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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16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58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파계 16화

파계 1권 - 16화

 

 

 

 

 

노승은 담성과 담웅의 인도를 받아 방장실을 앞뒤로 에워싸고 있는 팔대호원(八大護院)을 거쳐서 방장실에 당도했다.

 

끼익!

 

담성이 열어주는 문안으로 들어선 노승은 그 안에 있는 여러 승려들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왜 이리 바글바글 모여 있어?”

 

노승의 경박한 말에 승려들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들 대부분이 소림사의 중책을 맡고 있는 이들이었고, 나머지는 그 제자들이었기에 체면을 손상당하여 기분이 상했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노승은 그들보다 세 항렬이나 높았고, 그들의 수장인 방장이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일어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노스님.”

 

사실 방장은 노승을 사조라 불러야 했다.

 

하지만 노승은 누구에게서든 그렇게 불리는 것을 원치 않았고, 또한 방장이 행자승 시절 때부터 노스님이라 불렀기에 어색함을 느낄 수 없었다.

 

“그동안 편안히 지내시었소, 방장.”

 

“예. 부처님의 가호를 입어 별 일 없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태평하여 나태함에 물든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태평이라, 그것이야말로 사바의 극락(極樂)이 아니겠소.”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럼 저도 허망스레 살아가는 것이 아니니 다행이라 할 수 있겠군요.”

 

방장과 노승의 대화는 자연스러웠다.

 

주변에 있는 다른 승려들이 노승을 그리 공경하고 있지 않은 듯해 보이는 것과 달리, 방장은 더할 수 없이 노승에게 따듯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사십 년 전 처음 만난 그때와 다름없이 말이다.

 

“그래, 내게 보여준다는 고서가 무엇이오?”

 

“예, 바로 이것입니다.”

 

방장은 노승이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가, 척 보아도 많은 세월이 느껴지는 얇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흠, 페르시아어군.”

 

노승은 책의 겉면에 흐릿하게 쓰인 글자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이 문자가 페르시아어란 말입니까?”

 

“그렇소.”

 

“그럼 노스님께서는 그 내용을 해석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가능은 할 것이오. 그런데 이 고서가 그리 중요한 것이오?”

 

방장실에 중책을 맡은 이들이 모두 모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비중도를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교에 관한 고서입니다.”

 

“마교?”

 

마교(魔敎).

 

수백 년 전에 사라져, 이제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로 전해오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지금 소림사의 방장이 그 이름을 꺼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놀랄 일인가. 하나, 다른 사람은 그럴지 몰라도 노승은 전혀 놀랄 이유가 없었다.

 

“재미있겠군.”

 

“…….”

 

“…….”

 

방장을 비롯한 승려들은 노승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전설이 되어버렸다고는 하지만, 그 이름만으로도 무림에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이 마교였다. 그런데 재밌다니.

 

하나, 그런 반응에도 노승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책 겉면에 쓰여 있는 글을 읽으며 독서를 하듯 해석 작업을 시작할 뿐이었다.

 

“어디… 배화교전록이라…….”

 

 

 

 

 

제10장. 속가제자들

 

 

 

 

 

‘별거 없잖아!’

 

큰 건물이 많고, 담장이 높은 곳으로 들어서서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눈에 차는 것이 없었다.

 

늙은 중, 젊은 중, 어린 중들도 있고, 꽤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들도 있고, 약사불, 미륵불 등등의 불상들도 곳곳에 세워져 있었지만, 오칠이 찾고자 하는 장면은 눈을 씻고 보아도 보이지가 않았다.

 

‘외학전이 소림사 밖으로 나간 이유가 무승들이 하도 시끄럽게 굴어서라고 하더니, 전혀 아니잖아!’

 

승복을 벗어젖힌 중들이 바위를 깨부수는 재미있고, 화끈한 모습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무공 수련을 하는, 이곳이 무림에서도 유명한 소림사라는 걸 확인하고 싶을 뿐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이리도 조용하단 말인가.

 

‘어라!’

 

그때, 뭔가 솔깃해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공 수련장인가 보구나!’

 

기합소리,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는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러고들 있을 것이다. 발을 올려 차고 있을지도 모르지.

 

생각만 해도 즐거운 구경거리였다.

 

담 두 개 정도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였기에, 오칠은 황급히 뛰어가 소리의 근원지에 다가갔다.

 

‘봐도 되는 건가?’

 

담장에 오르려던 오칠은 망설였다.

 

무공을 수련할 때는 제 자식에게도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 것이, 무림이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생리였다. 몰래 보다가는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한 하늘을 보고 살 수 없는 원수가 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무림이었다. 하지만,

 

‘난 소림에서 두 번째로 높은 항렬이야!’

