장가송의 눈동자에는, 꽤 많은 사람을 겪어본 오칠 같은 이가 아니라면 알아차릴 수 없는 흉포함이 자리잡아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오칠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까짓 일에 당황했으면, 그 험한 세상을 지나오며 지금껏 살아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대허 스님을 아시겠지요? 그분이 절 아시니 그 오해는 곧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난 당장 알아야겠다! 네놈이 외학전의 행자승이라는 증거를 대라.”
오칠은 그 말로 장가송이 외학전에 대해서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는 어떠한 말도 듣지 않을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즉, 어떤 말을 해도 장가송은 오칠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니, 더 말을 해봐야 입만 아프다는 뜻이었다.
‘내가 코웃음 친 것이 자신을 비웃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군. 그리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하겠다는 거고. 그것도 별 게 없을 외학전의 행자승이니 뒷감당도 할 만하다, 이거지!’
주는 대로 받아먹고, 가르쳐주는 대로 기억하고만 살았을 장가송의 속내를 꿰뚫어 보는 일쯤은 오칠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나, 문제는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어찌하면 제가 소협의 오해를 풀어드릴 수 있겠습니까?”
따지듯이 물었지만, 수행자로서의 몸가짐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왜냐하면 저 빌어먹을 장가송의 동료들까지 장가송을 비방하는 듯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중 소녀 세 명은 노골적으로 오칠에게 동정이 가득한, 그러면서도 어찌 이리 예쁘장한 행자승이 있을까, 하는 의미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이놈이!’
장가송 역시 자신의 편이 되어줄 거라 믿었던 이들이 보내는 곱지 않은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하나, 이대로 멈추기에는 그의 자존심이 너무 강했고, 경쟁자인 진도명이나, 소년 소녀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더더욱 자존심을 구겨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것이 훗날 진씨세가와 장씨세가의 경쟁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장가송은 좀 더 강하게 오칠을 밀어붙일 필요성을 느꼈다.
“네놈이 행자승이며, 사특한 마음으로 소림사에 들어와 우리의 수련을 보고 있던 것이 아님을 증명하려면, 내 눈앞에서 소림무공을 펼쳐야 할 것이다.”
제11장. 아리만의 광기
오칠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이놈, 미친 거 아냐?’
외학전 행자승에게 무공을 펼쳐 보이라니.
“소승은 외학전의 행자승입니다.”
너도 외학전의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거 아니냐는 뜻을 돌려서 한 말이었다.
하나, 장가송은 그 정도 말에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외학전 또한 소림사에 적을 둔 곳이다.”
“…….”
“소림사의 승려라면 누구나 기본적인 무공을 의무적으로 익혀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예전 일이고, 지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난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 네놈은 외학전의 승려를 무공도 모르는 이들이라고 생각한단 말이냐!”
예, 맞습니다! 라고 대답해야 했지만, 오칠은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하기가 싫었다. 장가송의 말투엔 조롱기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화날 일인가?’
외학전의 승려는 학승이기 때문에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것이 전혀 부끄러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칠은 달랐다. 학승도 아니고, 그저 행자승이지만, 약골로 취급되는 것을 참을 정도로 넉넉한 성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더구나…….’
여자가 보고 있지 않은가.
어린 나이라고는 하지만, 지난 세월 여자를 알고부터 단 한 번도 여자 앞에서 자존심을 구겨본 적이 없던 오칠이었다. 여자들은 오칠의 얼굴과 능력에 제압되어 황홀함과 경외심에 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저기 있는 소녀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얼굴은 되는데 몸이 안 되는구나, 말만 소림사 중이고 무공 하나 익히지 못한 약골이야 등등… 오칠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의 눈빛이 전해져오고 있는 것이다.
‘좋아. 어디 끝까지 가보자!’
“그럼 소협께서 도와주십시오.”
“……?”
“소협께선 소림의 무공을 실전적으로 변화시키셨다고 하는데, 제가 진정 실전적이란 것이 무엇인지 보여드리지요.”
소림무공을 펼칠 수 없으니, 은근히 말을 돌려 싸움을 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칠의 의도대로 장가송은 얼굴색이 변하며 노성을 터트렸다.
“하!”
장가송은 사납게 치켜떠진 눈으로 오칠을 노려보았다.
“나의 무공을 시험하겠다! 좋다. 네놈이 날 이긴다면 행자승이란 것을 인정하지.”
“사과도 하십시오.”
“…….”
“왜요? 자신이 없으십니까?”
“좋다! 사과도 하지. 하나, 네놈이 지게 된다면 내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야 할 것이다!”
이로써 장가송이 처음부터 오칠을 가지고 놀 속셈이었다는 것이 보다 분명해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행자승인지 의심된다느니, 무슨 마음으로 소림사에 들어왔냐고 호통을 치던 자가 승부의 결과를 고작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라! 정도로 끝낼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오칠 같았으면 팔 한쪽이나, 목숨을 걸으라고 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지요.”
오칠은 합장을 해 보이며 뒤로 물러났다.
“가송, 이제 그만 하는 것이 어떤가.”
쭉 지켜보기만 하고 아무 말 않고 있던 진도명이, 장가송에게 다가가 조용히 만류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행자승이라지 않은가. 그것도 외학전의 행자승과 비무를 했다는 말을 들어서 좋을 것이 무엇이 있나.”
“그럼 나보고 저깟 행자승에게 자존심을 구기라는 말인가?”
“내 말은 그것이 아니라… 이러다 담종 스님께서 오시기라도 하면 어찌 감당할지 염려가 돼서 그러네.”
순간, 장가송의 눈빛이 흔들렸다.
담종은 소림 제자들의 규율을 감독하는 계율원(戒律院)의 원주인 굉요의 제자이며, 당연히 계율원의 승려이고, 이와 함께 속가제자들의 무공 사범을 맡고 있었다.
또한 그 위치에 걸맞게 십팔나한(十八羅漢) 중 소빈타의 자리를 맡고 있는 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