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5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6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5화
파계 1권 - 15화
외학전에서 소림사로 가려면 정확히 네 개의 봉우리를 넘어가야 했다.
네 개.
개수로 말하자면 별 게 없을 적은 숫자였지만, 직접 그 네 개의 봉우리를 넘어가다 보면 결코 적은 개수의 봉우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꽤나 높고 험한 길이었다.
만약 어제 이런 봉우리를 넘어가는 일이 있었다면, 아마도 오칠은 주구장창 욕만 하며 걸었을 것이다. 하나, 지금의 오칠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소림사야, 기다려라!’
외학전을 나오고부터 오칠의 머릿속은 앞으로 펼쳐질 푸른 꿈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마음 같아서는 맨 앞에서 산을 오르고 있는 담웅에게, 장경각에 소장되어 있는 가장 강한 무공비급이 뭡니까! 라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천하제일무림고수가 되기 위해 익혀야 할 수련 목록을 만드는 것이다.
‘하하하하!’
오칠은 절로 통쾌한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노스님, 좀 쉬었다 가시겠습니까?”
검법을 익힐까, 아니면 도법을 익힐까, 아니면 봉법을? 아니지. 역시 소림 하면 권법이야! 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던 오칠은, 문득 들려오는 담웅의 말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왜 이리 분위기를 잡지?’
노승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멈춰 서서 뭔가를 추억하는 듯한 아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노승이 바로 앞에서 걷고 있었기 때문에 오칠 역시 걸음을 멈추고 노승이 다시 걷길 기다려야만 했다.
‘여전히 그대로구나.’
노승은 저 멀리 높은 산 중턱에 기둥처럼 서 있는 봉우리를 보고 있었다.
어찌 저런 모양의 봉우리가 있을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의 높고도 가파른 봉우리.
새가 아닌 이상 사람으로서는 절대 꼭대기에 올라갈 수 없을 듯한 봉우리였지만, 과거 노승은 저 높은 곳에 올라서 눈으로 볼 수 없는 넓은 세상을 상상하곤 했었다.
물론 노승 혼자서 올라간 것은 아니었다. 그의 사형들이 펼치는 놀라운 경공술이 아니라면 절대 그 혼자서는 오르지 못할 높고도, 험한 봉우리였으니까 말이다.
‘이상하게 감정에 휩쓸려 마음이 여려지는구나.’
수년 만에 소림사에 가는 것이니, 사형들과의 추억이 어린 봉우리를 보면서 감정에 젖어들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노승은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딱 뭐라고 할 수 없는, 사형들이 열반에 들기 전에 느꼈었던 불안감과 비슷한 무언가가 심장을 콕콕 찌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사부님, 괜찮으십니까?”
오칠의 걱정 어린 말소리에 노승은 봉우리로부터 시선을 거두었다.
‘이 영악한 녀석 같으니라고.’
부축해드릴까요? 하며 잔뜩 걱정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오칠을 보며 노승은 내심 헛웃음을 지었다.
노승은 오칠이 어떤 마음으로 이리 공손히 구는지를 대략 짐작하고 있었다. 하나, 그에 대해 알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오칠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노승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소림은 그리 호락한 곳이 아니니라. 그리고 나의 존재 또한 네가 느끼는 것만큼 그리 대단하지 않고 말이다.’
“난 괜찮다. 어서 가자.”
잠시라도 쉬어가야 한다느니, 소림사까지 엎어드린다느니 하며 과장 어린 행동을 하는 오칠의 부산스런 모습들이 대략 마무리되고 나서야 일행은 다시 걸음을 재개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반 시진가량 뒤에 드디어 소림사의 산문에 당도하게 되었다.
‘오~ 저게 그 사자상인가?’
오칠이 보고 있는 문 양쪽엔 암수로 구분지어진 두 개의 사자 석상이 마주 보고 있었다.
‘근데 그리 볼품은 없네.’