 

여차하면 그렇게 주장해도 될 테지만, 아직 분명한 것이 아니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말하는 건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몰래 보면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은 전혀 없지 않겠어?’

 

오칠은 건물과 담장 사이에 그늘이 지고, 그러면서도 그 너머를 아주 용이하게 볼 수 있는 곳을 찾아 올라섰다.

 

‘오~!’

 

보였다.

 

십여 명의 소년, 소녀들이 모여 몇 명은 무공을 시연하고, 몇 명은 그걸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뭐야 저것들은?’

 

오칠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은 두세 명 정도에 불구하고, 나머지는 그보다 나이가 적거나 비슷할 듯했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길게 머리를 기르고 있었다. 옷도 승복이 아니라 평상복이었다. 아니, 일단 아미파가 소림사로 이전을 해왔을 리가 없으니, 여자가 이곳에서 무공을 수련하는 것부터 이상한 일이었다.

 

‘일반인들이잖아.’

 

중도 아닌 사람들이 소림사에서 무공을 수련하다니.

 

‘속가제자?’

 

들은 적이 있었다.

 

소림사와 같은 곳은 속세를 벗어나 문하로 들어온 제자 외에도 여러 다른 이유로 문하생을 받아들이는데, 그들이 바로 속가제자였다.

 

같은 구파일방이며 도가문파인 무당파에서도 속가제자를 받아들인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 무공을 배웠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오칠이 알기로 속가제자에게는 어느 정도 한계를 두고 무공을 가르친다고 하는데, 그 무공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야 나중에 자신이 무공을 배울 때, 혹은 장경각을 이용할 때 좋은 무공을 배우는지, 강한 무공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지 않겠는가.

 

“핫!”

 

한 명의 소년이 연속해서 주먹을 내지르고 빙글 돌아 바닥을 힘껏 디뎠다.

 

“자네 나한권(羅漢拳)이 놀랍도록 진보했군.”

 

“진각을 하는데 바닥이 꺼지는 줄 알았네!”

 

여기저기에서 손뼉을 치며 나한권이란 무공을 펼친 소년에게 찬사를 보냈다.

 

‘놀고들 있네.’

 

오칠은 코웃음을 쳤다.

 

어린것들이 늙은이처럼 말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나한권이라고 하는 권법도 그리 대단할 것이 없어 보였다.

 

뭐랄까, 동작이 크고 화려하기만 해서 뭔가 있어야 할 묵직함이 전혀 느껴지질 않는다고 할까.

 

‘저런 것이 그 유명한 소림권이라면, 정말 실망인데.’

 

제대로 된 무공을 익힌 적은 없지만, 실전적 싸움에는 도가 텄다 자부할 수 있는 오칠이었다.

 

소년이 펼치는 나한권은 그저 보이는 것에 중점을 둔, 마치 검무처럼 춤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었다. 말 그대로 구경하기엔 좋지만, 저대로 익혀보았자 실전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다.

 

이왕 무공을 익히게 된다면, 천하제일고수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오칠에게는 더더욱 쓸모가 없는 무공이었다.

 

‘그런데 저것들은 뭐가 대단하다고 저리 칭찬을 하고 난리야.’

 

저들이 소림사의 속가제자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또 하네.’

 

이번에는 다른 소년이 앞으로 나오더니,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발길질을 해댔다.

 

“훌륭한 팔보연환퇴(八步連環腿)요!”

 

또다시 들려오는 감탄사들.

 

그렇게 십여 명의 소년들이 앞으로 나와 연형권(燕形拳)이니, 칠성당랑권(七星螳螂拳)이니 하는 무공들을 펼쳤다.

 

무공을 펼치지 않은 사람은 오칠보다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소년 두 명과 세 명의 소녀들뿐이었다.

 

“어떻습니까, 진 소협. 소협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소년들은 무공을 펼치지 않은 소년들 중 좀 더 선한 인상의 소년에게 몰려들었고, 오칠도 그 진 소협이라는 자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몸도 튼실하고, 생긴 것도 사내답고, 흠… 제법 한가락 하게 생겼는데.’

 

소년들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의견을 듣고 싶다느니, 가르침을 내려달라느니 하는 말을 하는 걸로 봐서, 이곳에서 저 진 소협이라는 자의 무공이 가장 강하다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 말씀들을 하시니, 이 진 모가 그냥 있을 수가 없군요.”

 

오칠은 꽤나 흡족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앞으로 나서는 진 소협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진 소협이 정인군자를 흉내 내는 어린아이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나서서 무공을 펼치는 진 소협의 모습은 오칠에게 꽤나 큰 충격을 주었다.

 

‘잘 하잖아!’