나중에 다시 그럴듯하게 만들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그 유명한 소림사의 산문을 지키는 석상치고는 투박하고, 사실적이지 못한 조각상이었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오칠은 산문에 뭐가 있건 없건, 외견이 아닌 내부의 질적 가치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소림사가 아닌가!
중원무공의 발원지, 정파무림의 태산북두, 구대문파의 수좌로 대변되는 바로 그 소림사가 어서 들어옵쇼! 하고 눈앞에 있는데, 사자상이 잘 만들어졌는지, 형편없는 예술성으로 지탄받아야 하는지 하는 그 딴 것은 전혀 의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 걸음이 천하제일고수가 되는 오칠의 첫걸음이다!’
눈을 감고 산문을 향해 가는 걸음을 음미해보았다.
‘아~ 주 좋아!’
기분이 최고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무공의 고수가 된 것처럼 가슴 가득 뿌듯함이 밀려 들어왔다.
“너 뭐 하니?”
오칠은 눈을 뜨고서 자신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는 노승과 담웅 등을 마주 보았다.
“중원 불교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소림사에 오게 되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라 저도 모르게…….”
그 벅차오름이 무공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 아님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수행자로서의 깨달음을 얻기 위한 좋은 공부가 될 것 같아 가슴이 너무나 떨립니다.”
담웅은 행자승으로서 아주 바람직한 자세라며 감탄했고, 그 뒤에 있는 중도 고개를 끄덕여 동감했다.
하지만 노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얼른 들어가자, 하며 먼저 산문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이야~ 역시 소림사인가!’
소림사는 확실히 여느 절과 달랐다.
산문 초입에 기골이 장대하고, 눈빛이 형형한 장년의 무승이 마치 경비무사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으니까.
한데, 이상한 것은 산문의 크기가 너무 작았다.
사자상을 볼 때부터 괴이하게 생각하던 것인데, 사람 두 명 정도나 나란히 들어갈 산문 앞에 서자, 의문이 좀 더 직접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원래 소림사의 정문은 이렇게… 겸손한가요?”
오칠은 적당한 단어를 떠올리기 위해 순간 머리에 열이 나도록 잔머리를 굴려야 했지만, 꽤 탁월한 선택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며 담웅의 제자라는 중에게 물었다.
“여긴 뒷문일세.”
“아~”
그러면 그렇지.
아무리 무림에 유명한 소림사라 해도, 절을 찾는 신자 한 명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싶었더니, 뒷문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조악하기 그지없는 사자상이나, 쪽문처럼 작은 크기의 문도 다 설명이 되는 일이었다.
‘그럼 저 무승은?’
정문이라면 모를까, 쪽문과 다름없는 뒷문에 경비까지 세울, 그것도 꽤나 무공이 고강해 보이는 무승을 세울 정도로, 철저한 보안이 필요하다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노스님.”
“오~ 너는… 누구냐?”
“…….”
“왜 대답을 않느냐?”
오칠은 문득 노승이 소림최고의 학승이었다는 말에 의구심을 품었다.
어떻게 상대는 노승을 알아보는데, 노승은 단 한 사람도 알아보질 못하느냔 말이다.
“담성입니다.”
무승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면서 자신의 법명을 말했다.
하나, 그래도 노승의 얼굴은 알았다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래서 옆에 있던 담웅이, 담성은 당금 소림사 방장의 대제자이자, 방장실(方丈室)을 보호하는 역할인 팔대호원(八大護院)의 원주이며, 십팔나한의 일인인 가락가벌차라는 말을 해주어야 했다.
“아~ 그래. 네가 방장의 대제자였구나. 그런데 왜 나와 있느냐?”
“노스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라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마중을 나왔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노승의 표정은 여전히 시큰둥했다.
“그래? 내가 어린애도 아닌데 뭘 마중까지 나오고 그러냐.”
노승은 별일을 다 보겠다는 듯 담성을 지나 문안으로 들어갔다.
“원래 저런 분이시지 않습니까.”
오칠이 담웅에게 그랬듯, 담웅은 담성에게 합장을 해 보이며 이해하라고 말했다.
“이거 참.”
담성은 고개를 내저으며 담웅과 안으로 들어갔고, 오칠도 담웅의 제자와 함께 그 뒤를 따랐다.
‘여기가 소림사구나!’
밖에서 보던 것과 안에서 보는 것은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높은 담장에 둘러쳐진 건물들은 높고 웅장했으며, 그 명성만큼이나 남다른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 고요함 속의 진중함 같은 그런 기운이 말이다. 혹은 가벼움 속의 무게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고요함 속의 어쩌고저쩌고하는 것은 오칠의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누구입니까?”
도심으로 나온 촌놈처럼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오칠을 가리킨 것은 담성이었다.
“아, 이 아이는…….”
노승은 아무런 대꾸도 없고 해서 담웅이 말하려 하는데, 오칠이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눈치 빠르게도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기회를 재빨리 포착한 것이다.
“노스님께 가르침을 받고 있는 외학전 행자승 오칠이라 합니다.”
담성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담웅이 그랬듯, 그도 노승과 오칠의 관계, 그리고 그들과 오칠의 관계에 대해서 난감해하는 것이 확실했다.
“험, 그렇군.”
오칠에 대한 담성의 호기심은 일단 정지됐다.
복잡하고, 난감한 상황은 후에 다시 사부인 소림 방장과의 대화 속에서 풀어갈 생각인 것이다.
“대허야, 네가 이 행자승과 함께 있거라.”
담성의 말인즉 오칠이 방장실에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칠은 그 말에 수긍할 수 없었다. 뭐라 해도 자신은 노승의 제자이고, 그런 만큼 소림 방장 등과 어울릴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하나, 담성뿐만이 아니라, 노승까지 그 점에 동감하고 있어 한마디 반박의 말조차 꺼낼 수가 없었다.
“가서 밥이나 먹고 있어라. 내 것도 챙겨두는 거 잊지 말고.”
“예, 사부님.”
오칠의 대답을 듣자마자 노승은 담성, 담웅과 함께 방장실이 있다는 곳으로 사라져갔다.
‘배반자 같으니라고!’
멀어지는 노승이 왜 그리도 원망스러울까.
그래도 자신은 노승을 믿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아무리 무공에 대한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흔쾌히 동행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곳, 소림사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노승밖에 없는 것이다.
‘예의상으로라도 같이 가자고 하면 어디가 덧나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원망스러웠다.
절대 그 유명한 소림 방장과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가세.”
“어디로 말입니까?”
“정재소로 가서 공양을 준비토록 해야지.”
“배 안 고픈데요?”
이곳을 오기 전에 토끼를 세 마리나 구워먹었으니, 배가 고플 리가 없었다.
하지만 대허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오칠의 허기짐이 아니었다.
“노스님이 공양을 준비하라 하셨으니, 어차피 정재소로 가야 하네.”
오칠은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방장실 구경은 하지 못하지만, 소림사에는 그보다 더 볼 만한 곳들이 많을 테고, 지금이 그곳들을 구경하기에 아주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저는 그냥 이곳에 있으면 안 될까요? 너무 오래 걸었더니 움직이기가 힘이 들어서 말입니다.”
오칠은 발바닥에 물집이 생겼다느니, 무릎이 삐거덕거린다느니 하는 핑계를 대며 땅바닥에 주저앉았고, 결국 대허는 다른 곳으로 가지 말라고 오칠에게 신신당부를 하고서 정재소가 있는 방향으로 사라졌다.
“좋았어!”
오칠은 대허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마자 언제 다리가 아팠냐는 듯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로 가야 하나?’
막상 움직이려하자 방향 설정에 대한 문제가 생겼다.
하나, 오칠은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본능에 충실하는 거야.”
본능에 의한 선택이 대부분 옳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런 고민이 되는 상황엔 그보다 마땅한 방법은 없는 법이었다.
그래서 오칠은 큰 건물이 많고 담장이 높은 안쪽 방향, 방장실과는 약간 다른 방향으로, 그리고 정재소와도 약간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내딛었다.