 

진 소협은 소년들이 펼친 무공을 하나하나 펼쳐 보이며, 어디가 어떻고, 이럴 땐 어찌해야 한다는 등의 설명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무공의 기세라는 것이 다른 소년들이 펼칠 때하고는 너무나 천지차이였다. 크고 화려한 것은 같은데, 그 힘과 기세는 너무나 강렬해서 그 동작 하나하나에 오칠의 등골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저것이 소림무공이다!’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진 소협이란 자가 펼치는 무공이야말로 소림사란 이름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무공인 것이다.

 

오칠은 벌떡 일어나 박수라도 쳐주고 싶을 정도로 감탄하고 말았다. 물론 자신이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를 잘 알기에 그저 생각에 그쳤지만 말이다.

 

“흥!”

 

한데, 난데없이 터져 나오는 코웃음이 장내의 좋은 분위기를 흐트러트렸다.

 

“도명, 자네의 권각은 죽어 있어!”

 

이 무슨 말인가?

 

오칠은 진 소협, 아니 진도명의 무공을 신랄하게 비판한 소년을 쳐다봤다.

 

그는 무공을 펼치지 않은 또 다른 소년이었는데, 눈꼬리가 가늘고,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맺혀 있어, 꽤나 오만한 성정의 인물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고견을 듣고 싶네, 가송.”

 

오만해 보이는 소년의 이름은 가송이었다.

 

장가송.

 

하남 우주(禹州)에 터를 잡고 있는 장씨세가(莊氏世家)의 장손이 바로 그였다.

 

장씨세가는 하남에서 두 번째로 큰 표국인 장가표국(莊家鏢局)을 운영하며, 전통적으로 그 국주는 소림사의 속가제자 출신이었다.

 

그리고 진도명. 그는 하남 남소(南召)에 있는 진씨세가(秦氏世家)의 장손이다.

 

진씨세가는 하남에서 가장 큰 표국인 진가표국(秦家鏢局)을 운영하고 있으며, 장가표국처럼 그 국주는 전통적으로 소림사의 속가제자다.

 

한마디로, 진씨세가와 장씨세가는 전통적으로 여러 방면에 걸쳐 경쟁을 하는 집안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후계자들인 진도명과 장가송 역시 소림사에서 동문수학하며, 무공으로 경쟁을 하는 사이인 것이다.

 

“도명, 자네의 권은 너무 길게 뻗어. 보법의 폭 또한 커서 정밀하지 않네. 자네도 그렇지만,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표사일세. 표사는 일대일 비무를 하는 직업이 아니라, 수십, 수백을 상대로 싸워야만 하는 직업이야. 그런데 어찌 그리 멋에 치중한 권각법으로 적들을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안 될 말이지, 안 될 말이고말고.”

 

진도명의 얼굴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나 곧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그렸다. 진도명의 인내심은 장가송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한 것이 분명했다.

 

“그럼 가송 자네가 직접 보여주게나. 자네의 말만으로는 이해하기가 힘이 드네.”

 

진도명은 좌우에 있는 소년들에게 그렇지 않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고, 소년들도 동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 오라버니가 말씀하시는 실전적 무공이란 게 어떤 것인지 너무 궁금해요!”

 

“저도요!”

 

시종 진도명에게만 이목을 집중하고 있던 세 명의 소녀들이, 그 나이에 맞는 밝고 경쾌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제법 귀엽네!’

 

가만있을 때는 그냥 봐줄 만하네, 라고 생각했는데,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자 꽤나 탐스러워 보이는 소녀들이었다.

 

물론 지금껏 오칠이 상대해봤던 성숙미 넘치는 여인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몇 달 동안 여자를 구경하지 못했던 십육 세의 원기 왕성한 오칠에게 있어 소녀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신선하고, 갈증을 일으키는 구경거리였다.

 

‘험, 지금은 쟤들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랬다.

 

여자란 산만 내려가면 지천에 깔렸고, 최고의 무공을 익히게 되면 꼬이고 꼬이는 것이 여자였다. 게다가 무공을 익히지 않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여자를 품에 안을 수 있는 외모와 능력을 겸비한 오칠이 아니던가.

 

‘어서 시작해보라고.’

 

오칠은 소녀들에게서 애써 시선을 돌려 장가송에게 집중했다.

 

진도명의 무공을 비판한 장가송의 실전적 무공이 얼마나 대단할 지 기대가 되었다.

 

촤악―

 

곧이어 장가송이 주먹을 내지르는 순간 천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날카롭군.’

 

오칠은 장가송이 펼치기 시작한 주먹질이 처음에 보았던 나한권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에 비해, 또한 진도명이 펼친 나한권에 비해 매우 빠르고, 정교하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